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사자머리로 장식된 의자 하나를 가져오더니 이젤 가까이 놓았다. 하지만 의자는 이젤과는 직각을 이루며 창문을 향한 채였다.
"여기 앉아라."
"무얼 하시려고요, 주인님?" 앉으면서 물었다. 혼란스러웠다. 우리는 한 번도 함께 마주 앉은 적이 없었으니까. 추운 것도 아닌데 몸이 마구 떨렸다.
"말은 하지 마라." 그가 창의 덧문을 열자 빛이 내 얼굴로 곧장쏟아졌다. "창문 쪽을 봐라." 이젤 앞의 자기 의자에 앉으며 그가말했다.
창문 너머 신교회의 탑을 바라보며 나는 침을 삼켰다. 점점 턱이뻣뻣해지고 눈이 커지는 것 같았다.
"이제 나를 봐라."
나는 고개를 돌려 왼쪽 어깨 너머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동자가 나의 눈과 얽혔다.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오직그의 잿빛 눈동자가 굴 껍질의 속처럼 참 아름답다는 생각 외에는.
그는 뭔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원하는 걸 주지 못하고 있다는 두려움으로 내 얼굴은 긴장하기 시작했다.
"그리트."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그러나 그가 한 말은 그게 다였다. 내 눈에 눈물이 고였다. 이제 나는 알 수 있었다.
"그래, 움직이지 마라."
그는 나를 그리려 하고 있었다.
- P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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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분히 개선할 수 있는데 사람을 갈아넣어 무마하려는 곳은흔했다.
- P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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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물건을 하나도안 건드리고 방을 치울 수가 있어요?"
"물론 물건들을 옮겨야겠지. 하지만 전혀 건드리지 않은 것처럼다시 제자리에 정확히 두는 방법을 찾아야지. 앞을 못 보는 아버지를 위해서 네가 지금 하고 있듯이 말이야."
- P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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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하는 일이 돌을 멀리 던지는 거라고 생각합시다. 어떻게든 한껏 멀리. 개개인은 착각을 하지요. 같은위치에서 던지고 사람의 능력이란 고만고만하기 때문에 돌이 멀리나가지 않는다고요. 그런데 사실은 같은 위치에서 던지고 있는 게아닙니다. 시대란 게, 세대란 게 있기 때문입니다. 소 선생은 시작선에서 던지고 있는 게 아니에요. 내 세대와 우리의 중간 세대가 던지고 던져서 그 돌이 떨어진 지점에서 다시 주워 던지고 있는 겁니다. 내 말 이해합니까?"
"릴레이 같은 거란 말씀이죠?"
"그겁니다. 여전히 훌륭한 학생이군요. 물론 자꾸 잊을 겁니다.
가끔 미친 자가 나타나 그 돌을 반대 방향으로 던지기도 하겠죠. 그럼 화가 날 거야. 하지만 조금만 멀리 떨어져서 조금만 긴 시간을가지고 볼 기회가 운 좋게 소 선생에게 주어진다면, 이를테면 40년쯤 후에 내 나이가 되어 돌아본다면 돌은 멀리 갔을 겁니다. 그리고 그 돌이 떨어진 풀숲을 소 선생 다음 사람이 뒤져 다시 던질 겁니다. 소 선생이 던질 수 없던 거리까지......(중략) 아무리 젊어도 그다음 세대는 옵니다. 어차피 우리는 다 징검다리일 뿐이에요. 그러니까 하는 데까지만 하면 돼요. 후회 없이." - P3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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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 페미니스트 납셨네."
"페미니스트를 욕으로 쓰는 것도 교양이 부족하다는 증거예요."
- P261

"너 그거 알아? 세상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안전법들은 유가족들이 만든 거야."
"정말?"
"몇백년 전부터 그랬더라. 먼 나라들에서도 언제나 그랬더라."
- P274

충분히 개선할 수 있는데 사람을 갈아넣어 무마하려는 곳은흔했다.
- P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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