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설 고향집에 갈 때 다 읽은 책 몇 권을 캐리어 남은 공간에 실어 가져갔습니다. 책을 꽂으려고 보니 자리가 부족했습니다. 오래된 책장 하나는 휘다 못해 부서지고 있었습니다. 책장을 다시 정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정리하고 나니 예뻐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이 책상은 책상 부분을 접을 수 있는 아주 오래된 책상입니다. 25년쯤 전에 사촌오빠에게 얻은 것입니다. 그런데도 아직 너무 튼튼합니다. 고풍스럽기까지 합니다.

 

오른쪽 위칸에는 여명의 진실(어니스트 헤밍웨이), 문학판 제6호 2003년 봄호, 창작과 비평 113, 119, 120, 121, 129, 131~135, 137~139권과 스웨덴에서 사온 이제는 읽을 수 없는 제목의 동화책이 꽂혀 있습니다.

 

아래칸에는 짧은 글 긴 침묵(미셸 투르니에), 무지개와 프리즘(이윤기),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노희경), 지상의 양식(앙드레 지드), 비슷한 것은 가짜다(정민), 야윈 젖가슴(이청준), 로시니 혹은 누가 누구와 잤는가 하는 잔인한 문제(파트리크 쥐스킨트 | 헬무트 디틀), 고요한 숲속의 연못(잭 콘 필드), 네가지 질문(스티븐 미첼, 바이런 케이티), 지란지교를 꿈꾸며(유안진), 나무야 나무야, 더불어숲 1~2(신영복), 전태일 평전(조영래), 들꽃 이야기(김지수), 그리운 것들은 산 뒤에 있다(김용택), 자전거여행(김훈), 꽃삽(이해인 | 하정민),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정약용 | 박석무), 나라 없는 사람(커트 보네거트), 산에는 꽃이 피네(법정 스님), 일상적인 삶(장 그르니에),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전혜린),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꽂혀 있습니다.

 

[고요한 숲속의 연못]과 [네가지 질문]은 이성복 선생님께서 꼭 읽어보라며 권해주셨던 책이었고, 역시 좋았습니다. 하지만 그 글들을 읽었던 그 마음으로 살고 있는지는 자신이 없습니다.

 

왼쪽 위칸에는 닥터 지바고(보리스 파스테르나크), 변신(프란츠 카프카), 로맹가리(도미니크 보나), 은의 죄(루이제 린저), 이야기 세익스피어2, 파우스트(요한 볼프강 폰 괴테), 페스트(알베르 카뮈), 슬픔이여 안녕/부베의 연인(프랑수아즈 사강),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밀란 쿤데라), 유리알 유희(헤르만 헤세), 호프만스탈(후고 폰 호프만스탈), 사춘기(프랑크 베데킨트), 바보/항아리(루이지 피란델로), 나는 아버지가 하느님인 줄 알았다(폴 오스터), 월든(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인간의 조건(앙드레 말로), 카프카의 엽서'누이에게'(프란츠 카프카), 대구사진비엔날레 2008년 도록이 꽂혀 있습니다.

 

아래칸에는 별밤365일(이태형), 유희열 삽화집 '익숙한 그 집 앞(유희열), 경향신문에서 부록으로 줬던 Travel 오늘 우리는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떠난다(김석종), Travel 오늘 우리는 이곳으로 떠난다, Friendship 친구네 집에 가는 길은 먼 법이 없다(메이브 빈치), 황홀의 순간(릴케| 로댕), 클림트, 황금빛 유혹(신성림), 예술가로 산다는 것(박영택), 케테 콜비츠(카테리네 크라머), 가우디, 공간의 환상(안토니 가우디), 너무 낡은 시대에 너무 젊게 이 세상에 오다(박명욱), 예술의 숲(오귀스트 로댕), 진중권의 현대미학강의, 미학오디세이1~3(진중권), 소심하고 겁 많고 까탈스러운 여자 혼자 떠나는 걷기 여행 2(김남희), 유럽의 걷고 싶은 길(김남희), art attack 도발(마크 애론슨), 피카소의 달콤한 복수(에프라임 키숀), 에곤 실레(프랭크 휘트포드), 파리블루(김영숙), 작가의 방(박래부| 안희원| 박신우), 반 고흐, 태양의 화가(파스칼 보나푸)가 있습니다.

 

아직 못 다 읽은 책도 읽고 내용이 잘 기억나지 않는 책도 있지만 그저 바라만 보고 있어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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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3학년 여름방학이 시작된 지 며칠 안 된 어느 날, 밖에서 친구를 만나고 돌아왔는데 선생님의 연락이 와 있었습니다. 집으로 이성복,이라는 사람이 전화를 했었는데 누나가 없어서 핸드폰 번호를 알려주었다는 겁니다. 확인을 해보니 핸드폰에 음성메시지가 남겨져 있었습니다. 나 이성복이다, 학교로 한 번 찾아오너라. 내 연구실 전화번호는. 이라는 비교적 짧고 간결한 메시지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러나 제 심장의 쿵쾅거림은 길었습니다.

 

여름방학, 비교적 한산한 캠퍼스를 지나 선생님의 연구실로 갔습니다. 응 그래 와서 앉거라. 저는 긴장된 마음으로 소파 끝에 엉덩이만 걸치고 앉았던 걸로 기억합니다(10년 전의 일을 적는 것이기 때문에 모든 문장 뒤에는 '...으로 기억합니다'라는 문장이 들어가야겠지만, 거추장스러우니 이제부터는 생략하겠습니다) 맨날 머리모양이나 바꾸고 농땡인 줄 알았더니 너 과제를 꽤나 잘 했더라?라고 운을 떼십니다. 뛸듯이 기뻤지만 저는 수줍어 얌전을 빼고 앉아있었습니다. 그 때도 지금과 비슷한 말습관을 갖고 있었다면 아마도 '정말요?' 정도의 반응을 보였을 겁니다.

 

당시 선생님이 내어주신 과제명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저는 기형도 시인의 <위험한 가계 1969>와 이성복 선생님의 <1959년>이라는 두 시에 대한 글을 썼습니다. 조금만 손보면 당장 발표할 수도 있겠다는 엄청난 칭찬을 해주셨지만 그것은 아무래도 직접 가르친 제자에 대한 애정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 그 글을 다시 읽어보면 부끄러운 부분이 많습니다.

 

2학기가 시작되고 점심시간 직전 선생님의 수업이 있는 날이면 채식을 시작하신 선생님이 즐겨가시던 학교 후문 근처 비빔밥집에서 함께 점심을 먹곤 했습니다. 선생님의 수업을 들었던 학생들은 워낙 이성복 선생님 이전의 이성복 시인을 좋아했던 터라 그네들의 시선이 신경 쓰이기도 했지만, 가끔 약속이 있거나 해 저를 부르지 않으시면 그것이 더 마음이 쓰였습니다.

 

선생님은 제 이야기를 많이 물으셨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다 하게 됐습니다. 돌아가신 아버지보다 한 살 위셨던 선생님은 아버지처럼 생각하라는 고마운 말씀을 주셨습니다. 물론 워낙 대시인이고 존경하는 스승이라 아버지만큼 편하지는 않았지만 정말 아버지처럼 의지가 됐습니다. 졸업식 날 찾아가서 받은 꽃다발을 드렸더니 그 때 준비해두셨던 봉투를 꺼내 제게 주셨습니다. 졸업 축하한다며 정말 아버지처럼 용돈을 넣어주셨던 겁니다.

 

선생님은 늘, 모든 꽃이 장미일 수는 없지만 장미가 아니라도 세상에 예쁜꽃은 얼마든지 많다며 늘 저를 격려해주셨습니다. 글을 쓰기를 바라셨습니다. 스웨덴에 공부하러 가서 예정된 6개월만에 돌아오게 됐을 때도 너무 빨리 오는 것 아니냐며 좀 더 남아서 공부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고 하셨고, 졸업 전에는 졸업하면 어떻게든 서울로 올라가서 많은 사람들 만나며 자극받아 글을 쓰라고 조언해주셨습니다. 졸업 후 취업을 해서 일하고 있을 때도 공부는 계속 하고 있는지 궁금해하시고 몇 번이나 선생님 지인과 제자들을 소개해주셨습니다.

 

일년에 한 두 번 연락을 드리고 찾아뵈면서 어쩌다보니 서울에 와서 일을 하게 됐고 어쩌다보니 서른이 넘어버렸습니다. 공부하지 못하고 돈벌이만 하며 사는 모습이 부끄러워 마음과는 달리 연락도 자주 드리지 못하고 자주 찾아뵙지도 못하는 동안 시간은 어김없이 흘렀습니다.

 

작년에는 만나뵙기로 한 날 선생님께 다른 일이 생겨 만나지 못하게 됐습니다. 곧 다시 찾아뵀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채로 1년 가까이 또 시간은 갔습니다. 그러다 얼마 전 선생님의 10년 만의 시집 출간 소식을 듣고 전화를 드렸는데, 선생님은 받지 않으셨습니다. 두 번 해도 받지 않으셔서 문자를 남겼습니다. 보통 때 같았으면 전화를 금방 받으시고, 문자 답도 금세 해주시던 선생님이었는데 어디 멀리를 가셨나, 시집을 내시고 인터뷰로 바쁘신가 했습니다.

 

며칠 후 다시 전화를 했을 때 선생님은 화가 많이 나 있었습니다. 저는 제가 잘못한 줄도 모르고 선생님이 화가 나신 줄은 더더욱 몰랐습니다. 저는 울고 또 울었습니다. 그 후 두어 번의 메일을 주고 받았고 저는 다시 선생님께 연락드릴 날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렇게 저를 귀이, 예삐 여겨주시고 신경써주시던 선생님께 실망을 안겨드리고 저는 조금이라도 빨리 선생님을 다시 뵙고픈 마음 대신에 선생님의 [래여애반다라]를 읽고 또 읽었습니다. 지금도 천천히 82편의 시 한 수 한 수를 다시 읽고 있습니다. 어떤 시를 읽을 때는 선생님이 그대로 떠올라 웃음이 터지고 또 어떤 시를 읽을 때는 선생님이 그대로 떠올라 마음이 말할 수 없이 저립니다. 그렇지 않아도 예민하고 섬세하신 분이 이렇게 한 순간 한 순간, 하나하나를 다 보고 느끼며 기억하며 사시는구나 생각하니 그것 또한 마음이 아팠습니다. 시인의 숙명이라고 해도 선생님은 제게 아버지같은 선생님이니까요.

 

저는 그 전에도 그랬듯이 이렇게 선생님의 글을 읽고 선생님이 해주신 말씀들을 생각하면서 늘 선생님이 제 곁에 계시다고 생각해왔듯이 그렇게 조금은 여유있게 기다리겠습니다. 그리고 곧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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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마감] 9기 신간평가단 마지막 도서를 발송했습니다.

 

 

예전에 어떤 라디오 프로그램 오프닝에서 이런 내용을 들은 기억이 난다. 대략 "그 여자는 6개월에 한 번 꼬박꼬박 치과에 스케일링을 받으러 가는데, 그렇게 몇 번을 반복하고 나서 깨닫는다. 6개월에 한 번 스케일링을 하기 시작한 이후 그녀에게 시간은 6개월 단위로 흘러, 스케일링을 2번 하고 나면 1년이 가는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나도 첫 직장에서 보내는 3년 반 동안은 시간이 그런식으로 6개월 단위로 흘러갔고, 1년에 한 번 있는 시험을 준비하던 때나, 연간행사를 진행해오는 몇 년 전부터는 행사 한 번 치르고 나면 1년이 가고 1살을 먹는 식으로, 시간이 뭉터기로 쑥쑥 흘러가고 있음을 느낀다.

그러던 와중에 다시 나의 시간을 그나마 절반으로 쪼개어 인식시켜주고, 다시 그 시간을 1달에 한 번 돌아오는 기쁨과 설렘으로 돌려준 사건이 일어났으니, 그건 바로 운 좋게도 '9기 소설분야 신간평가단'이 된 것이었다. 1달에 2권씩 새로 나온 책을 선물받으면서 시간을 한 달 단위로 명확하게 인식할 수 있었다. 

당시 나는 개인적으로 마음이 부대끼는 일을 겪고 있었는데, 그 와중에도 내가 신간평가단이 됐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그냥 피식피식 웃음이 나올 정도로 정말 너무 기분이 좋았다. 여기 서재 어디였는지, 내 계정의 SNS를 통해서였는지 정확하게 기억은 나지 않지만 '사랑해요 알라딘'이나 '알라딘 덕에 산다' 같은 낯 간지러운 말을 흘리기도 했는데, 흔히 아부성 발언이기 쉬운 이 문장들이 내겐 정말 정말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진심이었다.  

한 달에 한 번 추천신간도서를 고르고, 또 어떤 책이 선정될까 기다리고, 언제 책이 도착할까 기다리고, '알라딘 증정'이라는 예쁜 글자가 꽝 박힌 책 두 권 중 뭐부터 읽을까 책장을 넘겨보고, 실제로 한 권 두 권 책을 읽으면서, 참 행복했다. 

때로는 일이 바쁘거나 개인사로 바쁘거나 아니면 정말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이 며칠씩 이어져 마감날짜를 지키지 못할 위기에 처하기도 했고 실제로 마감연장 요청이메일을 보내기도 하여 미안한 마음 감출 길 없었으나, 그것조차 기분 좋은 스트레스였다.  

지금까지 책을 읽고 그냥 덮어둬 과연 내가 이 책을 읽었는지 기억이 희미한 경우가 많았는데, 적어도 6개월 동안 읽은 12권의 책에 대해서는 다시 한 번 들춰보고 내 생각을 정리해볼 수 있어서 좋았다. 나는 누가 이렇게 책임을 넘겨줘야 더 책임감을 느끼는 게으른 사람이니까.  

 

간평가단 활동을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책은 어디 보자... 목록을 쭉 훑어보니 김인숙 작가의 [미칠 수 있겠니]인 것 같다. 솔직히 굉장히 기발하다거나 뒤통수를 탁 치는 크나큰 반전이 있다거나 하진 않았지만 잔잔하게 마음을 파고드는 책이었다. 분명히 지어낸 이야기에 불과하지만, 실제로 있었던 가슴아픈 사고와 그 사고가 일어난 곳을 배경으로 해서 더 몰입하게 됐던 것 같고, 당시 나의 마음상태나 장마철이라는 날씨도 [미칠 수 있겠니]를 절절하게 받아들이는 데 한 몫 했던 것 같다. 마치 생생한 영화를 보듯이 애써 '이건 소설에 불과해'라고 자꾸 스스로 되뇌어도 마음이 아파 죽겠는 걸 어쩔 수 없는 그런 책이었다.  

김인숙 작가의 책은 처음으로 읽어본 거였는데, 다른 책들도 읽어보고 싶어졌다. 

  

9기 신간평가단으로 내가 읽은 책은 총 12권이다. 내가 읽은 순서대로 나열하자면 미치오 슈스케의 [달과 게], 정유정의 [7년의 밤], 조지 오웰의 [숨 쉬러 나가다], 페넬로피 라이블리의 [문타이거], 김인숙의 [미칠 수 있겠니], 최인호의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 발 맥더미드의 [인어의 노래], 루이즈 페니의 [스틸라이프], 구병모의 [고의는 아니지만], 짐 퍼커스의 [천 명의 백인신부], 알베르토 망구엘의 [모든 사람은 거짓말쟁이], 그리고 존 어빙의 [네번째 손]이다. (아, 나는 얼마나 복 많은 사람인가) 

이 중 아무리 내 맘대로라지만 좋은 책 베스트 5를 꼽자니 좀 미안하고 그렇다. 그래도 꼽는다. 

가장 좋았던 책은 구병모의 [고의는 아니지만]이었다. 구병모 역시 처음 읽는 작가였는데, (그러고 보면 나의 독서편식 때문인가, 12권 중 조지 오웰을 빼고는 모두 책을 처음 읽어보는 작가들이었다) 이상하게 나는 문학상 수상으로 떠들썩하게 데뷔한 젊은 작가들의 책은 선뜻 읽어보게 되지 않는다. 못된 심보지만. 그래서 궁금은 하였으나 한 번도 읽어보지는 않고 있다가 [고의는 아니지만]을 통해서 구병모를 만났다. 

그녀는 기발하면서도 차분하고, 냉정하면서도 따뜻하고, 암튼 굉장히 재능이 있으면서도 단지 소설을 자기 재능을 드러내기 위해 쓰는 것이 아니라는 인상을 줬다. 각 단편들마다의 발상과 이야기를 끌어가는 힘, 그리고 제목들, 하다못해 표지까지도 가장 좋았다. 

두 번째는, 조지 오웰의 [숨 쉬러 나가다]. 이건 뭐 ‘역시’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작가, ‘역시’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통찰력과 문장력과 인물 묘사였다. 

세 번째는, 김인숙의 [미칠 수 있겠니]인데, 가장 기억에 남는 책으로 꼽아놓고는 세 번째에 두자니 좀 머쓱하지만 두 번째부터는 순위에 큰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작가들은 정작 보지 않겠지만;) 밝혀두고 싶다. 

네 번째로는, 마지막에 읽은 존 어빙의 [네번째 손]인데, 예상치 못한 이야기의 흐름과 패트릭 월링퍼드라는 인물의 변화, 미스테리하고도 매력적이고도 약간은 무서운 여인 클로센 부인의 매력, 그리고 존 어빙의 유머감각이 어우러진 멋진 작품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가장 처음 읽은 미치오 슈스케의 [달과 게]를 꼽고 싶다. 순진해서 위험한 ‘어림’의 감정을 너무 잘 썼다. 애들 이야기라고 치부해버리기에는, 책을 덮은 후에도 마음이 쓰이고 걱정되게 하는 아련하고도 짠한 유년기에 대한 이야기가 아주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책을 쓴 작가들, 출판해준 출판사들, 그리고 신간평가단에 나를 끼워준 알라딘, 정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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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계속 눈물이 났다. 이별하는 중이고, 미워하는 중이고, 애쓰고 있는 중이었다. 염치 없게 난 꼭 이럴 때만 선생님을 찾는다. 몇 시간 후 받아본 선생님의 답장과 그동안 모아놓으셨던 글들. 

이성복 선생님의 답장을 받고 나는 화장실로 갔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나는 운다. 돌아오는 길에 문득 발견한 피고 있는 꽃들 때문도, 아침에 발견했지만 줍지 못한 예쁜 바구니 때문도, 아니다. 엄마를 생각하면 눈물이 나고, 아빠를 생각하면 눈물이 나는 것처럼 나는 이제 선생님을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한 번도 직접 말하지 못했지만 선생님,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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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literature | quick space 2004/06/30 21:15

1 어쩌면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문학교과서에 실릴 만큼의 비중을 공인 받는 여느 우리 작가보다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이름을 더 편하게 느끼고 있을지 모른다. 한 번 가 본 적도 없는 노르웨이의 숲은 왠지 태백산맥 어디쯤 있을 것처럼 친숙하다.

아무 의미가 없으면서도 부르기 쉬운 이름을 찾다가 "바나나"라는 필명을 지었다는 요시모토의 "부엌(키친)" 역시 조금 과장해서 어릴 적 친구 집인 것 마냥 정겹다.

어마어마한 규모와 소장량을 자랑하는 대학도서관에서 "냉정과 열정사이"를 '빌려서' 읽고 싶거든 꽤 부지런해야 한다. 곁다리로 에쿠니 가오리의 다른 책이라도 보고 있으려니 그것조차 쉽지 않다.

"69"의 상징을 모르는 이는 문학도의 자질을 의심받을 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니, 난잡한 성교와 의도적인 자기 파괴가 취미인 젊은이들의 이야기가 무난하게 읽히지는 않아도, 억눌린 쾌락과 일탈 충동, 감각을 긁어주는 "무라카미 류"도 있었다.

2 가깝고도 먼 나라가 일본이라고는 하지만, 우리 땅 덩어리 아닌 타국에 적을 둔 베스트셀러, 혹은 스테디셀러 작가가 서너 명 정도는 그냥 떠오른 다는 것은 어쩐지 의미심장하다.

90년대 말쯤으로 기억한다. "노르웨이의 숲에 가보셨나요?"라는 감성적인 카피의 광고가 히트를 치면서 다시 한 번 "상실의 시대" 읽기, 하루키 읽기 바람이 불었다. 꼭 문학청년이 아닌 이들도 "와타나베"와 "미도리"를 사칭하며 그들의 창조주 하루키에 대한 흠모의 정을 키워나갔다.

개인적인 고백을 털어놓자면, 솔직히 "죄와 벌"을 읽고서 라스콜리니코프의 죄의식과 인간의 원죄를 이야기하는 것보다 "상실의 시대(원제: 노르웨이의 숲)"의 와타나베와 미도리, 레이코의 방황과 착란을 이야기하는 것이 어쩐지 조금 더 멋있게 느껴진 적도 있었다. 조금만 더 자라면, 겉에서 보기에는 혼돈과 무질서를 힘겹게 짊어지고 있는 것 같아도 나름의 굳은 삶의 방식을 가진 하루키 소설의 주인공들처럼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환상과 현실을 교란시켜,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이상을 손에 잡힐 듯 그려내는 하루키의 수법은 나를 여러 가지 이유로 숨막히게 했다.

작가로서의 고민을 담은 그의 초기작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읽을 때에는 실제로 바람의 노래 아니라 숨소리라도 들을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하는 힘, 그것이 한 왜소한 열도에서 태어난 영원히 젊은 작가 하루키이다.

하루키에 이어, 요시모토 바나나는 "키친" 한 권으로 얼마나 오랫동안 베스트 셀러 작가 자리를 지켜왔는지 모른다. 삶과 죽음 사이를 부유하며 끊임없이 우리에게 오라 하는 손짓. 흔히 표현하듯 경쾌한 터치와 신세대적인 감각적 묘사로 심각한 것을 조금은 사소하게 만들어주는 글쓰기. 바나나는 "너만 괜찮다면, 우리 좀 더 밝고 더 굉장한 곳으로 가자"는 위험한 유혹을 서슴없이 내뱉는다. 그리고 머리에서 발끝까지 끓는 피는 기꺼운 마음으로 모험을 감행하도록 부추긴다.

그러나 가장 최신식 일본산 히트 작가를 논하자면, 하나의 이야기를 남과 여의 시각으로 담아 내는 새로운 시도가 엄청난 반응을 불러일으킨 에쿠니 가오리(와 츠지 히토나리)를 빼 놓을 수 없을 것이다. 헤어진 연인이 '10년 후 생일에 피렌체 두오모에 오르자'는 약속을 했다는 설정은 유치하고 상투적이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낭만적이다. 원래 사랑은 유치한 거라는 말로 위로하며, 사람들은 냉정과 열정사이에 빠져들어 자신의 냉정 속에 감추어진 열정을 찾아낸다.

그야말로 "빙점"의 미우라 아야꼬,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의 나쓰메 소세키와 같은 전통적인 일본 작가들과는 조금 성격을 달리하는 감각적이고 젊은 작가들은 이웃 나라, 한국의 독자들을 사로잡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힘은 여전히 소진되지 않은 듯하다. 이는 하루키의 최신작 "해변의 카프카"나 에쿠니 가오리의 "호텔 선인장"을 보면 확인할 수 있다.

3 내가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던 어느 동호회의 인터넷 게시판에 "키친"의 소설의 한 구절을 올린 적이 있었다. 그 게시판에서는 그 한 구절 때문에 논쟁이 일었다. 물론, 그것은 작가 혹은 작품 전체에 대한 것이 아니라 아직도 은근히 뿌리 깊은 반일감정 대 일본작가들에 대한 매니아적 취향간의 대립이었다.

하루키의 글 속에는 진정성이 부족하고, 바나나의 글에는 깊이가 없으며, 따라서 하루키나 바나나를 읽는 요즘 젊은이들은 오감을 직접적으로 자극하지 않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이 보았다.

유행에 민감한 이 땅의 젊은이들은 책읽기도 유행을 따라서 베스트 셀러는 없어서 못 팔고, 고전문학은 먼지 쌓인 서고 한 켠으로 밀려나고 있다고도 말한다. 실제로, 똑같은 번역에 똑같은 판으로 찍어낸 책에 양장을 시켜 한 몇 천 원쯤 얹어 팔아도 베스트 셀러는 잘 나가고, 출판사는 또 그것이 고마워 베스트셀러 작가들의 베스트셀러 작품들을 세트로 묶어 할인해주며 팔고 있다.

이 세 가지 걱정 중의 첫 번째는 유서 깊은 무조건적 배타심을 버리는 것으로 해결을 볼 수 있을 것이고, 두 번째는 (실제로 그들의 지적이 정당하다는 가정 하에) 삶의 진정성과 깊이가 들어 있는 다른 작품들로 결핍을 메우면 될 것이다.

그러나 세 번째는 조금 더 생각을 해보았으면 싶은 문제들인데, '출판사는 훌륭한 책으로 사람들을 널리 이롭게 하겠다는 사명만을 갖고 조악한 상술은 깨끗이 버리시오' 라고는 할 수 없는 바, 읽는 우리나마 책을 고르는 눈을 닦아야 하지 않겠는가. 대문호라고 언제나 명작만을 쓸 수는 없을 것이다. 세트로 묶어 판다고 홀라당 넘어가지 말고, 이제는 좀 골라서 읽고 다르게 읽자.


2003. 여름
from www.chamz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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