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50 - 50/50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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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프면 아프다고 엄마한테 말한다. 서울-대구만큼 떨어져있어서 말 안 하면 모르시고, 모르시면 걱정도 안 하실텐데 왜 굳이 말하냐고 생각할 지도 모르지만 나는 말한다.

 

전화목소리라고 어설프게 연기를 해봤자 귀신 같은 엄마한테는 먹히지도 않고, 애초에 완벽한 연기를 선보일 마음이 없는 연약한 나 자신 탓일 수도 있다.

 

하지만 엄마와 나 사이엔 일종의 협정 같은 게 있다. 아플 땐 아프다고 말하기.

 

서울에 온 지 얼마나 지났을 때였던가 가물가물하지만 엄마가 일주일이나 아파놓고도 티를 안 내서 몰랐다가 뒤늦게 알게 됐는데 너무 마음이 아팠다. 사람들은 대개 너무 마음이 아프면 화를 내고 나도 그 땐 화를 냈다.

 

덕분에, 엄마도 내가 서울에서 아픈데 엄마한테 말도 안 하고 혼자 아팠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되면 얼마나 마음이 아프실까 헤아려볼 수 있게 됐다.

 

안타깝게도 엄마는 내가 아프면 남들처럼 '쟨 원래 잔병치레가 많은 애니까'라고 생각하며 점점 걱정을 덜 하게 되는 면역력 같은 게 도무지 생겨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쩔 수 없다. 당장 어떻게 해줄 수가 없어도 지금 아프면 지금 아프다고 말하는 게 낫다.

 

그래야 분명 목소리는 어디가 아픈 것 같은데도 자꾸 아니라고 할 때 진짜 아니라는 것을 믿을 수도 있다. 그리고 대개 우리는 금방 낫지 않는가.

 

영화 50/50은 치사율 50%(그러니까 생존률도 50%인)의 희귀암에 걸린 20대 남자 이야기다.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이야기할 때 너무 심각하지 않게, 유쾌하면서도 너무 가볍지 않게 그려냈다는 점을 장점으로 꼽지만 영화에서 내가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조셉 고든 레빗이 엄마한테 처음 암메 걸렸다는 사실을 말했을 때.

 

기억을 더듬어보면 "언제 그랬니?" "며칠 안 됐어요." "그 며칠 동안은 뭐했는데?" 대략 이런 내용이었는데, 엄마는 이러고서 암을 예방해준다는 녹차를 만들어주겠다며 주방에 가서 운다.

 

엄마는 그렇다. 단 며칠이라도 아들이 엄마한테 말 안 하고 혼자서 얼마나 무섭고 힘들었을까 생각하면 마음이 찢어지는 것. 아직 엄마가 돼보지 않았지만 우리 엄마 덕에 너무 잘 아는 이 점.

 

우리는 모두 살아 있어서 다행이고, 엄마가 있어서 다행이고, 어쨌든 다행이다.

 

+영화를 보고 나왔는데, 아이팟에서 임의재생으로 들려준 노래는 재미있게도 Rufus Wainwright의 '11:11'이었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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