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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일록 작전
필립 로스 지음, 김승욱 옮김 / 비채 / 2025년 2월
평점 :
1959년에 발표한 첫 번째 소설 <굿바이, 콜롬버스>로 전미도서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문학계에 데뷔한 필립 로스는 1969년 율법의 결벽 속에서 성(性) 불능이 된 유대인 변호사가 이스라엘로 돌아가 고통의 근원을 발견하는 문제작<포트노이의 불평> 출간 즉시 논쟁을 불러 일으키며 평단과 종교계를 뜨겁게 달아 오르게 만든다.
뜻밖에도 독자들은 세상을 소란스럽게 만든 <포트노이의 불평>에 열광하고 필립 로스는 단숨에 문학계 중심 인물이 된다.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 필립 로스는 1970년대부터 유럽 문학계에서 전방위적인 활동을 벌이며 동유럽권 출신 작가들과 교류 하기 시작한다.

필립 로스는 체코 68혁명 세대의 중심 인물이였던 극작가 바츨라프 하벨과 밀란 쿤데라와 만남을 통해 꾸준히 서신 교류를 이어가던 중 평소 자신이 존경 했던 작가 프란츠 카프카의 무덤이 있는 체코 프라하를 방문한다.
그는 이념이나 사상 체제 비판은 공개적으로 하지 않고 서방 세계로 망명한 동유럽권 작가들과의 인터뷰를 적극적으로 추진해서 그들의 작품이 영미권에 출판 할 수 있게 힘을 쏟는다.
1970년대 필립 로스는 공산 체제하에서 사상과 표현의 자유가 유린 당하는 동유럽의 지식인들의 모습을 담은 작품을 비롯해 자전적 분신(分身)인 네이선 주커만을 주인공 또는 관찰자로 등장 시킨 일련의 소설을 발표하며 학계의 부조리와 타락한 지식인의 이중적인 모습을 투영시켰다.
작가로 최고의 전성기를 보내던 1988년 경 필립 로스는 뉴욕 맨해튼에 머물던 어느 날, 이스라엘에 거주하는 친척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그는 "TV에 네가 나오고 있다"는 친척 앱터의 말에 터무니없는 일이라고 여겼지만, 그 전화는 불길한 예감의 시작이었다.
나흘 후 작가 필립 로스는 인터뷰 취재 일정이 잡혔던 이스라엘의 소설가 아하론 아펠펠드로부터 "조만간 예루살렘에서 강연한다고 신문에 실렸다"는 소식을 듣게 되고 마침내 누군가 자신을 사칭하고 있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는다.
1988년 1월, 신년이 밝은 지 며칠 뒤에 나는 또 다른 필립 로스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내 친척 앱터가 뉴욕의 내게 전화를 걸어, 이스라엘 라디오의 보도 내용을 알려 주었다. 트레블링카에 근무하던 공포의 이반이라고 알려진 존 데미야뉴크의 재판을 내가 예루살렘에서 방청 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필립 로스의 <샤일록 대작전>
공포의 이반이라고 알려진 존 데미야뉴크의 재판을 방청 하고 있었던 또 다른 필립 로스라는 인물은 현시대 유대인을 가장 위협하는 요인이 이스라엘의 유대인 전체주의라며 유대인을 유럽에 재정착 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었다.
당시 뉴욕에 살고 있었던 필립 로스는 수면제 ‘할시온’ 부작용으로 정신적으로 피폐해진 상태여서 이 모든 것이 수면제 부작용으로 인한 자신의 환각이 아닐까 의심한다.
때 마침 예루살렘에서 소설가 아하론 아펠펠드 인터뷰 일정이 잡혀 있었던 작가 필립 로스는 사칭범이 있다는 예루살렘의 킹 데이비드 호텔 511호실에 전화를 건다.
나는 수화기를 들어 예루살렘의 킹 데이비드 호텔로 전화해서 511호실로 연결 해 달라고 말했다. 목소리를 위장하기 위해 나는 프랑스 말씨를 썼다.
자신을 ‘필립 로스’라고 당당히 말하는 사칭범에게 작가는 파리에서 활동하는 프랑스 기자 ‘피에르 로제’라고 역으로 사칭하고 진실을 알기 위해 그와 대화를 시도 한다.
" 여보세요, 로스 씨? 필립 로스 씨 입니까?" 내가 물었다.
"네."
"정말로 그 작가예요?"
"그렇습니다."
"<포트노이의 불평>의 작가?"
"그래요. 그래요. 누구십니까?"
진짜와 가짜가 뒤바뀌는 순간 독자들은 이 이야기가 실화 인지 작가 필립 로스가 창작한 허구적 사실인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필립 로스는 앞선 작품에서 자신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소설을 여러 편 집필했다.
그는 '샤일록 작전'에서도 자신을 사칭하는 '필립 로스'라는 인물을 통해 나치 집권기 유대인 수용소 간수의 전범 재판이 한창 진행 되는 것과 동시에 점점 격화 되고 있는 팔레스타인 봉기를 교차 시키며 펼쳐 보인다.
"유대인들이 이렇게 기로에 서 있는데 소설을 써요? 이제 저는 유대계 유럽인들의 재정착 운동에 모든 것을 바치고 있습니다. 디아스포리즘에."
작가 필립 로스의 사칭범은 예루살렘의 전범 재판을 방청 하고, 유력 정치인을 만나 정치적 주장을 공표한다.
사칭범은 '유대인은 유럽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이른바 디아스포리즘을 주창하며 이스라엘 우파 정치인들의 심기를 거스르는 발언을 일삼자 이 소식을 들은 진짜 필립 로스는 이스라엘로 가서 사칭범을 대면한다.
자신을 사칭하고 다니는 자를 만나러 간 작가 필립 로스는 이스라엘 땅에서 다양한 인물들과 만나고 이들의 입을 통해 박해를 받았던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밀어내는 정복자의 잔혹한 이중적인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1967년 이스라엘이 6일 전쟁에서 승리 했다. 이와 함께 확인된 것은 유대인의 귀화 또는 동화 또는 정상화가 아니라 유대인의 힘, 홀로코스트의 냉소적인 제도화가 시작된다.
필립 로스가 마주한 이스라엘 땅의 사람들 중 친척 앱터는 제2차 세계대전 때 겪은 폭력의 후유증을 떨쳐 내지 못한 상태다. 그는 이스라엘 민족을 짓밟은 이들에게 죗값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점령지 라말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팔레스타인 출신 조지는 작가에게 이스라엘 압제에 관해 열변을 토한다.
유대인들의 군사국가가 의기양양하게 으쓱거리는 가운데 이제 정복자가 된 유대인이 과거에는 희생자였으며 순전히 그 역사 때문에 정복자가 되었음을 온 세계에 시시각각 날이면 날마다 일깨워주는 것이 유대인들의 공식적인 방침이 된다.
군사 강국이 된 이스라엘은 촘촘한 첩보망을 통해 아랍과 팔레스타인의 협력을 붕괴 시키는데 몰두 하면서 요인 암살과 정적 제거 스파이 색출을 하는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이들은 지속적으로 세계적 영향력을 갖춘 지식인들을 지원하며 소설과 영화에서 유대인들이 박해과 억압의 희생자라는 걸 전 세계인들에게 주입시키는 작업을 주기적인 홍보 캠페인처럼 펼치며 잔혹한 방법으로 팔레스타인들을 죽이는 모습을 감춘다.
유대계 지식인들과 예술가들이 전 세계인들에게 유대인의 희생에 대한 걸 끊임없이 상기 시키는 동안 이스라엘은 점령지를 꿀꺽 집어 삼킨 뒤 팔레스타인들을 추방하고 역사적인 정의에 따른 정당 보복 조치라며 자기 방어 논리를 펼친다.
이스라엘 건국을 위해 평생을 바친 유대인 노인 스마일스버거는 이제 유대인이 죄를 짓고 있다고 말하며 "성경에 새로운 장이 하나 더 생긴다면 하느님이 죄를 지은 이스라엘 민족을 파괴하려고 일억 명의 아랍인을 보냈다는 이야기가 거기 실릴 것"이라고 한다.
-필립 로스의 <샤일록 작전> 중에서
작가 필립 로스를 사칭하는 자는 스스로 반유대주의와 싸우는 투사라며 “유럽 출신 유대인들이 유럽에 재정착해서 이스라엘 인구가 절반으로 줄어든다면, 이 나라의 영토를 1948년 수준으로 줄이고, 군대를 해산하는 것이 가능해진다”면 아랍의 이웃들과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작가 필립 로스는 사칭범이 폴란드나 루마니아, 독일에 유대인을 재정착 시켜서 서구에 유대인을 분산 시키자는 주장에 맞서던 중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과 그 이면에 펼쳐 지고 있는 첩보 작전인 일명 <샤일록 작전>에 휘말리게 된다.
나는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저들에게 모이셰 피픽의 이야기를 들려 줄 것이다. 놈이 꾸미는 일과 내가 꾸미는 일이 어떻게 다른지 말해 줄 것이다. 그들이 조지 지아드에 대해 물어 보는 것에 모두 대답할 것이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과 관련된 첩보 작전, '샤일록 작전'에 가담하게 된 필립 로스는 사실과 허구의 경계를 넘나들며 독자들에게 유대인 정체성과 그들의 역사적 고난, 그리고 현대 정치 상황을 밀도있게 서술한다
작가 필립 로스는 이 작품 맨 첫 장에 법적인 이유로 여러 사실을 변형해서 책을 쓸 수 밖에 없었다며 현실의 이야기를 토대로 인물과 장소에 관한 세세한 정보를 변형 시킨 허구의 이야기는 사실을 분명하게 밝혔다.
필립 로스 자신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샤일록 작전>은 1993년 출간 즉시 당시 첩보소설의 문법을 빌려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넘나드는 실험에 성공한 작품이라는 평을 들으며 이듬해 미국 최고 소설에 수여하는 펜/포크너상을 받았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필립 로스의 <샤일록 작전>에서 이스라엘 법정에 선 존 데미야뉴크의 실제 삶의 행적은 다음과 같다.

1940년 나치 시절 강제 수용소에서 간수로 일하는 동안 유대인 수용자들을 잔혹하게 고문하는 걸로 악명이 높아 '공포의 이반'으로 불렸던 데미야뉴크는 1988년 1월 예루살렘 지방 법원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데미야뉴크는 항소심에서 소련 측 증거를 제시하며 판결에 불복했지만 1심 판결을 받은 지 오 년 만에 사형 선고를 받았다.
1920년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이우 외곽에서 태어난 데미야뉴크는 스탈린 통치 당시 자행 되었던 대기근 홀로도모르(기아에 의한 살인 )에서 살아 남아 2차 대전 발발 이전 까지 집단 농장에서 트랙터 운전수로 일하다가 군에 자원 입대 한다.
2차 대전 발발 당시 독소 전쟁에서 패한 독일군과 유대인들을 수용했던 트레블링카 강제 수용소(학살 증거가 철저히 사라져서 절멸 수용소라 칭함)에서 감시원 역할을 하다가 종전 후 수감자들을 국경 밖으로 내보내는 트럭 수송 담당을 하던 중 수용소에 탈출한 여성을 돕다가 미국으로 망명 신청을 한다.
1952년 미국 이민청에 등록된 데미야뉴크의 서류에는 우크라이나 태생의 소련군 출신으로 종전 후 난민 캠프로 이동하는 차량을 운전 했던 운전수라고 기록 되어 있었다.
미국 땅에서 강제 포로 수용소 간수였다는 과거가 사라진 데미야뉴크는 동유럽 출신 이민자들이 집단 거주하는 오하이오 주에 정착해서 포드사로 납품하는 자동차 부품 업체에서 전기 기술자 일을 하며 함께 도망친 아내와 세 아이를 낳고 시민권을 받는다.
트레블링카 강제 수용소에서 살아 남은 수감자들은 수감 당시 잔혹하게 고문하는 걸로 악명이 높아 '공포의 이반'으로 불렸던 간수가 데미야뉴크라고 지목한다.
1986년 60세를 훌쩍 넘긴 데미야뉴크를 체포한 이스라엘 재판부는 그에게 사형선고를 내린다.
법정에 선 데미야뉴크는 자신은 수용소에서 수감자들 이송과 수송을 담당 했을 뿐이고 어느 누구에게도 고문을 가 한 적이 없다고 적극 항소 한다.
1991년 12월 26일 소련이 무너지고 연방 체제의 사슬이 사라지고 나서 국가 주요 기밀 문서가 공개 된다.
소련 국가 기밀 문서에 의하면 트레블링카 강제 수용소에서 '공포의 이반'으로 불렸던 간수는 데미야뉴크가 아닌 전혀 다른 인물이였다.
2차 대전 당시 포로수용소에서 수감자들 이송과 수송을 담당했던 데미야뉴크를 기억하고 있는 생존자를 찾아낸 변호인단은 수용자들에게 데미야뉴크가 가장 친절했던 인물이였다는 증언을 받아 낸다.
장장 5년 동안 이스라엘 법원과 소송을 이어갔던 데미야뉴크는 독일과 폴란드에 남아 있는 모든 기록을 샅샅이 뒤져도 그의 범죄 행위가 발견 되지 않아 무죄 판결을 받고 마침내 자유의 몸이 되어 가족이 있는 미국으로 돌아간다.
2002년 유대계 단체와 이스라엘 정부는 데미야뉴크가 트레블링카 강제 수용소 뿐만 아니라 29000명의 유대인들을 잔혹하게 살해한 독일 소비보르 수용소에서 간수로 일했던 기록을 찾아 내 그를 독일 법정에 세운다.
장장 10년에 걸쳐 미국 지방 법원과 이스라엘과 유대계 단체가 데미야뉴크의 시민권 박탈과 추방을 놓고 법정 공방을 펼치는 사이에 90세를 넘긴 데미야뉴크는 호스피스 병원에서 숨을 거두고 독일은 소비보르 수용소 전범 재판을 종결 시켜 버린다.

데미야뉴크가 사망 하고 나서도 유대계 단체들은 끈질기게 그의 범죄 흔적을 찾아 다녔고 마침내 데미야뉴크로 추정되는 사진을 유대인 추모 기록관에 증거로 제출한다.

2025년 임기 두 번째를 맞이한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가자지구 주민의 자발적 출국과 이주를 돕겠다는 외교적 발언을 하고 나서 이스라엘과 비밀리에 나눈 회담 자리에서 ‘가자지구'를 이스라엘에게 통째로 넘겨 주는 '가자 점령’ 계획을 논의 했다.
이는 유대인이 나치에게 당한 인종말살 정책을 가자지구 주민에게 행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왜 유대인들끼리 분쟁을 벌어야 하는가 단순히 유대인과 유대인 사이만 분열된 것이 아니라, 개인의 내면 또한 분열되어 있기 때문이오. 세상에 이보다 더 다중적인 성격을 지닌 사람이 있소?
모든 유대인의 내면에는 유대인 '무리'가 살아요. 착한 유대인, 못된 유대인, 새로운 유대인, 옛날 유대인, 유대인을 사랑하는 자, 유대인을 증오하는 자. 이교도의 친구, 이교도의 적, 거만한 유대인, 상처 받은 유대인, 경거한 유대인, 파렴치한 유대인, 거친 유대인, 점잖은 유대인, 반항적인 유대인, 달래는 유대인, 유대인 다운 유대인, 유대인에서 벗어난 유대인....

셰익스피어 희곡 '베니스의 상인'에 등장한 악독한 유대인 고리대금업자의 이름을 차용한 <샤일록 작전>은 어디까지나 소설일 뿐이지만 역사는 과거에 머물지 않고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