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도 노벨 문학상 발표 직전 영국 베팅사이트 나이서 오즈(Nicer Odds)는 2025년 노벨문학상 수상 가능성이 가장 큰 작가로 호주 소설가 제럴드 머네인의 배당률을 6배에 배팅 했고 그 다음으로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의 배당률은 7배에 배팅 했다.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라는 이름이 스웨덴 한림원에서 호명 되는 순간 그에게 1만 원을 걸었던 사람은 7만 원을 받았을 것이다.

노벨상 수상을 처음 시작한 1901년 이래로 지금까지 총 49명의 여성들이 노벨상을 수상했다. 역대 남성 수상자들과 비율로 비교 하면 여성 수장자 비율은 남자의 5.6%에 불과하다.

10월 5일에 발표한 생리의학상은  칼 다이서로스·페터 헤게만·게오르크 나겔 공동수상으로 수상자 모두 남자다.

생리의학상 최초의 여성 수상자는 1947년 글리코겐 대사 경로를  발견한  거티 코리 1983년 전이성 유전자 발견으로  공동 수상이 아닌 유일한 여성 단독 수상을 한 바버라 매클린톡이 있다.

 2023년 (mRNA 백신 개발에  기여한 커털린 커리코가 공동 수상했고 , 2025년  면역 관용 연구 성과로 메리 브렁코가 수상했다.

 

각 수상 대상자는 분야별로 차이가 있는데 경제학 분야에서 3명만 여성 수상자가 나왔을 정도로 수상 비율이 가장 낮은 반면에 노벨 평화상 분야에서 20명의 여성 수상자를 배출 하며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 하고 있다.

문학상의 경우 여성 비율이 12.5%로 상대적으로 높지만 여전히 노벨상 수상 성비 불균형은 심각하게 한쪽 성별에 치우쳐 있다.

따라서 매년 노벨문학상에 여성 작가들이 상을 받는다 해도 앞선 세기에 줄창 남성 작가들이 상을 독식했던 비율을 따라 잡지 못한다.

철저하게 후보작 선정 과정 부터 심사까지 베일에 쌓아 놓고 신비주의를 고수하는 노벨상 주최국이자 위원회인 스웨덴 한림원은 최종 수상자가 발표 된 지 50년 동안 심사 과정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세기 전에 수상한 작품들을 둘러싼 심사 과정들이 최근에야 공개 될 정도로 철저하게 비밀주의를 고수 하고 있는 스웨덴 한림원에서 지금까지 일부 공개 한 바에 의하면 노벨 수상자가 발표된 10월을 지나서 11월 부터 차기 노벨 문학상 후보 추천을 요청하는 공식 서한을 전 세계로 발송한다.

노벨측으로 부터 추천을 요청 받은 이들은 역대 노벨 문학상 수상자들과 각국가의 문학·언어학 교수, 각국 작가협회장 등 수백 명에 달한다.

이들의 추천을 바탕으로 5명의 후보를 추려낸 노벨 문학위원회는 6∼8월 최종 후보자 5명의 작품을 낭독하고 평가하고 나서 9월엔 각 후보자의 문학적 기여와 강점을 두고 토론을 벌인다.

10월 초에 최종 후보 투표를 실시하고, 여기서 과반을 득표한 인물이 수상자로 확정된다.

전재 산을 사회에 기부한 알프레드 노벨은 유언에서 ‘수상자의 국적과 상관없이 가장 가치 있는 인물에게 상을 수여 해 달라’는 말을 남겼다.

문학 분야에서 동시대에서 가장 뛰어난 작품을 쓴 사람에게 주어지는 노벨 문학상은 1901년부터 올해까지 총 118차례 수여 되어 상을 받은 사람은 122명으로, 제 1·2차 세계대전 기간에만 수상자를 배출하지 못했다.

역대 수상자들 중에서 프랑스가 16명으로 가장 많았고 미국 13명, 영국 12명, 스웨덴 8명, 독일 8명이 받았다.

그동안 수상자들 중에서 성취한 업적에 대한 것 부터 자질까지 논란이 되었던 수상자들이 있었다.

노벨 문학상에서는 실제 심사 과정에서 국가적·정치적 요소가 많이 고려 되는데 영국 총리 윈스턴 처칠과 어니스트 헤밍웨이 그리고 국가가 나서서 수상을 거부 했던 러시아의 보리스 파스테르나크를 비롯해 미국 팝 가수 밥 딜런까지 문학적 의미에 정치적 의미가 포함된 경우도 종종 있었다.

동시대 뛰어난 문학적 성취를 이룬 버지니아 울프를 비롯해서 수 많은 여성 작가들도 수상을 하지 못해서 그동안 노벨 문학상은 성취에 대한 ‘보상’ 보다 덜 알려진 작가에 대한 ‘격려’같은 의미로 낯선 이름의 작가들에게 상이 수여 되기도 했다.

2024년 한강 작가가 수상했기에 대륙 안배 차원에서라도 동북아 출신 작가들의 수상은 배제 될 것이라는 예측도 이번에 맞아 떨어졌고 인공지능 보다 영국 베팅사이트 나이서 오즈(Nicer Odds)의 적중률이 더 정확했다.

스웨덴 한림원은 헝가리 작가 크러스너호르커이가 종말론적 공포 속에서도 예술의 힘을 재확인하는 강렬하고 선구적인 작품 세계를 펼쳤다며 그를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1954년 헝가리 줄러에서 태어난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는 1976년부터 1983년까지 부다페스트 대학에서 문학 공부를 마치고 1985년 '사탄탱고'로 데뷔했다.

<사탄탱고>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어느 시월의 아침 끝없이 내릴 가을비의 첫 방울이 마을 서쪽의 갈라지고 소금기 먹은 땅으로 떨어질 즈음(이제 첫서리가 내릴 때까지는 온통 악취 나는 진흙 바다가 펼쳐져 들길로 다니기도, 도시로 가기도 어려울 터이다), 후터키는 종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1980년 부패할 대로 부패해 버린 공산주의가 붕괴되어가던 헝가리의 어느 집단 농장은 이미 해체되어 마을 곳곳마다 가난과 불신의 늪이 깊어져 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1년 반 전에 죽은 것으로 알려진 이리미아시가 마을로 돌아온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한다.

한 때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지녔던 그가 가을 장마가 시작 되는 10월에 마을로 귀환한다는 소식에 사람들은 절망적인 삶에서 탈출할 수 있으리라는 달콤한 꿈에 부풀지만 어디선가 들려오는 종소리와 보이지 않는 거미들이 친 거미줄에 알 수 없는 두려움과 불안감에 시달린다.

농장이 붕괴 되어 가난과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는 주민들 앞에 나타날 이리미아시는 세계를 구할 수 있는 구세주일까?

지리 멸렬한 삶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쳐 대는 인간의 모든 노력이 결국엔 실패로 돌아가 끝내 가난과 굶주림의 쳇바퀴에 다시 포박 되는 과정을 그려낸 <사탄탱고>는 출간 된지 반 세기가 지난 후인 2015년 헝가리 작가 최초로 맨부커상(현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을 받았다.

복잡하면서도 모호한 의식 상태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문장에 마침표 대신 쉼표로 찍어 놓는 작가의 독특한 문체는 번역가들 사이에서도 악명이 높다.

두 번째로 출간한 <저항의 멜랑콜리>라는 작품은 첫 페이지 부터 길고 긴 문장으로 시작한다.

티서강 제방에서부터 저 멀리 카르파티아산맥 발치까지 뻗어 있는, 남쪽 저지대의 얼음에 뒤덮인 단지들을 연결하는 여객 열차는 불행하게 제 발부리에 자꾸 걸리는 철도원의 애매한 해명이나 불안스레 기차역에서 가다 서다 허둥거리는 역장의 약속에도 불구하고 올 생각을 안했기에 (‘그것 참, 연기처럼 다시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렸나….’ 철도원은 떨떠름한 표정을 구기며 어깨를 으쓱했다) 딱 이런 ‘비상’용으로 건사하고 있던, 오로지 두 대로 이뤄진 나무의자 객차를, 한물가고 영 시답잖은, 진짜 마지막 방책으로만 사용되는 424 기관차와 맞걸어 운행에 들어갔다. 하릴없이 동쪽행 기차 편을 기다리던 지역민들은, 지켜지지도 않고 그조차 어림잡은 것인 시간표에 따르면 비록 한 시간 하고도 삼십 분 지연되긴 했으나, 이를 무관심과 속수무책의 체념이 섞인 모습으로 받아들이고서 기다리다, 마침내 지선을 따라 오십 킬로미터쯤 더 간 그들의 종착역에 도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저항의 멜랑콜리 중에서

1987년 독일 동독에서 학업을 이어가던 중에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것을 목격한 작가 라슬로는 어디에서든 글을 쓰는 순간 그 곳이 고향이 되고 집이 된다며 그동안 프랑스, 네덜란드, 이탈리아, 그리스, 중국, 몽골, 일본(교토), 미국(뉴욕) 등 세계 여러 나라에 체류하며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헝가리 현대문학의 거장으로 불리는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의 작품은 러시아의 고골과 독일의 카프카 그리고 미국의 허먼 멜빌과 비견 되는 작가다.

 

 

노벨상의 달 10월은 아침 저녁으로 부는 차가워진 바람막이를 책 병풍 삼아도 될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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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단편 작가로서는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캐나다 태생의 작가 앨리스 먼로라는 이름 앞에 붙는 수식어는 다음과 같다.

20세기 현대 단편 소설의 대가

20세기 여자 체홉

진정한 이야기꾼

언어의 연금술사

​

1931년 캐나다 온타리오주 시골 마을 윙엄에서 여우 농장을 운영하는 아버지와 교사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앨리스 먼로는 10대 시절부터 단편을 쓰기 시작했던 문학 소녀였다.

웨스턴 온타리오대학 영문과 재학 중 단편 '그림자의 차원'을 발표하며 소설가로 등단한 앨리스 먼로는 대학 동기와 결혼 후 학교를 그만 두고 남편의 고향에 서점을 경영하며 세 아이를 낳는다.

육아와 서점 경영을 하는 중에도 틈틈이 글을 썼던 앨리스 먼로는 여러 출판사로부터 거절 당한 끝에 1968년에 첫번째 단편 소설집 《행복한 그림자의 춤》을 발표 하면서 작가로 명성을 얻기 시작한다.

단편보다 장편을 선호 했던 캐나다 문학계에서 앨리스 먼로의 단편들은 길지 않은 분량 속에 도시와 지방, 욕망과 규칙, 현실과 이상, 도덕과 자유 사이에서 번민 하고 갈등하고 갈망하는 지극히 평범한 이들의 삶의 모습을 담고 있어서 독자들의 뜨거운 호응을 받았다.

첫번째 단편 소설집 《행복한 그림자의 춤》으로 앨리스 먼로는 작품 활동하는 내내 총독 문학상을 모두 세 차례 받으며 캐나다를 대표하는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2009년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수상 하면서 전 세계 단편 소설 작가들에게 큰 희망을 주었고 2012년 13번째 단편집 <디어 라이프> 출간 이후 절필을 선언 한 앨리스 먼로는 2013년 마침내 전 세계 작가들이 가장 받고 싶어 하는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다.

역대 노벨문학상 수상작가들 중에서 장편이 아닌 단편집으로 수상 한 앨리스 먼로는 작가들이 평생에 걸쳐 이룩하고 성취 할 수 있는 모든 영광과 스포트라이트를 한번에 받은 전무후무한 작가였다.

노벨상 발표 당시 고령의 나이에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았던 앨리스 먼로는 2013년 수상식 자리에 그녀의 딸이 대신 참석해서 메달을 받고 수상 소감을 발표 했다.

앨리스 먼로는 발표하는 작품마다 치밀할 정도로 균일한 완성도와 작품의 깊이를 갖춘 작가로 오랜 세월 함께했지만 소통이 불가능한 결혼 생활, 우연한 인연이 남기고 간 상처를 뒤돌아보며 흘리는 눈물, 사회와 가정이라는 도덕적 규범과 암묵적 관습과 도저히 벗어나기 힘든 운명적 굴레의 수레 바퀴 아래 깔린 채 현실의 숨 막힘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치는 여성의 삶을 섬세한 필체로 그렸다.

캐나다의 여성 체홉 또는 '현대 단편소설의 거장'으로 불리고 있는 앨리스 먼로는 2024년 5월 92세의 나이로 타계했다.

작가가 타계한 지 두 달 후 2024년 7월 미국 뉴욕 타임스가 21세기 베스트 북 100권 리스트에 올라가면서 앨리스 먼로를 둘러싼 충격적인 사건이 수면에 등장했다.

 

1951년, 대학교 1학년 때 결혼을 한 앨리스 먼로는 첫째 딸 셰일라를 낳고 나서 학교를 그만두고 둘째 딸 캐터린은 신장이 기형으로 태어나서 이틀 만에 사망하고 이 년 후 셋째 딸 제니를 낳는다.

1963년 학업을 마친 남편이 서점 경영을 시작하고 2년 후 막내 딸 안드레아가 태어난다.

막내 딸이 태어났던 시기 부터 서점은 장사가 잘 되어서 대 도시 빅토리아로 옮기고 회사 이름을 먼로 서점이라고 바꾼다.

먼로 서점은 캐나다 내에서 유명한 도서 유통 판매 회사로 규모가 큰 사업체가 되었지만 부부 사이에 균열이 생겨서 1972년에 두 사람은 이혼한다.

이혼 후 앨리스 먼로는 고향 온타리오주로 돌아가서 서부 온타리오 대학에서 운영하는 작가 레지던시에 들어가 창작 활동과 학업을 동시에 이어나갔다.

1976년 대학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앨리스 먼로는 같은 대학의 지리학과 교수 제럴드 프레민과 재혼한다.

이후 작가로 명성을 얻은 앨리스 먼로는 두 번째 남편 프레민이 세상을 떠나기 전인 2013년까지 결혼 생활을 유지 했다.

여기까지가 세상에 알려진 작가 앨리스 먼로의 이력이다.

 

2024년 뉴욕 타임스는 기성 작가들과 평론가들이 추천한 100권 중에서 독자들이 10권 씩 투표 한 결과를 바탕으로 21세기 베스트 북 100권 리스트를 발표 했고 그 리스트에 앨리스 먼로의 단편집 <미움, 우정, 구애, 사랑, 결혼>이 올라갔다.

이 리스트가 발표되는 시점에 캐나다 일간지 토론토 스타에 앨리스 먼로 딸의 충격적인 이야기가 게재되었다.

캐나다 일간지 토론토 스타에 게재된 기사에 따르면 1976년 40대였던 어머니 먼로의 집을 방문했던 9살 짜리 막내 딸 안드레아가 50대였던 의붓 아버지 프렘린의 집을 방문했을 때 프렘린이 자신이 자던 침대로 올라와서 처음 성폭행을 했다는 증언이 실렸다.

막내딸 안드레아는 이후 몇 년 동안 의붓 아버지 프렘린에게 강제로 차에 태워졌고 그는 지속적으로 자신의 성기를 노출하며 성적으로 괴롭혔다.

어린 여자아이를 상대로 성적 학대와 성폭행을 즐겼던 프렘린은 의붓딸 안드레아에게 엄마 앨리스 먼로의 기이한 성욕에 대해 떠벌렸고 자신이 좋아하는 이웃집 어린 여자아이들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던 악마였다.

의붓아버지 프렘린은 먼로의 딸 안드레아가 10대가 되면서 관심을 잃기 시작했고 안드레아는 성인이 되어서도 정상적인 삶을 살지 못했다.

엄마 먼로는 딸에게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고 나서 ' 무슨 일이 일어났든 그것은 나와 내 의붓아버지 사이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단호하게 선을 긋고는 자신의 단편에서는 의붓아버지에게 성적 학대를 당한 후 극단적 선택으로 숨진 여성의 이야기를 그렸다.

안드레아가 의붓아버지에게 성폭행과 성적 학대 휴우증으로 폭식증, 불면증, 편두통에 시달리는 동안 엄마 먼로의 명성은 점점 더 높아졌다.

결국 딸 안드레아는 2000년대 초반 먼로가 자신의 두 번째 남편 프렘린을 '용감한 인물'이라고 묘사한 잡지 인터뷰를 읽고 경찰에 신고하고 2005년 당시 80세였던 프렘린은 온타리오 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는다.

법정에 선 의붓 아버지 프렘린은 오히려 의붓딸 안드레아가 자신을 유혹 하고 침실에 침입했다고 법정에서 주장하며 뻔뻔한 태도를 유지했다.

의붓딸 안드레아를 성폭행 한 과거 범죄 이후 몇 차례 다른 여자 아이에게 저지른 범죄 혐의가 발견되었지만 온타리오 법원은 프렘린이 고령인 나이를 고려해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법정 분쟁과 소송으로 번진 이 모든 사태를 지켜 보았던 작가 앨리스 먼로는 딸 안드레아에게 일말의 사죄나 사과는 커녕 자신의 딸이 마치 두 번째 남편 프렘린과 불륜을 저지른 것처럼 격하게 반응했다.

하지만 기자들 앞에서 그녀는 문학적인 언어로 평생 끔찍한 트라우마에 시달렸던 딸을 향해 태연하게 이런 말을 남겼다.

'너무 늦게 알게 되었구나. 하지만 난 그를 너무 사랑하고 있어.

욕구를 억누르고 자녀를 위해 희생하고 부모에게 무언가 보상 받을 것 기대 하지 마라. 무슨 일이 일어났든 의붓아버지 사이에서 일어난 일일 뿐 나와는 상관 없다.'

그녀는 법원 판결 이후 세간의 시선을 의식해서 잠시 프렘린을 떠났다가 다시 프렘린 곁으로 돌아와 2013년 그가 숨질 때까지 곁을 지키며 부부 생활을 이어갔다.

캐나다 국민 작가로 추앙 받고 있는 앨리스 먼로의 전기를 집필한 작가 조차 두 번째 남편이 막내 딸을 지속적으로 성폭행 했던 걸 은폐 했고 작가의 에이전트들도 철저하게 작가의 사생활이라고 함구 해 왔다.

최근에 알려진 바에 의하면 앨리스 먼로는 2013년 절필 선언 무렵부터 2024년 숨질 때까지 10여 년동안 치매를 앓아서 2013년에 노벨상을 수상 했다는 사실을 제대로 인지 하지 못했고 가족의 이름이나 얼굴 조차 깡그리 잊어 버렸다.

현대 단편 소설의 대가의 문학적 상상력은 가족의 어둠과 상처 속에서 태어났던 것일까?

2013년 그토록 사랑했던 두 번째 남편이자 변태 성욕자인 악마 프렘린이 세상을 떠난 후에 발표한 <디어 라이프>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사람들은 말한다. 어떤 일들은 용서 받을 수 없다고,

혹은 우리 자신을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고.

하지만 우리는 용서한다. 언제나 그런다."

-앨리스 먼로의 <디어 라이프> 중에서

거의 모든 전세계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앨리스 먼로는 캐나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다른 재능이 없었기 때문에 이 일을 잘 해낼 수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이 일만큼 끌렸던 것은 없었고, 그러니 내 삶에는 다른 것이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

앨리스 먼로가 남긴 작품 속 인물들은 암에 걸려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젊은 여자, 루게릭병을 앓는 남편, 알츠하이머병에 접어든 아내 등 제각각 보이지 않는 상처를 안고 있었다.

작가는 이 모든 사람들의 삶을 한없이 따뜻한 시선으로 담아냈지만 정작 자신의 딸이 성적 학대와 성폭행을 당한 것에 대해선 너와 의붓아버지 사이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선을 긋고는 마치 자신의 남자와 불륜을 저지른 여자로 대했다.

문학은 인간의 상처 곁에 가장 가까이 있었다.

​

알 수도 없고, 물어서도 안 된다…….

내 앞에 그리고 너의 앞에 어떤 운명이 가로 놓여 있는 지를

-앨리스 먼로(1931-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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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0월 13일 스웨덴 한림원이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밥 딜런의 이름을 호명 했을 때 전 세계인들은 귀를 의심했다.

소설가나 시인과 같은 문인이 아닌 대중음악인이 노벨 문학상을 받는 일은 전 세계 문학계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였다.

스웨덴 한림원은 밥 딜런을 수상자로 선정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위대한 미국의 노래 전통 안에서 새로운 시적 표현을 창조해냈다”

종이에 쓰여진 글이 아닌 무대에서 노래를 부른 가수에게 문학상이 수여 된 것을 놓고 전 세계주요 언론과 평론가들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에서 밥 딜런의 수상이 ‘적절하다’, ‘적절하지 않다’는 의견으로 나눠졌다.

1960~70년대 베트남 전쟁으로 인권운동과 흑인차별 등에 반대하는 반전운동이 뜨거울 때 수많은 명곡을 남기면서 청춘의 우상이자 저항의 아이콘이 된 밥 딜런의 노랫말에는 정치와 사회, 문학 등 여러 분야를 망라한 내용이 시적으로 담겨 있어서 미국의 여러 대학 영문과에서는 그의 시를 분석하는 강좌가 개설되기도 했다.

밥 딜런이 음악적 전성기를 보냈던 시절에 세상에 존재 하지 않았던 나는 그의 음악성이나 가사적 의미가 시대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알지도 못하고 미국 포크송을 좋아 하지 않기 때문에 밥 딜런이 수상자로 적임자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스웨덴 한림원측에서 문학의 역할과 위상에 대해 고정적 관념과 역할보다 독자, 대중과의 공감을 중요시한 결정 이였을 것이라 생각한다.

시와 소설 형식을 문학이라 지칭 했던 세상은 밥 딜런의 노벨 문학상 수상 이후에는 가사가 문학의 장르로 편입되었음을 입증했다.

 

1941년 미국 미네소타의 시골 마을에서 로버트 앨런 지머맨이라는 이름으로 태어난 그는 영국 시인 딜런 토마스에게서 영향을 받아 본인의 이름에 ‘딜런’이라는 이름을 붙여 개명했다.

1961년 음악에 대한 열정이 들끓어 올랐던 밥 딜런은 자신의 우상인 우디 거스리를 만나기 위해 통기타를 매고 대 도시 뉴욕으로 올라온다.

대공황기 미국 노동자들의 고난과 고통을 함께 하며 그들의 애환을 부른 가수 우디 거스리는 “이 기계는 파시스트를 죽이기 위한 것(This Machine Kills Fascists)”이라는 문구를 기타에 새기고 다녔을 정도로 그의 모든 음악은 정치적이였다.

하지만 우디 거스리를 우상으로 생각했던 밥 딜런의 관심사는 정치적 구호나 사회운동이 아닌 오로지 음악뿐이였다.

밥 딜런을 저항의 아이콘이자 시민 운동에 뛰어들게 만들었던 인물은 그의 첫 사랑 '수지 로톨로'다.

1961년 교회에서 노래를 불렀던 밥 딜런은 수지를 처음 보는 순간 눈을 떼지 못하고 사랑에 빠진다.

이탈리아계 이민자 부모의 영향으로 공산당원으로 활동 했던 수지는 세상 돌아가는 것에 도통 관심이 없었던 밥 딜런을 나라 안 밖으로 요동치던 정치, 사회적 문제에 관심을 갖게 해서 그를 시민 운동에 뛰어들게 만들었다.

1962년 마틴 루서 킹 목사의 암살과 베트남 전쟁 등 혼란기에 빠진 미국 사회를 웅얼거리듯 읊조리는 창법으로 무대에 등장한 밥 딜런은 1963년 쿠바 미사일 위기로 핵 전쟁의 먹구름이 밀려 오던 날, 밥 딜런은 기타를 메고 평화 구호를 외치는 청춘들이 모여 있는 가스라이트에서 전쟁광을 저격하는 반전가요 Masters of War를 열창한다.

1969년 8월 미국 뉴욕 베델공원에서 사흘 내내 밥 딜런은 ‘노킹 온 헤븐스 도어’, ‘라이크 어 롤링 스톤즈’ 노래를 젊은이들과 함께 부르면서 사회저항운동에 있어 상징적인 뮤지션이 되어 세계적인 명성을 쌓았다.

몇 일 동안 제대로 씻거나 빗질 조차 하지 않은 모습의 밥 딜런은 정확하지 않은 발음과 중얼거리는 듯한 목소리로 리듬도 박자도 무대에 올라 갈 때 마다 제멋대로 불렀지만 데뷔 이후 그래미상만 11회 수상했으며, 영화 주제곡으로 골든글로브는 물론 아카데미까지 휩쓸었다. 2008년에는 퓰리처상 공로상을 수상했고 마침내 2016년 80세를 바라 보는 나이에 노벨 문학상까지 받았다.

음악적인 명성과 부를 모두 거머쥔 그의 삶은 완벽해 보였지만 실제로 그가 살아 온 인생은 삼류 드라마 막장과 흡사했다.

여성 편력이 심했던 밥 딜런은 1960년대 저항의 아이콘으로 만들어 주었던 수지에게 1963년 임신 중절 수술을 시키고 새로운 음악적 뮤즈인 조안 바에즈와 함께 활동 하다가 또 다른 뮤즈를 만나 자신의 음악 인생을 위해 헤어진다.

이후 사라 라운즈 클레어와 결혼과 이혼을 반복하면서 여러 여자들을 사귀다가 엄청난 금액의 위자료와 소송비용 등으로 재산을 탕진한 밥 딜런은 자신의 곡 600곡 판권을 유니버셜 음반사에 3억을 받고 팔어 버리고 순회공연에 나서서 생활고를 만회하기를 반복했다.

​

비틀스에게 마약을 가르쳐준 장본인이라는 걸 자랑스러워 했던 밥 딜런은 스스로를 ‘춤추고 노래하는 사람’이라 지칭했다.

 

​

밥 딜런이 스무살이였던 1961년부터 1965년까지 4년의 시간을 담은 영화 ‘컴플리트 언노운’은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 하던 연인 수지와 미국 대중음악사에 흔적을 남긴 음악인들 틈에서 음악에 열정을 쏟아 붓는 팝의 전설의 청춘 시절의 모습을 담았다.

​

하지만 실제로 이 영화의 중심 스토리는 브라운관 시대가 도래 하고 화려한 영상과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음악가들이 쏟아져 나오기 전의 시대에서 기타 한 대를 메고 무대에서 라이브 실력을 보여 주었던 진정한 음악 장인들이 활동했던 시절의 모습을 보여준다.

현재까지 밥 딜런과 청춘을 함께 했던 세대들은 그가 무대에서 어떤 모습이나 상태로 노래를 불러도 박수를 쳐 주지만 그는 무대에서 가장 성의 없고 재미없는 공연을 하는 가수로도 유명하다.

선약이 있다며 노벨문학상 시상식에도 가지 않았던 밥 딜런은 자신을 지칭하는 저항의 아이콘, 팝의 역사, 노벨 문학상 수상 같은 타이틀이나 이력 조차 무색 할 정도로 그는 원곡의 멜로디를 몹시 변형하거나 발음을 흘려서 부르는 등, '원곡의 감동'을 재현하는 데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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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란 자신을 찾는 게 아니에요.

어떤 것도 찾는 게 아니죠.

인생이란 자신을 창조하는 일입니다."

- 밥 딜런(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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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여러분은, 이렇게 사람들이 강이라고 하거나,

우유가 흘러내린 흔적이라고 하는 이 뿌옇고 하얀 게,

사실은 무엇인지 알고 있나요?'

-미야자와 겐지 <은하철도의 밤>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우유가 흘러내린 흔적'이 무엇인지 묻자 캄파넬라가 제일 먼저 손을 들고 수줍음이 많은 조반니는 들다 만 손을 황급히 내린다.

선생님의 질문에 은하수라고 대답한 캄파넬라는 친구 조반니가 머뭇거리고 망설일 때마다 곁에서 챙겨주는 따스한 친구로 은하 축제의 날에 하늘타리 열매의 속을 파내고 그 안에 등불을 넣어 강에 띄우는 놀이를 하러 함께 간다.

캄파넬라와 달리 다른 친구들은 가난한 조바니가 엄마를 위해 우유를 사 오던 그날 놀이에 끼워주지 않아 조반니는 홀로 언덕에 올라가 밤하늘을 바라본다.

'은하정거장, 은하정거장.'

언덕 풀 밭 위에 누워 있는 조반니의 눈 앞에 갑자기 수억 마리의 반딧불이 날아오르듯 불빛이 쏟아지고 정신을 차린 조반니는 어느새 기차 안 열차석에 앉아 있다.

이곳과 저곳의 세상을 가로 질러 달리는 은하철도

은하 열차에 탑승한 조반니는 세상을 초월하는 여행을 시작하게 된다.

그는 아들과 나란히 버스 맨 뒤에 앉아 버스가 습지대 남쪽을 크게 우회 하는 동안에 셸터 콘크리트 덩어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왜, 셸터의 위치를 그와 같이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않으면 안 될까? 그것은 세계의 마지막 전쟁이 일어난다면 핵폭발의 열과 충격파가 이 도시를 엄습하기 전에 냉정함과 끈기를 가지고 진과 함께 걸어서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심한 열로 콘크리트의 외벽이 번쩍거린 다음에 이어질 충격파는 어린아이의 귀에도 울릴 것이다. 이사나는 그때 평온하게 속삭이는 듯한, ‘세계의 끝, 입니다’라는 진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바랬다.

-오에 겐자부로의 '홍수는 내 영혼에 이르고' 중에서

핵전쟁의 위기 속에 지적장애를 가진 아들 진과 함께 아버지 이사나는 핵 방공호로 짓던 지하에 건물을 쌓아 올린 형태의 '핵 셸터'에 은둔한 채 세상과 단절한다.

은둔하는 남자 이사나는 자신을 나무와 고래의 대변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는 아들 진의 미래를 고래에게 부탁하며 세상을 움직이는 건 인간이 아니라 자연의 섭리라 믿고 버려지기 쉬운 존재인 스스로를 구원하겠다는 의지로 세상에서 낙오된 청년들과 연대 해서 정부와 맞선다.

이사나가 쥔 총엔 정확히 다섯 발의 총알만 장전 되어 있다.

그 다섯 발의 총알로 무력으로 진압 하려는 정부를 무너뜨리지도 못하고 핵전쟁의 위협에 처해 있는 세상을 구원하지도 못한다.

당신은 나라의 미래가 닫힌다 해도 자신은 나이가 들어 얼마 못 살 테니, 책의 지식만은 어떻게든 지닌 채로 죽자, 라고 말할 사람 아닌가요? 하지만 어떻게 그렇게까지 절망적인 모습을 보이게 됐을까.

-오에 겐자부로의 <만년 양식집> 중에서

2023년 3월 3일 오에 겐자부로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자 마자 책장에서 오에 겐자부로의 책을 모조리 꺼냈다.

몇 편의 단편집과 장편집은 추가로 해외 주문을 해 놓고 그의 초기작 부터 읽기 시작해서 전부 완독 했다.

오에는 생전에 인터뷰도 활발하게 했지만 주요 매체에 기고글도 많이 남겼다.

아들 히카리와 함께 나온 다큐부터 노벨상 수상식을 하러 스웨덴으로 떠나는 여정을 담은 영상까지 보면서 나는 오에가 세상에 남긴 글을 읽었다.

노벨 문학상 수상이 결정되던 날 밤의 기억은 지금까지도 생생합니다.

1994년 10월 13일, 저녁 9시가 조금 넘어서 였지요.

전세 승용차에서 전화를 받은 교도통신 기자가 '아앗!'하고 다소 만화적으로 외치는 바람에 도쿄의 세이조 자택 앞에 모여 있던 저희들은 순간적으로 수상이 결정되었음을 알았습니다. 삼사십 명이 있었던가요?

''일본 현대 작가들이 쌓아 올린 업적 덕분에 살아 있는 내가 수상한 것이다...'

이 말이 제 입에서 떨어지자 마자 손가락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받아 적던 기자들 모습이 제 시야에 들어 왔습니다.

두 다리가 후들 후들 떨렸고 '도대체 내가 여기 왜 서있지?'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뉴스에 제 얼굴과 목소리로 전부 도배 되고 온갖 신문 잡지 마다 제 얼굴이 표지에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매일 기자들 40명 정도가 저희 집에 찾아 왔고 그리고 몇 달 후 마침내 수상식이 열리는 스웨덴으로 날아갔습니다.

노벨 문학상 수상 소감 연설을 마치고 숙소에 돌아 와서 앞서 인터뷰 예약을 한 기자들과 몇 시간 동안 인터뷰를 마친 후 침대에 누웠습니다.

새벽 동이 트기 전에 눈을 뜬 저는 거울을 보고 이렇게 중얼 거렸습니다.

'드디어 때가 왔다. 세상을 향해 마음껏 목소리를 높이자.'

-오에 겐자부로

오에 겐자부로는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 날까지 일본 사회를 향한 발언과 행동에 거침 없었고 어떤 협박과 권력 앞에서도 굴하지 않았다.

아베가 죽기 몇 달 전 어느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오에 겐자부로의 선한 눈빛과 미소 뒤에 숨은 결의가 섬짓 했다는 말을 했고 정확히 100살을 채운 헨리 키신저는 미소를 띄우며 유창한 영어로 자신에 맹렬하게 질문을 퍼붓던 오에 겐자부로를 어디서든 마주치는 게 껄끄러웠었다고 회고록에서 언급 했을 정도로 인간 오에 겐자부로는 어떤 국가, 어떤 권력 앞에서도 자신의 목소리로 세상의 정의와 평화를 외쳤다.

'내가 쓴 소설이 인쇄되고 있는 이상, 남아 있는 몇 권의 책이 미래에 소수의 사람들에게 재미를 주어 사람들이 열중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요. 그때 나는 유령이 되어 나타나서 '그렇습니다. 나는 재미있는 것을 썼습니다 ! 라고 말해야겠다고 생각하는 때가 있습니다.'

-오에 겐자부로

오에 겐자부로가 남긴 책을 전부 완독 하고 난 후 중국의 대 문호 '루쉰'이 남긴 글을 차례 차례 읽어나갔다.

인류의 멸망은 매우 외롭고도 슬픈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몇몇 사람의 멸망은 결코 외롭거나 슬프지 않다. 생명의 길은 진보 하는 것이다.

항시 무한한 정신이라는 삼각형의 빗면을 따라 올라가니 어떤 것도 그를 방해 할 수 없다.

자연이 인간에게 부여한 부조화는 여전히 많다. 인간 스스로 시들고 타락하고 퇴보한 것도 여전히 많다. 그러나 생명은 결코 이 때문에 돌아보지 않는다. 인간의 절박하고 완벽한 잠재력은 어둠이 몰려와 대세를 막아도 비참함이 사회를 습격해도 죄악이 사람의 도를 더럽히더라도 항상 이런 철가시를 즈려 밟고 앞으로 나아간다. 생명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죽음의 면전에서 웃으며 뛰며, 멸망하는 사람들을 뛰어 넘어 앞으로 나아간다.

무엇이 길인가? 바로 길이 없던 곳을 밟아 길을 만들어 낸 곳이다. 가시덤불만 있던 곳을 개척하여 만들어 낸 곳이다.

이전에도 길이 있었으니 이후에도 영원히 길이 있을 것이다.

그러니 인류는 외로울 리 없다.

왜냐하면 생명이 향상적이고 낙천적이기 때문이다.

-루쉰의 생명의 길 중에서

1945년 8월 15일, 정오 뉴스에 방송된 일본 제국의 종전 선언을 한지 78년의 시간이 흘러 2023년 8월 24일 방사능 오염수 방류를 시작했다.

자신들부터 살겠다며 오염수를 바다에 방류하기 시작하자 전문가들은 앞다퉈 실시간으로 방사능 오염 진단 키트를 꺼내 들고 문제 없다고 외치고 있다.

맑은 샘물에 피 한 방울을 떨어뜨리면 샘물은 전과 다름 없이 맑고 투명하다. 한 방울, 두 방울 그리고 연달아 핏물을 쏟아 부어버리면 어디선가 엄청난 양의 조류가 닥쳐 오지 않은 이상 샘물은 어느새 붉은 핏물로 가득 차 버리고 차츰 시간이 흘러 악취가 나는 오염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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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지금껏 얼마나 많은 생명을 해쳤습니까. 그런데 제가 잡아먹히게 되자 도망치다 이 꼴이 되었습니다. 이왕에 죽을 거라면 족제비에게 잡아먹혀 족제비가 오늘 하루 목숨을 잇도록 했으면 좋았을 텐데 말입니다. '신이여, 다음엔 이렇게 쓸모 없이 버려지지 않고 모두의 행복을 위해 쓸 수 있게 해주세요.'

-미야자와 겐지의 <은하철도의 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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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 열차에 탑승한 사람들이 정거장에서 하나 둘 내리고 마지막 조반니와 그의 유일한 친구 캄파넬라 친구만 덜렁 기차 안에 남겨진다.

'캄파넬라 ,다시 우리 둘만 남았네. 어디까지든 함께 가자 나는 이제 그 전갈 처럼 정말로 모두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내 몸 따위는 백 번이고 불에 탄다고 해도 상관없어.'

1924년 일본이 대동아 전쟁을 일으키며 무자비한 폭력을 저지를 때 미야자와 겐지는 <은하철도의 밤>을 썼다.

' 나 이제 저런 커다란 어둠 속이라도 두렵지 않아.

정말로 모든 사람의 진정한 행복을 찾으러 가겠어.

어디까지나 어디까지나 우리 함께 나아가자.'

​

마침내 마지막 탑승권을 손에 쥔 조반니는 친구 캄파넬라는 죽어서 은하 끝 하늘나라로 사라졌다는 사실을...깨닫는다.

무시 무시한 무기로 세상의 반을 불태우며 이웃 국가의 무고한 생명들을 마구 짓밟은 일본은 자신들만 살겠다고 방사능 오염수를 바다에 방류 하고 있다.

핵과학자들(미국 핵과학자회보·BSA)이 인류 멸망까지의 시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려 만든 '운명의 날 시계'가 2023년 1월 1일 '자정 90초 전'으로 3년 만에 10초 앞당겨졌다.

그리고 8월 24일 일본의 방사능 오염수 방류를 시작으로 10초 더 앞당겨졌고 휴먼노보이드로 대륙 굴기를 하고 있는 중국은 전기 먹는 인공지능 제국을 꿈꾸며 매년 원전 건설 10기의 기록을 세울 태세를 보이고 있다.

세금 걷어가는 루팡들에게 유리지갑을 탈탈 털리는 시민들이 현 세대와 미래 세대의 앞날을 걱정 한들 이 세상은 이전 시대로 회귀 하지 않을 것이고 '운명의 날 시계'는 지금 보다 더 빠른 속도로 끝을 향해 치닫고 있다.


상처투성이인 나를 벌거벗기고,

당신이 따온 약초 기름을 발라주면서 어머니는 탄식했다.

아이들이 듣고 있는 자리에서,

우리는 다시 살 수 없다고 말해도 되나?

그리고 어머니는 나에게 오랫동안 수수께끼가 될 말을 이어갔다.

나는 다시 살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다시 살 수 있다.

-오에 겐자부로의 <만년 양식집>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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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노벨 문학상에서 여성 수상자들은 총 17명으로 여성 최초 노벨문학상 수상자는 1909년 스웨덴의 여류소설가 셀마 라게를뢰프(1858~1940)다.

셀마는 교사로 활동하던 1885년 고향인 베름란드의 제철소 주인과 소지주들의 생활상을 연대기 순으로 서술한 첫번째 소설 '예스타 베를링의 이야기'를 발표하며 1890년대 스웨덴 낭만주의 부흥운동에 큰 기여를 했다.

1909년에 셀마가 수상한 이후 17여년 동안 남성에게 문학상이 수여 되다가 1926년 이탈리아의 소설가 그라치아 델레다가 여성으로 두 번째 수상을 했다.

노벨위원회 측은 노벨 문학상 분야에서 여성에게 연이어 상을 수여 한 적이 없이 그동안 드문 드문 상을 수여 해왔다.

2024년 한강 작가의 수상으로 마침내 아시아권에서  최초의 여성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탄생했다.

2000년대 부터 영국 도박사이트 나이서오즈(Nicerodds)에서 노벨 문학상 유력 후보 배당률을 주고 있는 여성 작가들은 미국의 조이스 캐롤 오츠와 캐나다의 마거릿 애트우드이고 2010년대 부터 영어권에서 활발하게 출간 되고 창작 수업에서 교재로 쓰이고 있는 중국 작가 찬쉐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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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년 생인 조이스 캐롤 오츠는 미국 현대 문학의 거장이자 거의 모든 장르를 종횡 무진 쓰며 매년 두 세권의 벽돌 부피의 책을 출간할 정도로 왕성한 필력에 선두주자다.

시라큐스 대학 시절에 발표한 단편 소설로 단번에 출판사로 부터 출간 제의를 받았을 정도로 일찌감치 문학적 재능을 싹 틔웠던 캐롤 오츠는 1960년대부터 50편이 넘는 장편과 1000편이 넘는 단편 소설을 동시에 집필하면서 틈틈이 시와 산문을 쓰고 여러 문예지에 비평을 발표 하고 대학에서 강의를 하며 희곡을 쓰는 무시 무시한 필력으로 그녀가 매년 쏟아내는 작품에 대해 비평을 하려 달려드는 비평가들이 없을 정도로 문학계 괴물로 불리고 있다.

동시대 작가들은 조이스 캐롤 오츠에 대해 이런 평가를 하고 있다.

‘문학의 여성’이라는 말이 존재한다면,

오츠야말로 이 나라에서 가장 자격 있는 작가일 것이다.

작가를 성별로 구분 짓고 그녀와 그가 써 내는 작품을 구별해 놓고 이 작품은 여성이 저 작품은 남성이 라는 잣대로 평가를 하는 건 유치한 짓이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라는 작품을 미국 남부 출신 백인 남성 작가가 썼다면 과연 노벨 문학상을 받았을까?

가부장적인 문화와 인종차별이 극에 달했을 때 작품 활동을 시작한 캐롤 오츠는 남성 작가들이 절대 다수인 장르까지 창작 영역을 넓혀서 거의 모든 문학 분야에 걸친 왕성한 작품 활동을 통해 부조리와 폭력으로 가득한 20세기 미국의 삶을 예리하게 포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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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생각하는 건 이런 거야.” 그녀가 지친 듯이 말했다.

“여자는 꿈 같아. 여자의 일생은 기다림의 꿈이지. 그러니까, 여자는 남자를 기다리면서 꿈속에서 산다는 뜻이야. 굴욕적이지만 여기서 벗어날 길은 없어. 어떤 여자도 도망치지 못해. 여자의 일생은 남자에 대한 기다림이야. 그뿐이야. 이 꿈에는 문이 하나 있는데, 여자는 그 문을 통과해야 돼. 선택의 여지가 없어. 늦든 빠르든 그 문을 열고 통과해서 어떤 남자, 한 명의 남자에게 도달해야 돼. 여기서 벗어날 수가 없어. 결혼 상대는 누구든 상관없지만, 이 길에서는 벗어날 수 없어.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어.”

-조이스 캐롤 오츠의 <그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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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미국 현대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가장 많이 거론 되는 작가는 장편과 단편을 총 망라해서 헤밍웨이, 포크너, 필립 로스이다.

이 세 명의 작가들은 주요 문학상을 거의 전부 휩쓸었고 미국 현대 문학 수업에서 이들 작품은 절대 빠지지 않고 주기적으로 출판사에서 새 커버로 출간 할 정도로 미국을 대표하는 작가들이다.

이들 백인 남성 작가들을 제외 하고 미국 현대 문학에서 반드시 읽어야 할 작가는 조이스 캐롤 오츠다.

그녀가 1970년에 발표한 장편 <그들>은 일명 미국의 불평등과 차별이 극한에 달한 폭력의 시대를 집중 조명한 연작 작품인 '원더랜드 4부작'의 첫 작품으로 시대적 배경은 1937년 여름부터 1967년 디트로이트 빈민가에서 실제로 발생했던 흑인 폭동의 한 복판에서 분투하는 가족의 모습을 소설처럼 구성한 역사적 인간 드라마다.

빈곤 노동 계층의 사랑과 계급, 인종과 도시 빈민화 문제를 정면으로 펼쳐 보인 오츠의 '원더랜드 4부작'은 그녀의 작품 중에서 가장 독창성이 뛰어나고 시대의 어둠을 문학적 언어로 빚어낸 20세기 현대 영미 소설 중에서 최고의 작품으로 평가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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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스 캐롤 오츠는 2000년의 첫 장편 소설로 세기의 배우 매릴린 몬로의 삶을 픽션으로 재 구성한 <블론드>를 출간하며 미국 문학계와 예술계를 놀라게 했다.

메릴린 몬로의 삶은 숱하게 영화와 드라마로 제작되어 왔고 여러 책들이 출간 될 정도로 언제나 전세계인의 뜨거운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따라서 그녀에 대해 많은 이들은 상당한 수준의 소문과 진실을 알고 있고 더러운 쇼 비지니스 세계에서 미스터리한 삶과 더러운 미국 정치인들에 의해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한 인물이라는 것 정도 알고 있다.

타고난 필력을 자랑한 작가 캐롤 오츠는 매릴린 먼로의 진짜 이름인 노마 진의 삶 부터 출발해서 어린 노마 진이 전전했던 수많은 위탁가정 중 딱 한 곳인 허구의 가정을 탐사 하듯 수많은 연인과 건강상의 위기, 임신중단과 자살 시도, 영화 속 연기 중 상징적인 것들만 선택 해서 픽션의 형식으로 그녀의 삶을 문학적으로 증류 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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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발 머리에 풍만한 곡선형의 먼로의 외모는 대단히 유혹적이였지만 그녀의 내면은 문학적인 갈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실제로 먼로는 약물에 취해 있을 때도 술에 취해 있을 때도 여러 남자들과 잠자리를 함께 하고 나서도 일기를 빠짐없이 썼고 영화 촬영 장에서 종종 시를 쓰기도 했다.

위탁 가정에 맡겨졌던 시절에도 동화책을 읽었고 신문은 항상 탐독 했고 성인이 된 이후로 다윈의 종의 기원도 읽었을 정도로 먼로의 독서열은 동시대 여 배우 중에서 최고였다.

조이스 캐롤 오츠가 증류 시켜 버린 노마 진의 삶의 첫 시작 <특급 배송>의 첫 페이지는 영화 전함 포템킨의 오데사 계단에서 유모차가 내려오는 명 장면 처럼 물 흐르듯 천천히 죽음의 그림자가 그녀의 삶 앞으로 배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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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울어가는 세피아색 빛을 받으며 죽음이 큰길을 따라 질주해오고 있었다.

장식 없이 무겁고 단순한 배달 자전거를 타고 어린이 만화에서처럼 죽음이 달려오고 있었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죽음이 오고 있었다. 죽음은 아무도 말리지 못한다. 죽음은 부랴부랴 서두른다. 죽음은 미친듯이 페달을 밟는다. 죽음은 특급배송취급주의라고 표시된 소포를 안장 뒤쪽의 튼튼한 와이어 바구니에 실어나른다.

도로 공사로 서쪽으로 가는 두 개의 윌셔 차선이 하나로 줄어드는 바람에 막히고 혼잡한 윌셔와 라브레아 교차로를 볼품없는 자전거를 타고 요리조리 능숙하게 누비며 죽음이 오고 있었다.

죽음은 무척 날래다! 죽음은 경적을 울려대는 중년 남자들을 비웃는다. 죽음은 웃음을 터뜨린다, 엿이나 드쇼, 아저씨! 그리고 당신도. 반짝반짝 매끄럽게 빛나며 오도 가도 못하는 값비싼 최신형 자동차들을 지나쳐 벅스 버니처럼 휭 달린다.

로스앤젤레스의 스모그 자욱한 공기 따위 꺼리지 않고 죽음이 오고 있었다. 죽음의 고향인 남부 캘리포니아의 뜨거운 방사성 공기 따위.

그래, 난 죽음을 봤어. 엊저녁 꿈에서. 그전에도 여러 번. 난 겁나지 않았어.

너무나 자명한 죽음이 오고 있었다. 볼썽사납긴 해도 튼튼한 자전거의 얼룩덜룩하게 녹슨 핸들 위로 등을 구부린 죽음이 오고 있었다. 세탁은 했지만 다림질은 생략한 카키색 반바지와 칼테크 티셔츠를 입고 맨발에 스니커즈를 신은 죽음이 오고 있었다. 근육질 종아리와 갈색 털이 숭숭한 다리. 울퉁불퉁 둥글게 솟은 손마디뼈. 얼굴에 여드름과 잡티가 돋은 소년. 햇빛이 자동차 앞유리와 크롬도금에 반사되어 언월도처럼 번쩍이는 바람에 죽음은 머리가 어찔하고 신경이 곤두선다.

죽음의 현란하고 대담한 질주에 더 많은 경적이 울려댄다. 죽음은 성의 없이 아주 짧게 머리를 깎았다. 죽음은 껌을 질겅질겅 씹는다.

죽음은 아주 판에 박은 듯 규칙적이다. 일주일에 오 일, 거기에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요금을 더 높게 받는다. 할리우드 배달 서비스. 죽음은 특송 소포를 직접 배달한다.

죽음이 예기치 못하게 브렌트우드로 오고 있었다! 죽음은 8월의 인적 드문 브렌트우드 주택가의 좁은 골목길을 빠르게 달린다. 세심하게 가꾼 수고가 애처롭고 헛되게도 이곳 브렌트우드의 ‘정원들’을 휙 지나치며 죽음은 힘차게 페달을 밟는다.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앨터비스타, 캠포, 하쿰바, 브라이드먼, 로스올리보스. 막다른 골목인 헬레나 드라이브 5길까지. 야자수, 부겐빌레아, 붉은 덩굴장미. 만개 후 썩어가는 꽃 냄새. 햇볕에 그을린 잔디 냄새. 담으로 에워싸인 정원, 등나무. 원형 진입로. 햇볕을 막으려 블라인드를 끝까지 내린 창문.

-조이스 캐롤 오츠의 <블론드>의 '특급 배송'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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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년 생인 조이스 캐롤 오츠는 작년에 두툼한 부피의 자서전을 출간하며 지금도 글을 쓰고 있다.

2026년 노벨 문학상의 메달이 어떤 작가의 목에 걸리게 될 지 모르지만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같은 동화 스토리에서 좀비적인 디스토피아 세계관 까지 넘나드는 조이스 캐롤 오츠는 아름다운 문학적 언어가 아닌 충격적이고 기괴하며 과격한 스토리 작법으로 동시대 세계를 열정적이면서 예언적인 목소리를 쏟아내는 그녀는 이 시대 최고의 스토리 텔러다.

그녀가 오랫 동안 여러 대학의 문예 창작학과에서 학생들에게 가르쳤던 작가 10계명은 다음과 같다.

1. 당신의 가슴속에 있는 것을 써라.

결코 당신의 주제와 그에 대한 열정을 부끄러워하지 마라.

당신의 ‘금지된’ 열정은 글쓰기의 연료와 같다.

2. 첫 문장은 마지막 문장을 쓴 다음에야 쓸 수 있다. 초고는 지옥이다. 완고는 낙원이다.

우리의 작품이 돌에 새겨지는 것처럼 돌이킬 수 없이 인쇄되기 전까지는 원고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해야 한다.

3. 후대인이 아니라 동시대인을 위해 써라. 운이 좋으면 당신의 동시대인은 후대인이 될 것이다.

4. 오스카 와일드의 말을 염두에 둬라.: 조금 진지하면 위험하다. 대단히 진지하면 치명적이다.

5. 어떻게 한 챕터를 끝내야 할지 망설일 땐, 총을 든 남자를 등장시켜라. (레이먼드 챈들러의 조언이다. 나는 이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6. 형식적 실험을 하고 있다면 단락을 나눌 가능성을 염두에 둬라.

7. 당신 자신의 편집자, 평론가가 되어라. 공감하면서도 잔인해져라.

8. 이상적 독자를 기대하지 마라. 아니, 아예 독자를 기대하지 마라. 독자가 있긴 있겠지만, 다른 책을 읽을 것이다.

9. 열심히 읽고 관찰하고 들어라. 마치 당신의 삶이 거기에 달린 것처럼

10.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당신 가슴속에 있는 것을 써라.

조이스 캐롤 오츠는 전화 통화 신호음이 가는 동안에도 무릎 위에 올려 놓은 책을 읽을 정도로 활자 중독자 이고 비행기 대기실에서는 장편 한 편을 뚝딱 읽어 치울 정도로 읽는 속도가 진공 청소기 흡인력과 맞먹을 정도다.

세상의 거의 모든 유명한 소설을 전부 읽은 조이스 캐롤 오츠는 상당량의 작품을 쏟아 내고 나서 역사 소설과 논픽션을 탐독하고 있고 로스앤젤레스를 배경으로 한 누아르물은 수시로 읽을 정도로 가장 좋아하는 문학 장르다.

90세를 앞둔 조이스 캐롤 오츠는 현재 분자 생물학, 신경과학, 심리언어학, 철학책을 탐독하며 세상에 존재 하는 현상을 소설적 언어로 재현할 방법에 몰두 하며 지금까지도 쓰는 것을 멈추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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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든 작가는 젊은 작가에게 어떤 충고를 해야 할까?

그는 자기가 몇 년 전 들었더라면 좋았겠다고

생각할 만한 것들만 이야기해줄 수 있을 뿐이다.

글쓰기는 경주가 아니다.

아무도 진짜로 ‘이기지’ 못한다.

만족은 노력에서 나오고, 그 결과 보상이 따른다 해도

그런 보상은 아주 드물게 오는 법이다.

-조이스 캐롤 오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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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 2026-10-03 08: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한강이 아시아권 여성 최초수상자 아닌가요?

카스피 2026-10-03 1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4년에 한국인 한강이 수상했으니 중국의 찬쉐는 물건너 간 것 같은데 조이스 캐롤 오츠나 마커릿 앳트우드도 유력하지만 역시나 유럽권 남성작가가 받지 않을까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