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먼 것이 좋아 보이는가 - 우리 본성의 빛과 그림자를 찾아서
윌리엄 해즐릿 지음, 공진호 옮김 / 아티초크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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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시원하고 직설적인 문체의 팬이 되었습니다. 혐오의 즐거움에 관하여 도 꼭 읽어봐야겠어요. 지금 시국에 정치적인 통찰을 일깨워주기도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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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먼 것이 좋아 보이는가 - 우리 본성의 빛과 그림자를 찾아서
윌리엄 해즐릿 지음, 공진호 옮김 / 아티초크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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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먼 것이 좋아 보이는가, 라는 제목에 이끌려 손에 쥐게 되었지만 낯선 영국 문장가 아저씨의 매운맛 촌철살인에 멱살 잡히듯 끌려가며 홀리게 되는 기이한 경험을 하게 했던 책, <왜 먼 것이 좋아 보이는가>.


이 책의 전작으로 <혐오의 즐거움에 관하여>라는 책이 나온 걸 언뜻 보기는 했는데 호기심은 있었지만 읽어보지는 않았습니다. 윌리엄 해즐릿이라는 작가는 금시초문이었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딱 제목을 봐도 뭔가 굉장히 날카로운 견해와 통찰을 가진 글을 읽게 될 것 같은 느낌이 팍팍 드는 책 제목들이 아닌가요!






윌리엄 해즐릿은 누구일까요? 19세기 초 영국에서 당대의 촌철살인 문장가이자 에세이스트, 평론가로 활동한 사람입니다. 당시로서는 급진적인 사상의 소유자였기 때문에 문체가 굉장히 날카롭고 직설적입니다. 그런데 또 그게 굉장히 매력적입니다.




그보다 한 세기 후 문장가로 이름을 널리 알린 우리가 잘 아는 버지니아 울프의 말을 빌리자면 이런 사람입니다.


해즐릿은 안개 속에서 지척거리다 자신의 하찮음으로 죽음을 맞는, 태도가 두루뭉실한 부류의 작가가 아니었다. 그의 에세이들은 단연 해즐릿 자신이다.

매우 특이한 인물, 성미가 까다롭지만 고상하고, 심술궂지만 고결하고, 심히 독선적이지만 인류의 권리와 자유를 진심으로 열망하는 한 인물


버지니아 울프


윌리엄 해즐릿 에세이집 <혐오의 즐거움에 관하여> 발췌




평론가, 하면 떠올릴 수 있는, 독선적이고 직설적이고 예민하지만 정말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예리한 글을 쓰고 말을 하는 사람이었던 윌리엄 해즐릿.




지금보다 200년 전에 쓰인 글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지금의 상황에도 적용할 수 있을 만큼 날카로운 시각을 보여주는 글과 문장들이 책 페이지마다 그득합니다.




책을 읽다보면 밑줄치고 형광펜으로 긋고 마구마구 인덱스를 붙이는 자신을 발견하실지도 모릅니다.:)




먼 것은 좋아 보인다. 우리는 눈에 너무 가까이 들이대지지 않은 먼 것에 어렴풋하고 비현실적인 상상의 색을 입힌다. 지평선의 아련한 능선을 바라보며 우리는 그곳으로 가는 길에는 어떤 흥미로운 것들이 있을까, 그리고 그 길에서 어떤 경험을 하게 될까 얼마간 상상해 보기도 한다.


(중략)


그런데 막상 산 앞에 도착해 보니 거대한 흙더미만 있을 뿐, 상상 속 형상들을 빚어낸 영롱한 빛의 분위기는 없었다. 이때 나는 "야로 강은 가지 않고" 상상만 하는 것이 좋다는 교훈을 얻었다. 행복한 꿈을 공연히 깰 필요는 없는 것이다.


57~59p




「왜 먼 것이 좋아 보이는가」라는 에세이는 이 책의 하이라이트 같은 에세이입니다. 사람이 막연히 꿈을 꾸고 그 꿈을 깨고 식어가는 과정이 너무 생생하고 풍부하게 표현되어 있어서 가슴 한쪽이 콕콕 찔리는 듯도 했습니다.




인생의 항로에는 암초와 험한 날씨 같은 거센 좌절의 요소들이 놓여 있다. "인간사에는 영고성쇠"가 있고 영혼은 열망으로 부풀고 들썩이는 까닭에 "돛과 삭구가 너덜너덜해져도" 우리는 나파선의 파편 같은 존재를 몽땅 끌어안고 표류하다가 욕망의 항구, 욕망의 안식처로 흘러 들어간다!


58p




사실 우리는 자신이 무엇을 바라는지 모르고 스스로를 기만한다. 자신이 과거에 이러저러한 사람이었다고 상상하다가, 교묘한 잔꾀를 기묘한 망상으로 그간 상상하던 사람이 되고 급기야는 인생을 다시 시작하고 싶다.


60p




작가 자신이 화가가 되려고 했다가 회의를 느끼고 포기한 적이 있었기 때문일까요. 이 부분은 묘하게 더 리얼한 느낌이 들었답니다.




역시 '먼 곳'이란, 가보지 않은 길, 꿈꾸던 길, 현재 여기가 아닌 다른 세계나 삶을 뜻하는 것 아닐까 생각했는데 맞나봅니다.




윌리엄 해즐럿의 문장은 신랄하기도 하지만 결코 비판하는 데에 진짜 목적이 있는 게 아닙니다. 본인의 시각이 날카로워서 좀 읽기 따가운 것 뿐이죠!




그는 인생에 대해 총체적인 현명한 시각을 공유하며 읽는 이의 마음을 독려하고 에너지를 불어넣기도 합니다. 다양하고 깊이 있는 레퍼런스를 풍부하게 가진 그는 적절하고 뜻깊은 인용문도 많이 쓰고 있습니다. (평론가 답죠? 그는 희곡 평론을 아주 많이 썼다고 합니다.)




우리의 삶은 추악하기만 하거나


관념적으로 완벽하지 않으며,


"인생이라는 직물에는


좋고 나쁜 실이 섞여 있다."


77p, 셰익스피어 <끝이 좋으면 만사가 다 좋다> 인용




먼 곳에 있는 것, 미지의 것이 좋기만 해 보이는 사람 마음의 결점을 꼬집기만 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지금의 삶을 직시하고 긍정하게 해 주는 마무리가 그의 인간성을 보여주는 듯 해서 좋았습니다.




이어지는 다른 글들에서도 정말 인용하고 싶은 문장들이 한 가득이었는데요. 「패션에 관하여」에서는 패션 업계 종사자가 들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것 같은 팩트 폭행이 한가득 이어집니다. 대놓고 본질을 꿰고 있어서 그야말로 불편한 진실이라고 부를 수 밖에 없는 그런 것들...'꼭 말로 해야겠어?' 라는 말이 절로 나올 만큼 아픈 글인데, 또 너무 말을 잘 해서 뭐라고 할 수 없는 이 날카로운 언변...




서서히 이 윌리엄 해즐릿의 문체와 명민함에 빠져듭니다. (이래서 평론을 읽게 되는 건가 싶어요)




「성공의 조건에 관하여」에서는 의외로 미련하지만 묵묵하게 임하는 사람이 좋은 성과를 낸다는 정론을 보여줍니다.





자신의 자질 향상 기준을


너무 높이 잡거나


대중의 안목을 너무 높이 보는 것은


성공에 걸림돌이 된다.


119p




무엇이든 완벽해야 한다고 마음을 정해 놓은 사람은 자기 자신이나 남을 기쁘게 하는 일을 하나도 못한다.


119p




자신의 평범함에 만족하는 사람은 평범함 너머로 나아갈 수 있다. 그런 반면, 뛰어난 취향이나 재능의 소유자는 고차원의 무언가를 성취하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끝에 절망하여 펜을 집어던지고 결국 모든 것을 할 수 없으니 아무것도 이루지 못할지도 모른다.


122p




으, 또 뼈맞았어요. 역시 꾸준히 일희일비하지 않고 인내심을 가지고 많이 시도하는 게 답이지요. 성공에 왕도가 없습니다. (물론 윌리엄 해즐릿은 운빨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긴 합니다)




그리고...「아첨꾼과 독재자에 관하여」는 작금의 한국 상황을 날카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일깨워주는, 지금 시대에 적용해도 딱 맞아떨어지는 글입니다.




윌리엄 해즐릿은 프랑스 혁명의 열렬한 옹호자였습니다.이 글에서 그는 왜, 그리고 어떻게 권력이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고 복종하게 하는지 그는 신랄하게 쓰고 있습니다.




인간은 선천적으로 우상을 숭배하고 왕을 사랑한다. 한 개인의 넘쳐나는 권력은 사람들의 상상력을 건드리고 그들을 자기 편으로 빨아들인다.


158p




그는 왕권신수설이나 왕의 정통성 같은 것을 대놓고 부정합니다. 당시 시각에서는 파격적인 진보주의적 발언입니다.




정통성이라는 명예의 시궁창, 자유의 무덤이 국가의 심장을 마비시킨다. 그것은 인류를 소유물이라고 주장하지만 그 권리는 하나님에게서도 인간에게서도 나오지 않는다. (중략) 정통성이 뜻하는 것은 국민의 뜻과 반대되며 그것은 그런 국민의 뜻을 경멸한다.


163p




인간이 인간을 지배할 권리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명료한 진실을, 지금은 쉽게 논해도 당시에 대놓고 말하기는 쉽지 않았을 텐데 말입니다...!




윌리엄 해즐릿처럼 불편할 만큼 눈을 형형하게 뜨고 깨어있는 지성들이 있기에 진실을 보지 못하거나 외면하는 사람이 있어도 시대의 정신은 살아서 명맥을 이어왔겠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왕권신수설은 국민의 뜻을 무시하는 통치의 의미한다. 공화주의자는 그런 모든 군주를 독재자로 규정하고 그의 국민을 노예로 판단한다.


164p




국민의 뜻을 무시하고 통치하는 자는 독재자라는 말에 강한 울림을 느꼈습니다.




자유에 대한 사랑은 타인에 대한 사랑이며,


권력에 대한 사랑은 자신에 대한 사랑이다.


166p




윌리엄 해즐릿이 말은 정말 날카롭고 무섭게 하는데 거기 담겨 있는 뜻은 오히려 따뜻합니다. 아니, 뜨겁다고 해도 될 것 같습니다. 나의 만족과 지적 성취를 과시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독자의 의식을 일깨우고 인간애를 고취시키기 위한 문장이라는 게 느껴집니다.




마지막 글인 「사형에 관하여」에서는 범죄자에 대한 처벌에 대해 논하고 있는데요, 의외로 법의 본질을 배웠습니다.




법이라는 것이 법조인이나 정치가들 같은 특정 기득권이나 엘리트 계층에 의해 일방적으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도덕과


아주 잘 일치하는 방식과 수단으로


동원되어야 한다


178p


는 것입니다.


공동체의 의분과 도덕심에 어긋나는 법은 결함이 있다. 처벌의 목적 중 하나는 대중의 본능적 정의감을 충족시키고 그 행위로 공동체의 여론을 강화하는 것이다.


178p


사람들은 사실 뭐가 옳고 그른지에 대한 본능적인 감각이 있고, 사회에서 관습으로 형성된 도덕이 있기 때문에 법은 이것을 반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일순 당연한 듯 하지만, 일상과 너무 멀리 멀어진 그들만의 리그이기에, 좀 더 일반인들이 법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부를 옹호할 경우


정부가 옹호할 가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178p


시민이 깨어있어야 하는 이유를 한마디로 압축해서 보여주는 윌리엄 해즐릿...(뭔가 시원해요...!)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그의 독선적일 정도로 자신감있고 강렬한 문장과 문체에 빠져들게 됩니다. 책을 덮을 때 쯤엔 그의 팬이 되어 <혐오의 즐거움에 관하여>도 읽어봐야지, 하고 생각하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왜 먼 것이 좋아 보이는가>에서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번역의 질입니다. 저는 번역에 예민한 편인데요, 이 책은 번역을 의식하지 않을 정도로 작가의 문체가 그대로 전해져 왔고, 단어나 표현 선택도 신중하고 날카로워서 정말 흡족했습니다.


(오탈자도 2개인가 밖에 안 보임! 짝짝짝)


읽다보면 어렵다고 생각되는 부분들도 종종 발견되지만 찬찬히 읽으며 작가의 사고를 따라가다보면 피식 웃게 되기도 하고 무릎을 탁 치게 되기도 하는 뜻깊은 시간을 가질 수 있습니다.


아직 윌리엄 해즐릿의 '마성의 매운맛' 글을 맛보지 못하셨다면 꼭 일독을 추천드립니다:)


어딘가 속이 시원한 이 느낌을 맛보시길!




※ 본 서평은 출판사에서 서적을 제공받아 가감없이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먼 곳은 좋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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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나서 한동안 어른거림/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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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형 번역의 장점은 이해하기 쉽고 읽기 쉽다는 데 있다. 민음사 번역은 원문을 잘 살리긴 했지만 빨리 안 읽어진다. 매끄럽지 않고 요즘 쓰지 않는 어르신 말이 나온다. 원문을 비교해 보면 이덕형님 글은 원문의 미묘한 표현들은 없애고 매끄럽게 만들었다. 고전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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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반부는 뭐가 뚝뚝 끊기고 별로였고 후반부 아줌마 시점부터는 좋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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