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0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그에서 태어난 알렉산드르 알렉산드로비치 류비셰프는 1972년 82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나기 전 까지 곤충분류학자, 유전학자, 동물학자였고 때로는 철학자, 역사학자가 되기도 했다.

이중 어느 하나만 떼어내서는 그를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류비셰프는 다재다능 하다는 수식어를 붙이기 힘들 정도로 박식 했지만 그가 연구하고 탐구 한 것들이 인류 역사를 뒤바꿀 정도로 뛰어 나다거나 노벨상 후보로 거론 될 정도로 대단한 학문적 성취를 이루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가 세상을 떠나면서 남긴 것은 70여권의 학술서적과 1만2천5백여장에 이르는 연구논문, 수천권의 소책자들로 개인 비서나 연구 조교의 도움 없이 오롯이 혼자 이루어 낸 성취였고 연구 결과물이였다.

페테르부르그 대학교에서 물리-재료학부를 전공한 류비셰프는 1911년 스무 살 나이에 학부 과정을 졸업 하고 군 복무를 마치고 나서 1920년대 페름 대학교에서 조교수로 근무하고 사마르 연구소 연구원을 거치는 동안 그가 살았던 세상은 혁명과 전쟁으로 왕조 체제가 무너지고 공산 정권이 들어서면서 기존의 가치와 사상이 무너지는 엄청난 변혁을 겪었다.

1930년 스탈린 체제에서 류비셰프는 레닌그라드 연방식물보호연구소에서 농촌 곤충학을 연구했고 7년 만에 키예프 생물연구소로 부임해서 생태부장으로 재직하는 사이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 했다.

전쟁 기간 동안 류비셰프는 프르제발스크와 프룬제의 연구소에서 근무했고 종전후 울리야노프스크 교육대학의 동물학부장으로 부임헤서 1955년 65세의 나이로 은퇴할 때까지 그곳에 재직했다.

65세 나이로 은퇴 하고 나서 82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그는 하루 8시간 이상 자고 산책과 운동을 즐기면서 틈틈이 공연.전시를 보며 러시아 땅 어디에서든 열리는 학술세미나와 국책사업에 참가 하며 마지막 남아 있는 17년의 세월 동안 총 70여권의 저서와 1백권 분량을 완성하고 세상을 떠났다.

류비셰프가 이루어낸 방대한 성과물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그의 지치지 않는 체력의 비밀은 무엇일까?

세상의 모든 만물에게 똑같이 주어지는 24시간이라는 공평한 시간을 류비셰프처럼 합리적이고 짜임새 있고 활용 했다는 것은 AI시대를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수수께끼처럼 느껴진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이 발발하기 1년 전부터 류비셰프는 ‘시간통계 노트’ 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스물 여섯 살부터 작성하기 시작한 <시간 통계 노트>는 82세로 눈을 감기 전까지 단 하루도 빼 먹지 않고 기록했다.

류비셰프가 시간을 기록한 형식은 간단했다.

- 1964년 4월7일,-곤충분류학:알 수 없는 곤충 그림을 2점 그림.

-3시간 15분 -어떤 곤충인지 조사함-20분

-추가업무:슬라브에게 편지-2시간45분

-사교업무:식물보호단체 회의-2시간25분

-휴식:이고르에게 편지-10분

-곤충분류학 연구 2시간 20분

-논문집필 1시간 5분,편지 3시간 20분

-프라우다지 15분/이즈베스티야지 10분/문학신문 20분/톨스토이 책 1시간 30분...

이렇게 류비셰프는 회계장부를 기록하듯 모든 일을 할 때마다 매일 시간을 계산해 넣었고 심지어 자기 서재에 들어와 시시콜콜 질문하는 딸에게 친절하게 답해 주는 시간도 틈틈이 기록했다.

류비셰프는 이동 중에도 시간을 기록 했는데 버스·기차 타는 시간, 회의 시간, 줄 서있는 시간까지 기록 했고 장기 출장을 갈 때는 읽을 책 목록을 정한 뒤 출장지에 해당 서적을 미리 우편으로 부칠 정도로 시간을 아꼈다.

그는 이렇게 24시간 동안 쌓여간 시간기록을 매달 말 합산했고 연말에는 이를 다시 결산해서그래프와 표를 만들었다.

이쯤 되면 류비셰프는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할 정도로 시간에 매달렸고 매 순간 강박관념에 사로 잡힌 정신 질환에 가까운 사람이라는 의심이 생기지만 그의 가족들에 증언에 의하면 그는 절대로 시간에 얽매이지도 않았고 어떤 일을 해도 시간에 쫓기며 우왕좌왕 하지도 않았고 하루 8시간 숙면을 유지 하며 생애 마지막까지 큰 병치레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일찌감치 류비셰프는 24시간 동안 인간이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은 대략 14-15시간 정도라는 것을 깨닫고 주어진 시간 동안 시간을 쪼개 쓰면서 단 1분도 허비 하지 않고 연구하고 탐구하고 강연하며 규칙적인 수면 패턴을 유지 했고 야외 활동이나 유흥도 즐기며 주변인들까지 살뜰 하게 챙겼다.

이 모든 일을 해낼 수 있었던 건 그가 스물 여섯살 때부터 기록했던 시간을 철저하게 계산과 해서 혁명이 발발 해도 전쟁이 터져도 정권이 바뀌는 동안 뛰어난 절제력과 끈기를 갖고 실천에 옮겼다.

그리하여 후대인들은 그를 향해 <시간을 정복한 남자>라는 수식어를 붙여주었다.

시간이라는 에너지는 단 한번도 운동을 멈춘 적이 없고 태초의 모습 그대로 길들여지지 않은 채 남아있는 이 시간은 끊임없이 흘러가는 컨베이어 벨트 같은 것으로 시간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분배된 재화다.

19세기에 태어나서 20세기 중반에 생을 마친 류비셰프에게 시간은 째깍 째깍 움직이는 시계 초침의 존재 반응처럼 항상 감지할 수 있는 물리적 대상으로 그는 자기에게 주어진 1분 1초에 의미를 부여해서 시간 쪼개 쓰는 기술과 시간을 활용하는 방법을 일찌감치 터득해서 자신의 생의 시간인 82년을 25억8천5백95만2천초로 미분(微分)해버렸다.

“자유롭게 쓰기는 내가 아는 한 글을 써내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며 최고의 만능 연습법이다. 자유롭게 쓰기를 연습하면 그저 십 분간 멈추지 않고 강제로 쓰면 된다. 때로는 좋은 글이 나올 테지만 그것은 우리의 목표가 아니다. 한 주제에 집중해도 좋고 이 주제에서 다른 주제로 가더라도 좋다. 때로는 의식의 흐름을 잘 기록한 글이 나올 테지만 의식의 흐름을 계속 따라가기는 무리일 것이다. 자유롭게 쓰기를 하면 때때로 가속이 붙겠지만 속도는 우리의 목표가 아니다.”

-피터 엘보의 <글쓰기를 배우지 않기> 중에서 


2023년 1월 12일 부터 매일 하루에 두 편 씩 투비컨티뉴드에 글을 쓰고 있다.


https://tobe.aladin.co.kr/t/scott


글을 쓰던 중에 두려움이 불쑥 불쑥 모습을 드러낼 때마다 가장 필요한 건 있는 그대로의 능력을 받아 들이고 용기를 그러모아 중단하는 두려움을 날려 버려야 한다.

창작의 열기가 어느 날 갑자기 서서히 불이 붙어 올라 오지 않는다.


2024년 2월 1일 목요일 부터 새로운 창작물을 시작했다.

'굿바이, 부다페스트.'

https://tobe.aladin.co.kr/s/9373




“글은 시상이 떠올랐을 때 쓰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처럼 기계적으로 써야 한다. 소설가 야마다 도모히코는 은행원으로 일하면서 집필 활동을 했다. 그 역시 기계적인 글쓰기를 강조했다. 휴가를 이용하지 않았다. 휴가 기간 중 여유롭게 글쓰기에 몰입할 수 있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오히려 쉴 때는 푹 쉬고 일상 중에 집필을 위한 시간을 짜냈다. 훌륭한 소설가들은 대체로 다작을 했고 맹목적이고 기계적으로 글을 썼다. 감흥이 생겨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글을 쓰다 보니 감흥이 생긴다.”

-한근태의 '일상의 한 번은 고수를 만나라.' 중에서

2024년 2월 1일 매주 목요일부터 시작된 생애 두 번째 창작 소설 <굿바이,부다페스트>는 12월 26일 목요일 까지 총 48편의 에피소드를 올렸다.

이 기간을 시간으로 환산 하면 1년 365일 매일 하루에 두 편씩 새글을 쓰면서 동시에 48주 동안 창작 소설을 쓴 것이다.


나의 하루의 시작은 새벽 다섯 시 30분 부터다. 새벽형의 인간으로 살기 시작한 건 고등학교에 입학 했을 때 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하루의 시작을 새벽부터 시작하게 되니 나와 함께 시간을 시작하는 무리들 중에 비해 두 세시간 정도의 시간을 쓸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나는 그 시간 동안 계획 했던 공부를 하거나 새로운 학문을 학습했고 때로는 부족한 수면양을 채우기도 했고 전공 과목이 아닌 다른 학문을 공부하는 시간으로도 활용했다. 사회인이 되고나서는 이른 아침에 시작하는 수업을 들었고 관심이 가는 주제를 학습하는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알라딘에 글을 쓰면서 창작을 시작하게 되었다.

2024년은 어느 해 보다 바쁘게 살았다. 2박 3일 일정의 해외 출장을 나간 사이에도 나는 매일 투비컨티뉴드에 글을 썼고 빠짐없이 기획한대로 창작 소설을 써나갔다.

어느 날 불쑥 영감이 찾아 오기를 기다릴 시간이 없었다.

사회적 지위가 올라 갈 수록 연봉의 숫자가 늘어 날 수록 시간적 여유는 점점 사라져갔고 활자로 된 것들 보다 빠르게 검색하고 손 끝으로 터치 할 수 있는 화면을 응시 하는 시간이 더 많아 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동 중에도 책을 펼쳤고 비행기 안에서는 오늘 어떤 글을 쓸지 골몰했다.

언제 어디서든 앉을 의자와 테이블을 발견 하면 노트북을 펼쳐 놓고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에게 허용 되는 시간은 단 몇분 일 때도 있고 길어야 한 시간에서 두 세시간 정도 뿐이다.

2023년 1월 부터 쓰기 시작한 글이 어느 새 1년을 지나 2년 차로 접어 드니 1400개가 넘는 글이 쌓여 졌다.

평균적으로 천자 이상을 넘겨 쓰고 있고 어떤 글은 2천자에서 3천자를 쓰고 창작 소설은 한 회당 만자 가까이 쓰고 있다.


  손가락을 키보드 위에 올려놓는 순간부터 단어가 떠오르고 문장이 쏟아지지 않는다.
가장 먼저 <모닝 페이지>를 쓰기 전  어떤 주제를 쓸 것인가 고민하고, 그 주제에 맞는 사례와 근거를 찾아 마지막 나의 의견으로 글을 마무리한다. 

이렇게 매일 모든 과정마다 사색이 필요하기에, 한 편의 글을 쓰는 과정은 단 몇 분 만에 이루어 지지 않는다.


1400개의 글이 쌓이도록 매일 글을 쓰는 동안 나라는 사람은 전과 달라 졌을까?

매일 모닝 페이지를 쓰는 동안 사소한 감정이 떠오를 때나 소소한 생각에 사로잡힐 때마다 글을 쓰고 멈추지 않고 지금까지 쓰고 있는 동안 내 안에 흩어져 있는 상념들이 차곡 차곡 정리 되어 가고 있다.

모닝페이지

https://tobe.aladin.co.kr/s/2724


손 안에 스마트 폰을 쥐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팔목과 귀에 스마트 폰과 연결 된 기기를 장착하고 이전의 세대들이 누려 보거나 경험해 보지 못한 세상을 수시로 보고 체크할 수 있는 기술 혁명의 엄청난 수혜를 누리고 있다.

하지만 매일 시간에 쫓기며 살고 있고 스마트 폰의 세상이 보여주는 시간에 갇혀 순간의 영상과 순간의 클릭으로 시간을 허비 하며 수시로 시간을 확인하는 시간 강박증에서 벗어 나지 못하고 있다.

어디에서든 넘쳐나는 영상과 숏폼 시대에 단 1회 출연으로 억대의 개런티를 받는 이들이 웃고 놀고 먹고 마시고 즐기는 것에 나의 시간을 허비 하지 않는다.

그들이 나를 대신해서 피 땀 눈물을 흘리며 일해 주지도 않고 대신해서 내 삶을 살아 주지 않는다.


우리는 밝은 대낮에 별을 보지 못하듯, 삶의 신성한 가치가 살아 있을 때는 그것을 망각하고, 삶이 평온할 때는 삶의 가치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영원한 별들이 얼마나 찬란하게 하늘에 떠 있는지 알려면, 먼저 어두워져야 합니다.

-츠바이크


글을 쓰는 데 재능도 영감도 지식도 필요 없다.

쓰는 동안 영감을 떠올리고 쓰면서 지식을 쌓아가다 보면 몰입의 경지에 이르러서 글은 점차 변화하고 진화 해 나간다.

용기란, 두려워하면서도 어쨌든 계속 전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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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4-12-28 04: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번 2024년 바쁘게 보내셨군요 저는 게으르게 지냈네요 요새도 게으르게 지내고, 늦게 일어나고 내일은 조금 일찍 일어나야지 하기를 되풀이합니다 이게 지금만 그런 게 아니기도 하네요 scott 님은 부지런하게 보람있게 하루 하루를 보내시는군요 늘 건강 잘 챙기시기 바랍니다 저도 잘 못하는 거지만... 마음이나 몸이 괜찮으면 괜찮을까 싶지만 그것도 아닌 듯해요 운동을 해야 좀 나을지도... 운동이라고 해봐야 어쩌다 걷기만 하는군요 쓸데없는 말을...

scott 님 주말입니다 주말 편안하게 보내세요


희선

2024-12-28 11: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힐 2024-12-29 00: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작년에 제가 처음 알라딘 서재 활동을 하면서 scott님께서 제 첫 친구가 되어 주셨어요. 정말 친구가 되어 주셔서 감사 합니다. 늘 올려주신 글 열심히 읽고 많은 배우고 있어요. 나중에 기회게 되면 모닝 페이지도 들어가 보도록 할 께요. 2024년 scott님이 보낸 시간의 밀도는 더 없이 커 보입니다. 남은 한 해 잘 보내시고 내년에도 좋은 글 올려 주세요. 감사 합니다.

2024-12-29 01: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12-29 23: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12-31 12: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12-30 12: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12-31 12:58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