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대 선비라는 신분을 떠올릴 때면  자동적으로 연상 되는 이미지가 있다.

-아무리 가난해도 자신만 살기 위해  남에게 구걸하지 않는 사람.

- 옳은 일이 아니라면 하늘이 두 쪽 나도 거부하며 올곧은 기개를 품고 있는 사람

-잠깐 누릴 호사와 영광보다는 오래도록 남을 가치를 지키려는 사람

이렇게 연상 되는 이미지를 떠올리다 보면 자연스럽게 넷플릭스에서 방영 되고 있는 퓨전 사극 속의 선비의 모습들이 슬라이드 영상처럼 지나간다.

가문의 명예를 지키고 나라를 전란 속에서 구하고 왕을 보필 하여 백성의 삶을 보살 피고 그리고 신분차를 극복하며 사랑도 얻는 선비는  ‘곧 죽어도 이것 만은 포기할 수 없다'는 기개와 지조를 지켰던 모습은  현대인들의 허구성을 양념칠한 드라마가 아닌  기록되지 않은 실제 역사 속에서 존재 했을 지도 모른다. 
가문의 명예를 지키고 나라를 전란 속에서 구하고 왕을 보필 하여 백성의 삶을 보살 피고 그리고 신분차를 극복하며 사랑도 얻는 선비는  ‘곧 죽어도 이것 만은 포기할 수 없다'는 기개와 지조를 지켰던 모습은  현대인들의 허구성을 양념칠한 드라마가 아닌  기록되지 않은 실제 역사 속에서 존재 했을 지도 모른다. 

유숙 ‘수계도’ 

조선 시대 오랫 동안 벼슬을 하지 못한 선비는 죽을 때까지 흰색으로 지은 두루마기를 입고 종이로 만든 창과 흙벽으로 된 초가집에서 방에 고드름이 주렁 주렁 매달려도  시나 읊조리며 지냈다는 일화들이 여러 일화 를 통해 전해 지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한  일화는 일부는 맞고 일부는 미화 되었다.

철저한 신분 계급 사회였던 조선 시대에 중인 계급 이상의 집안에서 태어난 자손들은 7세를 넘기면 유교의 기본 예의범절과 붓글씨 쓰는 법부터 시작해서 천자문, 사자소학, 소학, 명심보감 등을 읽고 쓰면서 자연스럽게   시,서,화를 익혀 나갔다.

 10살을 넘기면 역사서를 탐독 하고 중국의 사상 철학을 공부 했고 성균관에 입학해서 중앙 정치 무대로 나가기 위한 예비 행정 과정과 정치 수업을 집중적으로 받았다.

따라서 신분이 선비인 이들은 딱히 뚜렷한 직업이 없어도 충분히 먹고 살 만한 집과 땅을 갖고 있었던 기득권 계층이였다.

조선후기 영조 집권기에 태어났던 연암 박지원은 조상 대대로 금수저 집안이여서 10대 시절에 아버지를 따라 중국의 문물을 일찌감치 접했던 최상위 계층이였다.

그는  한성부판관, 면천군수, 양양부사 등을 역임한 조선 후기 최고의  문신이자 학자이면서도 낙후된 조선과 달리 눈부신 발전을 이룬 중국의 선진 문물을 직접 관찰 해서 조선 경제를 일으켜 세우려고 했지만 막강한 신분 계층인 선비들에 의해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

연암 박지원은 자신의 저서  <양반전兩班傳>에서 조선 선비를 이렇게 정의 했다.

'선비란 바로 농사일도 아니 하고 장사도 아니 하면서 그런대로 문장과 역사를 섭렵하여(不耕不商 粗涉文史) 크게는 문과, 작게는 생원, 진사 등 양반으로서의 나갈 길을 걸어가던 사람들을 말한다'고 하였다. 따라서 이들은 당대 사회에서 가장 높은 신분에 있던 그룹이며, 또 그럼으로써 이들대로 독특한 자존심이 있기도 하였다.”

-연암 박지원의 <양반전> 중에서

연암 박지원이 언급한 선비의 '독특한 자존심' 은 바로 일반 백성의 처지와 삶을 절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계급적 우월 의식'을 의미 한다.

선비들이 보여주는 올곧은 자존심과 태도 역시, 자신들의 신분을 지키며 조선 사회에 기득권을 행사 해서 백성들은 벌레 보다 못한 삶을 살고 있더라도 그것은 그들의 태생적 신분 탓으로 여겼다.

학교 교육 과정에서 윤리 과목 시간에 배웠던 '유교' 사상에서 선비라는 신분 계층의 유학적 가치관은 수기(修己)·치인(治人)·입언(立言) 이  세 가지 항목이 충족 되어야 한다고 배웠다.

수기(修己)라는 한자를 유교 사상으로  풀이 해보면 백성을 다스리는 신분인 선비는 가장 먼저 인격적 자질을 길러야 하고 그 다음으로 치인(治人)은 도덕적 사상과 철학적 포부와 이상을 세상에 이롭게 하기 위해 두루 펼쳐 보여야 한다.

마지막 입언(立言)에서 선비의 삶의 가치는 나와 이웃의 양식이 아니라 함께 어울려서 살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 후대를 위해 교훈을 남겨 놔야 한다.

이 세가지 선비의 유학적 가치관 중에서 어떤 걸 더 중시 해야 하는 것을 두고 오랫도록 문인들끼리 지역파벌로 나눠져서 온갖 더러운 싸움질을 해댔다.

왜구의 침입으로 나라 전체가 약탈 당해도 선비들은 정쟁을 일삼았고 중국을 하늘의 신보다 더 숭배해서 굴욕적인 외교를 하며 열심히 조공을 받혔다.

선비들이 가문의 명예를 위해 자신들의 후손들이 자자손손 잘 먹고 잘 살게 하기 위해 온갖 비리와 뇌물로 배불리 먹고 살 때 가장 밑바닥 계층인 백성들의 평균 수명은 40세를 넘기지 못했다.

김홍도 '삼공불환도’,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오래도록 굶주림에 시달려서 황달에 걸려 배가 남산 만하게 불러서  들과 산에서 자라는 풀들만 먹다가 영양실조로 아사한 백성들과 달리 조선 시대 선비들은 대궐 같은 기와 집에서 따뜻한 온돌 방에서 난초를 키웠고 마당에는 닭보다 더 진귀한 두루미를 애완동물 처럼 키웠다.

천원 한 장으로 살 수 있는 식품들이 거의 사라지고 있는 고물가 시대에 서민들에게 숫자 0과 1의 차이는 엄청나게 크다.

세일품목, 반값세일, 매장 마감 할인 시간에 떨이 상품 그리고 현지 직송 거래 상품, 못난이 상품들을 구입하며 허리 띠를 졸라 매도  전에 구입했던 상품들의 크기가 작아졌고 용량도 줄어서 서민들의 삶의 질까지 기업의 얍삽함에 눈 속임 당하고 있다.

고물가에 허리가 휘고 공공 요금까지 들썩여서 야채도 과일도 너무 비싸서  서민들은 집에서 직접 키우며 자급자족 해야 할 지경까지 이르렀다.

현 시대의 선비 계층은 서울에 가장 노른자 땅인 영등포구 의사당대로를 자유자재로 드나들며 법카와 후원금 그리고 국민의 혈세로 온갖 혜택을 누리고 살고 있는 뱃지를 단 이들이다.

선거철을 앞둘 때 마다 너도 나도 찾아 가는 재래 시장과 지하철 역 입구 그리고 철도역에 얼굴을 드러냈던 정치인들은 내란 수괴범 탄핵 반대와 찬성 집회 장에서 가끔씩 마이크를 들고 소리쳐 대거나 여기 저기 유툽과 팟캐스트에 나와서 자신들의  권력을 지키는데  정신이 팔려 있다.

뱃지를 달고 있는 특권층들은 가장 저렴한 물건을 사기 위해서 사는 집에서 15분 이상 직접 걸어서 물건을 구입했던 적이나 마감 세일을 기다려서 떨이 상품을 구입해 본 적이 있을까?

조선 시대 선비들은 앞 마당에서 야생동물인 두루미가 날아가지 못하게  두루미의 깃털을 잘라내어 닭처럼 키웠다.

이는 곧 선비들의 지조인 수기치인(修己治人) 즉,  나를 닦고, 남을 다스리는 걸 실천 하며 살았던 것이다.



종이 돈에 그려진 선비들이 이 땅에 남긴 업적과 정신적 유산은 교과서를 통해 일 뿐 실생활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돌고 돈다 해도  존경과 찬사를 받아야 하는 인물들은  피, 땀, 눈물을 흘리며 하루 하루 성실하게 일터로 나가는  일반 백성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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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소민아 2026-09-16 0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편의 멋진 인문학 컬럼같은 리뷰 혹은 페이퍼 잘 읽었습니다. 올리신 책들 둘러보러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