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에는 나에 대한 그 아이의 감정이 잘 나타나 있다. 그래도 반가웠다. 애증은 서로 교차하는 거니까 무관심보다는 낫지 않은가?



OO아, 책벌레 선생님이 글 남긴다. 

너랑 친하게 지내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학교에서는 그렇게 되기 어려운 것 같아. 교실 모든 친구들 신경쓰다 보니 너랑 얘기 많이 못해서 미안하다. 

그 대신 너한테 '맛있는 거 사줌'권 한 장 줄게. 편한 시간에 연락해라. 그땐 맛난 거 사줄게. 010-XXXX-XXXX. 책벌레 오승주 샘 연락처다. 연락 기다릴게. 

나를 싫어하는 학생이 둘 있었다. 한 명은 나의 실수로 인해서 나랑 멀어지게 되었고, 한명은 그냥 싫어하는 아이다. 마지막 수업을 한 번 남겨둔 어제 아이들에게 글쓰기에 도움되는 책을 한 권 소개했다. 글 고쳐쓰기 연습을 시키자 그 아이가 활동지 한쪽에 그린 그림을 봤다. '책벌레'라고 적혀 있었다. 나를 그린 듯했다. 이 그림을 보자 이 아이와 관계를 잘 매듭져야겠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미움'도 역시 하나의 감정이니까 아직은 희망이 있는 것이다. 어차피 활동지는 쓰지 않을 거니 그 친구의 볼펜과 종이를 가져다가 손편지를 썼다. 그리고 쉬는 시간에 복도에서 마주쳤을 때 "연락해"라고 말했다. 아이는 예의 냉랭한 표정을 지으며 멀어지는 나를 향해서 "사양"이라고 조그맣게 말했다. 하지만 손편지가 그 아이에게 미친 파장은 생각보다 컸다. 이미 아이들 사이에서 소문이 다 났고, 담임선생님에게까지 전달되었다. 아이가 편지를 받자마자 담임선생님께 가서 자랑한 것이다. 


이 아이는 나의 '예의 선생님'이다. 어른과 선생님에 대한 불신과 불만이 커서 살얼음판에 선 것처럼 아슬아슬했다. 한 학기 내내 친해지려고 시도했지만 그렇게 될 수 없었다. 내가 좀 더 비굴해져야 했는데, 그것은 친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의 긴장은 계속 있었고, 한 동안은 그 아이가 내 꿈을 지배한 적도 있었다. 아이의 담임선생님이 부담을 느낄 정도였으니까. 『논어』에서 증자가 맹경자에게 해준 말이 생각났다. "새가 장차 죽으려 할 때에는 울음소리가 애처롭고, 사람이 장차 죽으려 할 때는 그 말이 착하다"는 말로 시작하는 대목이다. 이제 이 아이와 헤어질 때가 되자 나도 착한 마음이 생겨서 손편지를 쓰기에 이르렀으니 같은 마음이 아니겠는가?



얼굴을 움직일 때는 상대가 공격하거나 거만하게 굴지 않도록 해야 하고, 정색을 해야 할 때는 굳은 신뢰가 바탕에 있어야 하며, 말로 나타낼 때는 상대방이 깔보거나 배척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이 외에 세세한 부분은 담당자에게 맡기면 됩니다. 

- 『논어』, 「태백」


이 구절은 해석의 여지가 분분하다. 주자와 리링 선생은 1인칭으로 해석했는데, 나는 오규 소라이가『논어징』에서 주장한 해석을 따라 2인칭으로 해석했다. 증자는 공자보다 46세 어리며, 맹경자는 맹무백의 아들이다. 계손씨, 숙손씨와 함께 노나라의 '삼대천왕'이다. 그래서 '삼환'이라고 불렀다. 그들의 기세는 노나라 왕을 능가했다. 『논어』에서 '증삼'은 '증자'로 표현될 때가 많았고, 공자가 부를 때만 이름을 썼기에 증자 제자들이 책의 편찬에 큰 영향력을 미쳤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논어』에서 증자는 분위기를 일시에 가라앉히는 역할을 한다. 요즘 청소년들이 본다면 '쓸데없이 진지 빤다'고 할지도 모른다. 나도 논어를 읽다가 증자가 나오면 자세를 고쳐 앉고 경청한다. 하물며 증자의 유언 앞에서랴! 나는 증자의 세 가지 경고를 다 어겼다. 손편지의 주인공은 이를 고발했다! 그 아이는 내가 얼굴을 보았을 때 거만했고, 공격적이었으며, 내가 정색해서 이야기할 때는 나를 신뢰하지 않았다. 내가 말을 꺼내면 깔보고 배척했다. 게다가 나는 그 아이의 세세한 부분에만 집착했다. 증자에게 얼굴을 들 수가 없다. 그래서 반성문으로 쓴 것이다. 


OO이에게. 

OO아 안녕. 수업시간에 긴장된 분위기 만들어 미안하다. OO이가 충격 받았다고 들었다. 그 때문에 이 수업이 싫어졌을 것 같다. 나라도 싫었을 것 같다. 미안. 

너 덕분에 교실에서 긴장된 분위기를 안 만들려고 노력하고 반 전체에게 화 내는 일은 하지 않게 되었다. O이가 많은 아이들에게 도움을 준 셈이다. 하지만 그러면 뭐하니? OO이는 이미 내 수업에서 마음이 떠났는걸. 후회해도 소용없다. 

ㅡ 오승주 샘


공교롭게도 두 아이는 같은 반이다. 앞서 손편지를 썼던 아이는 수업에 참여하지 않으면서 불만스런 말을 계속 했기 때문에 수업 시간에 일촉즉발의 상황이 벌어졌고, 그런 상황이 이 아이에게 준 충격이 컸다. 이 아이는 순전히 나의 실수와 부족함에 의해서 멀어지게 되었으니 할 말이 없다. 이 손편지 이야기도 담임선생님께 그대로 전달되었다. 아무리 담임선생님이라지만, 그 선생님은 정말 아이들 마음의 저수지 같은 분이다. 많이 배웠다. '왜 말했어요?'가 그 아이의 일성이었다고 한다. 


기막힌 우연이라고 해야 할까? 이 아이의 마음을 전달받은 경로가 담임선생님뿐이 아니었다. 시험 기간에 학교 주변 공공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다가 우연히 말을 건 사서 선생님께 나에 대한 안 좋은 인상을 여과 없이 전달한 것이다. 나는 두 배로 부끄러웠다. 어떤 기대를 하고 손편지를 쓴 것은 아니다. 이 아이들에게 나의 미안함을 전달하고 싶었다. 미안한 마음을 받아줄지 어떨지는 아이들 마음에 달린 것이다. 근신하며 처분을 기다릴 뿐이다. 그리고 증 선생님(증자(曾子)는 증씨 선생님이라는 뜻이다) 죄송합니다. 앞으로 잘못하기 전에 선생님의 말씀에 더 귀 기울이겠습니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7-12-15 11: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15 11: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7-12-15 14: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 난 두 아이라고 해서 너의 아들내미들이면 어쩌나 했다.
책만 읽고 안 놀아주는 뭐 그런 거...ㅎ

선생님이 참 어렵긴 해.
그래도 그렇게 노력하는 선생님이 있다는 거
언젠간 아이들도 알게 될 거라고 믿어. 힘내라!^^

승주나무 2017-12-15 19:07   좋아요 0 | URL
내 아이들은 서로 좋아요^^

선생님의 양보는 10년이나 20년쯤 뒤에 기억되지 않을까 합니다.
욕심은 안 부릴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