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일록 작전
필립 로스 지음, 김승욱 옮김 / 비채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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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에 발표한 첫 번째 소설 <굿바이, 콜롬버스>로 전미도서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문학계에 데뷔한 필립 로스는 1969년 율법의 결벽 속에서 성(性) 불능이 된 유대인 변호사가 이스라엘로 돌아가 고통의 근원을 발견하는 문제작<포트노이의 불평> 출간 즉시 논쟁을 불러 일으키며 평단과 종교계를 뜨겁게 달아 오르게 만든다.

뜻밖에도 독자들은 세상을 소란스럽게 만든 <포트노이의 불평>에 열광하고 필립 로스는 단숨에 문학계 중심 인물이 된다.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 필립 로스는 1970년대부터 유럽 문학계에서 전방위적인 활동을 벌이며 동유럽권 출신 작가들과 교류 하기 시작한다.


필립 로스는 체코 68혁명 세대의 중심 인물이였던 극작가 바츨라프 하벨과 밀란 쿤데라와 만남을 통해 꾸준히 서신 교류를 이어가던 중 평소 자신이 존경 했던 작가 프란츠 카프카의 무덤이 있는 체코 프라하를 방문한다.

그는 이념이나 사상 체제 비판은 공개적으로 하지 않고 서방 세계로 망명한 동유럽권 작가들과의 인터뷰를 적극적으로 추진해서 그들의 작품이 영미권에 출판 할 수 있게 힘을 쏟는다.

1970년대 필립 로스는 공산 체제하에서 사상과 표현의 자유가 유린 당하는 동유럽의 지식인들의 모습을 담은 작품을 비롯해 자전적 분신(分身)인 네이선 주커만을 주인공 또는 관찰자로 등장 시킨 일련의 소설을 발표하며 학계의 부조리와 타락한 지식인의 이중적인 모습을 투영시켰다.

작가로 최고의 전성기를 보내던 1988년 경 필립 로스는 뉴욕 맨해튼에 머물던 어느 날, 이스라엘에 거주하는 친척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그는 "TV에 네가 나오고 있다"는 친척 앱터의 말에 터무니없는 일이라고 여겼지만, 그 전화는 불길한 예감의 시작이었다.

나흘 후 작가 필립 로스는 인터뷰 취재 일정이 잡혔던 이스라엘의 소설가 아하론 아펠펠드로부터 "조만간 예루살렘에서 강연한다고 신문에 실렸다"는 소식을 듣게 되고 마침내 누군가 자신을 사칭하고 있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는다.

1988년 1월, 신년이 밝은 지 며칠 뒤에 나는 또 다른 필립 로스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내 친척 앱터가 뉴욕의 내게 전화를 걸어, 이스라엘 라디오의 보도 내용을 알려 주었다. 트레블링카에 근무하던 공포의 이반이라고 알려진 존 데미야뉴크의 재판을 내가 예루살렘에서 방청 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필립 로스의 <샤일록 대작전>

공포의 이반이라고 알려진 존 데미야뉴크의 재판을 방청 하고 있었던 또 다른 필립 로스라는 인물은 현시대 유대인을 가장 위협하는 요인이 이스라엘의 유대인 전체주의라며 유대인을 유럽에 재정착 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었다.

당시 뉴욕에 살고 있었던 필립 로스는 수면제 ‘할시온’ 부작용으로 정신적으로 피폐해진 상태여서 이 모든 것이 수면제 부작용으로 인한 자신의 환각이 아닐까 의심한다.

때 마침 예루살렘에서 소설가 아하론 아펠펠드 인터뷰 일정이 잡혀 있었던 작가 필립 로스는 사칭범이 있다는 예루살렘의 킹 데이비드 호텔 511호실에 전화를 건다.

나는 수화기를 들어 예루살렘의 킹 데이비드 호텔로 전화해서 511호실로 연결 해 달라고 말했다. 목소리를 위장하기 위해 나는 프랑스 말씨를 썼다.

자신을 ‘필립 로스’라고 당당히 말하는 사칭범에게 작가는 파리에서 활동하는 프랑스 기자 ‘피에르 로제’라고 역으로 사칭하고 진실을 알기 위해 그와 대화를 시도 한다.

" 여보세요, 로스 씨? 필립 로스 씨 입니까?" 내가 물었다.

"네."

"정말로 그 작가예요?"

"그렇습니다."

"<포트노이의 불평>의 작가?"

"그래요. 그래요. 누구십니까?"

진짜와 가짜가 뒤바뀌는 순간 독자들은 이 이야기가 실화 인지 작가 필립 로스가 창작한 허구적 사실인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필립 로스는 앞선 작품에서 자신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소설을 여러 편 집필했다.

그는 '샤일록 작전'에서도 자신을 사칭하는 '필립 로스'라는 인물을 통해 나치 집권기 유대인 수용소 간수의 전범 재판이 한창 진행 되는 것과 동시에 점점 격화 되고 있는 팔레스타인 봉기를 교차 시키며 펼쳐 보인다.

"유대인들이 이렇게 기로에 서 있는데 소설을 써요? 이제 저는 유대계 유럽인들의 재정착 운동에 모든 것을 바치고 있습니다. 디아스포리즘에."

작가 필립 로스의 사칭범은 예루살렘의 전범 재판을 방청 하고, 유력 정치인을 만나 정치적 주장을 공표한다.

사칭범은 '유대인은 유럽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이른바 디아스포리즘을 주창하며 이스라엘 우파 정치인들의 심기를 거스르는 발언을 일삼자 이 소식을 들은 진짜 필립 로스는 이스라엘로 가서 사칭범을 대면한다.

자신을 사칭하고 다니는 자를 만나러 간 작가 필립 로스는 이스라엘 땅에서 다양한 인물들과 만나고 이들의 입을 통해 박해를 받았던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밀어내는 정복자의 잔혹한 이중적인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1967년 이스라엘이 6일 전쟁에서 승리 했다. 이와 함께 확인된 것은 유대인의 귀화 또는 동화 또는 정상화가 아니라 유대인의 힘, 홀로코스트의 냉소적인 제도화가 시작된다.

필립 로스가 마주한 이스라엘 땅의 사람들 중 친척 앱터는 제2차 세계대전 때 겪은 폭력의 후유증을 떨쳐 내지 못한 상태다. 그는 이스라엘 민족을 짓밟은 이들에게 죗값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점령지 라말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팔레스타인 출신 조지는 작가에게 이스라엘 압제에 관해 열변을 토한다.

유대인들의 군사국가가 의기양양하게 으쓱거리는 가운데 이제 정복자가 된 유대인이 과거에는 희생자였으며 순전히 그 역사 때문에 정복자가 되었음을 온 세계에 시시각각 날이면 날마다 일깨워주는 것이 유대인들의 공식적인 방침이 된다.

군사 강국이 된 이스라엘은 촘촘한 첩보망을 통해 아랍과 팔레스타인의 협력을 붕괴 시키는데 몰두 하면서 요인 암살과 정적 제거 스파이 색출을 하는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이들은 지속적으로 세계적 영향력을 갖춘 지식인들을 지원하며 소설과 영화에서 유대인들이 박해과 억압의 희생자라는 걸 전 세계인들에게 주입시키는 작업을 주기적인 홍보 캠페인처럼 펼치며 잔혹한 방법으로 팔레스타인들을 죽이는 모습을 감춘다.

유대계 지식인들과 예술가들이 전 세계인들에게 유대인의 희생에 대한 걸 끊임없이 상기 시키는 동안 이스라엘은 점령지를 꿀꺽 집어 삼킨 뒤 팔레스타인들을 추방하고 역사적인 정의에 따른 정당 보복 조치라며 자기 방어 논리를 펼친다.

이스라엘 건국을 위해 평생을 바친 유대인 노인 스마일스버거는 이제 유대인이 죄를 짓고 있다고 말하며 "성경에 새로운 장이 하나 더 생긴다면 하느님이 죄를 지은 이스라엘 민족을 파괴하려고 일억 명의 아랍인을 보냈다는 이야기가 거기 실릴 것"이라고 한다.

-필립 로스의 <샤일록 작전> 중에서

작가 필립 로스를 사칭하는 자는 스스로 반유대주의와 싸우는 투사라며 “유럽 출신 유대인들이 유럽에 재정착해서 이스라엘 인구가 절반으로 줄어든다면, 이 나라의 영토를 1948년 수준으로 줄이고, 군대를 해산하는 것이 가능해진다”면 아랍의 이웃들과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작가 필립 로스는 사칭범이 폴란드나 루마니아, 독일에 유대인을 재정착 시켜서 서구에 유대인을 분산 시키자는 주장에 맞서던 중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과 그 이면에 펼쳐 지고 있는 첩보 작전인 일명 <샤일록 작전>에 휘말리게 된다.

나는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저들에게 모이셰 피픽의 이야기를 들려 줄 것이다. 놈이 꾸미는 일과 내가 꾸미는 일이 어떻게 다른지 말해 줄 것이다. 그들이 조지 지아드에 대해 물어 보는 것에 모두 대답할 것이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과 관련된 첩보 작전, '샤일록 작전'에 가담하게 된 필립 로스는 사실과 허구의 경계를 넘나들며 독자들에게 유대인 정체성과 그들의 역사적 고난, 그리고 현대 정치 상황을 밀도있게 서술한다

작가 필립 로스는 이 작품 맨 첫 장에 법적인 이유로 여러 사실을 변형해서 책을 쓸 수 밖에 없었다며 현실의 이야기를 토대로 인물과 장소에 관한 세세한 정보를 변형 시킨 허구의 이야기는 사실을 분명하게 밝혔다.

필립 로스 자신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샤일록 작전>은 1993년 출간 즉시 당시 첩보소설의 문법을 빌려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넘나드는 실험에 성공한 작품이라는 평을 들으며 이듬해 미국 최고 소설에 수여하는 펜/포크너상을 받았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필립 로스의 <샤일록 작전>에서 이스라엘 법정에 선 존 데미야뉴크의 실제 삶의 행적은 다음과 같다.

1940년 나치 시절 강제 수용소에서 간수로 일하는 동안 유대인 수용자들을 잔혹하게 고문하는 걸로 악명이 높아 '공포의 이반'으로 불렸던 데미야뉴크는 1988년 1월 예루살렘 지방 법원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데미야뉴크는 항소심에서 소련 측 증거를 제시하며 판결에 불복했지만 1심 판결을 받은 지 오 년 만에 사형 선고를 받았다.

1920년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이우 외곽에서 태어난 데미야뉴크는 스탈린 통치 당시 자행 되었던 대기근 홀로도모르(기아에 의한 살인 )에서 살아 남아 2차 대전 발발 이전 까지 집단 농장에서 트랙터 운전수로 일하다가 군에 자원 입대 한다.

2차 대전 발발 당시 독소 전쟁에서 패한 독일군과 유대인들을 수용했던 트레블링카 강제 수용소(학살 증거가 철저히 사라져서 절멸 수용소라 칭함)에서 감시원 역할을 하다가 종전 후 수감자들을 국경 밖으로 내보내는 트럭 수송 담당을 하던 중 수용소에 탈출한 여성을 돕다가 미국으로 망명 신청을 한다.

1952년 미국 이민청에 등록된 데미야뉴크의 서류에는 우크라이나 태생의 소련군 출신으로 종전 후 난민 캠프로 이동하는 차량을 운전 했던 운전수라고 기록 되어 있었다.

미국 땅에서 강제 포로 수용소 간수였다는 과거가 사라진 데미야뉴크는 동유럽 출신 이민자들이 집단 거주하는 오하이오 주에 정착해서 포드사로 납품하는 자동차 부품 업체에서 전기 기술자 일을 하며 함께 도망친 아내와 세 아이를 낳고 시민권을 받는다.

트레블링카 강제 수용소에서 살아 남은 수감자들은 수감 당시 잔혹하게 고문하는 걸로 악명이 높아 '공포의 이반'으로 불렸던 간수가 데미야뉴크라고 지목한다.

1986년 60세를 훌쩍 넘긴 데미야뉴크를 체포한 이스라엘 재판부는 그에게 사형선고를 내린다.

법정에 선 데미야뉴크는 자신은 수용소에서 수감자들 이송과 수송을 담당 했을 뿐이고 어느 누구에게도 고문을 가 한 적이 없다고 적극 항소 한다.

1991년 12월 26일 소련이 무너지고 연방 체제의 사슬이 사라지고 나서 국가 주요 기밀 문서가 공개 된다.

소련 국가 기밀 문서에 의하면 트레블링카 강제 수용소에서 '공포의 이반'으로 불렸던 간수는 데미야뉴크가 아닌 전혀 다른 인물이였다.

2차 대전 당시 포로수용소에서 수감자들 이송과 수송을 담당했던 데미야뉴크를 기억하고 있는 생존자를 찾아낸 변호인단은 수용자들에게 데미야뉴크가 가장 친절했던 인물이였다는 증언을 받아 낸다.

장장 5년 동안 이스라엘 법원과 소송을 이어갔던 데미야뉴크는 독일과 폴란드에 남아 있는 모든 기록을 샅샅이 뒤져도 그의 범죄 행위가 발견 되지 않아 무죄 판결을 받고 마침내 자유의 몸이 되어 가족이 있는 미국으로 돌아간다.

2002년 유대계 단체와 이스라엘 정부는 데미야뉴크가 트레블링카 강제 수용소 뿐만 아니라 29000명의 유대인들을 잔혹하게 살해한 독일 소비보르 수용소에서 간수로 일했던 기록을 찾아 내 그를 독일 법정에 세운다.

장장 10년에 걸쳐 미국 지방 법원과 이스라엘과 유대계 단체가 데미야뉴크의 시민권 박탈과 추방을 놓고 법정 공방을 펼치는 사이에 90세를 넘긴 데미야뉴크는 호스피스 병원에서 숨을 거두고 독일은 소비보르 수용소 전범 재판을 종결 시켜 버린다.

데미야뉴크가 사망 하고 나서도 유대계 단체들은 끈질기게 그의 범죄 흔적을 찾아 다녔고 마침내 데미야뉴크로 추정되는 사진을 유대인 추모 기록관에 증거로 제출한다.

2025년 임기 두 번째를 맞이한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가자지구 주민의 자발적 출국과 이주를 돕겠다는 외교적 발언을 하고 나서 이스라엘과 비밀리에 나눈 회담 자리에서 ‘가자지구'를 이스라엘에게 통째로 넘겨 주는 '가자 점령’ 계획을 논의 했다.

이는 유대인이 나치에게 당한 인종말살 정책을 가자지구 주민에게 행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왜 유대인들끼리 분쟁을 벌어야 하는가 단순히 유대인과 유대인 사이만 분열된 것이 아니라, 개인의 내면 또한 분열되어 있기 때문이오. 세상에 이보다 더 다중적인 성격을 지닌 사람이 있소?

모든 유대인의 내면에는 유대인 '무리'가 살아요. 착한 유대인, 못된 유대인, 새로운 유대인, 옛날 유대인, 유대인을 사랑하는 자, 유대인을 증오하는 자. 이교도의 친구, 이교도의 적, 거만한 유대인, 상처 받은 유대인, 경거한 유대인, 파렴치한 유대인, 거친 유대인, 점잖은 유대인, 반항적인 유대인, 달래는 유대인, 유대인 다운 유대인, 유대인에서 벗어난 유대인....

셰익스피어 희곡 '베니스의 상인'에 등장한 악독한 유대인 고리대금업자의 이름을 차용한 <샤일록 작전>은 어디까지나 소설일 뿐이지만 역사는 과거에 머물지 않고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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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5-03-06 20: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저의 두 거대 기둥 할배들끼리 실제로 만난 적도 있었군요. 할시온 거 별로긴 한데 로스 할배 시절에는 졸피뎀이 없었나 보군... 아직도 번역될 소설이 더 남은 것도 신기하네요. 난 아직 할배책 쌓아 놓은 것도 너무나 많은데...

2025-03-06 23: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반유행열반인 2025-03-07 18:29   좋아요 1 | URL
ㅋㅋㅋ역시 모르는게 없는 척 척박사 scott님!!!!
 
누구나 밤엔 명작을 쓰잖아요 타이피스트 시인선 7
김이듬 지음 / 타이피스트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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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원으로 살 수 있는 물건을 찾기 힘든 세상에서 천 원으로 배를 채울 것도 없고 지하철을 탈수도 없다.

천 원으로 영혼을 고양 시킨다거나 지성을 갈고 닦을 수도 없으니 천원 지폐 만큼 가벼운 시집 한 권을 구입한다.

당신은 지금 잠의 가시 덤불 속에서 양 떼를 세고 있습니까?

한 마리의 양을 잃은 상실감으로 뒤척거리다 일어나, 모든 양을 풀어 주러 나왔습니까?

집들은 모두 낡은 목조 건물이고, 지붕에서 뜯어낸 판자로 만든 덧문 너머 별들이 빛나고 있습니까?

지붕 고치는 사람처럼 나는 사라져 가는 직업의 사람입니다.

어쩌다가 우연히 걸작을 만들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모두 죽었습니다.

-김이듬의 <목동의 밤> 중에서

진주에서 태어난 시인 김이듬은 2020년 『히스테리아』의 영미 번역본이 전미번역상과 루시엔스트릭번역상을 동시 수상하기 전 까지 시를 쓰는 것 만으로 생계를 잇기 힘들어서 일산에서 ‘이듬 책방’을 운영하며 시를 썼다.

시인은 낮에는 책방 주인으로 북토크를 열고 손님들과 함께 시를 읽으며 낭독의 시간을 가졌지만 책은 고작 하루 서너 권 정도 팔렸다.

대학 강사 수입까지 탈탈 털어 넣어도 매년 치솟는 높은 임대료를 감당할 수 없어서 결국 시인은 책방 문을 닫고 서울 변방에 작은 작업실에서 온종일 시어를 다듬었다.

젊은 시절에 나는 안락의자를 샀다고 말했던가?

이 의자에 눕다시피 앉아 나는 열 권의 책을 쓰고 서른 한 번의 겨울을 보냈다.

시인은 안전하지도 아름답지도 않은, 얼어붙은 길목 앞에서 파쇄한 백지가 눈보라처럼 흩날리는 길 위에 서 있다.

비애와 불운의 배낭을 메고 길을 떠나는 시인의 고독은 세상과 엇물리는 자의 일방통행로를 따라 이어진 시어들이 누구에게도 사랑 받거나 이해 받지 못했던 이들과 함께 동행을 하듯, 정처 없이 떠돈다.

어제는 에밀리가 내민 지번 주소 들고 그의 부모 댁을 찾아갔지만 삼미시장으로 변한 거리만 확인했을 뿐 우리는 40여 년 전의 시간을 찾을 수 없었다

―블랙 아이스 중에서

또래들과 달리 유치원에 다니지 않았던 나는 미술학원, 피아노 학원을 거쳐 학교와 학원, 다양한 국가의 문화원과 도서관, 여러 국가의 박물관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며 알지 못한 세상, 가 보지 못한 세상을 향한 갈증이 강했다.

한국 땅을 떠나 영어와 독일어를 마스터 하고 프랑스를 여행하며 언어와 문화를 배우고 오스트리아를 거쳐 체코 프라하에서 연극에 심취하고 그리고 다시 런던으로 돌아가서 이집트 고대 상형 문자를 배우며 어느 누구도 강요한 적 없는 고대 문명을 연구 해 보겠다는 계획도 세웠다.

유럽 전 대륙을 누벼 봤고 살아 봤고 북아프리카 이집트 카이로 부터 남아공 케이프타운의 킬리만자로까지 올라가 봤다.

킬리만자로에서 표범은 보지 못했지만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에 거대한 예수상을 보고 볼리비아의 소금 사막 우유니의 모래 가루 같은 소금도 만져 보았다.

그러니까 나는 20대 시절에 하고 싶었던 일들, 버킷 리스트에 적어 놓은 것들을 거의 다 해보았고 대학원까지 다니는 동안 수많은 스승들을 만났다.

하지만 막상 사회로 나와 보니 순수가 어떻게 위협 받고 배반 되는지, 열망은 어떻게 죄가 되는지 인생의 단맛과 쓴 맛을 두루 맛보았다.

그동안 나에게 좋은 스승이 있었던가?

학업의 성취를 넘어 사회에서 성실하게 일한 댓가를 정당하게 받고 있을까? 아니면 피 땀 눈물로 번 돈이 모두 중 범죄 짓을 저지르고 민주주의 체제를 뒤흔들고 국민의 생계는 아랑곳 하지 않고 자신들의 밥그릇만 챙기는 권력자들의 세금 루팡으로 전락해 버린 걸까?

시인 김이듬은 이렇게 말한다.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풀도 가축도 무시하는 목동 같아요.'

퇴계 이황의 얼굴이 새겨진 천 원으로 시집 한 권 살 수 없는 세상에서 늦은 밤 시인이 써 내려간 시를 읽는다.

어떤 순정과 진심은 ‘명작’ 이지만 세상 밖으로 나오는 순간 시는 명작이 되어 누구의 삶을 구원 할 수 있을까?

“길가에 앉아 사람들을 읽는다 내가 읽던 사람이 노란 버스에 탄다 구름을 읽는다 가로수와 새를 읽는다 건성으로 읽을 때도 있다 이상하게 나는 난독증을 고칠 의욕이 없다 다시 길을 걸으며 간판을 읽는다 독일어를 아는 게 도움이 된다 아우구스트스트라세에서 서점에 들어갔다 흥미로운 책을 발견했다 당나라 말기 러브레터 이집트 상형문자 벵골어 부기어 등 오래된 언어들이 적힌 얇은 책이었다 이상하게 나는 글자를 통해 사람을 읽는 게 재밌다 읽을 게 없으면 죽고 싶다 얼굴은 표지의 기능도 상실했다 워낙 리커버가 많으니까 나는 읽으면서 읽힌다 투명 비닐로 포장된 타이포그래프 잡지도 골랐다 셀프 계산대가 있었다 공항 검역대를 통과할 때처럼 소리가 난다 바코드 읽는 기계로 사람을 읽는다”

-「두 유 리드 미」 전문

내가 좋아하는 시인들은 시를 쓸 때 제목부터 적는다.

커다란 덩어리 같은 제목을 적고 감정의 살점을 붙이듯 한 단어를 쓰다 떼어내고 다시 한 단어를 붙이며 운율을 붙여서 풍경과 사람들이, 어떤 시선들이 온 몸을 관통한다

퇴근 후 늦은 시각 텔레비전을 켜고 OTT에 접속하면 내가 평생 뼈 빠지게 일해도 벌 수 없는 고소득의 개런티를 받는 예능인들, 배우들 모델들이 먹고 마시고 울고 웃고 있다.

나는 이들이 광대짓을 하며 돈을 버는 동안 내 시간을 허비 하며 삶을 소진 하고 싶지 않다.

글자를 깨친 사람들은 모든 것을 읽을 수 있지만 사람들은 시를 읽지 않고 한 편의 시가 누군가의 일생을 바꾸지 못한다.

세상은 앞으로 점점 더 숨이 쉬기 힘들 정도로 탁해질 것이고 전파력이 강한 치명적인 바이러스는 지구상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의 양식을 찾아 다니듯 천 원의 행복과 만족을 찾아 다이소에서 물건을 구입하듯 누구에게도 사랑 받거나 이해 받지 못해도 시를 쓰는 시인의 시집을 사러 갈 것이다.

극장에서 돌아와 글을 써요. 나는 지저분하며 조그마한 구역에 살아요 항상 떠날 궁리를 하죠. 안정감이 밤 물결 소리를 내며 떠나라는 신호로 받아들여요. 나를 여기 데려다 놓고 데리러 오지 않는 사람이 혹시나 들를지도 몰라서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곤 합니다.

방 모서리엔 낡은 회색 슬리핑 백이 있어요. 오늘은 자지 않고 명작을 써요. 반투명한 해파리처럼 생긴 전등을 켜요. 미안하지만 당신을 위로하러 글을 쓰진 않아요.

이어링을 만지작거리며 명작을 써요. 누구나 밤엔 명작을 쓰잖아요. 은밀하고 거칠며 쓰라린 글쓰기에 걷잡을 수 없이 빠져들죠.

-김이듬의 <밤엔 명작을 쓰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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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그다드 2025-03-09 13: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김이듬 시인의 시도 좋지만 님의 글도 놀랍네요.

scott 2025-03-09 15:00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주말 시간 행복하게 보내세요 ^^

media666 2025-03-09 20: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세상에 무언가 값진 걸 주고 계시네요. 감사하고 또 부럽습니다 :)

scott 2025-03-09 21:38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주말 밤 평안하게 보내세요 ^^

건빵 2025-03-09 22: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감사합니다. 책도 한 번 읽어봐야겠네요

scott 2025-03-10 12:22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한 주 시작 활기차게 보내세요 ^^
 
금지된 일기장
알바 데 세스페데스 지음, 김지우 옮김 / 한길사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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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흔적을 불현듯 책장과 서랍을 정리 하다가 꽁꽁 테이프로 붙여둔 상자 속에서 발견 될 때가 있다.

이번에 전부 버려 버릴까 아니면 추억의 저장고처럼 남겨 둘까....라는 고민을 하게 만드는 것은 지난 시절 노트 마지막 장까지 빼곡하게 채워져 있는 일기장이다.

그리고 언젠가 숙제로 제출 했던 것들이 상자에서 불쑥 튀어 나올 때도 있다.


몇 학년 때 인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마도 가사 숙제로 자수를 놓는 걸 제출 할 때 였던 것 같다.

실과 바늘로 무언가 꿰매는 것에 서툴렀던 나를 위해 오래전 외할머니께서 기본 자수 스티치 10개를 표본 처럼 스크랩북으로 만들어 주셨다.

자수 틀과 실, 바늘 그리고 직접 기본 스티치를 해서 디자인까지 고안해 주신 외할머니는 바구니에 색색 과일이 담긴 이 자수 스티치 옆에 이런 설명을 적어 놓으셨다.

-아우트라인 스티치:줄기, 덩굴, 윤곽선, 작은 글자등 가는 선을 표현 할 때 사용.한국 자수의 이음수와 같은 수법,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바늘땀이 반씩 겹치도록 수놓아간다.

외손녀의 숙제를 위해 직접 자수 스티치 스크랩북을 만들어 주셨던 외할머니는 항상 손에 무언가 쥐고 계셨다.

그 무언가는 주방과 거실, 마당과 정원, 방안마다 달라졌고 하루 해가 질 무렵 거실 쇼파나 식탁 의자에 앉아 계실 때면 뜨개질 바늘이나, 펜 그리고 연필이 쥐어져 있었다.

항상 부지런하셨던 외할머니는 아침 방송 요리 프로그램을 볼 때도 노트를 꺼내 놓고 끄적이셨고 라디오를 틀어 놓았을 때도 노트를 꺼내셨다.

외할머니가 쓰셨던 노트는 아들과 딸이 학창 시절에 쓰던 노트들이나 어디선가 무료로 준 노트, 가계부나 부록으로 달려 온 것들이였다.

이따금씩 내 것을 구입 할 때 외할머니에게 새것을 사다 주면 무척 기뻐 하셨고 쓰기 아깝다며 서랍장에 넣어두셨다.

외할머니가 쓰는 것에 대해 가족들 모두 큰 관심을 갖지 않았고 궁금해 하지도 않았다.

할아버지나 삼촌들은 가계부를 적고 있다고 생각했고 집안과 관련된 것 장보기, 해야 할 일 같은 일정을 정리 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외할머니는 노트에 무엇을 쓰고 계셨던 것일까?

여기, 반 세기 전 가족들 몰래 일기장을 사서 모두가 잠든 사이에 일기를 쓰는 여성이 있다.

“애초에 일기장을 산 것 자체가 실수였다. 그것도 아주 큰 실수. 하지만 후회해봤자 소용없다. 이미 물은 엎질러졌으니까.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일기장을 산 건지 모르겠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것 같다. 처음부터 일기를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아니었다. 일기를 쓰려면 몰래 쓸 수밖에 없는데 그러려면 미켈레와 아이들에게 숨겨야 할 테니까. 나는 비밀을 만들기 싫다. 게다가 우리 집은 너무 비좁아서 비밀을 만들래야 만들 수도 없다.”

-알바 데 세스페데스의 <금지된 일기장> 중에서

1950년 11월 어느 일요일 아침 일찍 남편에게 담배를 사다주기 위해 집을 나선 발레리아는 남편 미켈레, 아들 리카르도, 딸 미렐라와 함께 살고 있는 마흔 세 살의 평범한 주부다.

그녀는 반질반질하고 새까만 표지의 두툼한, 학생들이 쓰는 평범한 공책 첫 장에 '발레리아'라고 자신의 이름을 쓰는 상상을 하며 공책을 산다.

1950년대 이탈리아에서는 담배가게와 문방구의 공정한 경쟁을 위해서 일요일에 담배가게에서 담배 이외의 상품 판매를 금지했다.

공책을 사겠다는 발레리아에게 담배가게 주인은 '금지된 일'이라며 엄한 표정으로 거절을 한다.

발레리아는 담배 가게 주인을 설득해 공책을 손에 넣고 코트 속에 꼭 숨겨서 집으로 돌아 오지만 집안 어디에도 일기장을 안전하게 보관할 서랍도 없고 가족들 눈에 띄지 않게 쓸 장소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러고 보니 이 집에는 나만을 위한 서랍이나 물건을 보관할 수 있는 공간이 하나도 없다. 이제부터라도 내 권리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950년 11월 20일 첫 장의 일기를 쓰기 시작한 발레리아는 2주 넘게 한 글자도 못 쓰고 일기장을 감춰만 두고 가족들에게 들키지 않을 곳을 찾기 위해 장소를 수시로 바꾸기 시작한다.

그녀의 일기장은 빨래 바구니 속에 들어 가 있을 때도 있고 부엌 찬장에 들어 가 있을 때도 있고 신발장 서랍, 옷장 속 낡은 코트 속에 들어 가 있다가 마침내 서랍 깊숙이 넣고 열쇠로 잠금장치를 해 놓고 일기를 쓰기 시작한다.

내가 나만을 위한 서랍을 가지고 싶다고 하자 남편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 안에 뭘 넣으려고?”

“그거야 나도 모르지. … 중략 … 아니면 일기장을 넣어 놓을 수도 있자. 미렐라처럼.”

일기장이라는 말에 모두 일제히 웃음을 터뜨렸다. 심지어는 미켈레까지도.

“오 여보, 이 나이에 무슨 비밀이 있을 수 있겠어?”

- 금지된 일기 중에서

자신의 내밀한 감정을 기록하기 시작한 발레리아는 일기를 쓰기 시작하면서 스스로 인지하지 못했던 사실을 깨닫기 시작한다.

전쟁으로 귀족 가문이였던 외가가 몰락한 발레리아는 전쟁터에서 돌아와 겨우 은행원으로 취직한 남편과 두 아이를 키우는데 생계에 보탬이 되기 위해 사무직에 취직한다.

귀족 가문 자녀들만 다녔던 학교를 졸업한 그녀의 친구들은 모두 부유해서 여유롭게 쇼핑하고 티타임을 갖는 시간에 발레리아는 퇴근 후 장을 보고 세탁을 하고 집안 청소까지 하느라 한시도 쉴틈이 없다.

여성의 경제적 자립이 가난의 상징이자 수치였던 시대에 발레리아는 가족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는 것 만으로 사회의 따가운 눈총과 편견을 이겨 낼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정작 가족들은 그녀의 이런 노력을 전혀 고마워 하지도 않고 당연히 집안의 모든 일은 가족 모두에게 <엄마>라고 불리는 발레리아 몫이였다.

발레리아는 가족 몰래 숨어서 일기를 쓰면서 가족을 위해 사용해야 할 시간을 허비 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죄책감에 시달리지만 노트를 채워 나갈 수록 결혼생활의 위기, 희생과 헌신을 강요하는 모성의 버거움, 욕망하는 존재로서의 자아 정체성을 마주한다

겨우 푼돈을 모아 추위에 떨지 않으려고 산 코트를 딸 미렐라는 엄마는 늙었으니 새 옷 같은 건 필요 없다며 엄마의 코트를 입고 학교에 간다.

딸의 말에 동의 하는 남편 미렐라는 빚을 내서 영화를 제작한다는 허황된 꿈에 사로 잡혀 있고 남편의 빚을 갚기 위해 일터로 나가는 아내에게 자신을 낳아 주고 키워준 어머니를 닮기를 바란다.

“내게도 생각이 있다는 것을 믿기 보다는 차라리 내가 잘못된 감정에 빠져 있다고 믿기가 더 쉬웠던 거다.”

발레리아는 일기에 내면의 고백이 쌓여 나가기 시작하면서 그녀의 내면 깊은 곳에 묻어둔 욕망을 일깨우고, 결국 그녀의 삶은 완전히 변모한다.

‘내가 정말 원하는 삶은 무엇인가?’

‘아내와 어머니로 사는 삶에 만족하고 있는가?

가족들 눈을 피해서 일기를 썼던 발레리아는 혼란해지는 마음을 정리하기 위해 토요일에 사무실을 나가고 뜻밖에도 주말 가족과 시간을 보내지 않고 회사로 출근한 사장 귀도와 마주치게 된다.

그가 그림을 그리듯 내 이니셜을 손가락으로 훑었고, 우리는 별 의미 없는 대화를 나눴다.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내 이니셜을 훑는 그의 손동작은 기억한다. 마치 그가 내 이름을 부르는 것 같았다. 순간 몸이 떨렸다. 그의 손이 내 몸을 만지는 것 같았다. 내 피부를 어루만지는 것만 같았다. 그는 낮은 목소리로, 글씨를 읽듯이 “발레리아”라고 했다.

마흔 세 살에 장성한 두 아이의 엄마 발레리아는 부유한 친구들처럼 화려하게 꾸미지 않아도 여전히 사람의 시선을 끌어당기는 매력을 갖고 있다.

발레리아의 매력을 알아 본 사장 귀도가 진심 어린 공감을 보여주자 그녀는 넉넉하지 못한 형편 속에서 가족에게 헌신했던 지난 시간에 분노 하며 직장에서의 일이 자신에게 기쁨을 준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된다.

그녀는 남편과의 관계는 오래전에 끝났음을 깨닫고 오랫동안 그리워했던 베니스로 귀도와 밀월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나는 항상 나의 삶을 하찮게 생각했다. 결혼과 출산 빼고는 특별할 게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우연히 일기를 쓰기 시작한 후로, 사소한 말투나 단어 선택이 지금까지 중요하게 여겼던 일들만큼, 아니 때로는 그보다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발레리아는 몰락 귀족으로 평생 우아한 드레스 차림에 하인을 부려 온 그의 어머니를 '해묵은 종교화 인쇄물'처럼 바라보면서도 귀족 가문의 남편과 이혼한 친구 클라라가 평생 돈 걱정 없이 여유로운 삶을 사는 것을 부러워 한다.

대학생인 딸 미렐라가 이혼한 유부남과 연애 하면서 그의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을 하겠다고 선포하자 고난의 길을 자처 했다고 분노하고 권위적으로 여자 친구를 대하고, 자기보다 똑똑한 여동생을 깎아내리며 여성을 경멸하는 아들을 안쓰럽게 바라보는 모순된 인물이다.

그녀는 가난 했던 시절 남편 미켈레와 신혼 여행을 떠났던 베니스에 부유한 사장 귀도와의 밀월 여행을 계획 하지만 엄마를 무시 했던 아들 리카르도가 마땅한 일자리 없이 어린 여자 친구 사이에서 아이를 갖고 결혼을 선포 하면서 자아 독립 계획이 흔들기기 시작한다.

아들은 아이가 태어나면 엄마에게 맡기고 신발 가게 점원으로 일하고 있는 어린 아내와 함께 ‘기회의 땅’ 아르헨티나로 가서 안정된 일자리를 찾으면 그 때 아기를 데려 가겠다고 말한다.

가부장제의 피해자이면서도 그 체제를 답습 할 수 밖에 없었던 발레리아는 1950년 11월부터 1951년 5월까지 약 반년가량 썼던 일기장의 두께 만큼 다른 사람들을 위한 삶을 살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녀는 아들의 결혼식이 끝나는 대로 사장 귀도와 함께 하겠다는 선포를 가족 앞에서 하겠다고 결심하면서도 그로 인한 파장을 걱정하며 이 모든 감정의 변화를 가져온 일기장을 불태워 버리기로 한다.

'최대한 빨리 일기장을 불태워야겠다. 지금 당장. 일기장을 다시 읽고 마음이 약해지기 전에, 작별 인사할 시간도 없이. 이것이 일기장의 마지막 페이지가 될 것이다.

다음 장에는 글을 쓰지 않을 것이다. 미래에 올 나의 나날들을 아무것도 쓰지 않은 이 백지처럼 하얗고 매끈하고 차가울 것이다.'

내면을 고백하고 정체성을 서서히 찾아 갔던 발레리아는 일기장을 불태워 버리고 난 뒤 아직 세상에 태어나지 않은 아기만 그녀 곁에 남겨졌다.

이 세상에서 딸로 태어나 아내로 어머니로 살면서 가족에게 자식에게 헌신 하는 걸 당연하게 여겼던 지난 세기는 지금 세기에도 수많은 여성을 ‘엄마’라는 이름으로 족쇄 를 채운 채 희생과 무임금 노동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다.

몇 년째 저출생 위기를 거론하는 한국 사회에서 국가가 꼭 책임져야 할 모성 및 가족 보호와 교육, 보건의료는 대부분 기업과 민간병원, 사립학교와 학원이 국가가 해야 할 일들을 ‘유료로’ 떠맡고 있다.

국가가 국민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워진 한국 사회에서 대기업에 대주주 일가를 제외한 여성 등기이사가 몇 명이나 될까?

남녀 간 임금 차이는 왜 개선되지 않고 있는가?

출산과 육아가 각자 도생인 사회 구조 속에서 일하는 여성이 일기를 쓸 수 있는 시간 조차 허용 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직장에서 퇴근 하고 집으로 돌아 온 어머니들은 쉴 틈이 없고 가정 주부에게는 더더욱 쉴 수 있는 날이 없다.

쿠바 출신 외교관인 아버지가 주 이탈리아 쿠바 대사로 재직 하던 시절 이탈리아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알바 데 세스페데스는 이탈리아 시민권을 갖기 위해 15살 나이에 이탈리아 귀족과 결혼 하지만 아들을 낳고 나서 2년 후 이혼을 한다.

여러 외국어를 능숙하게 했던 세스페데스는 영화와 방송, 라디오 작가로 활동하며 당대 유명한 문인과 지식인들과 교류 하면서 24살 나이에 단편을 출간 하고 여러 장편 소설을 출간 하면서 20세기 이탈리아 사실 문학시대를 대표하는 인기 여성작가로 자리 잡는다.

무솔리니 정권에 맞섰던 세스페데스는 1935년과 1943년 반파시스트 행위로 두 번 투옥 당하고 그녀의 작품은 이탈리아에서 금서로 지정된다.

1952년에 출간된 장편 소설 '금지된 일기장'은 로맨스 소설로 치부 되다가 알바 데 세스페데스가 프랑스 파리로 이주하게 되면서 세상에서 잊혀 졌다.

21세기 현대 고전으로 선정된 장편 소설 '나의 눈부신 친구'의 작가 엘레나 페란테가 <프란투말리아>라는 에세이에서 세스페데스의 <금지된 일기장>을 통해 창작의 용기를 얻게 되었다고 언급 하면서 세상에 다시 조명 받기 시작했다.

2023년 마침내 반 세기를 지나서 <금지된 일기장>이 미국에 출판되면서 작가 세스페데스는 세계 문학계에서 빛을 발하게 되었다.

동물과 달리 인간만이 일기를 쓸 수 있다.

자신의 일상사를 기록하기도 하고, 복잡한 상념을 정리하는 일기의 독자는 오로지 자기 자신 뿐이다.

하지만 불평등하고 부조리한 사회에서 현 시대의 여성들은 "되고 싶었던 <나>와 현실과 타협한 <나>의 모습"을 매일 마주하며 오늘도 내일도 일기장을 꺼내 쓰지 못하고 있다.

"일기장의 은밀한 존재는 내 삶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 주었지만,

솔직히 그 덕분에 내 삶이 더 행복해지지는 않았다."

-알바 데 세스페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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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zalea 2025-05-16 2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귀도와 헤어진 것 아닌가요? 가족들 앞에서 귀도와 함께하겠다고 선언한다? 그런 내용이 어디에 있죠?
 















드디어 그 계절이 찾아와 며칠 경부터 꽃 구경하기에 알맞다느니 하는 소식이 들려도 데이노스케와 에쓰코 때문에 토요일이나 일요일을 택해야 했으므로 꽃이 한창일 때에 딱 맞출 수 있을지 어떨지,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불 때마다 그녀들은 옛 사람들이 그런 것처럼 <진부한> 걱정을 했다. 꽃은 아시야의 집 부근에도 있고 한큐 전차의 차창에서도 얼마든지 볼 수 있었다. 그러니 꼭 교토에 집착할 필요는 없지만 도미도 꼭 아카시 도미여야 하는 사치코는 꽃도 교토의 꽃이 아니면 본 것 같지 않았다. 작년 봄에는 데이노스케가 가끔은 장소를 바꾸자고 우겨서 긴타이교까지 갔다가 돌아왔는데, 사치코는 뭔가 잃어버린 사람처럼 올해는 봄 다운 봄을 맞지 못하고 보내 버렸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사치코는 다시 데이노스케를 졸라 교토에 가서 간신히 오무로의 겹 벚나무 꽃을 즐겼다.'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세설>중에서

여성 숭배, 페티시즘,마조히즘에 빠진 주인공들을 작품에 등장 시켰던 다니자키 준이치로는 사생활도 자신이 쓴 소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는 상인과 정치인에게 아내라는 존재가 필요 하겠지만 예술가에게는 전혀 필요 없는 존재라며 첫 번째 아내를 친구에게 양도 하고 스무 살 연하인 문예지 기자와 결혼을 한다.

준이치로는 두 번째 결혼 역시 3년을 채 넘기지 못하고 이혼을 하는데 그 이유는 혼인 생활 중에 알고 지냈던 네즈 마쓰코 라는 여인에게 흠뻑 빠져 버렸기 때문이다.

간사이 지방의 오사카 거상의 딸이였던 네즈 마쓰코는 가세가 기울어져 갔던 시기에 집안을 살리기 위해 정략 결혼을 하지만 남편의 폭력으로 고통스러운 결혼 생활을 하고 있었다.

이를 지켜 보았던 준이치로는 마쓰코의 불행한 결혼 생활에서 해방 시켜야 한다는 일념에 사로 잡히고 두 사람은 몰래 동거를 시작한다.

마침내 마흔 한 살 생일 날 다니자키 준이치로는 스물 다섯인 마쓰코와 결혼 도장을 찍고 서로 부부가 된 그날 준이치로는 마쓰코에게 자신을 하인으로 불러 달라는 계약서를 내민다.

아내의 하인이 되겠다고 계약까지 맺은 준이치로는 아내가 식사를 할 때는 옆에서 시중을 들었고 식사를 마친 후에야 밥을 먹었다.

준이치로는 숭배 하는 아내가 태어나고 자란 간사이 지방으로 이주 하고 고전 작품<겐지 이야기>를 현대어로 번역하면서 아내의 집안에 대한 작품 집필 구상을 시작한다.

1942년 세번째 아내 마쓰코가 태어나고 자란 간사이 지방의 상류 계층 여성들의 삶을 담은 <세설>은 아내를 만나지 않았다면 절대로 탄생 되지 않았다.

간사이 지방의 독특한 문화와 고유의 언어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세설>은 몰락했지만 한 때 화려했던 가문의 명성에 맞는 사치를 즐기고 싶은 심정, 각기 다른 집안으로 시집을 갔지만 여전히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자매들. 화장하는 방법, 말투, 호흡법까지 작가 다니자키 준이치로는 섬세하게 자매들의 숨소리 까지 담아냈다.

다이쇼 시대(1912∼1926년)까지 명문가로 인정받았던 마키오카 가(家)의 네 자매 중 가장 가깝지 않은 맏언니를 제외한 나머지 세 자매의 결혼 문제를 중심으로 자매들의 결혼 준비와 혼담 그리고 출산등의 모습 속에서 봄 날 벚꽃 구경, 여름 밤 반딧불이 잡이, 가을 단풍 구경, 후지산, 가부키, 피아노, 인형 제작, 프랑스어 교습, 러시아와 프랑스 음식, 기모노, 미용실, 백화점, 해수욕, 온천, 기차, 여객선등의 풍속들이 파노라마 처럼 펼쳐지는 작품 <세설>이 발표 했던 시기는 일본이 한창 전쟁의 열기를 동아시아에서 세계 대전으로 확전 시켜 나갔던 시기였다.

전쟁의 열기가 사그러들고 나서 출간한 <세설>은 도쿄 사람들 사이에서는 큰 화제를 불러 일으켰지만 정작 소설의 배경인 간사이 지방에서는 거의 팔리지 않았다.

도쿄 토박이인 준이치로가 간사이 방언인 센바어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해서 아내의 교열 작업을 마치고 나서 재 출간 되었지만 간사이 사람들에게 가슴이 울렁 거릴 정도로 감동을 불러 일으키지 못했다.

세설은 일본 밖으로 넘어가 세계의 언어로 번역이 되고 나서야 일본에서 재 발간 되며 화제를 불러 일으키기 시작한다.

영어판으로 번역된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작품은 서양 독자들에게 동양의 미를 문장으로 읽게 만들며 일본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받은 가와바타 야스나리보다 앞서 번역 출간 되었다.

다니자키 준이치로가 노벨 문학상 유력 수상자로 거론되자 일본 정부는 그에게 아사히 문화상, 마이니치 출판 문화상을 주며 일본을 대표하는 작가 반열에 올려 놓는다.

1960년 <세설>이 프랑스어로 번역되고 이 작품을 읽고 큰 감동을 받은 프랑스 작가이자 철학자 샤르트르는 일본을 방문했을 당시 다른 일정을 미루어 놓고 준이치로가 묻혀 있는 무덤부터 찾아 갔을 정도로 프랑스 인들에게 일본의 대표 문학가는 다니자키 준이치로 였다.

그의 책은 프랑스 시골 마을 서점에 꽂혀 있었을 정도로 세계적인 작가로 인정 받았지만 정작 다니자키 준이치로 작품은 일본에서는 교과 과정에 실릴 뿐 국민 작가로 불리지 않았다.

동시대 활동 했던 요시모토 다카아키, 마루야마 마사오의 작품들 보다 덜 팔렸고 시바타 료타로의 <료마가 간다>는 거의 모든 국민들이 읽었지만 다니자키 준이치로 작품은 학교를 졸업 하고 나면 그걸로 끝이였다.











요 몇 년 사이에 한국의 4대 문학상 수상 후보에 오른 적이 없고 앞으로도 오르지 못할 장르 분야를 쓴 작가들의 작품들이 해외 유수 문학상 수상 후보에 오르자 새로운 커버를 입혀서 재 출간 되어 베스트셀러에 진입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내부자의 시선의 평가와 외부자의 시선의 평가가 달라지면서 1쇄를 넘기지 못한 채 절판 되거나 소수의 매니아 독자들 사이에서만 읽혀지던 장르문학이 해외상 후보작 스티커를 붙이고 나면 한국 출판계는 들썩 거리며 K문학의 세계화라는 걸 꼬리표처럼 달아 놓는다.

출판사 측과 편집자들의 개인 성향 그리고 일명 문단의 권력자들의 시선과 독자들의 시선이 일치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시대적 사회적 상황과 마케팅의 힘, 유명인들의 추천과 입소문을 타고 책 판매에 큰 영향을 주지만 외부자 시선에서 평가 받는 책일 때는 내부자들의 평가와 다른 전혀 다른 차원의 흥미를 자아 낸다.














일본에서 태어나 다섯 살에 영국으로 이주 한 일본계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가 아시아계나 일본인을 내세우지 않고 부모의 나라가 아닌 1930년대 세계 대전의 전운이 드리웠던 영국 귀족과 하인들의 모습을 담은 <남아 있는 나날>이 여러 문학상을 휩쓸며 영화로 제작 되었던 건 영국의 뿌리 깊은 계급 사회를 철저하게 외부자적인 시선으로 쓰여졌기 때문이였다.

대륙과 떨어져 있는 섬이라는 지형에 살고 있는 영국인들에게 계급은 숨을 쉬는 공기 만큼 익숙한 것으로 사용하는 언어, 습관 행동부터 뚜렷하게 차이가 나고 죽을 때까지 계급의 피라미드에서 벗어나 쉽게 신분을 상승 하기 힘든 사회 구조다.

가즈오 이시구로의 <남아 있는 나날>에서 집사 스티븐스는 히틀러라는 악마와 내통한 고귀한 신분의 달링턴 백작이 명예가 회복 되길 바라지만 안타깝게도 일개 집사 신분인 그에게는 그럴 만한 힘도 없는 무력한 존재다.

영국 문학계에서 일부 비평가들과 작가들이 이 작품이 과대 평가 되었다는 평을 내리기도 하지만 영국인이 아닌 사람이 가장 영국적인 이야기를 해서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판매 부수를 올리며 노벨 문학상을 받을 수 있었다.

화면을 터치 하고 손끝으로 눌러 다운로드 받아 읽는 시대에 세상의 거의 모든 고전 작품은 이북 라이브러리에 저장해 놓고 언제든지 볼 수 있고 베스트셀러 작품들 역시 종이책 보다 더 빠르게 이북으로 볼 수 있는 시대다.

빠르고 쉬운 정보와 지식,재미와 자극적인 스토리가 넘쳐 나는 시대에 문해력이 저하 되고 있다고들 하지만 무언가 읽고 보고 쓰는 사람들은 이 전 시대보다 더 많아 졌다.

다양한 창작 플랫폼에는 종이책으로 출간 되지 않는 기발하면서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이 넘쳐 난다.

누구나 글을 쓸 수 있는 시대에 꾸준히 독자들에게 읽혀지는 작품들이 살아 남기는 더욱 힘들어졌고 재능과 실력, 창작 에너지로 넘치는 이들이 많은 창작플랫폼에서 출판 경력이 없는 무명의 작가들은 읽어주는 독자들이 없으면 창작을 이어나가기 힘들다.

2024년 2월 1일 부터 쓰기 시작한 <굿바이, 부다페스트>는 1부 50회를 완결하고 2025년 1월 16일 부터 2부를 시작했다.

매회 에피소드의 글자수는 8천자에서 만자 이상을 넘기며 작품의 길이로 따지면 대하소설 급이고 앞으로 전개 되는 스토리는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와 <전쟁과 평화>와 비견 될 정도로 격변의 20세기 1914년대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 시대를 살았던 여러 다양한 계층의 인물들의 총 출동 한다.


https://tobe.aladin.co.kr/s/9373


<굿바이, 부다페스트>의 작품 조회수는 종이책 판쇄와 비교 하면 1부 에피소드 32회까지가 1쇄를 넘겨서 2쇄에 돌입했고 33회부터 1쇄를 겨우 넘기거나 1쇄에서 멈춰 버렸다.


2025년 1월 투비컨티뉴드는 투비닷이라는 출판 브랜드를 론칭 해서 알라딘에서 발굴한 띵작들을 출간 할 계획이라며 축하 이벤트를 열고 있고 투비에서의 기록을 확인하고 2025년 신념 다짐을 적어 보라는 이벤트를 열고 있다.


https://tobe.aladin.co.kr/event/280468


신념 다짐 문장 칸에 2025년 나는 투비에서 [무명작가]다 라고 적었다.












띵작 발굴단에 창작 소설과 에세이들을 몇 번 응모를 했지만 운영측의 내부자 시선에서는 내 작품은 발굴 된 적이 없다.

띵작발굴단의 내부자 시선과 투비컨티뉴드의 독자들 시선에는 큰 차이가 있는 것 같다.

2025년 새해가 시작 되고 많은 무명 작가들이 투비컨티뉴드를 떠났다.

나는 작년에도 그랬듯이 무명작가지만 내 계획대로 꾸준히 써나갈 뿐이다.

오늘 무명작가가 쓰고 있는 대 장편 <굿바이, 부다페스트> 제 52회가 시작된다.

-제 52화 은총과 사랑


https://tobe.aladin.co.kr/n/310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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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2월 1일 생애 두 번째 창작 소설<굿바이, 부다페스트> 첫 회를 쓰기 시작했다.


https://tobe.aladin.co.kr/s/9373


1914년 헝가리 부다페스트를 배경으로 한 <굿바이, 부다페스트>연재를 총 50부작으로 기획 해 놓고 나서 1914년과 2024년의 날짜가 적힌 두 개의 달력을 준비해 놓았다.

소설을 읽는 동안 인간은 소설 속 시대와 인물들의 삶을 상상하며 두 번째 삶을 살 수 있다.

마치 꿈 속에서 보았던 것을, 상상 했던 그곳을 활자로 읽는 동안 나와 다른 세상 사람들의 삶의 다양한 모습을 소설을 통해 간접 경험해 볼 수 있다.

불멸의 고전을 읽으면서 경험해 보지 못한 경이로움에 사로 잡혀 식사 시간을 건너 뛰고 날 밤을 꼬박 지새우며 책에 푹 빠졌던 시간 동안 허구 세계가 현실 세계 보다 더 생생하게 느껴 질 때가 있다.

세계의 거의 모든 작가들이 추천하는 불멸의 고전,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에 세기를 뛰어넘는 심리 묘사가 나온다.










기차가 페테르부르크에서 멈추었다. 그녀가 내리자마자 발견한 것은 남편 얼굴이었다.

아! 맙소사! 저이의 귀는 왜 저렇게 생겼을까? 그의 차갑고 당당한 풍채, 그리고 특히 지금 그녀를 놀라게 한 귀 연골(둥근 모자의 챙을 떠받치고 있는)을 보며 그녀는 생각했다. 그는 예의 조롱기 섞인 미소를 입술에 띠고, 크고 지친 눈으로 안나를 똑바로 쳐다보며 다가왔다. 남편의 고집 세고 지친 시선에 부딪치자 불쾌한 감정이 가슴을 짓눌렀다.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 중에서


살아 보지 못한 머나먼 시대에 관한 소설을 쓰겠다고 마음을 먹고 나서 불멸의 고전을 꺼내 읽고는 크게 좌절 했다.

단 한 문장도 빼 버릴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한 플롯 구성과 각각의 인물들의 생생한 심리 묘사 그리고 감동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는 마지막까지 대가들의 작품은 마치 풋내기 창작자들이 절대로 열어봐서는 안되는 판도라 상자처럼 창작의 의욕을 흔들리게 만들었다.

창작 클래스를 단 한 번도 수강한 적은 없지만 여러 다양한 이들이 창작에 대해 쓴 비법 중에서 '절대 변하지 않는 네 가지' 항목은 마음 속 깊이 단단히 새겨 두고 있다.

1.글쓰기 워크숍에 오는 사람들 가운데 99.9퍼센트는 자신의 글에 확신이 없다.

2. 5분 즉흥 글쓰기 훈련은 저마다 글쓰기에 대해 갖고 있는 불안감 속으로 뛰어들게 하는 최고의 방법이다.

3. 누구나 이야기를 갖고 있다.

4. 정답을 쓸 필요가 없다. 그저 자신의 능력 껏 이야기를 쓰면 된다.

시험에서는 정답을 도출 해야만 다음 단계 그리고 더 높은 단계로 넘어 갈 수 있지만 인간의 한 생애는 명확한 정답도 해답도 존재 하지 않는다.

인간은 태생적으로 자신의 눈과 귀로 보고 들은 정보를 종합적으로 분석해서 세상을 이해 하고 받아 들인다.

책을 읽을 때도 영화를 볼 때도 음악을 들을 때도 상상하는 대로 원하는 대로 온 신경을 집중해서 읽고 보고 듣는다.

지구 상에 존재하는 생명체 중에 유일하게 꿈을 꾸고 상상을 하며 이야기를 지어 낼 수 있는 인간은 마치 화가가 붓질을 하듯 사진기로 영상으로 찍어내고 촬영 하듯 말하고 쓸 수 있다.

언제 어디서든 손 안에 폰으로 다양한 채널을 통해 영상물을 볼 수 있는 시대에 문자 해독 능력이 저하 되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지만 한 편으로는 영상에 책을 읽고 일기를 쓰고 필사를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문화로 발전하고 있다.

기계들이 점점 더 AI에 의해 구동 되면서 어떤 일을 기계의 몫으로 나눠 주고, 어떤 일을 인간의 몫으로 남겨 두면 가장 좋을지를 결정하기가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우리는 AI와 인간의 글쓰기에서 이런 딜레마에 봉착했다. 즉 우리의 개인적이며 전문적인 삶 양쪽에서 무엇을 양도하고, 무엇을 우리 몫으로 챙길 것인가?

-나오미 배런의 <쓰기의 미래>

가보지 못한 도시, 단 한번도 배워 본 적 없는 언어로 말하는 사람들, 뽀족한 첩탑이 보이는 도시, 붉은 기와를 얹은 지붕으로 가득 찬 마을, 무성한 밤나무 수풀, 폐허가 된 요새의 모습들이 머리 속으로 스쳐 지나가면서 허구의 이야기 소설을 읽기 시작하는 동안 인간의 뇌 속은 엄청난 세상이 펼쳐 진다.

하지만 수동적으로 읽는 것과 능동적으로 한 단어를 써나가는 창작의 영역은 다르다.

무언가에 대해 쓰기 전까지는 모든 것들이 머릿 속에서 가능했지만 새 하얀 백지 위, 모니터 속에 빈 노트 창을 띄워 놓는 순간 단어와 단어들이 줄줄이 쏟아지지 않는다.

첫 문장을 쓰는 것 부터 지우고 다시 쓰기를 반복 하다가 두 문장을 쓰고 나서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모든 이야기는 어디에서 부터 시작되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 존재 할까?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를 읽는 동안 눈 덮인 상트페테르부르크 행 기차에 올라타는 안나의 모습을 상상 할 수 있지만 나의 창작 능력으로 그런 장면 그런 상황을 절대 쓰지 못한다.

머리로는 그려지던 풍경과 사람들이 글자로 옮겨 질 때면 마치 낯선 환경에 놓인 겁먹고 당황한 짐승처럼 제 갈 길을 가지 못한 채 배회 한다.

창작을 하고 부터 책을 다른 시각으로 읽게 되었다.

하나의 스토리를 따라 읽으면서 마주치는 풍경들 상황들이 등장 인물들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앞으로 이어지는 스토리에 어떤 복선이 될지 하나 씩 체크 하면서 서술자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곱씹어 가며 읽게 되었다.

한 권의 책을 다 읽고 나면 머릿 속에서 단어를 그림으로 형상화 시키는 작업을 하고 있다.

나에게 글을 쓰는데 주어진 시간은 하루에 단 몇 시간 뿐이고 일주일의 스케줄을 탈탈 털어 내고 불필요한 시간을 모두 제거 하고 나서도 소설을 집필 할 수 있는 날은 일주일 중에서 월요일과 화요일 또는 수요일 정도 뿐이다.


스무 살 무렵, 주말이면 유로 스타를 타고 칙칙한 런던을 벗어나 유럽 땅으로 건너갔던 시절이 있었다.

한 때 제국의 수도였던 빈의 링스트라세로 주르륵 연결 된 미술관과 박물관을 드나들며 헝가리 부다페스트 곳곳을 누비는 동안 언젠가 이곳에 관한 이야기를 쓰겠다는 마음을 단 한 번도 품어 본 적이 없었다.

창작의 세계는 나에게 너무나도 멀었고 내 능력으로 해 낼 수 없는 신의 영역이였다.

2024년 2월 1일 부터 쓰기 시작한 <굿바이, 부다페스트>에 20세기 격변의 시대를 살았던 다양한 인물들(실존 인물과 허구의 인물들)이 뒤섞여 있다.

나는 독자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 주고 싶을까?

왜 나는 이 시대를 배경으로 쓰고 있을까? 라는 질문을 내 스스로에게 던지면서 2025년 1월 2일 제 1부 마지막 50회를 완성 했다.


-50회 새들의 힘겨운 날개 짓

https://tobe.aladin.co.kr/n/306335

소설은 특정 시대를 살았던 인물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지만, 소설이 단지 이야기로만 가득 채워져 있는 것은 아니다.

<굿바이, 부다페스트>라는 이야기 속에는 수 많은 사물과 소리, 대화와 상상, 추억과 지식, 생각과 사건들이 등장 한다.

매회 장면, 장면을 써 나갈 때마다 나는 2024년 그리고 2025년이 아닌 1914년으로 돌아가서 그 시대의 장군이 되기도 하고 황제로 군림하기도 하고 동화책을 즐겨 읽는 13살 소녀가 되기도 하고 부유한 저택을 매일 쓸고 닦고 청소하는 하녀와 하인이 되기도 한다.

<굿바이, 부다페스트>를 50회 쓰는 동안 두 개의 책장을 가득 채울 정도 분량의 책을 읽었고 1년 내내 쓰고 고치고 쓰기를 반복했다.

쓰는 동안 매번 한계에 부딪치고 쓰고 나서도 또 다른 장벽에 부딪친다.

이 장면에서 이렇게 밖에 쓰지 못하는 내 능력을 저주하다가 포기 하지 않고 꾸준히 쓰고 있는 내 자신을 스스로 대견스러워 하기도 한다.

창작을 하는데 많은 시간을 쏟아 붓기 힘든 나는 일을 하는 동안 출장을 가는 동안 출퇴근 시간 동안 온전히 머릿 속으로 상상하고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고 있다.

이렇게 완벽한 문장이 떠올랐는데! 이렇게 완벽한 묘사가 떠올랐는데! 라고 외치다가 막상 쓰기 시작하면 입안에 침이 바짝 마를 정도로 능력의 한계에 부딪친다.

시대를 앞선 스타일로, 영미권에서 '통찰력 있는 에세이스트'를 넘어 신화가 된 조앤 디디온은 어린 시절 몸이 너무 허약해서 아프다고 징징대자 그녀의 어머니가 너무 아프면 노트에 글로 쓰라며 노트를 건넨다.

일곱 살 때부터 그날의 생각과 감정을 기록하기 시작한 디디온은 보그지의 인턴 기자 생활을 시작으로 논픽션, 픽션, 에세이, 영화 시나리오, 칼럼등 다양한 글을 종횡 무진 하며 작가들의 작가로 불렸다.

글쓰기의 대가, 어떤 장르를 써도 주요 문예상을 휩쓸어 버리는 창작의 신 조앤 디디온은 후배 작가들과 예비 작가들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














못 쓴다고, 잘 쓰지 못한다고 징징 거리지 마라.

써 버려라. 누가 뭐라 해도 전부 써버려라.

네가 알고 있는 모든 단어를 모조리 써버려라.

쓰지 않으면 모든 것들이 너의 손에서 전부 빠져나가 버리고 누군가가 쓰고 만들고 찍은 것을 보는 데 소중한 인생의 시간을 허비하게 된다.

주방 찬장 문을 열어 보아라.

단 한번도 쓰지 않은 그릇들, 은 식기들, 머그 컵들이 눈에 들어 올 것이다.

글을 쓸 것인가? 아니면 찬장 속의 식기들을 전부 써 버릴 것인가?

언젠가 우리 모두 한 줌의 재가 된다.

너무 아끼지 마라.

전부 써 버려라.

모두 사용해 버려라

-조앤 디디온


사는 동안 어떤 순간이 가장 소중할까?

일반 서민들이 죽을 때까지 벌어 들일 수 없는 수익을 단 한 편의 예능과 영화, 드라마로 수 억, 수십억을 벌어 들이는 이들이 놀고, 먹고, 마시고, 여행하는 모습을 보는 순간일까?

아니면 매일 쓰지 않은 은식기를 사용하듯 꾸준하게 매일 무언가 끄적이는 순간일까?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이야기가 있으면, 일단 이야기를 씁니다. ‘이걸 쓰고 나면 뭔가가 있겠다.뭔가가 없지는 않겠다’라는 확신은 있지만, 그게 무엇인지는 모르는 상태로요. 그런데 그렇게 쓰고 나면 쓰는 동안 정말 처음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그 ‘뭔가’가 들어가 있습니다.

―장류진

소설은 온갖 모순으로 가득 차 있고 이 세상도 모순 덩어리다.

이렇게 서로 모순된 현실과 상상의 세계를 종횡 무진 하며 쓰는 동안 내면에서 서서히 삼차원의 세상이 펼쳐진다.

비록 무명의 작가가 창작한 작품이지만 읽어주고 응원해 주는 독자들 덕분에 2024년 2월 부터 50회까지 연재를 이어갈 수 있었다.

내가 보여준 또 다른 세상 <굿바이, 부다페스트>를 누군가 읽고 그 시절의 세계로 빨려 들어가 읽는 맛을 느꼈으면 좋겠다.


<굿바이, 부다페스트> 제 2부 제 51화 두더지 굴에 빠지다.

https://tobe.aladin.co.kr/n/308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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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2025-01-23 22: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스캇님 멋집니다. 또 조앤 디디온을 알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스캇님의 쓰기를 응원합니다.

2025-01-24 00:30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