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0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그에서 태어난 알렉산드르 알렉산드로비치 류비셰프는 1972년 82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나기 전 까지 곤충분류학자, 유전학자, 동물학자였고 때로는 철학자, 역사학자가 되기도 했다.

이중 어느 하나만 떼어내서는 그를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류비셰프는 다재다능 하다는 수식어를 붙이기 힘들 정도로 박식 했지만 그가 연구하고 탐구 한 것들이 인류 역사를 뒤바꿀 정도로 뛰어 나다거나 노벨상 후보로 거론 될 정도로 대단한 학문적 성취를 이루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가 세상을 떠나면서 남긴 것은 70여권의 학술서적과 1만2천5백여장에 이르는 연구논문, 수천권의 소책자들로 개인 비서나 연구 조교의 도움 없이 오롯이 혼자 이루어 낸 성취였고 연구 결과물이였다.

페테르부르그 대학교에서 물리-재료학부를 전공한 류비셰프는 1911년 스무 살 나이에 학부 과정을 졸업 하고 군 복무를 마치고 나서 1920년대 페름 대학교에서 조교수로 근무하고 사마르 연구소 연구원을 거치는 동안 그가 살았던 세상은 혁명과 전쟁으로 왕조 체제가 무너지고 공산 정권이 들어서면서 기존의 가치와 사상이 무너지는 엄청난 변혁을 겪었다.

1930년 스탈린 체제에서 류비셰프는 레닌그라드 연방식물보호연구소에서 농촌 곤충학을 연구했고 7년 만에 키예프 생물연구소로 부임해서 생태부장으로 재직하는 사이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 했다.

전쟁 기간 동안 류비셰프는 프르제발스크와 프룬제의 연구소에서 근무했고 종전후 울리야노프스크 교육대학의 동물학부장으로 부임헤서 1955년 65세의 나이로 은퇴할 때까지 그곳에 재직했다.

65세 나이로 은퇴 하고 나서 82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그는 하루 8시간 이상 자고 산책과 운동을 즐기면서 틈틈이 공연.전시를 보며 러시아 땅 어디에서든 열리는 학술세미나와 국책사업에 참가 하며 마지막 남아 있는 17년의 세월 동안 총 70여권의 저서와 1백권 분량을 완성하고 세상을 떠났다.

류비셰프가 이루어낸 방대한 성과물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그의 지치지 않는 체력의 비밀은 무엇일까?

세상의 모든 만물에게 똑같이 주어지는 24시간이라는 공평한 시간을 류비셰프처럼 합리적이고 짜임새 있고 활용 했다는 것은 AI시대를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수수께끼처럼 느껴진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이 발발하기 1년 전부터 류비셰프는 ‘시간통계 노트’ 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스물 여섯 살부터 작성하기 시작한 <시간 통계 노트>는 82세로 눈을 감기 전까지 단 하루도 빼 먹지 않고 기록했다.

류비셰프가 시간을 기록한 형식은 간단했다.

- 1964년 4월7일,-곤충분류학:알 수 없는 곤충 그림을 2점 그림.

-3시간 15분 -어떤 곤충인지 조사함-20분

-추가업무:슬라브에게 편지-2시간45분

-사교업무:식물보호단체 회의-2시간25분

-휴식:이고르에게 편지-10분

-곤충분류학 연구 2시간 20분

-논문집필 1시간 5분,편지 3시간 20분

-프라우다지 15분/이즈베스티야지 10분/문학신문 20분/톨스토이 책 1시간 30분...

이렇게 류비셰프는 회계장부를 기록하듯 모든 일을 할 때마다 매일 시간을 계산해 넣었고 심지어 자기 서재에 들어와 시시콜콜 질문하는 딸에게 친절하게 답해 주는 시간도 틈틈이 기록했다.

류비셰프는 이동 중에도 시간을 기록 했는데 버스·기차 타는 시간, 회의 시간, 줄 서있는 시간까지 기록 했고 장기 출장을 갈 때는 읽을 책 목록을 정한 뒤 출장지에 해당 서적을 미리 우편으로 부칠 정도로 시간을 아꼈다.

그는 이렇게 24시간 동안 쌓여간 시간기록을 매달 말 합산했고 연말에는 이를 다시 결산해서그래프와 표를 만들었다.

이쯤 되면 류비셰프는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할 정도로 시간에 매달렸고 매 순간 강박관념에 사로 잡힌 정신 질환에 가까운 사람이라는 의심이 생기지만 그의 가족들에 증언에 의하면 그는 절대로 시간에 얽매이지도 않았고 어떤 일을 해도 시간에 쫓기며 우왕좌왕 하지도 않았고 하루 8시간 숙면을 유지 하며 생애 마지막까지 큰 병치레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일찌감치 류비셰프는 24시간 동안 인간이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은 대략 14-15시간 정도라는 것을 깨닫고 주어진 시간 동안 시간을 쪼개 쓰면서 단 1분도 허비 하지 않고 연구하고 탐구하고 강연하며 규칙적인 수면 패턴을 유지 했고 야외 활동이나 유흥도 즐기며 주변인들까지 살뜰 하게 챙겼다.

이 모든 일을 해낼 수 있었던 건 그가 스물 여섯살 때부터 기록했던 시간을 철저하게 계산과 해서 혁명이 발발 해도 전쟁이 터져도 정권이 바뀌는 동안 뛰어난 절제력과 끈기를 갖고 실천에 옮겼다.

그리하여 후대인들은 그를 향해 <시간을 정복한 남자>라는 수식어를 붙여주었다.

시간이라는 에너지는 단 한번도 운동을 멈춘 적이 없고 태초의 모습 그대로 길들여지지 않은 채 남아있는 이 시간은 끊임없이 흘러가는 컨베이어 벨트 같은 것으로 시간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분배된 재화다.

19세기에 태어나서 20세기 중반에 생을 마친 류비셰프에게 시간은 째깍 째깍 움직이는 시계 초침의 존재 반응처럼 항상 감지할 수 있는 물리적 대상으로 그는 자기에게 주어진 1분 1초에 의미를 부여해서 시간 쪼개 쓰는 기술과 시간을 활용하는 방법을 일찌감치 터득해서 자신의 생의 시간인 82년을 25억8천5백95만2천초로 미분(微分)해버렸다.

“자유롭게 쓰기는 내가 아는 한 글을 써내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며 최고의 만능 연습법이다. 자유롭게 쓰기를 연습하면 그저 십 분간 멈추지 않고 강제로 쓰면 된다. 때로는 좋은 글이 나올 테지만 그것은 우리의 목표가 아니다. 한 주제에 집중해도 좋고 이 주제에서 다른 주제로 가더라도 좋다. 때로는 의식의 흐름을 잘 기록한 글이 나올 테지만 의식의 흐름을 계속 따라가기는 무리일 것이다. 자유롭게 쓰기를 하면 때때로 가속이 붙겠지만 속도는 우리의 목표가 아니다.”

-피터 엘보의 <글쓰기를 배우지 않기> 중에서 


2023년 1월 12일 부터 매일 하루에 두 편 씩 투비컨티뉴드에 글을 쓰고 있다.


https://tobe.aladin.co.kr/t/scott


글을 쓰던 중에 두려움이 불쑥 불쑥 모습을 드러낼 때마다 가장 필요한 건 있는 그대로의 능력을 받아 들이고 용기를 그러모아 중단하는 두려움을 날려 버려야 한다.

창작의 열기가 어느 날 갑자기 서서히 불이 붙어 올라 오지 않는다.


2024년 2월 1일 목요일 부터 새로운 창작물을 시작했다.

'굿바이, 부다페스트.'

https://tobe.aladin.co.kr/s/9373




“글은 시상이 떠올랐을 때 쓰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처럼 기계적으로 써야 한다. 소설가 야마다 도모히코는 은행원으로 일하면서 집필 활동을 했다. 그 역시 기계적인 글쓰기를 강조했다. 휴가를 이용하지 않았다. 휴가 기간 중 여유롭게 글쓰기에 몰입할 수 있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오히려 쉴 때는 푹 쉬고 일상 중에 집필을 위한 시간을 짜냈다. 훌륭한 소설가들은 대체로 다작을 했고 맹목적이고 기계적으로 글을 썼다. 감흥이 생겨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글을 쓰다 보니 감흥이 생긴다.”

-한근태의 '일상의 한 번은 고수를 만나라.' 중에서

2024년 2월 1일 매주 목요일부터 시작된 생애 두 번째 창작 소설 <굿바이,부다페스트>는 12월 26일 목요일 까지 총 48편의 에피소드를 올렸다.

이 기간을 시간으로 환산 하면 1년 365일 매일 하루에 두 편씩 새글을 쓰면서 동시에 48주 동안 창작 소설을 쓴 것이다.


나의 하루의 시작은 새벽 다섯 시 30분 부터다. 새벽형의 인간으로 살기 시작한 건 고등학교에 입학 했을 때 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하루의 시작을 새벽부터 시작하게 되니 나와 함께 시간을 시작하는 무리들 중에 비해 두 세시간 정도의 시간을 쓸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나는 그 시간 동안 계획 했던 공부를 하거나 새로운 학문을 학습했고 때로는 부족한 수면양을 채우기도 했고 전공 과목이 아닌 다른 학문을 공부하는 시간으로도 활용했다. 사회인이 되고나서는 이른 아침에 시작하는 수업을 들었고 관심이 가는 주제를 학습하는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알라딘에 글을 쓰면서 창작을 시작하게 되었다.

2024년은 어느 해 보다 바쁘게 살았다. 2박 3일 일정의 해외 출장을 나간 사이에도 나는 매일 투비컨티뉴드에 글을 썼고 빠짐없이 기획한대로 창작 소설을 써나갔다.

어느 날 불쑥 영감이 찾아 오기를 기다릴 시간이 없었다.

사회적 지위가 올라 갈 수록 연봉의 숫자가 늘어 날 수록 시간적 여유는 점점 사라져갔고 활자로 된 것들 보다 빠르게 검색하고 손 끝으로 터치 할 수 있는 화면을 응시 하는 시간이 더 많아 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동 중에도 책을 펼쳤고 비행기 안에서는 오늘 어떤 글을 쓸지 골몰했다.

언제 어디서든 앉을 의자와 테이블을 발견 하면 노트북을 펼쳐 놓고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에게 허용 되는 시간은 단 몇분 일 때도 있고 길어야 한 시간에서 두 세시간 정도 뿐이다.

2023년 1월 부터 쓰기 시작한 글이 어느 새 1년을 지나 2년 차로 접어 드니 1400개가 넘는 글이 쌓여 졌다.

평균적으로 천자 이상을 넘겨 쓰고 있고 어떤 글은 2천자에서 3천자를 쓰고 창작 소설은 한 회당 만자 가까이 쓰고 있다.


  손가락을 키보드 위에 올려놓는 순간부터 단어가 떠오르고 문장이 쏟아지지 않는다.
가장 먼저 <모닝 페이지>를 쓰기 전  어떤 주제를 쓸 것인가 고민하고, 그 주제에 맞는 사례와 근거를 찾아 마지막 나의 의견으로 글을 마무리한다. 

이렇게 매일 모든 과정마다 사색이 필요하기에, 한 편의 글을 쓰는 과정은 단 몇 분 만에 이루어 지지 않는다.


1400개의 글이 쌓이도록 매일 글을 쓰는 동안 나라는 사람은 전과 달라 졌을까?

매일 모닝 페이지를 쓰는 동안 사소한 감정이 떠오를 때나 소소한 생각에 사로잡힐 때마다 글을 쓰고 멈추지 않고 지금까지 쓰고 있는 동안 내 안에 흩어져 있는 상념들이 차곡 차곡 정리 되어 가고 있다.

모닝페이지

https://tobe.aladin.co.kr/s/2724


손 안에 스마트 폰을 쥐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팔목과 귀에 스마트 폰과 연결 된 기기를 장착하고 이전의 세대들이 누려 보거나 경험해 보지 못한 세상을 수시로 보고 체크할 수 있는 기술 혁명의 엄청난 수혜를 누리고 있다.

하지만 매일 시간에 쫓기며 살고 있고 스마트 폰의 세상이 보여주는 시간에 갇혀 순간의 영상과 순간의 클릭으로 시간을 허비 하며 수시로 시간을 확인하는 시간 강박증에서 벗어 나지 못하고 있다.

어디에서든 넘쳐나는 영상과 숏폼 시대에 단 1회 출연으로 억대의 개런티를 받는 이들이 웃고 놀고 먹고 마시고 즐기는 것에 나의 시간을 허비 하지 않는다.

그들이 나를 대신해서 피 땀 눈물을 흘리며 일해 주지도 않고 대신해서 내 삶을 살아 주지 않는다.


우리는 밝은 대낮에 별을 보지 못하듯, 삶의 신성한 가치가 살아 있을 때는 그것을 망각하고, 삶이 평온할 때는 삶의 가치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영원한 별들이 얼마나 찬란하게 하늘에 떠 있는지 알려면, 먼저 어두워져야 합니다.

-츠바이크


글을 쓰는 데 재능도 영감도 지식도 필요 없다.

쓰는 동안 영감을 떠올리고 쓰면서 지식을 쌓아가다 보면 몰입의 경지에 이르러서 글은 점차 변화하고 진화 해 나간다.

용기란, 두려워하면서도 어쨌든 계속 전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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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4-12-28 04: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번 2024년 바쁘게 보내셨군요 저는 게으르게 지냈네요 요새도 게으르게 지내고, 늦게 일어나고 내일은 조금 일찍 일어나야지 하기를 되풀이합니다 이게 지금만 그런 게 아니기도 하네요 scott 님은 부지런하게 보람있게 하루 하루를 보내시는군요 늘 건강 잘 챙기시기 바랍니다 저도 잘 못하는 거지만... 마음이나 몸이 괜찮으면 괜찮을까 싶지만 그것도 아닌 듯해요 운동을 해야 좀 나을지도... 운동이라고 해봐야 어쩌다 걷기만 하는군요 쓸데없는 말을...

scott 님 주말입니다 주말 편안하게 보내세요


희선

2024-12-28 11: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힐 2024-12-29 00: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작년에 제가 처음 알라딘 서재 활동을 하면서 scott님께서 제 첫 친구가 되어 주셨어요. 정말 친구가 되어 주셔서 감사 합니다. 늘 올려주신 글 열심히 읽고 많은 배우고 있어요. 나중에 기회게 되면 모닝 페이지도 들어가 보도록 할 께요. 2024년 scott님이 보낸 시간의 밀도는 더 없이 커 보입니다. 남은 한 해 잘 보내시고 내년에도 좋은 글 올려 주세요. 감사 합니다.

2024-12-29 01: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12-29 23: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12-31 12: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12-30 12: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12-31 12: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물을 거두는 시간
이선영 지음 / 비채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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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3일 오후 10시 23분 쯤 비상 계엄이 선포 되고 하늘에선 군 헬기가 날아다니고, 국회 주변에는 장갑차가 배치되었고 무장한 계엄군들이 유리창을 깨고 국회 의사당 안으로 진입했다.

담장을 넘은 국회 의원들과 보좌진들이 의사당 안으로 들어 가고 시민들이 몰려가 군 경찰을 온 몸으로 막는 사이 자정을 넘긴 시각인 12월 4일 오전 1시쯤 의원 190명의 전원 찬성으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을 통과시켰다.

밤잠을 이루지 못한 채 불안감에 사로잡힌 국민들은 술톤 얼굴의 내란수괴범이 오전 4시27분쯤 비상계엄 해제 선언을 한 직후 촛불을 들고 거리로 광장으로 나갔다.

탄핵안 1차 표결이 이뤄진 지난 12월 7일 국회 앞에서 100만명의 시민들이 촛불을 들었고 탄핵안 2차 표결이 진행된 지난 12월 14일 200만명으로 불어났다.

12월 14일 마침내 국회에서 탄핵안이 가결되었다.

숨 쉬는 공기처럼 당연한 것으로만 알았던 민주주의를 시민들이 온 몸으로 막아 내어 지켜냈고, 이 모든 과정을 전 세계가 지켜봤다.

국격은 하루 아침에 바닥으로 떨어졌고 수십조에 달하는 국가 경제적 가치는 하루 아침에 모래가루가 되어 버렸다.

자격이 없는 권력자의 잘못된 선택과 탐욕으로 국가 전체가 엄청난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는 사이에 한국 작가 최초이자 아시아 여성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가 스웨덴 한림원에서 단 한번 울려보지 못한 ‘한국어’로 연설을 했다.

“가장 어두운 밤에도 언어는 우리가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 묻고, 이 행성에 사는 사람의 관점에서 상상하기를 고집하며, 우리를 서로 연결한다”

-12월 7일 스웨덴 한림원,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 소감 연설 중에서


전 세계가 한강 작가의 작품을 낭독 하는 시간을 갖는 동안 나라 전체를 비상 계엄이라는 수렁 속으로 끌고 간 내란의 주역들의 실체가 사주, 역설, 무속과 관련 인물들이라는 속보가 연일 터져 나오고 있다.

민주주의와 기본 정치에 대한 개념과 인식이 부재한 권력자가 비 상시적이고 비 이성적인 무속 비선 라인을 통해 내란을 모의 하고 계엄을 선포 하고 군병력을 통해 주요 인사들을 체포 하고 감금 할 계획들이 속속들이 밝혀지고 있는 이 시국에 영화도 드라마도 이보다 더 흥미진진 할 수 없을 것이다.

한강 작가의 다섯 번 째 장편소설 <희랍어 시간>에서 침묵과 어둠 속에서, 말을 잃은 여자가 손톱을 바싹 깎은 손으로 시력을 잃어가는 남자의 손바닥에 몇 개의 단어를 쓰는 동안 영원처럼 부풀어 오르는 순간의 빛 속에서 두 사람은 서로에게 자신의 연약한 부분을 보여준다.

인간의 가장 연약한 부분은 어디일까?

그 연약한 부분은 각자 만이 안고 있는 지난 시절의 상처, 사고로 인한 것 일 수도 있고 기억의 저 너머 고통의 한 순간 일 수도 있다.

한강 작가의 이야기는 모든 고통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인간은 어떻게 이토록 폭력적인가?

인간은 어떻게 그토록 압도적인 폭력의 반대편에 설 수 있는가?

우리가 인간이라는 종에 속한다는 사실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는 얼마나 사랑할 수 있는가?

어디까지가 우리의 한계인가?

얼마나 사랑하고 용서 해야 우리는 마침내 참된 인간이 될 수 있는 것인가?

이 세상에 고전이라 일컫는 세기의 소설들은 '실패자의 기록물'이다.

한강 작가에 앞서서 노벨 문학상을 받은 윌리엄 포크너의 <소리와 분노>를 비롯해서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마르케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 가즈오 이시구로의 <남아 있는 나날>까지 인생에 좌절하고 실패 하고 사랑을 잃고 슬퍼 하며 불행과 불운의 삶을 살다 간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렇다고 고전의 반열에 오르고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세기의 작품들을 단순히 실패자의 기록물이라 단정 지을 수 없다.

거친 파도에 맞서 낚시 줄을 던져도 고기 한 마리 잡지 못한 노인의 삶이 형편 없다 할 수 없고 어머니가 죽은 날 뜨거운 태양 빛 때문에 아랍인을 총을 쏴 죽인 남자를 향해 살인자라 비난 할 수 없다.

주인 달링턴 경에 대한 존경을 넘어 맹목적인 헌신을 자처하던 집사 스티븐스는 아버지의 임종도 지키지 못하고 사랑하는 여인마저 떠나보내야 했을 정도로 평생 동안 집사 업무에 매달렸지만 결국 주인 달링턴 경이 나치 지지자라는 오명을 쓴 채 사회적으로 추락하면서 그의 경력과 인생에도 금이 가 버린다.

역사는 승리자의 말과 행동 그 결과만 기록 하지만 소설은 자신에게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해도 뜻하는 데로 생이 흘러 가지 않는 실패의 여정을 보여 준다.

2024년을 열흘 정도 앞두고 책장에 꽂아 두었던 책을 꺼내 읽었다.

첼로의 장례식. 한 무더기 국화꽃 사이 그녀의 영정 사진은 흐릿해서 더욱 애련했다.

교통사고 였다고, 그녀 아버지의 퀭한 눈은 허망했다.

딸의 죽음을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장례식장을 지키던 너는 꼿꼿했다.

나를 바라보던 너의 서늘한 눈빛은 얼음꽃이었다.

마음 한구석에 삐죽 고개 들던 악의는 눈물로 덮혔다.

-이선영의 <그물을 거두는 시간> 중에서

오랫동안 불화를 겪다 이혼 후 유명인들의 자서전을 집필하는 고스트라이터 생계를 꾸려가고 있던 최윤지는 세계적인 디자이너인 이모 ‘선임’으로부터 자서전 집필 의뢰를 받는다.

조카 윤지는 이모의 자서전을 집필 하기 위해 지난 과거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던 중 이모 선임이 결혼 날짜를 잡은 아들에게 초대 받지 못하는 신세라는 것을 알게 되고 모자간의 화해를 도모하지만 뜻밖에도 이모 가족에게 깊게 패인 상처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자신의 재능과 성적 정체성을 숨기고 살아야 했던 이모의 과거를 알게 되는 동안 30여 년 전 죽은 고등학교 동창생의 유품 정리사라는 남자가 찾아와 윤지가 애써 지워버렸던 과거를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송두리째 유린 당한 듯 성장의 순간 순간을 녹슬게 했던 그 일은 소녀에게 치유할 수 없는 상처가 되었다. 아니, 상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소녀의 상처가 아니었다.

소녀가 이성이 아닌 동성을 향해 품었던 설렘과 그리움을 미처 깨닫지 못한 채 솟구친 질투가 불러온 악의였다.

언제나 타인에게 자신의 삶을 강탈 당했던 이모 선임은 일찍이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깨달았지만 사회적 시선과 집안의 강요로 결혼을 해서 아이까지 낳았고 불굴의 의지로 노력해서 세계적인 디자이너가 되었지만 남편과 아들에게 현금 인출기 취급을 받을 뿐 아내 어머니라는 굴레에 갇혀 버린다.

“인간 본성을 억압하는 건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환영받지 못한 시스템이었어. 인간이 인간 자체로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은 거스를 수 없는 거야. 그런데 그것과 대치 되는 상황에 직면했던 일이 나에게도 일어났던 거지.”

조카 선임은 가족들에게 외면 당해 쓸쓸하면서 고독한 노년을 보내고 있는 이모 선임의 삶을 기록해나가는 동안 완전히 잊고 있었던 자신의 과거를 되돌아 보게 된다.

미성숙 했던 청춘 시절의 첫사랑의 기억을 더듬어 가던 윤지는 드문 드문 떠오르는 기억의 조각을 짜 맞춰나가던 중 자신 안에 움트고 있었던 악의 때문에 평생을 그리워하고 사랑했던 사람이 자신에 의해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받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죄책감에 사로 잡힌다.

이모 선임은 자서전 집필에 필요한 구술을 전부 하고 나서 조카에게 이렇게 말한다.

"너도 이제 너답게 살아. 이제 너를 그만 감추고 세상으로 나와. 숨기려다가 나처럼 애먼 사람 다치게 하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으려면. ."

이모 선임은 자서전 출간을 통해 지난 시절 사랑을 품었던 미란에게 참회를 하자 조카 윤지는 자신 때문에 인생의 나락으로 떨어진 선재를 찾아가 사과를 하기로 마음 먹는다.

스무 살, 자신의 손아귀에 사랑을 쥐고 싶었던 윤지는 수진을 걱정하는 선재를 미워 했고 K를 사랑하느라 선재를 외롭게 하는 수진을 증오 해서 희대의 악녀인 수진의 인생을 파멸 시키고 싶어 했다.

결국 윤지는 학생 운동으로 수배자 명단에 올라가서 형사들에 쫓기고 있었던 선재와 수진의 은신한 거처를 밀고 해버리고 두 사람의 삶은 모두 나락으로 떨어져서 가정은 풍비박산이 되어 버린다.

내면은 항상 청춘의 시간을 살고 있었던 윤지는 불치의 병을 앓고 있는 선재에게 사과를 하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지난 시절 그가 학교 도서관에서 읽던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책을 떠올린다.

늙어가는 대가로 얻게 된 젊음의 가면은 욕망의 또 다른 이름, 결국 욕망의 노예가 되어 늙은 형상으로 최후를 맞이 하게 되는 것이 우리 인간의 운명인 것이다.

비상 계엄을 선포한 내란수괴범은 사흘 만에 국민 앞에 서서 단 2분 사과를 하고 계엄의 정당화에 대한 변명은 20분간 늘어 놓았다.

내란수괴범을 옹호 하는 변호인단들은 헌재에서 살아 돌아 오면 착한 지도자가 될 것이라는 궤변을 내뱉고 있다.

2022년 3월,검찰주의자가 아니라 ‘헌법주의자’라며 인간에게 충성 하지 않는 다는 자가 “공정과 상식을 바로 세우고, 통합의 정치를 하겠다”며 국민에게 선서를 하고 나서 '공정과 상식’, ‘통합’을 송두리째 내팽개치며 헌정질서를 파괴하고 국가 내란을 선동하는 괴물이 되었다.

우리 인간은 자기 자신이 어떤 인간인지 잘 모른다.

아니 알고자 노력할 시간이나 기회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다.

하지만 삶에 위기가 닥쳐 왔을 때 뜻하지 않은 것을 겪게 될 때 비로소 '나'라는 인간을 되돌아 보게 된다.

국민에게 권력을 부여 받아 혈세로 먹고 살았던 권력자와 무속 신앙으로 연결된 자칭 영적인 지도자라는 이들로 인해 국가의 자유 민주주의 체제가 송두리 째 흔들리는 순간 국민이 목숨을 걸고 거리고 나갔고 촛불을 들었다.

이 세상은 애초에 불합리하고 불공평하고 부조리한 세상이다.

그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희생 당하고 고통을 당해도 모두 인내 하고 가족을 위해 사회를 위해 국가를 위해 살아 가고 있다.

소설 <그물을 거두는 시간>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과오로 인해 인생이 무너져 버린 이들을 직접 찾아가 참회 하고 속죄하는 시간을 갖는다.

불교 경전에 나오는 <참회>는 범어 크사마(ksama)의 음역으로 용서를 빌고 뉘우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이 크사마(ksama)가 한국 불교에 뿌리를 내리면서 참혹할 참(慘)와 뉘우칠 회(悔)는 자신의 잘못에 대해 미안하고 후회스러워서 용서를 빈다는 의미로 확장 되었다.

기독교에서 < 속죄>는 어떤 죄라도 책임을 지고 신에게 고해 하고 고백해서 속죄를 해서 의롭게 살아가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2024년 12월 14일 탄핵소추안이 가결되자 내란수괴범은 국민 담화문에서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라며 헌법재판소의 ‘탄핵 기각’을 통한 복귀를 공언 했다.

공수처의 출석 요구를 거부 하고 있는 내란 수괴범은 앞으로도 영원히 국민 앞에 진심으로 참회와 속죄를 하지 않지 않을 것이다.

우리 국민이 지켜야 하는 건 법과 질서, 정의 그리고 자유가 지켜 지는 민주주의다.

내란 수괴범의 운명은 헌재 재판소의 시간으로 넘어갔다.

사건번호는 '2024헌나8', 사건명은 '대통령(윤석열) 탄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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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무스 2024-12-24 19: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즐거운 크리스마스 되십시요!ㅎ

scott 2024-12-28 11:52   좋아요 0 | URL
막시무스님 건강하게 한 해 마무리 잘하세요
새해 복 마뉘 ^^
 
노란 밤의 달리기
이지 지음 / 비채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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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5호선 '을지로 4가'역 3번 출구로 나와서 곱창처럼 복잡하게 꼬인 골목을 따라 걷다 보면 페인트 칠이 벗겨진 철물점, 공업이라고 쓰여진 간판을 달고 비둘기 형상을 한 철제 조각물 부터 유리 공예 아트 공방들이 올망 졸망 모여 있는 걸 발견하게 된다.

1970년대 대대적인 개발 붐 시대에 서울 을지로 일대는 "탱크, 잠수함도 만들 수 있는 곳"으로 불릴 만큼 철공소, 자재상, 인쇄공장 수천 개가 모여 있는 숙련공들의 피, 땀, 눈물이 배어 있는 서울 안의 산업 단지였지만 현재 을지로는 설치 예술가 집단의 거대한 작업실이 되었다.

한옥이 있던 자리를 허물어서 공업사와 소형 공장들이 들어 섰던 곳이 제조업의 쇠락으로 슬럼화 되기 직전에 예술가들이 둥지를 틀고 나서 골목길 마다 예술의 꽃들이 피어나고 있다.

모터 가게, 인쇄소, 주물 가게, 유리 가게들이 모여 있어서 원스톱으로 작품을 만들 수 있는 을지로는 서울 안 교통의 중심지에서 저렴한 임차료로 작업을 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 져 있어서 예술가들에게 천국이다.

을지로 세운상가 터에 매달 50여명의 신청자들이 대기 할 정도로 입점 할 수 있는 장소가 부족해 졌고 임차료까지 나날이 치솟고 있다.

작업실 임대료가 치솟을 때마다 거처를 옮겨 다녔던 시각 예술가 '휴일'은 예술가들에게 천국 같은 환경을 제공 하는 을지로에 들어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작업 활동을 시작한다.


'내게도 직업이 있다. 나는 그림을 그리고 콜라주를 하고 사진을 찍고 소리를 채집한다. 글자를 모으고, 때로는 사람들에 질문을 던지며 그것을 기록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나를 시각 작가 혹은 설치 미술가라고 부르고 내가 하는 일을 다윈예술이라고 지칭하기도 한다. 명칭이 중요한 게 아니다. 과연 돈을 벌기는 커녕 쓰기만 하는 걸 직업이라고 불러도 되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는 그만둘 수도 없다. 너무 많이 와버렸다.'

-이지의 <노란 밤의 달리기> 중에서


사진학과를 졸업한 휴일의 동기들 중에서 함께 작업하는 태유를 제외하고 다른 동기들은 예술가가 아닌 다른 길로 인생의 방향을 틀었다.

휴일은 생계 걱정을 할 정도로 벌이가 좋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동기생 태유와 '매트리스 매트릭스' 팀으로 활동해서 '주목할 만한 신인상'을 받았을 정도로 재능을 인정 받았지만 그 상이 오히려 그의 인생에 독이 되어 버렸다.

작품이 팔리지 않았지만 작업을 멈추지 못한 휴일은 입시 과외나 백화점 문화 센터와 구청에서 간간히 일을 하며 겨우 입에 풀칠을 하며 살고 있다.

아빠가 게이란 사실을 알고 엄마가 어린 휴일을 옷장 속에 버리고 떠났다.

어쩌다 사진을 전공한 휴일에게 부모에게 버려진 기억 조차도 예술적 영감이 되어 서른 살을 앞두고 세운상가에서 ‘서식’하는 예술가로 살아 간다.


'안다. 버림받았다고 할 수는 없다. 새끼 펭권인 척할 수도 없다. 나는 성인이고 아버지는 자유로운 인간이다. 사실 아버지와 사는 게 마냥 좋은 것도 아니다. 두 남자가 데면데면하게 사는 집. 고독만 두 배다. 그래도 누군가 떠난다는 건. 그래서 오는 코끝의 알싸함은 심장까지 닿는다.'


가난한 예술가 휴일에게도 '엘'이라 불리는 여자 친구가 있다.

휴일은 여러 명의 여자와 원 나잇 동침을 하고 나서도 언제나 '엘'에게 돌아간다.

'휴일'은 엘과 3년 째 만나는 동안 울며 고백하며 모든 이야기를 들어 준다.


'나는 사실 여자였어요. 분명히 여자애였는데, 엄마가 집을 나가고 얼마 후 남자가 됐어요. 내 기억은 또렷한데 아무도 믿어주지 않아요.'


여자 아이였지만 엄마에게 버림을 받고 나서 남자가 되고 그 남자를 사랑하고 있는 엘이라는 여자는 알록달록한 곰 젤리 하리보를 입에 달고 살고 있는 젤리 중독자다.

기억 속에 침착 되어 너무 많은 생각을 하며 살아가는 휴일은 사랑에 섹스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말이 많은 연상의 ‘엘’과 사랑을 하는 동안 사랑에 섹스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우리는 서로에게 밤인가. 그게 무엇이든 간에. 말 그대로 착즙해서라도 내 매력을 찾아주는 그리고 가감 없이 표현해주는 엘이 좋다. 그것이 낮의 엘이든 밤의 엘이든, 별이 빛나는 엘이든 폭우의 엘이든 엘의 피부와 향기, 신음이나 숨결, 목소리와 내 머리 위로 쏟아지는 머리카락과 숨결, 엘의 몸 속의 물, 그것이 나오는 순간 모든 것이 좋다. 그걸 좋아하는 걸 엘도 안다. 그리고 우리는 또 밤의 카니발을 지낸다. 이십대의 끝, 나는 엘에게 내 육체를 헌신한다.'


기나긴 생활고 속에서 사랑으로, 예술로 삶을 감당하고 있는 현실이 허황돼 보이고, 차라리 동물적 꿈을 함께 꾸는 반려견이나 입 속에서 쫀득한 맛과 향을 내는 젤리 하리보가 힘이 되어주는 웃픈 현실 앞에서 사람이 몸에 색을 칠하고 스스로 동물 우리에 들어가 살고 있는 모습을 부러워 한다.

현실의 경계가 무너져서 환상과 기억 사이를 수시로 오고 가는 휴일과 그 또래들은 부모에게 버림 받아 꿈 많았던 20대 청춘 시절에 도시의 재생 마중물로 쓰이다가 버려져서 어느 누구에게도 사랑을 “받는 법을” 모른 채 “받아본 적이 없이' 살다가 어느 덧 사회의 '잃어버린 세대'로 전락해 버린다.

동물의 우리 안에서 먹고 자는 생활을 하고 있는 휴일의 동기생 '핑크스핑크스'라 불리는 태유의 아버지도 꿈을 꾸고 우리 안에 살고 있는 동물들도 꿈을 꾸고 있다.

그리고 서울의 여러 구역을 전전 하다 을지로 한 복판 세운 상가에서 작업을 시작한 휴일은 인간의 목소리가 내지른 말의 높낮이와 떨림, 강세 같은 소리를 채집한다.

그는 목소리를 채집 하는 동안 한 껏 들뜬 목소리를 내지르기도 하고 울먹이기도 하고 애원 하기도 한다.

휴일이 채집한 인간의 목소리의 톤이 오르락 내리락 할 때 마다 그를 둘러 싼 주변인들의 삶도 요동치기 시작한다.


' 모든 인간에게는 하나의 몸과 하나의 얼굴이 있다.'


동물원에서 발생한 갑자스런 화마에 잿가루가 되어버린 태유의 아버지는 죽어서 더 유명해 졌고 음식으로 유명해지겠노라며 세상을 유랑 했던 아버지는 앞을 볼 수 없는 상태가 되어서야 자식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가족과 함께 살아도 외롭고 연인이 있어도 외롭다.

따라서 생은 외롭지 않으면 괴롭고, 괴롭지 않으면 외로운 것이다.

앞이 보이지 않게 되어서야 소리를 제대로 듣게 되고 냄새를 맡아서 주변의 낌새를 알아차리게 된 아버지를 통해 휴일은 소리의 감각이 펼쳐 보인 세상을 알게 된다.

휴일은 돈을 벌어 음식을 먹고 잠자를 구하는 생존이 아닌 숨 쉬는 생존을 하기 위해 밤의 어둠 속을 달리기 시작한다.

어둠 속을 달리고 있는 휴일의 시야에 눈가루가 흩날린다.

달리면서 얼굴에 달라 붙는 눈가루들 눈위의 눈, 눈에 눈들이 그의 머리 위에 쌓여 간다.

내리는 눈을 맞으며 달리는 동안 온 몸에 땀으로 범벅이 된 휴일의 머리 위에 내려 앉은 눈은 어느 새 촉촉한 물로 변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세상 모든 것들의 전성기는 찰나다.

모든 것이 아주 잠깐 동안 세상의 운과 이치에 딱 맞아 떨어지는 그 순간, 누군가의 인생을 가로 막고 있던 어둠이 잠시 걷혀서 빛이 들어 온다.

그 빛은 언젠가 사라져 버리지만 그 빛을 단 한 번이라도 받아 보았다면 남아 있는 생 앞에 놓인 어떤 고난도 역경도 이겨 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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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의 늦여름
이와이 슌지 지음, 홍은주 옮김 / 비채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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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릿한 배경의 한 남자가 정면을 똑바로 응시하며 마치 권총을 발사 하듯 그의 손에 들려진 라이터에 불꽃이 솟아 있다.

독일의 현대미술가이자 전 세계 현대 미술을 대표하는 작가 게르하르트 리히터(Gerhard Richter, 1932-)는 20세기 회화 작품을 21세기적 세계관에 투영시킨 미래 지향적인 예술가다.

회화 장르에서 시작한 그의 예술은 사진처럼 이미지를 재현하는 기법으로 세상을 향해 격렬한 분노를 표출하는 한 남자의 자화상부터 소녀가 된 자기 딸의 뒷모습을 사진에 기초해 화려한 색채, 그윽하고 안정감 있는 톤, 정교한 붓질로 아름답게 재현 해서 ‘사진을 기반으로 한 그림들(photography based painting)'을 독특한 장르로 승화 시켰다.

(c)Gerhard Richter's 'Betty,1988

구상과 추상, 사진과 회화의 영역을 넘나들며 독자적인 회화 스타일을 만들어낸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작품은 사진 원본에 붓질을 해서 이미 완성된 작품에 덧칠 하는 연출 기법으로 마치 21세기 디지털기기로 사진을 보정 하듯 회화와 사진의 경계를 희미하게 만들었다.

그가 완성한 작품은 사진일까?회화 일까? 아니면 사진을 기반으로 한 그림일까?

(c) Mieno Kei

미대를 졸업한 뒤 광고 회사에 다니던 ‘카논’은 상사의 괴롬힘에 시달리다 결국 퇴사하고 지인의 소개로 미술잡지 편집부에 수습기자로 들어가 특집기사를 맡게 된다.

여름이 시작 되기 몇 달 전인 3월 3일 히나마쓰리 축제에 맞춰 시작한 전시회 <늦여름> 안내장을 발견한 카논은 전시장을 찾아 가고 미스터리한 화가가 남긴 작품 <늦여름> 앞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그림의 크기와 사진같은 세밀한 기법에 탐복한다.

그림 속 모델이 되면 반드시 죽는다고 해서 죽음의 '사신'이라는 별명이 붙은 수수께끼에 쌓여 있는 화가 '나유타'의 특집 기사를 맡게 된 카논은 그의 실체를 취재하는 동안 나유타의 독특한 사진 회화 작품에 빨려 들어가게 된다.

연기로 덮인 하늘과 멀리 치솟은 불기둥, 제일 앞쪽에 찌부러진 기와지붕들이 겹겹이 쌓여 있고, 그 꼭대기에 한 소녀가 이쪽을 등지고 서 있다. 불에 그을리고 찢어진 분홍색 파자마를 입고 고개를 숙인 채. 나는 완전히 압도되었다.

-이와이 슌지의 <제로의 늦여름> 중에서

‘사신’(死神)으로 불리는 어느 천재 복면 화가의 이야기를 쫓는 ‘아트 미스터리’ ‘제로의 늦여름’에는 어느 천재 복면 화가가 남긴 여러 작품들이 등장한다.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한 영화 감독 이와이 슌지는 회화적인 언어로 소설 속에 등장하는 그림에 대해 이렇게 묘사했다.

그로테스크한 나유타 작품 중에서도 내가 비교적 좋아하는 그림이 있었다.

<까마귀 공원>이라는 작품이다.

어린 소녀의 초상화로, 티 없는 귀여움이 어딘지 후지이 쓰토무(일본 서양화가)의 작품을 연상 시킨다.

도록의 같은 페이지에 실린, 또 다른 소녀를 그린 <카나리아의 집>과 마치 한 쌍처럼 보인다. 어둑한 방에 있는 소녀를 심플하게 그린 <카나리아의 집>에 비하면 <까마귀 공원>에는 다소 독특한 구상이 엿보인다.

눈동자에는 쓸쓸함이 가득하고 입은 일자로 다물렸다. 손에 든 한 장의 사진에는 소녀 자신의 모습이 담겨 있다. 사진 속 소녀는 웃고 있다.

회화적인 언어로 미술 작품을 묘사했지만 스토리의 전개는 유괴와 행방불명의 덫이 곳곳에 깔려 있어 오싹하다.

미술 기자 카논이 나유타가 남긴 작품 세계에 빠져 들 때마다 작품 속 소녀들은 행방 불명 되거나 살해 당해서 피해 가족들의 삶은 산산 조각이 나버린다.

'훌륭한 그림은, 한 눈에 압니다. 뭐랄까, 사체인데 살아있는 것 같았죠. 대단한 거죠. 언제가 되든 어디서든 꼭 공개하고 싶은 그림이네요. 하고 제가 말했을 겁니다. 얼마 후 아드님이 직접 연락해왔어요. 그림을 세상에 내놓고 싶다. 작가명은 '나유타'가 좋겠다. 뭐, 그런 얘깁니다.'

유화를 사용해 사진과 같은 사실적인 이미지를 연출한 게르하르트 리히터는 사진 이미지를 보고 그리기 위해 본인의 사진을 포함했을 뿐만 아니라 잡지와 신문, 책에 수록딘 실제 이미지를 스크랩 해서 붓으로 흐릿하게 화면을 뭉개버리거나 흘려버리는 기법으로 생생하면서 선명한 리얼리티 경계를 무너뜨려 버렸다.

그는 이런 사진 회화적인 작업을 통해 광란의 전쟁으로 폐허가 된 도시에서 힘겹게 삶을 이어갔던 어린 시절의 시간부터 종전 후 급속한 산업 발전으로 인간성이 상실된 현대 독일의 모습을 반영했다.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작품에는 예기치 못한 선택과 우연, 영감 그리고 파괴의 요소들로 가득 채워져서 작품을 감상하는 이들에게 화가의 시선으로 해석된 세상을 보게 만들었다.

화가 나유타는 왜 죽었을까? 그의 작품 속 인물들은 왜 유괴 되거나 살해 당했을까?

화가는 증거로 작품을 남겼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가 남긴 작품에는 ' 어느 누구도 행복하게 해주지 못해. 누구도 구하지 못해. 그런 저주'가 걸려 있는 것일까?

가세가 붓을 들고 가시와기 슈조의 그림과 마주했다. 그의 붓끝이 거장의 세계에 닿는다. 붓이 움직인다.

사는 동안 한 번 쯤은 어떤 작품 앞에서 매혹 당하거나 일순간 마음에 무언의 감정이 솟아 날 때가 있다.

형언하기 어려운 그런 느낌을 불러 일으키는 작품을 그린 화가의 심성은 어떤 상태 였을까?

글로 묘사된 나유타의 그림을 머릿 속으로 상상 하고 그 그림을 그린 화가의 행동을 추측해 보고는 내가 붓을 잡았다면 어떤 그림을 그렸을까.. 배경은 어떤 색으로 처리 했을 까..

이젤을 세워 놓고 작품을 완성 하고 나서 사진으로 작품을 찍어두고 어디론가 종적을 감춰 버린 나유타,만면에 웃음을 띤 채 하늘을 올려다보는 사람, 남자인지, 여자인지 모를 그 또는 그녀가 긴 머리칼을 헝클어뜨린 채 춤을 추고 있는 작품들....

<연옥>....

가솔린을 뒤집어쓰고 제 몸에 불을 붙이고 불길에 휩싸여 춤추는 사람을 촬영해서 사진으로 현상하고 마지막 붓으로 완성한 화가 나유타.

영화 감독으로 이름이 알려진 이와이 슌지 감독은 겨울의 계절이 시작되면 생각나는 영화‘러브레터’와 ‘릴리슈슈의 모든 것’, ‘립반윙클의 신부’, ‘키리에의 노래’ 등 거의 모든 자신의 작품의 원작을 직접 쓸 정도로 일찌감치 글쓰기 재능을 인정받았다.

작품에 등장하는 화가 나유타가 실제로 찍은 사진을 기반으로 회화를 완성하듯 이와이 슌지 감독은 미스터리한 예술 세계를 그린<제로의 늦여름>에서 카메라 촬영 기법처럼 스토리를 전개 시켜 나가면서 붓으로 그림을 그리듯 회화적인 언어로 묘사했다.

Overpainted photograph 17. Nov. 99 ©Gerhard Richter 2017

연기로 덮인 하늘과 멀리 치솟은 불기둥, 제일 앞쪽에 찌부러진 기와지붕들이 겹겹이 쌓여 있고, 그 꼭대기에 한 소녀가 이쪽을 등지고 서 있다. 불에 그을리고 찢어진 분홍색 파자마를 입고 고개를 숙인 채. 나는 완전히 압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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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훈드여, 새로운 사상은 반드시 두 가지 질문을 받게 되오. 하나는 그 사상이 약할 때: 너는 어떤 존재인가? 타협하고 거래하고 사회에 순응하며 자기 자리를 찾아 살아남으려 노력하는가, 아니면 앞뒤가 꽉 막힌 고집불통에 꼬장꼬장하고 게다가 멍청하기 짝이 없어 산들바람에 휘어지느니 차라리 부러지는 쪽을 택하는가?─후자인 경우, 대개는 (백 번 중 아흔아홉 번쯤) 산산이 부서지기 마련이오. 그러나 백번째에는 세상을 뒤바꿀 수도 있소.

-살만 루슈디의 <악마의 시> 중에서


1989년 9월 살만 루슈디의 <악마의 시>가 출간 되자마자 이슬람교의 선지자 무함마드를 비하 하고 모독 했다는 이유로 이 책을 불태우며 극렬한 시위로 들끓어 오른다.


악마의 시는 무슬림 인구 집단이 많은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수단, 남아프리카 공화국, 스리랑카, 태국, 탄자니아,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베네수엘라 등의 국가에서 출판을 금지 시켜버린다.

1990년 2월 14일 이란 테헤란 국영 라디오 방송에서 지도자 아야톨라 호메이니가 (1989년 6월 사망) 유언으로 남긴 '무슬림을 모독한 자는 처단하라'라는 종교 법령' 파트와'를 발표하며 각지에 흩어져 있는 무슬림들은 살만 루슈디를 발견 하는 즉시 무함마드의 이름으로 처단 하라고 명령을 내린다.

1990년 2월 14일 파트와가 발령된 다음날 부터 살만 루슈디는 기나긴 도피 생활을 시작 하고 전 세계 곳곳에서 <악마의 시>를 불 태우는 시위와 작가 살만 루슈디의 생명을 지키자는 시위로 극렬하게 나눠져 버린다.

이 책을 출간하는 나라의 담당 출판사들은 무슬림으로 부터 폭탄 테러 위협을 받았고 악마의 시를 번역한 이들은 무슬림 폭도들에게 공격 당하거나 살해를 당했다.

유럽에서 <악마의 시>를 가장 먼저 출간한 이탈리아와 노르웨이 그리고 아시아 국가에서는 일본의 번역가와 출판인들이 무슬림의 공격으로 안타까운 생명을 잃자 세계 각국의 출판인들과 작가 단체들은 즉각적으로 살만 루슈디와 출판인들과 번역가들을 무슬림의 테러 대상에서 보호 받아야 하고 표현의 자유를 존중 하라는 선언서를 발표 한다.

영국은 살만 루슈디를 24시간 밀착 보호 하며 이란에게 경제적 외교적 제재 조치를 취했다.


살라딘은 참지 못하고 낄낄거렸다. 그 사건이 다윈의 보복처럼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덤스데이는 저 딱딱한 빅토리아시대에 살았던 불쌍한 찰스에게 미국의 마약문화에 대한 책임을 덮어씌웠다. 그런데 지구 반대편에 와서는 자기가 그토록 반대하던 부도덕한 문화를 상징하는 존재로 전락해버렸다.

-살만 루슈디의 <악마의 시>중에서

1981년 <한밤의 아이들> 출간한 살만 루슈디는 전 세계 주요 문학상을 휩쓸며 세계 문단 중심에서 '표현의 자유'를 상징하는 인물이 되었다.

영국 정보부의 보호 아래 수시로 거주지를 옮겨 다녔던 살만 루슈디는 어느 날 문득 자신이 머물렀던 곳을 세워 보다가 사용했던 침대가 무려 56개나 된다는 사실에 놀라며 본격적으로 자신을 지키기 위해 격투기, 권투 같은 호신술을 배운다.

호메이니는 <악마의 시>가 본격적으로 서점에 깔리기 3개월전에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유언을 반드시 지킨다는 무슬림들이 파트와는 발령한 사람만 취소 할 수 있다는 근거를 내세우며 살만 루슈디를 향한 칼 끝을 저버리지 않았다.

제국 시절에 북아프리카 이슬람국가를 지배해서 무슬림의 이민자들과 난민자들이 많이 살고 있는 프랑스는 1993년에서야 <악마의 시>를 번역 출간 하고 이슬람의 테러 행위가 미국 땅으로 번질 것을 우려 했던 미국은 프랑스 출간에 뒤이어 미국판을 출간하기 시작했다.

파트와 법령을 충실하게 시행했던 무슬림 폭도와 테러리스트들은 세계 곳곳에 알라라는 이름으로 무고한 이들을 대상으로 분노하고 테러짓을 저지르는 동안 살만 루슈디는 공포심에 떨며 무기력하게 살지 않았다.

그는 매일 각종 호신술을 연마 했고 전 세계 여러 매체에 출연해서 언론의자유, 종교적, 관용, 문학의 자유에 대해 소신 발언을 하며 전세계 여론을 움직였다.

1998년 서방 국가의 제재 압력에 버티기 힘들었던 이란은 루슈디의 사형 선고를 철회 한다고 발표 했지만 루슈디를 처단 하는 어떤 무슬림도 처벌하겠다는 발언은 하지 않았다.

파트와 법령이 발표 되자 마자 이틀에 한 번씩 거주지를 옮겨 다녔던 살만 루슈디는 도저히 이런 상태로 살 수 없다고 스스로 결론을 내리고 미국으로 건너가 버린다.



용서 할 수 없는 일이란 어떤 것인가? 자기가 신뢰할 수 없는 사람에게 전부를 들키는 것, 그 살 떨리는 벌거벗음의 상태 그것이 아니면 또 무엇이겠는가?- 일찍이 지브릴은 살라딘 참차의 모든 비밀이 고스란히 드러나버린 상황을 -납치,추락,체포 -목격하지 않았던가?

-살만 루슈디의 <악마의 시> 중에서


반세기를 지나서도 무슬림들은 <악마의 시>를 쓴 작가 살만 루슈디를 용서 하지 않았다.

2022년 여름 살만 루슈디는 뉴욕대에 주최하는 강연장 무대 위에 오르는 순간 이슬람 테러리스트 가 휘두르는 칼에 찔려 한쪽 팔의 신경이 완전히 끊어졌고 한 쪽 눈 시력도 완전히 상실했다.



바닥에 쓰러져 내 몸에서 바깥쪽으로 퍼져가던 피 웅덩이를 바라보던 모습이 기억난다.

피가 많네. 나는 생각했다. 그런 다음에는 내가 죽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극적이고 특별히 끔찍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누군가의 엄지손가락이 내 목을 눌렀다. 큰 엄지손가락 같았다. 그 손가락이 가장 큰 상처를 눌러 내 생명이 담긴 피가 빠져나가지 못하게 막았다.

-살만 루슈디의 <나이프> 중에서


원형 극장 무대에 살만 루슈디가 올라가는 순간 검은 옷에 검은 마스크를 쓴 24세 무슬림 청년이 달려들어 날카로운 칼로 목을 찌르고 얼굴 위쪽과 입 왼쪽, 가슴, 허벅지를 차례차례 찌른다.

살인마 무슬림 청년이 살만 루슈디를 찌른 시간은 단 27초

현장에 있었던 소방관과 의사들의 빠른 응급처리를 받은 살만 루슈디는 왼손 힘줄과 대부분의 신경이 끊어진 상태로 응급실로 실려와 죽음을 향해 갔다.


눈을 잃었다. 나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려 애썼다. 시신경이 손상되었고 그걸로 끝이었다. 그는 나를 죽이지 못했으나 내 눈을 가져갔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여전히 그 상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눈을 잃는다는 건 신체적으로 힘든 일이다.

시야의 4분의 1을 아예 보지 못한다는 건 그 자체로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다.


엄청난 마취제를 투여 받은 살만 루슈디는 가족 앞에서 이렇게 말한다.

' 삶을 되찾아야 해. 죽음과 비슷한 상황에서 그저 회복만 할 수는 없어.

삶을 되찾아야 해.'

일주일 동안 끔찍한 수술을 마치고 일주일 회복 기간 동안 살만 루슈디는 앉고 일어서고 걷고 움직이는 법을 천천히 시도하고 파트와 법령 선포 당시 아홉 살 나이였던 아들, 이제는 새 하얀 머리카락으로 풍성하게 뒤덮인 그 아들의 손을 잡고 병원을 나와 집으로 돌아간다.

끔찍한 사고를 겪은지 18일 만에 살만 루슈디는 환자복을 벗고 티셔츠와 운동복 바지와 운동화를 신고 휠체어에 올라탄다.

그는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염탐 하는 눈도 귀도 없는 곳에서 조용히 회복의 시간을 갖고 칼이 아닌 펜을 들고 한 글자 씩 써내려 가기 시작한다.


언어도 칼이었다.언어는 세상을 베어 세상의 의미를 그 내적 작동 방식과 비밀과 진실을 드러낼 수 있었다. 언어는 하나의 현실에서 다른 현실로 베어 들어갈 수 있었다. 언어는 헛소리를 지적하고 사람들의 눈을 뜨게 하고 아름다움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언어가 나의 칼이었다.


살만 루슈디에게 칼을 들고 달려간 테러리스트 이름은 하디 마타르 24살의 레바논 출신인 그는 ‘악마의 시’를 단 두 페이지만 읽은 뒤 범행을 계획했다고 경찰에 진술했지만 그의 집에선 3만개가 넘는 증거물들이 쏟아졌다.

이란과 이슬람 국가는 이 사건과 자국의 연관성을 전면 부인했고 그 테러리스트도 단독범행이라 자백했다.

현재 미국 경찰은 배후 세력을 찾아내지 못했다.

파트와가 선포 된지 33년 6개월의 시간이 흘러 칼에 찔린 살만 루슈디는 강한 의지로 살아 남았다.

그는 회복 기간 동안 자신의 목을 찌른 그 테러리스트에게 범행의 이유를 묻는 일문일답 형식의 상상속 대화를 시도한다.



-살만 루슈디

신의 본성에 대해 물어봐도 될까?

-테러리스트

신은 모든 것을 포괄하기고 모든 것을 아시지. 그분은 곧 모든 것이야.

-살만 루슈디

너희의 전통에 따르면, 너희의 신과 그 책에 나오는 다른 민족들. 그러니까 유대인이나 기독교인이 믿는 신은 다른 거지? 그 사람들은 그들의 책에 적혀 있는 대로 신이 자신의 형상을 본떠서 사람을 만들었다고 하던데.

-테러리스트

그들이 틀렸어.

-살만 루슈디

너는 내가 부정직할 뿐 아니라 악마이기도 하다는 거네. 그래서 나를 죽이는 게 옳다는 거야?

-테러리스트

너는 새끼 악마일 뿐이야. 그러니 자만하지 마. 하긴 새끼도 악마도 악마지.

-살만 루슈디

악마는 파멸 시켜야 하고?

-테러리스트

그래, 넌 이십억 명의 미움을 받고 있어. 그것만 알면 돼. 그렇게 까지 미움을 받다니. 어떤 기분일까? 벌레가 된 기분이겠지 잘난 체하며 온갖 말을 떠들어대지만 사실 너는 자신이 벌레 보다 못하다는 걸 알고 있어. 발로 밟아 죽여야 할 벌레 말이야. 넌 다른 나라고 여행가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전 세계 나라의 절반 정도에는 발도 들일 수 없어. 그런 곳들에서는 너에 대한 증오가 너무도 강하니까.

-살만 루슈디

평범한 남자에게 할 만한 평범한 질문이야. 사랑에 빠진 적이 있나?

-테러리스트

난 신을 사랑한다.


살만 루슈디의 <악마의 시>가 출간 되고 나서 학자들 사이에서도 신성을 모독했는지 아닌지를 놓고 서로 다른 의견으로 갈라졌다.

1989년 ‘악마의 시’는 출간 되자마자 금서로 지정돼 수입·유통·출판이 금지되어서 이슬람권에서 책을 읽은 사람이 드물었고 살만 루슈디에게 칼을 휘두른 테러리스트도 딱 두 페이지만 읽어 보고 범행을 계획했다.

실제로 이 작품을 읽어 보면 신성 모독이 아닌 시대와 사회에 대한 풍자와 유머로 가득 찬 20세기 <돈키호테> 같은 스토리라는 걸 알게 된다.


내가 이 자리에 있는 까닭은 온건한 사람으로 보이길 거부했기 때문입니다.내가 여기 있는 까닭은 내가 감사할 줄 모르는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착각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이 자리에 모인 이유는 모든 것을 변화 시키기 위해서 입니다. 물론 우리 자신도 변화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아프리카인,카리브인, 인도인,파키스탄인,방글라데시인, 키프로스인, 중국인-만약 우리가 저 바다를 건너오지 않았다면, 만약 우리의 어머니와 아버지 들이 일자리와 존엄성과 자식들의 더 나은 삶을 찾아 저 하늘을 건너오지 않았다면 우리 모습은 지금과는 전혀 달랐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다시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이 사회를 다시 만드는 사람들이 되어야만 합니다. 죽은 나무를 잘라내고 새 나무를 심어야 합니다. 이번에는 우리 차례입니다.

-살만 루슈디 <악마의 시>중에서


봄베이발 여객기가 런던 상공에서 폭발하고 두 남자 살라딘 참차와 지브릴 파리슈타만 살아 남는다.

살아 남은 두 사람의 운명은 부서지고 흩어져 버린 비행기 잔해 속에서 탑승 했을 때의 영혼과 자아를 벗어 던져 버린다.

모국어도 잊어 버리고 도저히 설명하기 힘든 영혼, 초능력을 갖은 두 사람의 미래는 이미 현실에서 소멸 되어 버린 채 지상의 천사로 다시 태어난다.


'다시 태어난 거야. 자네와 나. 생일 축하하네. 이봐 생일 축하 한다고.'

작가 살만 루슈디는 홀수 장에서 비행기에서 추락 하기 전 지상에서 15년 동안 배우의 삶을 살았던 지브릴 파리슈타의 삶을 보여 주고 짝수 장에서는 천사로 변신한 모습으로 교차 시키며 세상을 들끓어 오르게 만드는 온갖 사건들을 끄집어 낸다.


기억할 거야 양탄자 타고 다니는 레카 우리가 추락할 때 봤잖아 그리고 한 명 더 있었는데 미친놈 같은 스코틀랜드 복장을 하고 고라(백인, 유럽인) 같던데.

이름은 제대로 못 들었지만

알리도 그 둘을 봤는지 못 봤는지 나도 잘 모르겠어 알리는 그대로 서 있기만 했고

레카가 시킨 일이었어 알리를 위층으로 데려가라고 에베레스트 정상으로 정상에 오른 사람은 내려가는 길밖에 없다면서

나는 손가락으로 알리를 겨냥했고 우리는 위층으로 올라갔어

나는 알리를 밀지 않았어

레카가 밀었지

나는 절대로 알리를 밀어버릴 수 없었으니까.

스푸노

내 마음을 알아줘 스푸노

빌어먹을

나는 그 여자를 사랑했다고....


작가 살만 루슈디는 <악마의 시>에서 초월적 존재의 진짜 정체를 명확하게 알려 주지 않고 그의 정체를 곳곳에 숨겨 놓았다.

그 초월적 존재는 시 공간을 오고 가며 현실과 지옥, 그리고 천국 속에서 지상의 온갖 사건 마다 모습을 드러내고 푸념 하고 변명하며 거짓말 같은 진실을 장황하게 늘어 놓는다.

파트와 선포 후 33년 6개월 만에 자신의 목을 찌른 테러리스트가 법정에 서게 되는 날 작가 살만 루슈디는 그의 앞에서 이런 말을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내 삶에 당신이 침입한 것은 폭력적이고 해로웠지만. 이제 내 인생은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사랑으로 가득한 삶이지요. 당신이 감옥에서 보낼 나날이 무엇으로 채워질지는 모르겠지만. 사랑은 아닐 거라고 거의 확신합니다. 앞으로 내가 당신을 조금이라도 생각하게 된다면, 아마 별것 아닌 듯 어깨를 으쓱하며 지나칠 겁니다.

난 당신을 용서하지 않습니다.

당신은 내게 그저 아무 상관 없는 사람입니다.

지금부터 남은 나날 동안 당신은 다른 모든 사람에게도 상관없는 존재가 될 겁니다.

나는 당신의 삶이 아니라 내 삶을 살아서 기쁩니다. 내 삶은 계속 이어질 겁니다.

-살만 루슈디


루슈디는 자신을 향한 칼에 펜으로 맞서며 언어로 세상을 베고 찌르면서 종교의 관습과 굴레로 겹겹이 쌓여 있는 불평등을 향해 진정한 자유의 힘이 무엇인지 언어의 힘으로 증명해 보였다.

회복 기간 동안 써 내려간 <나이프>에서 루슈디는 이런 말을 한다.


합리주의자의 신앙에서 러셀은 이렇게 말해. '사람은 자신의 열정에 어울리는 신념을 갖게 되는 경향이 있다. 잔인한 사람은 잔인한 신을 믿고, 자신의 잔인함에 핑계를 대기 위해 믿음을 이용한다. 오직 친절한 사람만이 친절한 신을 믿는다. 그리고 그들은 어느 경우에든 친절하게 행동한다.


신성 모독이라는 이유로 살해를 지시하는 자는 신의 제자가 아닌 그저 한 인간에 불과한 살인 교살자일 뿐이다,

어느 시대나 어떤 사회에서도 예술은 논쟁과 비판을 불러 일으키지만 예술의 궁극적 가치를 인간성의 본질에 부합되는 자유와 존엄의 권리로 받아 들여야 한다.

단,그 예술의 가치가 형편 없다면 사람들에게 금세 잊혀 질 것이고 역사에 기록 되지 않을 것이다.

시인 오비디우스는 아우구스투스 카이사르에게 추방 당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로마 제국은 멸망했지만 오비디우스가 세상에 남긴 시는 여러 언어로 번역되어 지금까지 널리 읽혀지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 살해 당하고 불태워지고 소각 되고 쇠창살에 갇힐 지라도 말을 하고 글을 읽을 수 있는 인간의 자유까지 막아 낼 수 없다.

신의 이름을 외치며 칼을 들고 달려든 자에게 생명을 잃을 뻔 했던 살만 루슈디는 폭력이 아닌 펜을 들고 예술로 이렇게 답했다.


언어는 나의 칼이었다.

만약 내가 뜻밖의 칼 싸움에 휘말렸다면

아마도 ‘언어’라는 칼 때문이었을 것이다.

-살만 루슈디(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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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란공 2024-11-11 23: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인/작가의 분노라는 것은 이런 것이구나 싶었습니다~! 오늘도 눈호강하고 갑니다~ 정성이 가득 담긴 글 잘 읽었습니당~ ‘나는 당신을 용서하지 않습니다.’ 시원합니다!

scott 2024-11-19 11:22   좋아요 2 | URL
살만 루슈디 여전히 칼의 공포에 시달리고 있고 눈과 팔의 신경이 끊어져 버렸지만 죽을 때까지 칼 대신 펜을 쥐고 악의 공포를 이겨 내겠다고 합니다
에이 아이 시대에 더 소중해진 펜의 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