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m Docu 강정 - Jam Docu KANGJUNG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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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는 갖고 들어갈 수 없다고 했다. 광고가 없으니 영화는 정시에 시작할 거라고도 했다. 시간이 어중간했고 거리도 애매했고 그에 비해 밖은 너무도 분명하게 추웠지만 꼭 뜨거운 커피 한 모금을 마시고 싶었다. 먼 데까지 왔는데, 의외로 좀 빨리 와서 간단하게 요기는 할 수 있겠다 기대했는데 생각지 않게 길을 헤맨 데다 건물 출입구가 너무 복잡해서 약간 짜증이 나 있었다. 요기는 못해도 뜨거운 커피는 꼭 마시고 싶었다.

 

가깝지 않은 1층 출입구를 통해 건물을 돌아나가 건널목을 건넜다. 커피집은 바로 보이지 않았다. 일단은 뜨거운 어묵 국물이라도 먹고 싶어 어묵 2개를 먹었다. 어묵을 팔던 할머니는 다 먹고 나가면 길을 막고 이상한 이야기를 건네는 사람을 조심하라고 했다. 이 앞에 한 200명은 된다고 했다. 그들은 늘 짝을 지어 다닌다고 했다. 그리고 마침 할머니가 저것 보라며 손가락을 하는 멀지 않은 곳에는 남녀 한 쌍이 길 가는 남자를 붙잡고 남자는 화를 내며 가버리는 장면이 보였다. 어떤 이는 그들에게 5만원을 자기도 모르게 강탈 당하고 어떤 이는 그들과 함께 아주 먼 곳으로 택시를 타고 가 요금을 덤터기 쓰기도 했다고 했다.

 

어묵 2개를 먹고 국물을 완전히 마신 후 커피집을 찾아나섰다. 너무 맹렬히 걸어서인지 평소 내게도 곧잘 말을 걸어오던 그들 중 누구도 나를 막아서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다시 돌아갈 건널목 앞에 서서 커피 한 모금을 목구멍으로 넘기자 모든 것이 괜찮았다. 영화 상영까지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그 전에 다 마실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러나 커피는 너무 뜨거웠고 5분은 너무 짧았다. 표를 주었던 분에게 커피를 맡기고 상영관으로 들어갔다.

 

다큐멘터리 영화를 크게 좋아하지 않는다. 가뜩이나 현실은 여기저기 잔뜩 널려 있는데 영화를 통해서만은 조금 다른 세상을 보고 싶다. 물론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을 너무 잘 은유해서 다큐인지 픽션인지 구별이 힘든 사실적인 영화도 있다. 하지만 그런 류의 영화는 어쨌든 다큐멘터리라는 타이틀을 걸고 있지 않으므로 부담이 덜하다. 다큐멘터리는 다르다. 아무리 편집을 통한 의도와 재해석의 여지와 요소가 있다 해도 어쨌든 사실은 사실이고 현실은 현실이라 부담스럽다.

 

[잼 다큐 강정]이 시작되고 영화가 진행될수록 나는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리고 불이 켜지고 GV를 위해 영화에 참여한 감독 2명과 트위터를 통해 나를 이곳에 초대해준 이송희일 감독이 앞에 나와 관객석을 향할 것을 생각하니 부담스러워졌다. 너는 무얼하고 있느냐고, 지금까지는 몰라서 그랬다 치고 앞으로는 어떻게 할 거냐고 따져 물을 것만 같았다.

 

지금은 바다에 던지면 순식간에 바닥으로 가라앉아 버릴 것처럼 무거운 이 마음도 영화관을 나서면, 지하철을 타면, 내일이 타면 서서히 희미해져 갈 것을 너무 잘 알았다. 지금은 강정마을을 위해 뭐라도 하고 싶은데 마음이 아프고 정부가 싫고 미래가 두려운데 아이팟 이어폰을 귀에 꽂고 리드미컬한 음악이 나오면 곧 몸을 흔들며 나도 모르게 리듬을 탈 것을 알았다. 그래서 부담스러웠다. 나는 이벤트로, 공짜로, 이 객석에 앉아서 이 영화를 보는 것 말고는 별 것 안 할 안일한 인간인데 저 앞에서는 감독들이 나를 향해 앉아 있으니 부담스러웠다. 도망가고 싶었다. 나는 이 영화를 보지 않았다고 그래서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었는지 몰랐다고 나중에 항변하고 싶은 치사한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다행히도 잼 다큐에 참여한 감독들은 추운 날 와줘서 고맙다고 했다. 그저 알아주고 관심을 가져주는 것만으로 강정에 해군기지가 들어서는 것을 반대하며 힘겹게 투쟁하고 있는 많은 분들이 고마워 한다고 했다. 무언가를 더 하고 싶다면 다른 분들에게도 제주 강정에 이런 일이 있고, 이런 사람들이 있고, 이런 아픔이 있으며 그것을 찍은 영화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시면 된다고 했다.

 

활동가 송강호 씨가 들려줬던 경험이 생각난다. 인도네시아 바다에 폐형광등이 떠내려와서 봤더니 ‘번개표’라고 써 있었다는 거다. 이 바다가 저 바다고 우리 바다가 그들의 바다다.

 

성함은 기억나지 않지만 강정에 해군기지 건설로 주민 간 분열이 일어나기 오래 전부터 강정 바다 속을 보호하기 위한 활동을 해 온 한 주민은 육지처럼 바다도 4계절이 있다고 했다. 그런데 6개월만에 타당성조사를 끝내고 이 곳에 해군기지를 건설해도 환경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은 부당하다는 얘기다.

 

사실 나도 영화에서 본 것 이상은 잘 모른다. 지난 10월 두물머리에서 강정에서 오신 분들을 만나기도 했는데 사실 그 때는 그저 그 곳에 공연오는 밴드들에 더 관심이 있었고, 두물머리가 서울 근교라서 가보고 싶었다. 강정에서 오신 분들이 카페 한 번만 방문해달라고 하셨는데 그 후 그냥 잊어버렸다.

 

확실히 ‘거기 그런 일이 있다더라’ 정도로 듣고 넘기는 것과 ‘어디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구체적으로 보고 듣는 것’은 다르다. 그래서 그 후에 어떻게 하든,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봤으면 좋겠다.

 

[잼 다큐 강정]은 8명의 독립 다큐멘터리 영화 감독들이 최대한 빨리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봐주고 관심가져주기를 바라며 만든 제주 강정마을의 이야기다. 많이들 보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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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거핀 2012-01-06 16: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karma님. 리뷰 정말 잘 읽었습니다. 저도 이 영화 봤었는데, GV가 있을 때 가셨던 모양이네요. 정말 이런 영화는 말씀하신대로 많은 분들이 좀 볼 필요가 있을텐데 아쉽다는 생각이 듭니다. 보시고 반대를 하시던, 찬성을 하시건 말이예요. 자꾸 일이 잘 알려져서 일종의 논쟁거리가 되도 좋을텐데하는 생각이 듭니다.
(KU시네마테크에서 보신 모양이네요. 거기 극장과 바로 통하는 지하층 출입구 쪽 공사완료되서 아마도 그쪽으로 나가실 수도 있을 겁니다. 제가 종종 가는 극장이기에, 담번에 혹 가실일있다면 괜히 돌아가시지 말라는 뜻에서 덧붙입니다.;;)

karma 2012-01-07 0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같은 생각입니다. 알고 난 후 찬성이든, 반대든, 암튼 이 일에 대한 여론이라는 게 생겨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상영관도 많지 않고 상영횟수도 적고 안타까워요. 그리고 극장에 대한 정보는 앞으로 참고할게요.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