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자르는 눈꺼풀처럼 창비시선 357
함민복 지음 / 창비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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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 대한 열등감 고백

시를 읽고 리뷰를 시처럼 쓰고 싶었다. 오랜 독서 여정 끝에 시를 읽고 싶은 욕구가 유독 강한 시기를 만났다. 대학 시절 한 선배가 "너는 운문 스타일이 아니라 산문 스타일인 것 같다"는 말을 했을 때 나는 그 뜻을 알아챘다. '산문 정신'이라는 말처럼 산문은 현실에 대해서 필요한 말은 반드시 한다는 정신이다. 듣는 이로 하여금 불편하게 만드는 자유다. 

우리나라에서는 김수영 시인이, 외국에서는 조지 오웰이 산문 정신을 대표한다. 이에 대비한 '운문 정신'이라는 게 있다면 '자유에 대한 자유'가 아닐까? 객관성, 자유 정신이라는 틀조차도 파괴하고 문법체계도 넘어서는 자유정신은 불편한 정도가 아니라 당혹스럽기까지 하다. 어떤 사물을 틀 없이 바라보는 모습을 견디지 못해 나는 시에서 멀어졌다. 시를 쓸 생각도, 시를 읽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생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시를 '파괴의 학교' 삼아 듣고 배우지 않으면 내 주변에 현실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있을까? 내가 쓰는 언어들이 현실에 우뚝 서 있을 수 있을까? 함민복 시인의 <눈물을 자르는 눈꺼풀처럼>(창비시선 357)을 보면서 내가 시에 접근하지 못했던 또 한 가지 이유를 알게 되었다. 

'명함의 명함은 존재의 어려움'(명함) '서정성이 가장 짙은 거울'(달) 같은 추상어와 관념의 언어를 시어에 포함시키지 않는 고정관념을 들켜 버렸다. 마음속에 시에 어울리는 단어를 솎아내고 있는 나를 발견하자 동양의 오래된 시 <대학>(大學)의 한 구절이 생각났다. 

"조상들이 학교를 만들고 운영한 취지는 지도자 된 자가 몸소 행하고 성찰하는 것을 우선으로 삼고 그 나머지를 학교 과목으로 여기며, 대중들이 저잣거리에서 쓰는 용어를 벗어나지 않는 것에 있다."(<대학> 서문)

한마디로 시에 쓰지 않을 말은 없으며, 중요한 것은 그 모습과 현상에 대한 집중력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가 시를 처음부터 다시 읽어야 하는 까닭이다. 

함민복의 시는 '참여시'인가

대학 시절 문학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참여시 논쟁'이라는 것을 들었던 기억이 있다. 이 논쟁은 시인 김수영이 '사상계'에 발표한 '난해의 장막'이라는 제목의 1964년 시 연평에서 '시인의 양심을 저버린 채 기술만을 구사하는 시를 주지적이고 현대적인 시라고 하는 것은 사기'라 질타하면서 촉발됐지만, 박노해·백무산·김남주 등의 시인들이 작품의 세계를 '직접적인 현실'로 설정하면서 대학생이던 나는 큰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 그 이후에 순수시에 많이 길들여졌다. 그렇게 잠자던 '참여시'의 영혼이 함민복 시인을 통해서 깨어난 듯한 느낌이었다. 

물이 법(法)이었는데
법이 물이라 하네


물을 보고 삶을 배워왔거늘
티끌 중생이 물을 가르치려 하네


흐르는 물의 힘을 빌리는 것과
물을 가둬 실용화하는 것은 사뭇 다르네


무용(無用)의 용(用)을 모르고
괴물강산 만든다 하니


물소리가 어찌 들을 건가
새봄의 피 흐려지겠네(<대운하 망상> 전문)


나는 최근의 한국문학이 격변기이면서 침체기이면서 동시에 전성기라는 여러 가지 이름을 가지고 있는 아주 역설적인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참여'의 관점에서 보면 세 가지 흐름이 보이는데, 함민복 시인의 '참여시'가 한 줄기, 희망버스를 기획한 송경동 시인과 <의자놀이>를 쓴 공지영의 '참여'가 한 줄기, 이도 저도 되지 않는 흐름이 또 한 줄기를 이룬다고 생각한다. 

2008년 촛불이 터졌을 때 작가를 바라보는 시각 자체가 달라져 버렸다. 시대정신을 이끌고 존경을 받는 작가보다는 '글 쓰는 샐러리맨'이라는 실망감이 커졌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함민복이라는 시인과 한국 작가들이 어떤 문학으로 현실과 대결하고 있는지 깊고 넓게 보지 않은 무지의 소치라고 할 수 있다. 그저 시대를 살아가는 독자로서 가지게 된 오해일 수도 있다. 함민복 시인을 만나서 특히 반가운 까닭은 '시와 현실을 둘 다 잃지 않은 시인'을 만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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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가 풀리면 인생도 풀린다, 개정판 틱낫한 스님 대표 컬렉션 1
틱낫한 지음, 최수민 옮김 / 명진출판사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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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애씨는 여러 가지로 잔뜩 화가 난 상태에서 이 책을 읽었다. 박정민씨는 이 책을 읽기 얼마 전 잠투정하는 아이들에게 화를 냈다. 김경훈씨는 이 책을 읽고 친구와 싸우고 나서 1년 넘게 말 한 마디도 섞지 않았던 일이 생각났다고 한다. 구유리씨는 10년 전에 읽었던 이 책을 다시 한 번 펼쳤다. 

틱낫한 스님의 <화>(명진출판사)를 읽은 20여 명의 사정은 저마다 다채로웠다. 나도 이 책을 읽을 당시 화나는 일이 많았다. 어떤 책을 읽느냐도 중요하지만, '언제' 읽느냐도 중요하다. 갑자기 스피노자의 말이 생각난다. 

"음악은 우울한 사람에게는 좋고, 슬픈 사람에게는 나쁘며, 귀머거리에게는 좋지도 나쁘지도 않다."(에티카)


▲  틱낫한의 <화>를 읽고 댓글놀이한 흔적들



틱낫한의 <화>는 화나지 않은 사람에게는 별다른 감흥을 주지 않을 수도 있다. 함께 이 책을 읽은 구유리씨도 "이 책은 누군가에게는 아무 의미 없는 책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다만 '화'가 생겨나는 과정을 차분히 살펴보고 싶은 사람은 발견하는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틱낫한 스님은 '힐링' 코드의 원조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의 출판 시장을 강타한(지금도 강타하고 있는) 혜민 스님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등의 힐링 서적들을 읽고 도움을 받은 독자라면 마땅히 틱낫한 스님 앞에 묵상하라! 나무아미타불관세음보살. 내가 <화>를 잡고 읽은 이유는 화가 무엇에 쓰는 물건이고 어떻게 생겨나고 어떻게 사라지는지를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확실히 '화'는 '속도'와 관련이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와 관련해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만물은 당연히 만물로부터 만들어지지만 단지 빠르고 늦음과 어려움과 쉬움이 다를 뿐이다. 예컨대 서로 맞대어 있는 것은 빠르게 변모할 것이며, 그렇지 않은 것은 늦게 변모할 것이다."(생성과 소멸)

틱낫한 스님이 화를 다스리는 방법으로 제안한 것들의 공통점은 '느림'이다. 의식적으로 호흡하기, 의식적으로 걷기, 그윽한 마음으로 감싸안기, 화를 이해하고 그 속에 있는 고통을 들여다보기, 화를 내고 있는 사람을 연민하기. 마치 고요한 산숲에 숨어 있는 사찰과 같다. 역시 불교는 느림의 종교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현대인들의 일상적인 속도를 가지고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방식이다. 마치 차를 몰고 가다가 갑자기 스쿨 존을 만났을 때 브레이크를 밟으며 의식적으로 속도를 낮추듯 것처럼 말이다. 이것이 <화>가 이야기하는 핵심적인 메시지다. 그런데 왜 이 짓을 해야 하는가? 틱낫한 스님은 자유롭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당장 화가 나를 잡아먹어 버리거나 '화의 노예'로 만들어 버리기 때문에.

"자유인이 아닌 사람은 진정으로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니다." (55쪽)

<화>를 읽을 때 도움이 될 만한 TIP

당장 화가 난 사람에게는 충분히 설명을 했으니, 이번에는 책을 즐기는 독서가에게 주의사항을 일러두고 싶다. <화>는 스님, 그것도 엄청 유명한 스님이 쓴 '교리서'의 일종이다. '에세이'가 아니라는 점에 유의하기 바란다. 교리서라는 게 무엇인가? 계몽할 목적으로 쓴 글이다. 그래서 '가르치려 드는 글'에 유난히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분들에게는 불편할 수 있다. 

교리를 정해 놓고 거기에 살을 채워 나가는 게 <화>의 골자다. 거기다 <화>는 에세이와 자기계발서, 힐링 서적의 특징을 배합해 독특한 연출력을 선보이고 있다. 하지만 교리서는 교리서다. 우선 '명상과 호흡, 걷기 반복' 등과 같은 실천적 방법을 '반복적'으로 제시하기 때문에 지루할 수 있다. 또 사례가 나오는 부분은 '팩트'지만, 현상에 대한 인문학자의 관찰이라기보다는 교리에 맞는 사례를 소환한 느낌이다. 지적인 즐거움을  기대했다면 실망할 수 있다. 이런 생각을 나만 하는 줄 알고 쓸까 말까 망설였는데, 함께 읽은 오일수씨도 같은 반응을 보였다.

"솔직히 큰 감동이나 새롭게 다가오는 것이 별로 없었는데요. 명상과 마음챙김과 관련된 책들을 많이 읽어봤는데 방법들이 거의 대동소이하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다만 화를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든 비유는 기가 막힐 정도로 놀라웠다. 특히 화를 '아기'에 비유하고 화난 사람을 '엄마'에 비유해 아기가 울면 엄마가 모든 일을 멈추고 달려가 안는 것처럼 화를 아기처럼 안으라는 말은 가슴에 깊이 남았다. 그리고 '선풍기 비유'도 절묘했다. 선풍기를 끄면 날개가 한동안 돌아가다가 비로소 멈추는 것처럼 화 역시 당장 멈출 수는 없으니 '연착륙'을 시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에는 어디서 써먹기 좋은 말들이 많이 담겨 있다. 

이 밖에 함께 읽은 분들이 제안한 팁(TIP)들을 소개할까 한다. 김경훈씨는 곁에 두고 틈틈이, 특히 화날 때마다 거울을 보듯이 꺼내서 읽으면 효과가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틱낫한 스님도 화가 났을 때 거울을 보라고 말했다. 김은식씨는 화를 품고 긍정적인 에너지로 만들어야 한다는 틱낫한 스님의 말에 덧붙여 "그러기 위해서는 늘 깨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현상과 거리를 두고, 내 마음과 거리를 두어야 자세히 보이기 때문이다. 거리를 둔다는 것은 매몰되지 않고 깨어있다는 말이니까. 원정은씨는 '농부'에 비유했다. 

"농부는 이미 수련자인 것 같아요. 늘 만지는 흙과 생명체들이 화를 흡수할 것 같아요. 너무 힘들 때 자연으로 나가면 누그러지는 경험을 누구나 하잖아요. 자연을 가까이 하는 삶도 화를 다스리는데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박정민씨는 콕 집어서 한구절을 부적처럼 사용하라고 제안했다. "화를 내는 것도 하나의 습관"이라는 구절이다. 화가 나는 시점에 이 구절을 복기하고 부적처럼 마음 어딘가에 붙여 놓는다면 화가 커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나도 얼마 전 아내와 크게 싸운 일이 있었는데, <화>의 내용을 바탕으로 복기를 해보았다. 왜 화가 커졌을까? 정답은 '레이스'에 있었다. '레이스'란 도박에서 상대방이 돈을 걸었을 때 판을 키우기 위해서 두 배로 더 베팅하는 행동을 말한다. 아내가 화를 냈을 때 내가 만약 화를 받고 화를 키우지 않는다면 화가 커지는 일은 없다. 그래서 나는 똑같은 상황에서 화를 내지 않고 무작정 밖으로 나가서 산책을 했다. 정말 효과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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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허황될지 모르지만 오랜 연구의 대상이 바로 시간을 뛰어넘고 살기였다. 지금까지 정리된 것은 다음과 같다.

1. 인생을 80이라고 한다면 그보다 100배 정도 되는 시간을 탐험하면 나의 1초의 농도가 짙어지는 것을 느낀다. 나는 역사적인 1초를 살게 되기 때문이다. 결국 책에서 시간을 버는 게 가장 빠르다.

2. 물리적인 24시간과 무관하게 잘 지내는 방법은 얼마든지 많다. 어떤 경험과 감각을 시간 위에 올려놓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24시간을 누릴 수 있다.

3.사람이 평생 동안 노력해야 하는 것은 다른 게 아니라 시간에 대한 사용 권한이다. 만약 시간 사용을 반납해야 한다고 하더라도 반납 기한을 정해야 한다. 무턱대고 시간의 사용권을 양도해 버리면 결국 0이 되어 돌아온다.

4. 만화 드래곤볼에는 ‘시간과 공간의 방’이 나오는데, 거기서의 1년은 밖에서의 하루와 같다. 죽음을 임박해 두거나 극적인 순간에는 누구나 시간과 공간의 방 경험을 한다. 훈련을 하면 일상에서 그 방을 불러낼 수 있다. 다만, 자신이 살고 있는 시간에 대한 집중력이 필요하다. 현대인은 자신들이 매달려 있는 시간에 대한 집중력이 상당히 떨어져 있다. 먹기 위해 사는 것과 같이, 단지 시간을 죽이기 위해 사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5. 나누는 시간과 함께 하는 시간을 많이 만들수록 시간에 대한 감각과 집중력이 길러진다. 사랑하는 사람이나 가족과 함께 경기장에 함께 가서 응원을 하거나 함께 놀이를 하면 영원한 순간을 공동으로 소유한 셈이 된다. 그 순간은 일상에서 반복적으로 환기된다. 그 때 비로소 헛되이 보내는 시간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다. 

6. 화학에서 ‘들뜬 상태’라는 용어가 있는데 자신의 짝을 기다리는 결여의 상황이다. 미디어는 현대인을 세뇌시켜 만족을 모르고 항상 배고프고 내몰린 감정을 느끼도록 부추긴다. 우선 자신을 이유 없이 조급하도록 하는 공기를 느끼고 이를 걷어내면 지금까지 나의 손을 잡았던 시간의 아름다운 얼굴을 비로소 볼 수 있게 된다.

7. 당신이 연출가가 되었다고 생각해 보자. 일정한 시간 안에 담을 수 있는 재료는 무궁무진하고, 자기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쓸만한 재료도 차고 넘친다. 시간 안에 이런 게 많이 섞여 있을수록 생생해진다. 우리가 기대고 있는 시간은 지구의 모든 생명이 똑같이 가졌던 속도다. 눈을 감고 수많은 시간의 연출자들을 느껴 보라. 기록된 자들은 마냥 평범하게 시간을 떠나보내진 않았다. 시간이 자신을 떠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영원한 사랑의 기억을 남겨두려고 인생을 걸었다. 그 열정을 느끼라는 것이다. 당신은 지금 시간을 함께 만드는 공동 연출가로서 서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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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1일 오전 10시에 합정역에 있는 창비 인문까페에서 책놀이 앵콜 강연을 했다.


책을 내고 맨 처음 강의를 창비 인문까페에서 했는데, 이번 앵콜 강의는 스무 번째 강의였다. 그 동안 참 많이 돌아다녔다. 대구와 제주 등 지역 강연도 많이 했고, 경북에서도 강의를 할 예정이다.

지난 번 창비 강연 때는 육아철학에 관한 이야기를 담았는데, 강의를 들은 엄마들의 반응을 들어 보니 실제적인 놀이 방법에 목말라 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책놀이책에 담긴 놀이와, 강의를 하면서 새로 만든 놀이를 모두 모아서 실제 체험과 함께 방법을 알려드렸다. 그래서 제목도 “책놀이 선물세트”였다.

강의가 끝나고 인사를 하시는 엄마들이 많았다. 실제적인 방법들을 많이 알 수 있어서 좋았다는 반응을 보여주셨다.

역시 일어나게 하고 시키고 직접 경험하게 하는 것만큼 좋은 강연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목사님은 여름 방학 때 책놀이 강의를 초대하고 싶다며 명함을 받아 갔고, 한 엄마는 서산에서 새벽부터 챙겨서 왔다고 말했다. 안 그래도 서산 도서관과 어린이 도서관에 다녀왔는데 반가웠다. 서산 어린이도서관에서 강의하게 되면 좋겠다고 말씀드렸더니 참 좋아하셨다.

비록 지금은 서울과 수도권 강의가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지만 지역에 있는 가족들을 많이 만나고 싶다. 그게 책놀이책의 취지이기도 하니까.. 아무튼 즐거운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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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함께 자라는 부모 - 소아정신과 의사 서천석의
서천석 지음 / 창비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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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년 동안 육아와 아동심리 등 육아 관련 심리학 책을 집중적으로 읽게 되었다. 정보의 객관성 때문에 점점 상담가나 전공자, 전문의가 쓴 책을 선호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진한 아쉬움이 배어 나왔다. 이름만 들어도 다 아는 육아 전문가, 아동 심리 전문가의 책들은 전문성은 있지만 뭔가 하나 부족해 보였다. 


세상의 모든 일이 그렇지만 하나만 가지고는 외롭다. 전문성을 가지고 오랫동안 현업에서 연구한 것은 분명히 좋은 기술이라고 할 수 있지만, 대중들과 만나는 기술은 조금 더 특별해야 한다. 특히 우리나라의 육아서가 가지고 있는 대체적인 특징은 '철학적 바탕'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이 점에 대해서 두 가지 이유를 들 수 있는데, 첫 번째는 보편타당하다고 인정하기 어렵다. 예컨대 육아서에서 단골로 읽히는 메시지인 "마음을 읽어주되 단호해야 한다"만 봐도 특정한 상황에서 아이에게 적용하려 하면 애를 먹는다. 


아이와 시시각각 만나면서 마음을 읽어줘야 할 때가 있고 단호해야 할 때가 있다. 마음을 읽어준다고 하더라도 벽을 만나고 단호하게 대해도 벽을 만난다. '벽'이란 아이의 마음이다. 벽을 만나면 돌아가야 하는데,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얼마 안 가 벽을 만날 확률이 크다. 두 번째 특징은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존감을 떨어뜨리게 하거나 의존하게 만들기 십상이라는 점이다. 


'OOO 식 육아 프로그램'이라는 이름을 표방하는 대부분의 육아서가 보이는 현상이다. 이 쯤에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점은 우리가 육아서를 읽는 까닭이다. 내 아이와 즐겁게 대화하기 위해서 육아서를 읽는다. 그런데 육아서를 열심히 읽고 내 아이와의 관계가 개선이 되었는가? '엄마가 육아서를 읽어서 내가 좋아진 건 뭐지?'라고 아이가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할까? 이건 뭔가 이상하다.


나의 사랑스러운 아이를 대하기 위해서 메시지를 주는 책이라면 마땅히 '육아철학'의 관점에 서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감히 '좋은 육아서'의 조건을 말하자면, 휴머니즘이 느껴져야 하고 부모와 아이를 모두 안심시켜야 한다. 작가와 독자가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나기 위해서는 생략하거나 과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느낌을 전달해야 한다. "엄마가 알아야 아이가 산다"고? 엄마에게 근거 없는 부담을 심어주면, 부담감이 고스란히 아이에게 간다. 부모님을 행복하고 자유롭게 만들어야 감정이 아이에게 전달된다. 이런 조건을 만족시키는 육아서는 이제까지 찾기 어려웠다. 그런데 간만에 괜찮은 육아서를 한 권 만났다.



철학적 바탕과 인간적 따뜻함, 시적인 압축미가 느껴지는 성숙한 육아서


<하루 10분, 아이를 생각하다>의 저자 서천석 원장이 쓴 <아이와 함께 자라는 부모>(창비)를 보면서 마음이 편안하면서도 지혜로운 말을 들었을 때의 쾌감이 전해져 온다. 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심미감'이라는 본능이 있다고 믿는데, 이 책은 육아에 대한 심미감을 자극할 것이다. 


내 눈길을 끈 것은 책에 표시된 한줄 이력이었다. "정신과 의사이던 그는 아이가 태어날 무렵 소아정신과 의사가 되기로 결심하였다."(<하루 10분, 내 아이를 생각하다> 책날개) 나 역시 '어린이'와 '가족'에게 남은 인생을 걸기로 결심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첫째 민준이(5세)를 낳고서부터기 때문이다. 남자는 결혼을 하는 것보다는 아이가 태어났을 때 진정한 변신을 한다고 하는데, 아이를 낳고 변신한 남자를 신뢰한다.


<아이와 함께 자라는 부모>는 '시(詩)'라는 형식으로 서술된 독특한 책이다. 주장을 제기하고 임상사례, 또는 갖가지 인용를 덧붙이는 기존의 책들과 차별적인 대목이다. 거기다가 아포리즘을 곁들였다. 사례와 근거가 별로 없지만 설득당하는(?) 데 별 어려움이 없었다. 마치 류현진이 벨로시티(구속, velocity)는 낮지만 체인지업과 슬라이더와 커브볼의 제구로 메이저리그를 평정하듯 '시와 아포리즘'이라는 무기는 육아서의 방향에 획을 그었다고 생각한다. 


트위터와 네이버캐스트, 한겨레 연재 등을 통해서 대중과 어떻게 호흡하는지 잘 아는 서천석 원장은 '미디어' 활용 기술이 대단히 높았다. 때문에 트위터에서 커다란 사랑을 받을 수 있었다. 산문이 아니라 운문을 씀으로써 육아의 세계가 사실은 '감성'이라는 사실을 정확하게 포착한 점도 놀라웠다. 우리가 육아서의 논리를 따라가는 사이에 아이와 마주하는 순간을 놓쳤다는 점을 떠올려 보라.


<아이와 함께 자라는 부모>는 나에게도 큰 선물이다. 부모교육서 <책 놀이 책>을 썼다는 이유로 날마다 부모님들을 만나서 어떤 이야기를 할까 고민하던 생각들이 성숙한 언어로 정리돼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을 통해서 '성숙한 육아서'를 제대로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성숙한 육아란 가족 구성원 모두의 행복과 자유를 돕는다. 특히 기존 육아서에서 빠진 '부모의 행복, 부부의 행복' 부분을 강조한다.


힘들게 아이 키우는 자신을 비난하지 마세요. (18쪽)

아내가 뭔가 부탁하면 가능한 들어주고 싶다는 태도를 보이세요. 사정상 충분히 못 도와줄 때는 미안하고, 고맙다고 표현하세요. (94쪽)

자신에게 엄격한 만큼만 아이에게 엄격하세요. 자신에게 허용하는 만큼은 아이에게도 허용하세요. (115쪽)


이 책을 읽으면서 부끄러운 마음도 들었다. 부모님들을 죄인으로 만들지 않고, 자유롭게 만들려고 했던 말들이 오히려 자유를 억압하진 않았을까? 출판사에 따르면 원래 이 책은 몇 달 전에 출간이 되기로 예정돼 있었는데, 작가가 문장을 계속 붙잡고 탈고를 하지 않았다고 귀띔했다. 문장 하나 하나가 가볍게 쓰인 것이 아니다. 시를 쓴 시인의 마음 같은 것이 느껴졌다. 그것은 아이를 직접 낳아보고 아파보지 않았다면 모를 일이다. 그렇지 않다면 아래의 문장이 나올 수 있었을까?


아이가 멋진 예술가가 되었으면 하는 꿈을 꾸는 부모들. 감성의 고향은 어두운 곳입니다. 감성은 그런 어둠을 이겨 내려 자기 마음에 피워 올린 모닥불입니다. 너무나 절실해서 꺼지지 않는 가냘픈 온기가 감성입니다. 누가 가르친다고 배울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2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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