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즈버그 사람들 은행나무 세계문학 에세 28
셔우드 앤더슨 지음, 김욱동 옮김 / 은행나무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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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깨어 누운 채 창밖의 나무를 보고 싶어 했던 어느 작가는 새로 이사 온 집의 창문의 높이가 너무 높아서 침대에서 누웠을 때 나무가 보이지 않자 쉽사리 잠을 청하지 못한다.

불안감에 사로잡힌 작가는 침대에 누웠을 때 밖을 내다 볼 수 있도록 창문의 높이에 맞추기 위해 목수를 부른다.

작가가 목수에게 저 높은 천장 가까이에 붙어 있는 창문의 높이에 맞게 침대를 수리 해 달라고 요구하자 전쟁 참전 군인 출신이였던 목수는 작가의 방 주변을 둘러 보던 중 여기 저기  흩어져 있는 시가 꽁초를  피워 대며 늦장을 부리기 시작한다.

목수는 침대를 수선해 달라는 작가에게  자신은 한때 교도소에 수감되었던 죄수로 수감 중에 형제를 잃었다며 눈물을 글썽이자 작가는 침대 수선을 잊어 버리고 목수의 이야기를 들어 준다.

예순을 훌쩍 넘은 작가는 자신 처럼 흰 콧수염이 자란 동년배 목수의 굴곡진 인생 이야기를 들어준다.

작가의 집에 다시 방문한 목수는 그가 원하는 높이에 맞게 침대를 고쳐 주지만 노쇠한 허리와 무릎 통증을 앓고 있었던 작가는 천장 가까이에 붙은 창문의 위치와 맞게 높아진 침대 위로 올라가기 위해 의자를 겹쳐 놓고 겨우 기어 올라갔다.

마침내 침대에 누워서 창밖 세상을 볼 수 있게 된 작가는 이리저리 몸을 뒤척이다가 언젠가는 갑작스럽게 침대 위에서 죽음을 맞이 하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작가는 침대에서 보이는 세상을 보는 동안 한 때 뛰어난 외모로 숱한 여자들과 달콤한 사랑을 나눴던 기억을 떠올리며 행복한 감정에 잠시 취해 보지만 아침마다 힘겹게 침대에서 내려가는 자신의 노쇠한 육신이라는 슬픈 현실을 깨달아간다.

침대에서 작가는 꿈이 아닌 꿈을 꾸었다. 조금씩 졸리기 시작했지만 그는 여전히 의식이 있었고 그런 그의 눈앞에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작가는 자신 안에 있던 형용할 수 없는 젊은 뭔가가 자신의 눈앞에서 사람들의 긴 행렬을 몰아대고 있는 것이라고 상상했다.

-셔우드 앤더슨의  <괴상한 사람들에 관한 책> 중에서 


침대에서 창밖 세상을 보며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상념과 추억에 젖어 있던 작가는 침대에서 내려와 하얀 백지와 마주하며 자신의 삶에 스쳐 지나갔던  사람들이 품고 있었던 수백 가지의 진실들을 열거하기 시작한다.

순결이라는 진실, 열정이라는 진실, 부와 가난, 절약과 낭비, 부주의함과 방종이라는 진실까지 이렇게  수만 가지의 진실들 모두  아름다워 보였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이 자신이 보고 싶어 하는 것만 보며 그것이 진실이라 믿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최첨단  디지털 신 기술로 가짜가 진짜로 둔감해도 진짜인지 모르는 무시무시한 세상이다.

누구나 쉽게 큰 돈을 들이지 않고도 가짜를 진짜처럼 조작 할 수 있는 시대에 오랜 세월 동안 신뢰와 사실 보도를 유지 했던 언론 마저 가짜와 진짜가 뒤섞여 있다.

진실과 거짓이 모호해지는 탈 진실 시대는 21세기 AI시대에만 존재 한 것이 아니라 이미 수 세기 전부터 인류의 삶에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이 불투명했었다.

2600여년 전 인도의 부처님은 북 인도에서 교세를 확장하며 대중의 지지를 넓혀 가던 중 진실을 기만한 거짓에 호되게 당했던 적이 있다.

신도들이 부처에게만 공양을 올리자 그의 제자인 브라만과 사문들이 거리에서 걸식을 하고 보시를 받지 못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브라만과 사문은  어느 여신도의 배를 거짓으로 부풀려서 부처의 설법을 듣는 자리에 들여 보낸다.

여인이 부처의 아이를 뱄다는 거짓은 금세 탈로 나자 브라만과 사문은 화를 당할 것이 두려워서 그 여인을 죽이고 시신을 부처가 설법 했던 사원에 묻어버린다. 자신들의 범죄 행각을 지우기 위해 헛소문을 내기 시작하고 그 헛소문은 부처가 어느 여인과 불륜을 저지르고 그걸 감추기 위해 그 여자를 죽였다는 끔찍한 소문을 내기 시작한다.

거짓 소문은 점점 커져서 이웃 마을까지 퍼지고 브라만과 사문에게 살해 지시를 받고 돈을 챙긴 일꾼들이 서로 싸움을 하다가 사원에 시신이 묻혀 있다는 진실을 발설 해 버린다.

거짓으로 이득을 취해서 세력을 확장해서 궁극적으로 민심을 이용하고 사회를 뒤흔드는 검은 손들의 활동으로 인류는 숱한 위기에 빠졌고 그로 인해 돌이킬 수 없는 큰 화를 입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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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6-09-09 17: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즘 한국 사회를 보면 보고 싶어 하는 것만 보며 그것이 진실이라 믿고 있는 사람이 정말 넘쳐나고 있는것 같아요.
 

미국을 기준으로 세계 여러 나라의 빅맥 값을 비교한 빅맥지수(Big Mac Index)는 영국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가 1986년 처음 만들어서 매년 1월과 7월에 발표되어왔다.

지금까지 빅맥지수는 각 나라의 물가 수준과 화폐 가치를 평가하는 경제 지표로 자리 잡으면서 스타벅스 커피값을 비교하는 '라테 지수', 이케아 가구 제품 가격을 비교하는 '이케아 지수' 등과 같이 전 세계 다양한 도시에 수 천개의 매장을 운영하는 글로벌 기업의 대표 상품들의 가격 책정 변동에 따라 나라별 체감 물가 지수를 한눈에 파악 할 수 있게 되었다.

일명 커피 공화국으로 불리는 한국에서는 맥도날드 매장 보다 모퉁이만 돌아가면 간판이 보이는 스타벅스 지수에 더 민감하다. 

 고물가 시대에 커피 중독자들은 가성비가 좋은 커피를 마시게 되니 스타벅스 가격 변동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

하지만 물가가 급등할 때 면 가성비 반찬으로 식탁을 지키던 김 가격이 치솟아서 즐겨 사 먹던 김밥이 가격이 두 배로 급등하거나 조미김 한통에 김이 10장에서 8장으로 줄어 들게 되면  이보다 더 속상할 수가 없다.

기후 이상으로 바다 온도가 상승해서 발생하는 적조현상으로 인해 김 생산에 차질이 생겼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이지만 한국의 김은 전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 잡아서 외국인 관광객들이 싹 쓸어가는 대표적인 상품이고 K푸드 열풍에 냉동 김밥 수출양이 대폭 늘어나서 수출로 물량이 빠져나가게 되어  국내 소비자들에게 공급할 김이 부족하게 된 것이다.

한국에 이어 전 세계 두 번째로 김 생산량이 많은 일본은  그동안 반 세기 넘게 전 세계 김 수출의 60퍼센트를 장악했던 시절도 있었다.

일본은 7세기 무렵 부터  미역보다 얇은 바다말을 얇게 펼쳐 말려 먹었다. 이 바다말이 지역을 대표하는 명물이 되었던 것은 도쿠가와 가문이 에도에 입성하고 나서 부터였다.

도쿠가와 가문은 안정된 식재료를 수급하기 위해 에도성 앞에 어장을 조성했다.

 그 시절에 생겨난 어장은 가니스기, 혼시바. 시나가와로 점차 이 어장이 번성하면서 주변에 상권이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어장과 상권이 번성하기 시작하자 시나가와가 주변 포구를 총괄 하는 중심 어장이 되어서 본격적으로 김 양식을 재배 했다.

17세기 에도에 시나가와에서 생산한 김은 색은 붉고 형태는 닭 벼슬처럼 작고 비린내가 난다 해서 노리(海苔) 불렀다. 김을 가공하기 시작한 것은 뜻밖에도 사찰에 종이를 대량 공급했던 아사쿠사 제조자로 당시 아사쿠사는 헌 종이를 수거 해서 재생종이를 생산했던 수공업체였다. 종이를 가공했던 수공업자가 미역보다 가는 김을 종이처럼 건조 시키는 방법을 고안했다.

바다에서 수거한 바다말을 담수에 섞어 대나무 판지에 얇게 펴서 바람에 건조 시키고 나서 숫불에 살짝 구우니 비린 냄새가 사라졌고 태운 종이처럼 입 속에서 바삭거리다 스르르 녹아 내리자 일본인들은 밥을 얹어 먹기 시작했다.

이렇게 가공한 김을 조미한 간장에 찍어 먹으면서 에도 시대 일본인들은 바다 채소라 불렀다.

 일본이 김을 종이처럼 얇게 가공 하기 훨씬 전부터 한국은 13세기 말인 신라 시대 부터 바다에서 김을 건져서 건조 시켜 먹었다. 삼국 시대 때 김은 혼인을 앞둔 왕의 폐백 품목 중 하나 였고  조선 시대는 임금의 수라상에 올라가는 검은 바다풀이였다.

이 검은 바다풀이 김이라 불리게 된 건  조선시대 인조 임금이 자신의 수라상에 오른 검은 바다풀을 맛있게 먹고 무슨 음식인지 묻자 한 신하가 음식 이름은 모르고 전남 광양에 사는 김여익이란 자가 만든 음식이라 답했다. 이후 조선 왕실에서는 김여익이 만든 바다풀이라 해서 그의 성을 따 ‘김(金)’이라 부르게 했다. 

현재 한국인들이 가장 즐겨 먹는 김밥의 기원은 일본 마키스시(巻き寿司)의 일종인 '노리마키(海苔巻き)'에서 왔다. 

에도 사람들은  식초와 설탕을 섞어 넣은 밥에 김을 싸서 먹기 시작했고 각종 속재료를 넣고 대나무발로 말아 원통형으로 만든 '후토마키(太巻き)'는 메이지 시대 들어서면서 부터 만들어 먹었다. 메이지 시대때 '후토마키(太巻き)'의 속재료는 생선회 였다.

1930년 일제 강점기 때 한반도에 들어 온 일본식 김밥은 한국인 입맛에 맞게 변형 되어서 당근과 계란, 우엉, 햄, 깻잎 등 우리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로 대체됐다.

일본은 쇼와 시대에 들어서면서 부터 노리마키의 기본이 되는 식초와 설탕으로 밥에 초절임을 하는 방식이 사라졌고 현재 일본 식당에서 파는 김밥은  미원과 소금, 참기름을 넣고 속재료도 한국 처럼 다양하지 않다.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김과  즐겨 먹는 김밥이 어느 나라에서 먼저 유래 되었는지 따지기도 전에 한국의 김밥은  일본의 라면 처럼 오랜 시간에 걸쳐 자연스럽게 한국의 식재료와 뛰어난 조리 기술로  다채롭게 발전 시켜 나간 음식이다.

햄버가 한 개 먹은 포만감 보다  김밥 몇 줄을 먹은 포만감은 세계 물가 지수 지표로 비교 할 수 없을 정도로 김밥은  한국인에게 무척 특별한 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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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비 2026-09-07 06: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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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6-09-07 0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밥이야 서민들이 먹는 간단한 한끼 식사란 이미지가 있어서 그렇지 사실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라 인건비와 식자재비가 오르는 지금 가격이 안 오를래야 안 오를 수가 없지요.
저는 개인적으로 물가를 판단할 적에 혼자만의 와퍼 지수란 것을 사용합니다.버거킹을 자주 이용하는데 몇년전까지만 해도 버거킹 와퍼 세일시 1개에 3천원 이었는제 지금은 3.900원선이고 와퍼주니어도 기본 1+1할적에 약 3,00원으로 기억하는데 지금은 5.900원으로 올라것 정말 물가가 많이 올랐다고 뼈속깊이 느끼는 중이죠.
 

지독한 책벌레 였던 조선 제22대왕 정조(正祖·1752~1800)는  1791년  창덕궁 어좌 뒤에 있던 일월오봉도(日月五峯圖)를 치우고 책거리 병풍을 세우라고 명하고 신하들에게 이런 발언을 합니다.

 "서재에 들어가 책을 만지기만 해도 기쁜 마음이 솟는다. 경들은 그렇지 아니한가?"

왕이 좋아한다는  책거리를 고관대작이 앞다퉈 병풍을 집에 들였고 곧바로 시중에 대유행하면서   일반 백성들 사이에서도  열풍을 일어났습니다.

과거에 급제하고 출세하기 위해서는 책을 많이 읽어야 했던 조선 시대 유교 사회에서 책은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이였기에 책을 비롯해 도자기, 문방구, 향로, 화병 등을 진열해 놓은 모습을 그린 그림인 책가도가 고위층 부터 서민 계층까지  널리 유행  할 수 있었습니다.

이 같은 책 사랑은 조선 왕실에서 서민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아서 아무리 가난해도 어느 집이든 책이 있어서 1886년 병인양요 당시 강화도를 침략한  프랑스 해군 장교 주베르는 헛간 같은 곳에서도 책이 나와서 자신들의 자존심이 상했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입에 풀칠할 정도로 가난해도 땔감이 없어서 추운 겨울 천장에 고드름이 줄줄이 매달려 있어도 조선 팔도 어디에서든 초가 산간에도 글 읽는 소리가 새어 나올 정도로 한국인에게  책은 끼니를 때우는 것보다  소중한 존재 였습니다.20세기 서양 예술의 혁신적인 기법보다 앞선 역원근법, 초현실적 기하학, 그리고 착시 효과를 능숙하게 다루고 있는 조선의 천재 화가들이 그린  책가도 @Scott-MoveableFeast에서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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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원맘 2026-09-06 09: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곁에 두고 많히 읽어야겠어요~
 

 

 


데미언 허스트가 골드 스미스 대학 시절 친구들과 기획 했던 전시 이름에서 차용된 잡지 <프리즈>는 4년 후 1995년 뉴욕과 베를린에 아트페어 개최를 시작으로 지난 30여년 세월 동안 현대 미술계의 광범위하면서도 촘촘한 네트워크를 구축해서 아트페어 개최를 비롯해 출판물,비디오, 팟캐스트, 웹사이트 등을 통해 전 세계 예술가와 컬렉터를 연결 하는 세계적인 아트 ,컬쳐 멀티 플랫폼으로 성장했다.21세기에 들어서면서 <프리즈>는 본격적으로 전세계 예술 작품을 한 곳에 전시 하는 아트 페어를 2003년 런던에서 개최 하면서 예술과 문화가 대중에게 더 가깝게 다가 가는 계기를 마련했다.

2012년 랜들스 아일랜드 에서 개최한 <뉴욕 페어>와 런던 <프리즈 마스터 페어>를 시작으로 영상과 작품을 다양한 매체로 적극 소개 하며 단순히 미술품을 구매 해서 전시 하는 것 뿐 만 아니라 문화와 패션, 음식,영화와 연결 시키며 전 세계 예술의 교두보로 우뚝 성장했다.

반면 1966년 독일 쾰른에서 처음으로 시작된 아트 페어가 열린 이후 줄곧 아시아 지역은 일본과 홍콩을 제외하고 예술계 변방으로 한국은 몇몇 소수의 작가들 작품을 제외하고 해외 거물 급 갤러리 소장품으로 등록 되지 못했다.

1980년대 까지 아시아 미술 시장의 중심은 일본으로 막강한 엔화 자금력을 동원해서 빈센트 반 고흐의 '해바라기', 모네의 '수련'작품 같은 최고의 명작을 긁어 모아서 세계 미술계 시장을 움직이는 한 축으로 우뚝 성장했다.1990년 버블 경제로 일본 경제가 기나긴 침체에 빠져 버리자 싱가포르가 아시아 미술 시장 자리를 차지 했지만 2007년 싱가포르 정부가 미술품에 7퍼센트 부가 가치를 부과 하는 치명적인 실책을 저지르면서 세계 주요 경매 회사들이 세금이 없는 홍콩으로 건너 갔다.

외국의 메이저 급 화랑들이 홍콩 미술 시장 곳곳에 문을 열며 아시아 문화 예술 중심지가 되었지만 홍콩 민주화 운동으로 인한 불안한 사회 경제 상황과 중국 공안의 극심한 검열로 정치적 불안이 요동 치던 중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 되면서 유럽 명문 갤러리들이 서울에 사무실을 열기 시작했다.

그동안 일본과 싱가포르 그리고 홍콩에 밀렸던 서울은 2022년 9월 세계적인 아트페어 <프리즈>를 개최 하면서  아시아 예술계의 변방에서 벗어나  예술산업이라는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게 되었다,

국내외 거장 예술가들 작품들과 세계적인 갤러리들이 총 집결하는  세계적인 아트페어 <프리즈>가 열리는 동안 단순히 그림을 사고 파는 것 뿐만 아니라 행사 기간 동안  출품 전시된 작품에 관한 영상 전시,소더비 인스티튜트의 프리미엄 컬렉션 코스, 토크 프로그램,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클래식 연주회 그리고 야간 행사를 통해 작가와 작품, 컬렉터와 수집가를 연결 시키며 미술계의 중요한 화두와 의제에 관해 소통하는 거대한 '아트 테마 파크' 같은 프로그램이 빼곡하다.

 세계 메가 갤러리들이 총 집결하는 2026년 프리즈에 참석한 가고시안은 데이미언 허스트의 솔로 부스를에  ‘Pill Cabinets’를 비롯해 ‘Spin Paintings’, ‘Spot Paintings’, ‘Treasures’ 등 대표 연작을 한자리에서 선보이고 있다.

2026년 프리즈에서는 이전과 달리 서구 중심 미술사에서 상대적으로 덜 조명 받았던 한국 미술과 세계의 20세기 작가 15명의 작품과 함께 도자와 섬유, 유리, 금속, 목재, 한지 같은 재료로 만든 공예 작품들도 출품 되었다.세계 제 1일의 반도체 공정을 창출하는 한국인의 DNA에는 탁월한 미적 감각이 스며 있어서 물과 불, 흙과 조개 껍질 그리고 옻나무 같은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재료로 수천년 동안 빛을 바라지 않는 예술작품을 만들어 왔다.

인공지능과 알고리즘이 인간의 삶 전체를  재편하는 시대에 인간의 본능과 신체적 감각으로 빚어낸 예술 작품이 품고 있는  생명력은 세상에서 가장 값지고 귀한 존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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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 가구 배치를 할 때 가장 중요한 건 방 안의 침대 위치를 잡는 것으로 침실의 크기와 방문과 창문의 위치에 맞춰야 잠잘 때 머리 방향의 위치를 잘 잡을 수 있다.

머리 방향 위치를 잡는데 몇 가지 염두 해야 할 사항들이 있다.

자기장을 발산하는  전자파를 발산하는 전자 기기 방향으로 머리를 두면 뇌신경을 자극 할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한 멀리 하거나 방향을 바꿔야 한다.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았지만 머리를 방문 쪽으로 향하거나  장롱 쪽 가까운 곳에 두거나 발이 문 쪽으로 향하고 자는 것도 좋지 않다.

머리의 방향은 그 사람의 기나 건강 상태 등에 의해 좋고 나쁨이 미묘하게 달라지게 하는데 수면 시 머리 방향을 동쪽으로 두면 떠오르는 햇빛의 양기를  받을 수 있어 좋다는 말이 있다. 

 잠잘 때 머리의 방향을 내 스스로 느끼기에 가장 편안한 상태의 방향을 잡아도 자고 일어나면 온 몸이 뻐근하다.

한동안 불면증에 시달렸을 때 좋다는 기능성 베개를 찾아 전문 매장에 시범 전시 된 침대에 누워 보며 내 몸에 맞는 베개를 사용했다.

 누웠을 때 머리부터 발끝까지 편안함을 주는 베개를 비고 자도 이를 악물고 자거나 이를 갈거나 입을 벌리고 자는 경우가 많아 졌다.

이런 증상 때문인지 기상 알람 소리를 들으면 심장 박동이 빨라져서 마치 전속력으로 달리다 갑자기 멈추기라도 하듯 호흡까지 가파졌다.

머리 방향을 바꿔보기도 했고 베개를 바꿔 보기도 했지만 증상이 사라지지 않았다.

가장 바람직한 수면 자세는 바르게 누워서 천장을 보고 자는 자세로 경추와 요추의 커브가 자연스럽게 근육의 긴장이 없는 상태여야 한다.

하지만 나는 옆으로 누워야만 잠이 들기 때문에 바른 자세 상태에서 꿈나라를 가보지 못했다.

학부 시절 기숙사 생활을 할 때 다리를 꼬거나 한쪽 다리를 다른 쪽 다리에 올려놓고 교차 시켜 놓은 자세로 잠을 잤다.

나는 이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는데 메이트가 알려줘서 깜짝 놀랬다.

두 다리를 묶고 자야 하는 걸까라는 고민을 했지만 기숙사를 나오고 나서 이 자세는 사라졌다.

사람마다 체형과 척추 커브, 구조의 비대칭 정도가 달라서  편안함을 느끼는 수면자세도 다르다.

의사와 베개 매장 직원 말에 의하면 베개는 천장을 보고 바로 누워 잘 때보다 어깨 높이를 감안하여 팔뚝 하나만큼 더 높은 위치인  10~15cm의 높이가 적당한데 똑바로 누워 자는 사람이라면 머리와 어깨 사이의 빈 공간을 채워주도록 베개의 목 부분만 높으면 되고 옆으로 누워 자는 사람이라면 베개 좌우가 높아 누웠을 때 어깨를 받쳐줄 수 있는 형태가 좋다는 조언을 했다.   

 베개 높이는 자는 자세에 따라 달라지고 사람마다 체형과 척추 커브, 구조의 비대칭 정도가 달라서  편안함을 느끼는 수면자세도 다르다.

그렇다면 각자의  목 높이에 맞는 베개를 선택할 때 고려해야 할 사항은 다음과 같다.

1. 벽에 등을 살짝 붙이고 머리 뒤통수는 닿지 않도록 기대어 선다.

2. 머리 각도가 5도 정도 앞으로 향해 있는지 확인 후 벽에서부터 목까지의 거리를 잰다.

3. 측정한 목 높이를 고려해 베개에서 목이 닿을 부분을 꾹 눌러 그 높이가 나오는 베개를 고른다.

이런 사항을 모두 고려해서 베개를 골라도 일어났을 때 몸 상태는 개운하지 않다.

그동안 사용했던 베개들 중에서 가장 편안한 숙면을 취하게 해 주었던 베개들 중에서 이것 저것 따져보면 내가 직접 고른 베개가 아니였다.

 

기숙사를 나와 학교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는 주택가 4층 꼭대기에 살았던 시절, 당시 집 주인은 내가 자신들의 두번째 입주자라며 각별하게 신경을 써 주었다.

없는 게 없을 정도로 혼자 쓰기 딱 좋은 가구와 세간 살이들, 주방 시설과 기기까지 완벽했다.

특히 덮고 잤던 이불과 베개는 깃털 만큼 가볍고 폭신 해서 여행을 갈 때면 가져 가고 싶을 정도로 편안했다.

 그 집에서 몇 주를 보내고 난 뒤 집주인이 잠은 편히 잤냐. 어디 불편한데 없는지 물었다.

나는 단 몇 초도 망설이지 않고 이불과 베개가 너무 편했다고 대답했다.

날씨가 화창했던 어느 저녁  집주인 가족에게 저녁 초대를 받아 뒤뜰에서 열린 바베큐 파티에 참석했다.

이사 오던 날 잠깐 인사만 나눴던 집주인의 두 아들과 반갑게 이야기를 나누던 중 나와 동갑이였던 둘째 아들이 내가 아끼는 그 베개가 자신의 할아버지가 농장에서 키운 거위 털로 직접 만든 수제 베개라는 말을 해주었다.

 

둘째 아들에게  베개 한 개에 몇 마리 거위 털이 들어 가냐고 물으니 한 마리 거위에서 대략 140그램이 나오는데 성인용 베개 한 개에 들어가는 거위는 15마리에서 20마리가 필요하다는 말을 했다.

혹시 내가 덮고 있는 이불도 거위털로 만들었냐고 물으니 그렇다며 그 거위 이불에 들어간 거위는 50마리가 넘는다며 솜털과 날개 쪽 깃털을 사용해야 보온이 뛰어나다는 말을 했다.

 

거위 털 베개의 수명은 1년에서 1년 반이고 이불은 5년이다.

그 집에서 2년을 채우지 못하고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갔고 그 이후로는 거위 털을 넣은 걸 침구로 사용하지 않았다.

베개가 불편 할 때면 그 시절 거위 털 베개가 생각나지만 나의 질 높은 수면을 위해 수십마리의 거위 털을 뽑아 만든걸 사용할 수 없어서 베개 전문 매장을 찾아다닌다.

전문가에 의하면 기능성 베개로 인기가 좋은 메모리 폼이나 라텍스 소재 베개 수명은 3년이고 천연 라텍스의 수명은 10~15년인데 개개인의 머리 무게와 땀 수분 상태에 따라 교체 주기가 달라진다는 말을 했다.

새로 구입한 베개 사용 설명서에 이런 문구가 적혀 있다.

 라텍스는 수분에 약해 습기가 계속 닿으면 표면이 딱딱해지고 갈라지는 경화현상이 일어난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자는 동안 땀이나 침을 많이 흘리는 사람은 방수포를 안쪽에 한 겹 씌워주면 좋다.

경화현상이 일어날 경우 베개가 점점 더 딱딱해지고 탄성이 떨어질 뿐만 아니라 라텍스 가루가 떨어져 코·입으로 흡입할 수 있으니, 그 상태에 이르렀다면 빨리 교체해야 한다.


체형에 맞는 베개를 찾지 못하거나 교체 하는 것도 귀찮다면 이런 베개도 괜찮을 것 같다.

(c) Håkon Anton Fagerås

세상에서 제일 딱딱한 베개를 만드는 노르웨이 조각가 호콘 안톤 파가로스는 베개 천을 재단하고 박음질 하지 않고 딱딱한 대리석을 드릴로 정교하게 깎아내고 다듬는다.

 

점토나 대리석을  면 베개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포근한 베개로 변모 시키는 조각가 파가로스는 인생이 침대에서 시작되어 침대에서 끝난다며 '만약 당신이 딱딱한 베개를 좋아한다면...'이라는 주제로 다양한 색과 크기의 딱딱한 베개 조각품을 만들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수면 시간 통계 자료에 따르면 미국 성인들은 평균 9시간 28분이고 일본은 7시간 22분 한국인 성인  하루 평균 수면시간은 7시간 41분, 이 가운데 직장인은 6시간 6분으로 전체 회원국 중 일본 다음으로 가장 낮았다. 

현재 우리나라 연간 노동 시간이 2100시간을 넘어 OECD 평균 1766시간보다 무려 400시간이나 많다.

잠도 못 자며 일만 해도 어제보다 더 나은 삶을 사는 것도 빠듯하기에 베개 만큼은 내 몸을 편하게 해주면 좋겠다.

잠과 싸우지 말고 머리를 베개에 눕혀라. 

-마하트마 간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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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26-09-04 1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잠을 잘 자는 게 참 중요하단 걸 나이 들면서 새삼 느껴요. 건강의 척도란 것을요. 저도 늘 옆으로 또는 살짝 업드리다시피 누워야 어느새 잠이 들어 있을 때가 많아 바른 자세 유지가 참 힘들더군요. 그리고 베개의 중요성도 느껴 정말이지…다른 곳에서 잠을 잘 못 잘 정도가 되어버렸죠. 베개 정말 중요해요.^^

카스피 2026-09-05 15: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잠이 보약이라고 하는데 전 요즘 잠이 잘 안아서 거의 한 1~2시경에 자느 것 같아요.그래선지 낮에는 몸이 찌푸퉁 한것 같습니다.저도 베개를 바꿔봐야 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