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리 오브 라이프 - The Tree Of Life
영화
평점 :
상영종료


보고 싶다 생각만 하고 보지 못했던 영화를 2011년과 2012년에 걸쳐 봤다. [트리 오브 라이프 ㅣ The Tree of Life]는 2011년 마지막으로 본 영화이자, 2012년 처음으로 본 영화이다. 밀란쿤데라 전집 중 한 권을 사고 민음사에서 선물로 받은 '불멸'이라는 이름의 커피콩을 믹서기에 갈아 드리퍼로 내려 한 모금 할 때 영화는 시작됐다. 첫 장면의 이미지는 솔직히 떠오르지 않는다. 그냥 뿌옇게 흐린 화면만 기억이 나는데 실제로 그것이 영화의 첫 장면인 지도 잘 모르겠다.

 

영화는 그렇게 장면, 장면을 비추었다. 그리고 전화벨 소리, 신음 소리, 울음 소리, 그리고 그 이후 대부분의 소리는 기도 소리였다. 사고로 아들을 잃은 독실한 크리스찬 엄마의 기도는 원망으로 시작해 결국은 수용으로 끝이 난다. 나는 기독교인이 아니고, 사실은 기독교에 대한 편견이 있고, 더 솔직히 말하면 집단으로서의 기독교인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가장 싫은 것은 일부이나 적지 않은 기독교인들의 전도 방식이다. 그럼에도 그녀가 하느님을 원망할 때뿐만 아니라 결국 그 모든 것을 체념하고 결국 원망 없이 받아들일 때조차 나는 그녀를 이해할 수 있었고 마음이 함께 움직였다.

 

조금은 지루할 것이라는 마음의 준비를 하였지만 영화는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대사가 별로 없고 마치 지구과학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틀어줘도 어색하지 않을 법한 우주와 자연을 담은 영상들이 끊임없이, 뜬금없이, 그러나 너무도 자연스럽게 영화 사이사이에 자리하고 있다. 심지어는 공룡도 나온다.

 

온화하고 다정한 엄마와 열아홉이라는 어린 나이에 죽어버린 동생, 그리고 권위적인 아버지에 대한 이미지와 기억, 두려움과 미움이 온통 지배하고 있는 잭 오브라이언은 이미 중년이 됐다. 아버지의 전화를 받은 잭은, 이미 그 당시의 아버지 나이가 되었음에도 여전히 그가 회상하는 어린 시절에 그랬듯 아버지를 어려워하고, 늙은 아버지는 여전히 그때처럼 아들을 다그친다. 그리고 이후의 기억은 거의가 동생이 죽기 전, 경외심에서 시작된 아버지에 대한 감정이 두려움으로, 반항심으로, 그리고 미움으로 변해버린 어린 시절을 더듬는다. 그리고 여전히 우주며 대자연이며 구름이며 바람 같은 것들이 사이사이 화면을 메운다. 엄마의 기도소리와 함께.

 

무척이나 종교적인 색채가 강한 영화다. 그럼에도 별 거부감 없이 이 영화를 받아들인 데에는 그 '종교적인 색채'를 개인적인 다른 무엇으로 바꿔 생각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그렇게도 믿고 사랑하고 따르는 하느님이 그렇게도 사랑하는 아들을 너무 이른 나이에 앗아가버린 것을 원망하고 오랫동안 처음과 같이 고통받으며 결국은 세월이 흐르며 모든 것을 수용할 수밖에 없는 그 인간적인 면모는 종교를 떠나서 모두 같다. 독실한 기독교인이 아니라 불행한 일을 마주했을 때 그만큼 원망할 대상이 따로 없지만, 그렇기에 모든 것을 원망할 수밖에 없는 비종교인에게도 이 영화는 똑같은 질문을 하게 하고 생각하게 하고 또 느끼게 한다. 그 누구보다 엄마 역의 제시카 차스테인을 캐스팅한 것이 이 영화에 굉장한 힘을 부여한다. 그녀의 낮고 차분한 목소리, 그러나 그렇게 한결같이 낮고 차분한 목소리 속에 담아낸 너무나도 복잡하고 어려운 감정들. 좋았다.

 

씨네21의 한 기자는 이 영화를 2011년 과대평가된 영화로 꼽기도 했다. 하지만 이토록 강렬한 종교적 색깔을 담고도, 나처럼 기독교에 대해 일종의 경멸까지도 갖고 있는 사람에게도 거부감을 일으키지 않게 했다는 점만으로도, 테렌스 맬릭의 [트리 오브 라이프]는 참으로 거대한 영화다. 지루한 자연 다큐멘터리라고도, 편협한 기독교적 영화라고도, 또 거장으로 평가받아오다 결국 꼰대스러워진 감독의 그저 그런 작품이라고도 비판할 수 있지만 나에게는 거대한 작품이다.

 

2012년을 맞으며 보기로 선택하기를 참으로 잘했다고 스스로를 칭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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