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우수한 성적으로 아메리칸리그 서부지구에서 우승을 거두고 디비전 시리즈에 진출한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야구 대표팀의 빌리 빈 단장은  월드시리즈 우승으로 향하는 관문에서  자신이 이끌고 있는 선수들의 총 연봉의  세 배가 넘는 스타급 플레이어들만 모여 있는 뉴욕 양키스를 만나게 된다.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야구팀은 9회 말까지  혼신의 힘을 기울였지만  승리는 뉴욕 양키스에게 돌아가  끝내 패해 윌드시리즈 진출에 실패한다. 

폐배를 분석 할 겨를도 없었던 빌리 빈 단장은 불공정한 게임을 승리로 이끄는 기술인 '머니볼' 이론을  오클랜드 팀에 적용 시켜 보려 하지만 팀을 지탱하는 탑 플레이어 선수들이 부자 구단들에게 거액의 연봉과 계약금을 제안 받자  선수들을 붙잡을 돈이 없는 가난한 구단 오클랜드는 기존 전력을 유지하는 것조차 벅찬 상황에 맞닥뜨리게 된다.

감독과 의견 충돌로 인해  뜻대로 선수 영입을 하지 못한 빌리 빈 단장은 감독의 의견과 무관하게 해티 버그를 1루수로 기용하게 만들려고 올스타급 선수인  펜나라를 트레이드 시장에 이름을 올린 후 구단의 스텝들과 스카우터들을 모아 놓고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돈이 없다. 그래서 많은 돈을 지불하고 스타선수를 데려가는 부자구단과 경쟁할 수 없다. 따라서 아직 주목 받지는 못하고 있지만 숨겨진 재능을 가지고 있는 선수를 찾아야 한다. 기존의 잣대에서 저 평가 받는 선수들 중에서 우리의 기준을 만족하는 선수를 골라내야 한다.'

-마이클 루이스의 <머니볼>중에서 

적은 돈으로 최선의 팀을 꾸리기 위해 고군 분투 하고 있던 오클랜드의 빌리 빈 단장은  당시는 생소한 개념이었던 세이버매트릭스를 적극 도입해 선수들을 분석하는 방법을 쓰고 있는 피터를 오클랜드로 스카웃한다. 

빌리 빈 단장은 온갖 반대에 부딪히지만 그는 피터의 분석 도구를 활용해서 자신의 방식을 믿고 저렴하지만 야구계에서 평가 절하된 선수들을 끌어 모아 떠난 선수들의 빈자리를 메꾸는 변혁을 시도한다.

오랫동안 야구에서  타율은 타자를 평가하는 가장 훌륭한 지표라고 평가되어 왔다.  따라서 타율은 타자가 안타를 치는 경우 만을 상정하지만, 출루율은 경기에서 아웃을 당하지 않는 모든 경우를 상정한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방이 아웃카운트를 쌓아 경기를 쉽게 풀어나가는 것을 방해할 수 있는 훌륭한 지표인 출루율이 타율의 그늘 아래 가려 오랜 시간 동안  저평가를 받고 있었다.

 빌리 단장은  타율 대신 출루율이 더 승리에 도움이 되는, 가치 있는 지표라고 평가했다. 이 평가에 대한 이유가 [머니볼]에서 나타나는 혁신의 핵심이자 야구의 본질이다. 

1.현재 아무리 성공적이라고 해도 변화는 언제나 필요하다. 

영원한 현상유지는 없다. 돈이 없을 때는 장기 해결책을 찾지 못하며 단기 해결책만이 가능하다.

 항상 업그레이드를 추구하라. 그렇지 않으면 끝장이다.

 2. 뭔가를 꼭 해야 한다고 말하는 순간 이미 끝장난 것과 다름없다. 형편없는 거래를 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3.모든 선수가 정확히 어떤 가치를 지녔는지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 그래야만 선수의 가격을 제대로 매길 수 있다. 

4,어떤 선수가 필요한지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 선수를 붙잡아라.

 5.내가 하는 모든 거래는 대중의 주관적인 판단에 따라 집중 공격을 당할 것이다. 

-마이클 루이스의 '머니볼' 중에서

 머니볼에서  단장 빌리 빈은 머니볼 이론으로 무장해서 우승에 도전 했지만 실패를 하고 나서야 비로소 자신의 의지가  어긋났음을 알고 크게 좌절하는 순간 결국 공은 담장을 넘어갔다.

"제레미 브라운이요 앤 아시다시피 2루로 뛰는 걸 겁내죠 6주전 경기에요 강속구를 받아쳐서 중앙 깊숙히 날렸어요 이 부분이 흥미로워요. 안하던 짓을 하거든요. 1루로 내달리는 거에요. 그리고 계속 더 달리죠.봐요 여기서 제레미의 악몽이 현실로 나타나요" 

"모두 비웃는군" 

"그는 이제 깨달아요 자기가 친공이 펜스를 넘어 날아갔다는 걸 홈런을 치고도 그걸 몰랐던 거죠"

-마이클 루이스의 <머니볼>중에서 

20여 년 전 미국 메이저리그의 상식을 뒤엎은 빌리 빈 단장의 개혁은, 현재 메이저리그의 모든 팀이 사용하는 보편적인 방식이 되었지만 한국 프로야구에서는 이제  막 도입하고 있다.

한 해 동안 프로야구 경기는 메이저리그는 162경기가 열리고 한국 프로야구 리그는 연간 144경기가 열린다.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면 현재 시스템상 최대 19경기까지 더 치러야 하고 여기에 시범경기와 훈련기간까지  포함한다면 1년 365일 동안  거의 300일 동안 야구 경기장에서 뛰어야 한다.

야구는 어제 경기가 잘 풀렸다고 오늘 경기가 잘 풀린다는 보장도 없고 어제 홈런을 날렸지만 오늘 경기에서 내 기록을 상대 선수가 깨버리는 경우도 있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속구, 커브, 슬라이더만으로 타자를 상대해도 됐고 시속 150㎞가 아주 빠르다고 여겨지던 때가 있었지만  지금은 체인지업, 스위퍼 등도 갖춰야 하고  시속 160㎞ 이상 날아 오르는 공에도 만반에 대비를 갖춰야 한다.

어제 보다 더 빨라진  공의 속도에 맞춰 방망이 반응 속도도 빨라져야 하기 때문에  어제의 야구로 오늘의 야구를 이길 수가 없고 늘 이기는 팀도, 늘 지는 팀도 없다. 

아주 잘하는 팀도 10번 중 2~3번은 지고, 시즌 초반 부터 부진을 겪던 팀도  10번 중 3번 이상은 이긴다.

따라서 매 시즌 마다 팀에  언제나 영웅인 선수도,  역적인 선수도 없다. 

오로지 야구 경기에서는 아웃과 세이프, 볼과 스트라이크의 절묘한  균형 속에서 그저 더 잘하는 팀이, 덜 실수하는 팀이 최후의 승자가  될 뿐이다.

따라서 야구 경기장에서 뛰는 선수들에게  매일이 새로운 기회다. 

어제의 승리를  토대로 새로운 전략을 짜서 기회를 만들 수도 있고, 어제의 실패를 뒤로 하고 다시 시작할 수도 있다. 

야구에서는 첫 타석에서 빈타로 물러나면 바로 교체되거나  안타를 치고 출루했어도 다음 기회가 아예 없을 수도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선수들은 이 상태로 주저 앉지 않고 다음 경기에 나가고 연속 출전 하며 기회를 잡는다.

설령 대기석에 앉아 있는 선수들 조차도 하루 200~300개 이상의 스윙 연습을 하며 매일 자신과의  경기를 치르고 있다. 

한 방의 홈런으로 승리를 거머쥘 수 있는 야구는 그 한 방을 터트리기 위해 누구보다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

 야구의 마지막 볼이 자신도 모르게  경기의 승률을 뒤바꾸고  그리고 세상을  변화 시키는 경우가 많다. 

종착점이 없는 야구는 이렇게 매일 새로운 경기를 나서고,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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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선비라는 신분을 떠올릴 때면  자동적으로 연상 되는 이미지가 있다.

-아무리 가난해도 자신만 살기 위해  남에게 구걸하지 않는 사람.

- 옳은 일이 아니라면 하늘이 두 쪽 나도 거부하며 올곧은 기개를 품고 있는 사람

-잠깐 누릴 호사와 영광보다는 오래도록 남을 가치를 지키려는 사람

이렇게 연상 되는 이미지를 떠올리다 보면 자연스럽게 넷플릭스에서 방영 되고 있는 퓨전 사극 속의 선비의 모습들이 슬라이드 영상처럼 지나간다.

가문의 명예를 지키고 나라를 전란 속에서 구하고 왕을 보필 하여 백성의 삶을 보살 피고 그리고 신분차를 극복하며 사랑도 얻는 선비는  ‘곧 죽어도 이것 만은 포기할 수 없다'는 기개와 지조를 지켰던 모습은  현대인들의 허구성을 양념칠한 드라마가 아닌  기록되지 않은 실제 역사 속에서 존재 했을 지도 모른다. 
가문의 명예를 지키고 나라를 전란 속에서 구하고 왕을 보필 하여 백성의 삶을 보살 피고 그리고 신분차를 극복하며 사랑도 얻는 선비는  ‘곧 죽어도 이것 만은 포기할 수 없다'는 기개와 지조를 지켰던 모습은  현대인들의 허구성을 양념칠한 드라마가 아닌  기록되지 않은 실제 역사 속에서 존재 했을 지도 모른다. 

유숙 ‘수계도’ 

조선 시대 오랫 동안 벼슬을 하지 못한 선비는 죽을 때까지 흰색으로 지은 두루마기를 입고 종이로 만든 창과 흙벽으로 된 초가집에서 방에 고드름이 주렁 주렁 매달려도  시나 읊조리며 지냈다는 일화들이 여러 일화 를 통해 전해 지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한  일화는 일부는 맞고 일부는 미화 되었다.

철저한 신분 계급 사회였던 조선 시대에 중인 계급 이상의 집안에서 태어난 자손들은 7세를 넘기면 유교의 기본 예의범절과 붓글씨 쓰는 법부터 시작해서 천자문, 사자소학, 소학, 명심보감 등을 읽고 쓰면서 자연스럽게   시,서,화를 익혀 나갔다.

 10살을 넘기면 역사서를 탐독 하고 중국의 사상 철학을 공부 했고 성균관에 입학해서 중앙 정치 무대로 나가기 위한 예비 행정 과정과 정치 수업을 집중적으로 받았다.

따라서 신분이 선비인 이들은 딱히 뚜렷한 직업이 없어도 충분히 먹고 살 만한 집과 땅을 갖고 있었던 기득권 계층이였다.

조선후기 영조 집권기에 태어났던 연암 박지원은 조상 대대로 금수저 집안이여서 10대 시절에 아버지를 따라 중국의 문물을 일찌감치 접했던 최상위 계층이였다.

그는  한성부판관, 면천군수, 양양부사 등을 역임한 조선 후기 최고의  문신이자 학자이면서도 낙후된 조선과 달리 눈부신 발전을 이룬 중국의 선진 문물을 직접 관찰 해서 조선 경제를 일으켜 세우려고 했지만 막강한 신분 계층인 선비들에 의해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

연암 박지원은 자신의 저서  <양반전兩班傳>에서 조선 선비를 이렇게 정의 했다.

'선비란 바로 농사일도 아니 하고 장사도 아니 하면서 그런대로 문장과 역사를 섭렵하여(不耕不商 粗涉文史) 크게는 문과, 작게는 생원, 진사 등 양반으로서의 나갈 길을 걸어가던 사람들을 말한다'고 하였다. 따라서 이들은 당대 사회에서 가장 높은 신분에 있던 그룹이며, 또 그럼으로써 이들대로 독특한 자존심이 있기도 하였다.”

-연암 박지원의 <양반전> 중에서

연암 박지원이 언급한 선비의 '독특한 자존심' 은 바로 일반 백성의 처지와 삶을 절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계급적 우월 의식'을 의미 한다.

선비들이 보여주는 올곧은 자존심과 태도 역시, 자신들의 신분을 지키며 조선 사회에 기득권을 행사 해서 백성들은 벌레 보다 못한 삶을 살고 있더라도 그것은 그들의 태생적 신분 탓으로 여겼다.

학교 교육 과정에서 윤리 과목 시간에 배웠던 '유교' 사상에서 선비라는 신분 계층의 유학적 가치관은 수기(修己)·치인(治人)·입언(立言) 이  세 가지 항목이 충족 되어야 한다고 배웠다.

수기(修己)라는 한자를 유교 사상으로  풀이 해보면 백성을 다스리는 신분인 선비는 가장 먼저 인격적 자질을 길러야 하고 그 다음으로 치인(治人)은 도덕적 사상과 철학적 포부와 이상을 세상에 이롭게 하기 위해 두루 펼쳐 보여야 한다.

마지막 입언(立言)에서 선비의 삶의 가치는 나와 이웃의 양식이 아니라 함께 어울려서 살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 후대를 위해 교훈을 남겨 놔야 한다.

이 세가지 선비의 유학적 가치관 중에서 어떤 걸 더 중시 해야 하는 것을 두고 오랫도록 문인들끼리 지역파벌로 나눠져서 온갖 더러운 싸움질을 해댔다.

왜구의 침입으로 나라 전체가 약탈 당해도 선비들은 정쟁을 일삼았고 중국을 하늘의 신보다 더 숭배해서 굴욕적인 외교를 하며 열심히 조공을 받혔다.

선비들이 가문의 명예를 위해 자신들의 후손들이 자자손손 잘 먹고 잘 살게 하기 위해 온갖 비리와 뇌물로 배불리 먹고 살 때 가장 밑바닥 계층인 백성들의 평균 수명은 40세를 넘기지 못했다.

김홍도 '삼공불환도’,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오래도록 굶주림에 시달려서 황달에 걸려 배가 남산 만하게 불러서  들과 산에서 자라는 풀들만 먹다가 영양실조로 아사한 백성들과 달리 조선 시대 선비들은 대궐 같은 기와 집에서 따뜻한 온돌 방에서 난초를 키웠고 마당에는 닭보다 더 진귀한 두루미를 애완동물 처럼 키웠다.

천원 한 장으로 살 수 있는 식품들이 거의 사라지고 있는 고물가 시대에 서민들에게 숫자 0과 1의 차이는 엄청나게 크다.

세일품목, 반값세일, 매장 마감 할인 시간에 떨이 상품 그리고 현지 직송 거래 상품, 못난이 상품들을 구입하며 허리 띠를 졸라 매도  전에 구입했던 상품들의 크기가 작아졌고 용량도 줄어서 서민들의 삶의 질까지 기업의 얍삽함에 눈 속임 당하고 있다.

고물가에 허리가 휘고 공공 요금까지 들썩여서 야채도 과일도 너무 비싸서  서민들은 집에서 직접 키우며 자급자족 해야 할 지경까지 이르렀다.

현 시대의 선비 계층은 서울에 가장 노른자 땅인 영등포구 의사당대로를 자유자재로 드나들며 법카와 후원금 그리고 국민의 혈세로 온갖 혜택을 누리고 살고 있는 뱃지를 단 이들이다.

선거철을 앞둘 때 마다 너도 나도 찾아 가는 재래 시장과 지하철 역 입구 그리고 철도역에 얼굴을 드러냈던 정치인들은 내란 수괴범 탄핵 반대와 찬성 집회 장에서 가끔씩 마이크를 들고 소리쳐 대거나 여기 저기 유툽과 팟캐스트에 나와서 자신들의  권력을 지키는데  정신이 팔려 있다.

뱃지를 달고 있는 특권층들은 가장 저렴한 물건을 사기 위해서 사는 집에서 15분 이상 직접 걸어서 물건을 구입했던 적이나 마감 세일을 기다려서 떨이 상품을 구입해 본 적이 있을까?

조선 시대 선비들은 앞 마당에서 야생동물인 두루미가 날아가지 못하게  두루미의 깃털을 잘라내어 닭처럼 키웠다.

이는 곧 선비들의 지조인 수기치인(修己治人) 즉,  나를 닦고, 남을 다스리는 걸 실천 하며 살았던 것이다.



종이 돈에 그려진 선비들이 이 땅에 남긴 업적과 정신적 유산은 교과서를 통해 일 뿐 실생활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돌고 돈다 해도  존경과 찬사를 받아야 하는 인물들은  피, 땀, 눈물을 흘리며 하루 하루 성실하게 일터로 나가는  일반 백성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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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소민아 2026-09-16 01: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편의 멋진 인문학 컬럼같은 리뷰 혹은 페이퍼 잘 읽었습니다. 올리신 책들 둘러보러 갑니다~~

scott 2026-09-19 15:11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젤소민아님 9월의 화창한 계절 만끽하세요 ^^
 

​1995년 1월 17일 일본에서 발생한 고베 대지진은 일본 지진 사상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두 번째로 강력했던 규모 7.3, 진도 7의 대지진이었다.

사진으로만 보아도 이런 지진 규모에서 대피 조차 하지 못했을 정도로 무너지고 갈라지고 고가 도로가 엿가락처럼 휘고 지반 전체가 땅 속 아래로 푹 가라 앉아서 수 백 세대 가옥이 주저 앉고 무너졌을 정도의 지진 강도는 강력한 폭격을 때려 맞은 것 처럼 도시 전체가 날라가 버렸다.

리히터 규모 별 지진의 강도 기준에 따르면 규모 2-2.9의 진도가 시작 될 때 지반이 흔들리고 있다는 게 느껴지고 규모 3을 넘어가면 대형 트럭 여러 대가 도로 위를 질주 할 때 흔들리는 강도이고 규모 4를 넘어가면 창문이 깨지고 물건들이 와르르 떨어지고 규모 5에 다다르면 제대로 서 있기 힘든 상태가 된다.

규모 6부터 전봇대가 뽑혀져 나가는 땅의 균열이 시작되고 규모 7이 되면 일본 고베 대 지진처럼 지반 전체가 갈라지고 벌어지면서 아비규환의 지옥의 문이 열린다.

​


지난달 28일 구마모토현에서 규모 7.1의 강진이 발생했다.

일본 기상청은 진원의 깊이를 약 68㎞로 추정했으며, 이번 지진으로 인한 쓰나미 우려는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지만 이번 지진으로 이바라키현과 사이타마현, 지바현, 도쿄도 등에서는 일본 기상청 기준 최대 진도 5약의 흔들림이 관측됐다.

진도 7은 건물이 파손 될 정도로 강한 지진이고 추후 여진이 이어질 가능성도 클 정도로 이번 지진은 한번 발생하고 지나가는 지진의 강도가 아니다.

도쿄에서 발생한 지진 5약의 강도는 고층 건물에서 길고 느린 흔들림이 이어지는 장주기 지진동이 이어져서   큰 흔들림으로 무언가를 잡지 않으면 걷기 어려워지고 선반 위 식기나 책 등이 떨어지는 정도의 강도다.

이 정도 강도라면 11년 전에 발생했던 동 일본 대 지진 정도의 거대 지진이 앞으로 닥쳐 올 것이라고 일본 원전도 무사하지 못할 정도로 국가 대 재앙의 불어 닥친다는 불길한 지진이 이번 미야자키 현을 시작으로 언제든 7도 이상의 강진이 바다부터 시작 될 것으로 예측 해 볼 수 있다.

국가적 재앙 앞에서 똘똘 뭉치는 지진 발생 전 일본 본 회의에서 대규모 재해가 발생했을 때 도쿄의 수도 기능을 대신할 제2의 수도와 해당 지역을 지정하는 법안을 가결 시켰다.

실제 법안 통과 나흘 후인 7월28일 구마모토현에서 규모 7.1, 최대 진도 7의 지진이 발생했으니 대규모 지진이나 후지산 분화 등으로 도쿄가 수도 기능을 하기 어려워질 경우 수도 도쿄의 중요 행정 기관을 홋카이도·미야기현·군마현·아이치현·오사카부·히로시마현·후쿠오카현 등 7개 도부현 중 한 곳으로 이전 한다는 계획을 추진 하고 있다.

일본 열도는 일명 불의 고리라 불리는 환태평양조산대에 있어 지진과 화산 폭발은 언제 어디서 발생 할지 모르는 시한 폭탄급이다.

​


​일본은 매년 수백 차례 지진이 발생하는 일본 땅의 후대인들에게 경각심과 삶의 큰 교훈을 알려 주기 위해 자신들의 섬나라에서 발생하는 각종 재해, 재난 사고 현장을 고스란히 보존해서 야외 박물관으로 만드는 재주도 아주 뛰어나다.

마치 재난 영화의 가장 극적인 장면을 캡쳐 하듯 고베 항구의 뒤틀어진 현장을 위의 사진 처럼 고스란히 보존 하고 있다.

일본 역사상 최악의 재난으로 기록되어 그 재난의 흔적을 남겨 놓은 일명 ‘메모리얼파크’와 ‘사람과 방재 미래센터’는 바다 위를 둥둥 떠 위는 미항(美港)의 모습으로 지금까지 방문객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

​

2024년 7월 일본 니가타현에 있는 사도 광산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자 마자 사도 광산 매표소에 '세계문화유산 등재'라는 문구를 세워 놓고 시민들은 '세계유산 등재'가 된 것을 자축하며 엄청난 관광 수익을 올릴 준비를 하고 있다.​

일본 니가타현 소재 사도광산은 에도시대인 16세기에서 19세기까지 전통 수공예 금 생산을 하던 곳으로, 메이지 시대 들어 사도광산을 기계화하면서 많은 조선인 노동자들이 강제로 투입되었다.

1943년 사도광산에서 목숨을 잃을 정도로 가혹한 노동에 내몰린 조선인의 숫자는 대략 1200명 정도로 파악 되고 있지만 일본 정부는 490명이라고 숫자를 축소 하고 강제 징용이라는 단어까지 삭제 하고 노동자 딱 세 글자로 세계 유산을 상대로 꾸준히 성실하게 로비해서 거대한 조선 노동자들의 피 땀 눈물이 배어든 광산을 세계 문화 유산으로 만드는데 성공 했다.

1930년 대부터 사도광산을 운영했던 기업 미쓰비시가 주도적으로 조선인들을 한반도에서 강제로 납치 해서 고용 했는지 조차도 한국 정부는 모르고 있다.

일본이 대동아 전쟁을 시작 했을 당시에 강제로 일본 땅으로 끌려간 조선인들의 숫자는 118만명에 다다르고 이 숫자에서 사도 광산에 동원되었던 조선인 노동자를 추려 내기 힘들다는 것이 우리측 외교부 입장이다.

지난 7월 27일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제46차 세계유산위원회의에 참석한 일본 수석대표 카노 타케히로 주유네스코 일본대사는 사도광산에서 일한 “모든 노동자”라 언급했을 당시 한국 외교부는 '모든'이라는 형용사를 듣고도 입 꾹을 한 것이다.

아니면 일본어에 능통하지 않은 관료 집단들이 못 알아 들었다면 ....

굴종 외교를 자처 한 것이다.

반 세기 넘도록 몇 명의 국민이 나라 밖, 지옥의 섬나라가 파 놓은 광산 속에서 얼마나 많이 희생 되었는지 조차 모른다는 건 부끄러운 일이다.

만일 국가에 대 재앙과 재난이 발생 하면 국민의 생명을 책임 질 관료들 정치인들 기타 재력가들은 서둘러 자신들 부터 살아 남기 위해 도망 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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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세계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이노은 옮김 / 다산초당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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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광기의 폭주가 단숨에 수 세대에 걸쳐 쌓아온 문명을 어떻게 잔혹하게 파괴 할 수 있는지.인간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 동시에 얼마나 강인하게 시련을 견딜 수 있는지 현재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는 평온한 일상도 언젠가는 ‘어제의 세계’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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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6-09-14 15: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괴되고 지나가 버린 어제에 대한 이야기가 츠바이크의 손에서 어떻게 살아날지 궁금해요. 다시 출판된 기념으로 저도 읽어보려구요. ^^

scott 2026-09-19 15:10   좋아요 0 | URL
독일어 원문 이번 번역본 저도 믿고 구입했습니다 ^^

젤소민아 2026-09-16 01: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에 이어 저도 읽어보려 합니다~감사합니다~

scott 2026-09-19 15:10   좋아요 0 | URL
불멸의 명저 입니다 !^^젤소민아님 꼬옥 ^^
 
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
손턴 와일더 지음, 정해영 옮김, 신형철 해제 / 클레이하우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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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4년 7월 20일 정오 무렵 리마와 쿠스코 사이를 이어주는 페루에서 가장 멋진 다리 산 루이스 레이가 무너지는 사고가 발생한다.

다리가 무너져 버릴 당시에 건너던 다섯 사람 모두 떨어져 죽게 된다.

간발의 차이로 참사를 피한 주니퍼 수사는 “왜 이런 일이 하필 저 다섯 사람에게 일어난 것일까?”라는 의문을 품고 다리 붕괴 사고로 희생된 사람들이 우연히 그 장소에 가게 되어 죽게 된 것이였는지 아니면 신이 정해 놓은 운명의 섭리에 따라 죽음에 이르게 되었는지 ‘그들의 죽음’의 원인을 밝혀 낼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인생 행적을 탐사해 나간다.


주니퍼 수사가 가장 먼저 인생 행적을 탐문하는 첫 번째 희생자는 몬테마요르 후작 부인으로 남편을 일찍 여의고 홀로 딸을 키워냈지만 엄마의 과도한 집착과 사랑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딸은 스페인으로 도망가 그곳에서 결혼을 하고 엄마를 두번 다시 찾지 않는다.

두 번째 희생자는 후작 부인을 수행했던 하녀로 수도원에 버려졌던 고아 소녀 페피타이다.

그녀의 뒤를 따라 다리를 건넜던 세 번째 희생자 에스테반 청년은 자신의 쌍둥이 형제의 죽음으로 자살을 시도 했지만 실패 한 후에 새로운 인생을 시작 하기 위해 다리를 건너갔던 청년이다.

네 번째 희생자는 '늙은 어릿 광대' 피오 아저씨로 한때는 유명했던 연극 배우였던 그는 젊은 시절 페루의 최고의 여배우가 성공 할 수 있게 모든 것을 희생했지만 연인에게 버림 받는다.

다섯 번째 희생자는 하이메라는 이름의 아이로 '늙은 어릿 광대' 피오 아저씨가 자신이 연기를 가르쳤던 여배우 카밀라 페리콜이 낳은 아이를 맡아 키우며 함께 리마로 가던 중이었다.

한 날 한 시에 같은 마차에 타고 산 루이스 레이 다리에서 죽음을 맞이한 이 다섯 명의 운명은 ‘모두 죽을 만했던 사람들이였을까?" 아니면 ‘신의 섭리였을까?, 허무한 우연인 것인가?'

만일 이게 섭리라면 신은 잔혹하고, 한낱 우연이라면 인생은 무의미한 것 아닌가?

이 다섯 사람들은 그 날 왜 산 루이스 레이 다리를 건너갔던 것일까?

가톨릭 성인의 이름을 딴 산 루이스 레이 다리를 건너 산길을 오르면 클루삼부쿠아 성지에 닿는다.

이 성지는 개혁적이고도 헌신적인 마리아 수녀원장 이끄는 수녀원과 성당이 있는 곳으로 발길이 닿는 곳마다 성당과 수녀원에서 들리는 종소리가 울리는 경건함으로 가득 찬 곳이다.

포목상의 딸로 태어나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냈던 몬테 마요르 후작부인은 딸 클라라에 대한 강박과 집착이 결국은 자신을 위한 딸의 사랑이었음을 깨닫는 순간 다리를 건너다 죽음을 맞이 하고 후작부인의 하녀인 페피타는 고아였던 자신을 키워준 수녀원장의 사랑을 구하려다 결국 다리 아래로 떨어진다.

쌍둥이 동생을 잃은 형 에스테반은 삶의 의지를 잃어 버렸지만 자신의 형제를 키워준 수녀원장에게 줄 선물을 사기 위해 다리를 건너다 추락하고 연인에게 버림 받은 늙은 연극 배우와 그가 데려다 키우는 아이까지 각기 다른 사연을 품고 리마로 되돌아가던 한날 한시에 죽는다.

저마다 욕망하고 자학 하고 절망하고 원망하다 비로소 “용기”를 내어 죽고 싶은 마음을 이겨내고 새 삶의 의지를 품고 다리를 건너던 그 순간에 죽음을 맞는다.

이 안타까운 사고로 세상을 떠난 다섯 명의 사람들의 죽음에 대해 세상은 오만함과 부유함이 저주 받은 것이라 했지만 신의 섭리를 연구하던 주니퍼 수도사는 이들의 삶이 세상에 알려진 것과 다르다고 추론 했지만 결국 이교도로 몰려 책과 함께 화형을 당한다.

주니퍼 수사가 탐문하기 시작한 다섯 사람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다 보면 완전히 우연한 사고처럼 보이는 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가 무너지는 사고에 더 큰 운명이 도사리고 있었다.

가족 사이의 사랑, 스승과 제자 사이의 애정,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 그리고 부모를 잃은 고아를 키워준 마리아 수녀원장에 대한 사랑을 품고 있었던 다섯 명의 운명은 인류 전체의 모습을 암시하고 있다.

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가 연결 시켜 주는 가장 강력한 두 세계는 ‘살아 있는 사람들을 위한 땅’과 ‘죽은 사람들을 위한 땅’으로 이 두 세계를 연결하는 다리가 바로 사랑이다.

인간은 태생적으로 자신의 본성을 알지 못하는 유일한 동물이지만 자신과 다른 또 다른 인간의 속성을 찾아 서로 비교 하고 경쟁하며 동시대를 함께 살고 있는 인간이 직면하는 고통과 고난을 외면하지 않고 함께 극복하며 서로 공존하며 살아가는 지혜를 발휘 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

우리는 그동안 세월호 참사와 이태원 참사, 제주항공 참사와 같은 비극을 겪는 동안 "왜 하필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라며 사건 수습과 대처, 사고 예방에 미흡할 뿐 그저 누구나 우연히 그런 사고를 당해 그런 죽음을 맞이할 뿐이라고 덮어 버린다.

소설 <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에서 마리아 수녀원장은 자신의 신자들이자 다리 붕괴 사고로 세상을 떠난 이들의 죽음의 의미를 이런 말로 추모 한다.

'모든 사랑의 충동은 그것을 만들어 낸 사랑으로 돌아간다. 사랑을 위해서는 기억조차 필요하지 않다. 산 자들의 땅과 죽은 자들의 땅이 있고, 그 둘을 잇는 다리가 바로 사랑이다. 오직 사랑만이 남는다. 오직 사랑만이 의미를 지닌다.'

-손턴 와일더의 <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 중에서

작가 손턴 와일더(1897~1975)의 <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 작품의 첫 장의 시작은 '어쩌면 우연' 마지막 장은 '어쩌면 신의 의도'로 끝이 난다.

1714년에 페루 리마에서 발생한 안타까운 사고로 희생된 운명을 갖은 사람들에게 <신>은 구원적인 존재가 아니였다.

어차피 세상에 태어나는 모든 생명들은 언젠가 죽게 될 것이고 죽고 나서는 그 모든 기억들이 사라져 버린다.

어떤 시대가 도래 한다 해도 결국엔 모두가 세상에서 사라지는 끝이 있고 그 끝에서 다시 태어나서 시작되는 사랑이 있듯이 모순 가득한 세상 속에서 우리 모두 날마다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삶과 죽음의 다리를 건너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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