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 폰을 충전 하는 걸 깜빡 잊고 눕자 마자 잠이 들어 버린 어느 날 아침, 충전기기에 올려 놓자마자  알림 메시지가 쉼 없이 쏟아진다.

대부분 광고성 알림이거나 이벤트를 알려주는 알림, 출석 도장을 찍으라는 알림 그리고 일과 관련된 알림 까지  초-분 단위로 쏟아진다.

손끝으로 터치해서  지우고 나면 스팸성 문자와 전화가 들어 오고 차단하고 신고 해도 마치  실시간 방문객들이 찾아와 문을 두드리듯 미끼성 문자와 광고 알림을 보낸다.

스마트 폰이나 이메일이 없었던 시대에는 이런 폭탄성 메시지와 불필요할 정도로 쏟아지는 광고들에 시간과 집중력을 빼앗기지 않았을 것 같다.


내 생은 지극히 단순하다. 꿈과 같은 내면의 삶을 묘사하는 일이 운명이자 의미이고, 나머지는 전부 주변적인 사건이 되었다. 삶은 무서울 정도로 위축되었고, 점점 더 계속해서 위축되어간다. 그 어떤 일에서도 이처럼 큰 만족감을 얻지 못했다.

-프란츠 카프카 



1세기 전, 유럽의 어느 작은 도시에 살고 있었던 세기의 천재 프란츠 카프카는 주중에는 보험 회사에서 아침 9시 부터 저녁 6시까지  숨 돌림 틈 없이  일터에서 상해를 당한 이들에 관한 보험 업무를 처리하는데 에너지를 쏟아 부었다.

늦은 밤, 집으로 돌아 온 카프카는 회사원의 무게를 벗어 던지고 비로소 편지를 쓰고 일기를 쓰고 그리고 상상의 세상을 거닐며 글을 썼다.


잠 없는 밤. 벌써 사흘째나 이어지는 중이다. 잠이 쉽게 들지만, 한 시간 후 쯤, 마치 머리를 잘못된 구멍에 갖다 뉜 것처럼 잠이 깨버린다.

-프란츠 카프카

 

짧은 생을 살았던 카프카는 생전에 많은 이들에게 편지를 보냈고 죽기 전 부치지 못한 편지 뭉치를 모두 태우라고 친구 막스 브로트에게 부탁했지만 그는 전쟁 중에 목숨을 걸고 프라하를 탈출 하면서 가방속에 카프카의 원고와 편지 뭉치를 들고 이스라엘 땅으로 건너갔다.

그가 남긴 작품에 비추어 보면 카프카란 인물은 소심하고 예민하고 감수성이 풍부하면서 극도로 낯을 가리며 쉽게 타인을 믿지 않을 것이라고 추측 해 볼 수 있지만 그의 주변엔 항상 친구가 많았고 여성을 사귀는데도 적극적이였고 주말이면 친구들과 주변 국가로 등산을 떠나거나 야외에서 피크닉을 할 정도로 활달했다.


카프카는 건강 상태가 좋을 때는 곳곳에 흩어져 있는 지인들과 친구들에게 자주 찾아 갔는데 한 번은 편지를 보내도 답장을 보내지 않는 그를 원망하자 카프카는 친구에게 이런 편지를 보낸다.

 "미안. 너무 중요한 책이라서 덮을 수가 없었어. 

늘 폭력적인 관계지. 책이 먼저, 그 다음은 너."

-프란츠 카프카

책을 읽느라 친구에게 받은 편지 답장을 쓸 시간이 없었던 카프카는 책과 자신과의 관계를 폭력이라는 단어로 표현 했다.

스마트 폰 시대에 카프카가 살았다면 친구들과 실시간 메신저를 주고 받으며 카톡 대화방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살았을 것이고 업무로 쏟아지는 카톡 알림 지시에 온 몸이 마비 되었을 것이고  주중에 챙겨보지 못했던 OTT제작 영화와 드라마를 보느라 또는  연인에게 문자 폭탄을 날리느라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을 것이다.

손 안의 폰에서 울리는 온갖 스팸과 광고성 알람은   일상과 사고를  균열 시키는 이 시대의 보이지 않는 폭력이다.

매우 늦은 시간입니다, 사랑하는 이여

 줄곧 오직 그 하나만을 간절히 소망했지만, 전화기로부터는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습니다. 

단지 구슬프면서도 힘찬, 무언의 노래와 바다의 파도 소리가 들려올 뿐이었죠. 

그제야 나는 알아차립니다.

 인간의 목소리는 이런 소리를 뚫고 전달될 수 없다는 것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수화기를 내려놓지 않았고, 자리를 뜨지도 않았습니다. 

- 펠리체 바우어에게, 1913년, 프란츠 카프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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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모습을 적극적으로 세상에 알리며 상품화 시켰던 앤디 워홀은 물질 만능 자본시대에  세상의 모든 것을 상품화 시키는데 능했다.

대중은 그의 예술을 적극적으로 소비하며 열광했고 비평가들과 전문가들은 저급하고 창의적이지 않는 타인의 창의력을 훔치는 교묘한 사기꾼이라 손가락질 했다.

광고계에서 창작 작업을 시작하면서 대중에게 널리 소비되는 예술이 무엇인지 깨달은 워홀은 기존의 정통 예술가들처럼 고립된 작업실 공간에서 작업을 하지 않고   공장처럼 생산하며 주문이 들어 오는 데로 찍어내는 시스템으로  만들어서  동시대인들이 무엇을 원하고 갈망하고 있는지  무엇을 소비하기 위해 지갑을 여는지 꿰뚫어 보았던 천재였다.

워홀은 이전 시대의 예술가처럼 고립된 공간에서 팔리지 않는 작품을 창작하는데 홀로 고군분투 하지 않았다. 그는 다양한 기술을 가진 조수들을 적극적으로 찾아내 고용해서 기계적으로 작품을 제작을 했다.

작품의 전체적인 아이디어와 구상은 워홀이 했고 작품 생산은 조수들이 제작 했다.

그 결과 워홀은 한 개의 작품을 단 몇 시간 만에 수십 개에서 수백 개를 만들어 냈다.

그에게 예술은 고차원적이고 고색 창연 하고 고급스러운 것이 아닌 적극적으로 홍보해서 시대의 흐름을 재빨리 간파하고 각종 주문과 요구 사항을 적극적으로 끌어 와서 다른 사람의 창작물까지 복사하고 복제해서 실행에 옮기는 것이였다.

 대중들이 적극적으로 워홀의 예술을 무한 복제 하면서 기존의 예술적 가치와 창의적 작업에 대대적인 변화를 불러 일으켰다.

자본주의 시장에서 홍보와 선전 예술을 완벽하게 구사 했던 워홀의 팝아트는 대중들과 공생 관계가 되어 1960년대 미국 대중 문화 전체에 새 물결을 일으킨다.


 워홀이 컬러 스크린 프린터기기로  찍어낸 스팸 깡통은 광고미술에서 상업 미술시장으로 옮긴 로이 리히텐슈타인에 의해 비행기를 폭파 시키는 폭탄으로 변신한다. 

(c)꽝,로이 리히텐슈타인,1962

만화 같은 상상력을 시각화 시키며 짧게 내뱉는 비속어나 감탄사를 이용한 언어유희 같은 작품들이 드로잉과 회화, 사진 예술계를 넘나들면서 창조적 독창성이라는 독보적인 위치에 있던 예술가들의 위상이 전복 되어 버린다.

1960년대 앤디 워홀이 시작한 소비 지향 팝 아트의 상업적인 인쇄 기법, 대형 광고판, 교통 표지판, 상품의 포장지,대중 잡지와 신문, 텔레비전을 이용한 작업은 21세기 현 시대까지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상징적인 1960년대 팝아트 세계가 매콤하고 바삭하며 치즈가 듬뿍 들어간 한국 길거리 음식과 만났다.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벤데이 도트, 고대비 원색, 감성적인 만화 표현 등 빈티지 미국 만화 미학과 서울에서 즐겨 찾는 길거리 음식의 매력적인 식감을 생생하게 조화시킨 특별한 경험을  영상을 통해 맛보세요.!

🔥 탑처럼 쌓여 있는 붉은 색 매콤한 떡볶이 

🍙 한 줄에 4천원까지 치솟은 K김밥

🍗 젠슨 황도 반한 초바삭 골든 K치킨

🧀 세계인들이 한 번 맛보면 빠져버리게 만드는  K 치즈 핫도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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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년 파블로 피카소의 청색시대 걸작, '다림질하는 여인' (Femme repassant)의 푸른 붓자국 아래에는 100년 가까이 숨겨져 있던 서늘한 비밀이 있었습니다. 

파리 몽마르트르의 혹한과 가난이 지배하던 '바토 라부아르'(세탁선) 시절, 스물세 살의 피카소는 캔버스를 살 돈조차 없어 이전 그림 위에 새로운 슬픔을 덧칠했습니다. 

수십 년 뒤, 첨단 적외선 기술이 밝혀낸 캔버스 밑바닥에는 여인의 두 손 아래 거꾸로 뒤집힌 한 남자의 얼굴이 숨어 있었습니다. 그 남자는 누구였을까요? 

그리고 이 그림은 어떻게 청색시대의 차가운 절망과 곧 다가올 장밋빛시대의 은밀한 온기를 동시에 품고 있을까요? 

캔버스 너머 120년 전 파리의 골목과 피카소의 치열했던 삶, 그리고 인간의 고통 위에 새겨진 불멸의 존엄성을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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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생적으로 또래 침팬지들보다 작게 태어난 수컷 마이크는 무리들 중에서 가장 낮은 서열로 어느 날 침팬지 조사 연구 팀 캠프 텐트(제인 구달이 소속된)에 있는 빈 석유 통을 가져가기 전까지 마이크는 우두머리 침팬지를 모시는 무리들의 집중 공격 대상이였다.

어느 날 부터 마이크는 훔쳐간 빈 석유통을 양손으로 번갈아 가며 두드리기 시작했고 이 소리는  침팬지 조사 연구 팀 캠프 텐트까지 들릴 정도로 숲 전체를 울렸다.


몇 날 몇 일 동안 마이크가 빈 석유통을 두드리는 동안 그의 먹이를 가로채고 집단으로 달려와서 물어 뜯거나 털뭉치를 잡아 뜯어냈던 우두머리 수컷의 깡패 부하들은 마이크의 근처를 지나가지 못하게 되었고 그의 손짓 하나에 벌벌 떨었다.

마이크는 단 한 방울의 피를 흘리거나 거친 싸움으로 상대를 제압하지 않고 단숨에 우두머리 수컷 자리에 올라갔다.

지금까지 어떤 침팬지도 마이크보다 더 쉽게 우두머리 수컷자리에 올라 간 적이 없었다.

마이크의 이런 행동을 유심히 지켜보고 관찰했던 제인 구달은 체구는 작아도 지능이 무리들 중에 단연 높아서 돌을 던지고 나뭇가지를 타고 넘나드는 신체적 능력이 부족한 자신의 한계를 안 마이크가 도구를 이용해서 무리들을 제압했다고 분석했다.

무리를 지어 살고 있는 영장류들 중에서 인간 역시 요란한 북소리를 울리며 마이크를 잡고 선전, 선동으로 무리들을 이끌고 대중의 시선을 모아 반대편을 제압 시키는 과정도 침팬지 집단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빈 석유통 두 개로 우두머리 수컷 자리에 올라간 마이크는 거친 수컷들이 달려 들 때 마다 온 몸에 털이 솟구쳐 올라갈 정도로 거세게 더 빠른 속도로 빈 석유통을 두드리다 소리의 진폭에 따라 침팬지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알게 되었다.

이렇게 6년 동안 빈 석유통 두 개로 우두머리 자리를 지켜 냈던 마이크는 반대편 숲에서 달려든 또 다른 침팬지 집단의 우두머리가 이끄는 무리들이 위협을 가하자 도로변에 나 뒹굴고 있는 철 깡통을 들고 나타나 빈 석유통을 두드릴 때 보다 더 위협적인 소리를 내서 반대편을 제압해 버렸다.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고 관찰한 제인 구달 팀은 마이크가 역대 침팬지 역사에서 가장 평화로운 방법으로 무리를 이끌었다고 분석하고 우두머리 수컷 마이크에게 평화주의자라는 호칭을 달아 주었다.

평화주의자 리더인 수컷 침팬지 마이크의 아버지 데이비드는 제인 구달이 가장 사랑했던 침팬지로 반항하고 공격하는 무리들과 맞서 싸워도 그 무리들의 어린 침팬지들을 납치하거나 볼모로 삼지 않았다.

심지어 어둠이 깔린 숲에서 제인 구달 팀이 길을 잃었을 때는 안내자 역할까지 했고 그들이 무사히 캠프에 도착 한 걸 확인하고는 유유히 사라졌다.

아버지 데이비드의 뒤를 이어 빈 석유통 두 개로 리더가 된 아들 마이크는 어린 시절 자신을 집요하게 괴롭혔던 우두머리 골리앗의 아들(침팬지계에 깡패)이 말라리아에 걸려 죽어 갈 때 그 옆을 지켜 주었다.


데이비드가 내 눈을 바라보고 있을 때 우연히 내 그림자가 그 위로 드리워진 그 순간은 내 기억속에 깊이 새겨졌다. 

이 사건으로 인해 훗날 나는 모든 살아 있는 생물 중 가장 뛰어난 지능을 가졌다는 인간만이 침팬지 위로 그늘을 드리울 수 있다는 은유적인 의미를 깨달았다. 

-제인 구달



우리 인간이 침팬지보다 더 나은 것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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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6-08-23 21: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있기는 하겠지요. 다만, 인간의 잔혹성과 폭력성이 가장 문제이긴 하지만,ㅠㅠ
 

일정 금액 이상 구입 하면 받을 수 있는  사은품과   관광지,미술관, 각종 전시회 굿즈로 가장 판매 되고 있는 에코백과 텀블러는 외출 할 때 필수템이다.

 

 

커피를 담았던 텀블러에 생수를 부으면 커피 맛이 우러 나오고 녹차를 담았던 텀블러에 홍차를 부으면 홍차의 향이 사라져 버린다.

따라서 커피 마실 때 들고 다니는 텀블러와 차 종류에 따라서 들고 다니는 텀블러 기타 다른 종류의 음료를 담을 텀블러가 필요 하니 눈에 들어 오는 데로 필요에 따라 공짜로 주는 데로 텀블러 갯수는 줄어 들지 않고 쌓여 가고 있다.

보온 기능이나 환경 호르몬이 검출 되지 않는 안전한 제품인지를 따져 보면서 구매한 것 부터 각종 이벤트 당첨으로 받은 것, 사은품으로 굴러 들어 온 것 까지 전부 모아 놓으면 일반 컵 갯수와 맞먹을 정도로 이곳 저곳에서 튀어나온다.

세기 전, 현대인들의 각 가정마다 쌓여 있는 텀블러 갯수와 맞먹는 커피잔과 세트를 소장하고 있었던 철학자가 있었다.


덴마크의 철학자 키르케고르는 저녁 식사를 마치면 습관적으로 커피를 마셨는데 너무 특이한 취향을 갖고 있어서 6년 동안 그의 비서로 일했던 이스라엘 레빈이 기록으로 남겼다.

'키르케고르님이 저녁 식사를 시작하기 전부터 저는 50세트의 잔과 받침을 준비해 두었습니다.

그리고 저녁 식사를 마치시면 커피를 가져다 주기 전에 그날 제가 왜 이 잔과 받침을 준비했는지 합리적 이유를 주인님에게 설명해야 했습니다.'

-키르케고르의 비서 이스라엘 레빈,1884-1850

후대에 키르케고르의 전기 집필을 시작한 전기 작가 요아킴 가르프는  오랫 동안 철학자 곁에서 집안일을 했던 하녀가 남긴 기록과 증언에서 그가 커피에 대해 기이한 집착과 습관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키르케고르님은 무척 특이한 방식으로 커피를 마셨다. 

주인님은 커피가 담긴 잔을 흐뭇하게 바라보고는  설탕 봉지를 잡고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짙은 블랙커피 액체 위에 설탕가루를 피라미드 모양으로 쌓일 때까지 수북이 들이 붓고 커피에 서서히 녹는 과정을 관찰 하셨다.

설탕이 녹는 동안 시럽처럼 끈적한 액체가 커피 잔에서 흘러 넘쳤는데 이런 과정은 주인님이 병환으로 몸져 눕기 전까지 계속 되었다.

병환으로 위독 하실 때는 주인님의 지시를 받고 커피에 설탕을 들이 부었다.

주인님은 설탕이 녹는 과정을 미소를 지으시며 지켜 보시고는 설탕이 왕창 들어가 끈적이는 커피 잔을  손가락을 덜덜 떠시면서 움켜 잡으셨다.'

키르케고르의 철학의 중심 화두는 인간의 삶을 세 단계로 나눴다. 

가장 먼저 1단계에서는 쾌락 만을 쫓는데 이것 만으로 인간은 절대로  행복할 수 없다. 그 이유는 ‘권태’ 때문이다. 따라서 남을 생각하며 가치와 윤리에 따르는 두 번째 ‘윤리적 단계’로 넘어가지만 이 역시 삶의 유한성 때문에 근본적인 ‘생의 불안’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의 철학이 주장하는 완전한 삶의 세 번째 단계는 ‘종교적 단계’로  키르케고르는  ‘인간이 스스로의 내면적 결심’에 따라 진정 신을 믿고 따를 때 삶에 대한 무력감과 허망함을 떨쳐 버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종교적 윤리 문제로 사회에 불평등과 불안이 증폭되었던 시대에 살았던  키르케고르는 신을 향한 숭배와 믿음을  무조건 추종하거나 따르지 말고  신과 인간의 관계와 인간 내면의 본질에 천착해, 신을 보는 관점을 하늘에서 땅으로 끌어내려야 권태에서 벗어나 생의 불안을 떨쳐 버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삶의 완성을 위해 불안과 절망은 필수 요소지만 인간이 삶의  한 단계에서 다른 단계로 넘어가는 의지와 힘은 절대화 시킨 신과 종교의  힘이 아닌 온전히 ‘자기 자신의 결단’에 따른 것이니 매 순간 스스로 되돌아보고  반성하고 노력하는 인간이라면 ‘불안과 절망’에 삶의 운명이 휘둘리지 않을 것이라 주장했다.

  냉철하고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철학과 논리를 펼쳤던 키르케고르는 요즘 시대에 살았다면 텀블러를 커피 종류에 맞춰 수집해 놓고 설탕 대신 노슈거 제품인 알룰고스 내리고당 시럽을 가득 가득 넘치게 들이 붓고 이런 말을 남기지 않았을까?

현대인이 겪는 절망을 극복하기 위한 가장 확실한 해독제는 커피, 커피, 커피 

-쇠렌 키르케고르 (Søren Kierkegaard1813-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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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6-08-22 16: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설탕을 피라미드 모양으로 쌓다니 키에르케고르가 일찍 죽은 건 분명 설탕 때문이겠네요.
다른 건 몰라도 제가 절망하지 않는 게 커피 때문인 건 맞는 듯 해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