첫 번째 단편 `두 여자 이야기`는 홍어애탕을 먹을 수 있느냐, 없느냐로 확인하지 않으면 오랜 친구나 애인도 헷갈릴 만큼 외모가 닮은 두 여자가 나오는 이야기다. `홍어애탕`이라고 쓰는 지금 이 순간도 나는 가운데 들어간 `애`자 때문에 더더욱 저 음식을 전혀 모르는 상태다. 찾아보니 `애`는 애간장이 녹는다, 할 때의 그 애, 홍어애탕은 홍어창자탕인 거다.
다른 도시에서, 다른 삶을 산다는 것이 어쩌면 한 여자는 홍어애탕을 먹을 수 있게 만들고 또 한 여자는 그것을 못 먹게 만들었을 터. 이 소설을 통해 문득 내가 먹을 수 있는 음식과 즐겨 먹는 음식에는 나 자신과 지금까지의 삶이 담겨있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내가 어떤 삶을 살지 알 수 없는 것은, 지금까지는 못 먹었던 어떤 새로운 음식을 즐기게 되거나, 지금껏 즐겨먹었던 음식이 더이상 맛있게 느껴지지 않을지도 모르는 것과 같달까.
두 번째 단편, 표제작인 `여름의 맛`은 우연히 복숭아맛을 본 여자의 이야기다. 일단 베어물면 그 어떤 사람이라도 끈적한 과즙이 흘러나오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예전에 어떤 드라마에서 심은하가 양치를 하는 걸 보고 의아했던 적이 있다. 나는 아무리 조심해도 치약이 입술 바깥으로 묻어나오는데 심은하는 화면 속에서 꽤 오래 양치를 하는데도 치약이 거의 밖으로 나오지 않는 거다. 곰곰 생각한 끝에 나는 그 이후로 양치할 때 마른 칫솔에 치약만 묻힌다. 물을 묻히지 않는 게 버릇이 됐다. 물론 그럼에도 입술 밖으로 여전히 치약은 묻어나오지만, 개수대가 하나인 화장실에서 앞 사람이 오랜 시간 개수대를 독차지해도 침이 섞인 치약물을 흘리지 않고 기다리는 데 도움이 된다.
물이 많으면 흘러넘치는 것도 많다. 그래서 물 많은 복숭아는 낯선 사람과 먹기 참 어려운 과일 중 하나다. 그런 복숭아를 주인공은 어느 여름날 교토의, 금각사인 줄 알고 둘러본 은각사에서 만난 처음 보는 남자와 하나를 다 먹고 돌아온다. 그때 먹은 그 복숭아는 훗날 여자가 그 맛을 찾아 남쪽으로 가게 만든다. 하지만 나는 여자가 그때의 그 복숭아맛을 다시 맛볼 수 없을 거라는 확신이 든다.
이 이야기 속에는 잡지기자인 여자가 취재한, 스스로 시기를 선택한 죽음을 앞둔 또다른 여자가 등장한다. 그녀는 `여름의 맛`으로 `콩국`을 꼽는다. 음식전문가인 시한부 여자는 콩국의 맛을 설명하면서 목구멍으로 물고기가 넘어가는 것 같았다고 표현하는데, 말만 들어도 이미 콩국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기분이었다. 이 단편을 읽고 잠깐 잠이 들었었는데, 꿈에서 콩국을 마셨다.
세 번째 맛은, 순대와 족발의 맛이다. 여러 사람의 투자를 받아 시작한 사업이 망하고 아빠는 도망길에 올랐다. 엄마가 돌봐야 할 자녀는 무려 세 아들과 딸 하나. 식구들을 먹여살리기 위해 엄마는 순대골목에서 순대장사를 시작한다. 후에는 족발도 팔게 되는데 어느날 엄마가 (아마도 다 못 팔고 남은) 족발을 집에 가져온 걸 보고 남동생이 돼지의 발이 하나 모자란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무서워한다. 사는 것이 살아남는 것으로 전환된 후의 삶을 작가는 `다리 세 개뿐인 돼지`의 `공포`라고 여러차례 표현했다. 발이 하나 없는 돼지,는 아버지가 없는 가족,이 맞닥뜨리게 되는 삶의 공포를 그대로 드러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