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에는 인간과 같은 지능의 생물이 살고 있을까, 그렇지 않을까?
- 살고 있지 않아여, 쌤!!
왜?
-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았자나여
그건 아직 밝혀지지 않은 것일 뿐이지. 그것이 '그들이 사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담. 내가 식견이 부족하여 공맹의 도에 도달하지 못한 것이지, 공맹의 도가 없다고 주장할 수는 없지 않겠어?
- 음.. 그러네여. 그러면 쌤의 물음이 잘못된 거 아닌가염. 처음부터 '생물이 산다는 것이 밝혀졌을까, 그렇지 않을까?'라고 물어야져
녀석, 서당 첨삭을 며칠 받더니 제법 날카로워졌군. 그래 친구! 정말 중요한 것은 '답'보다는 '질문'이야. 질문이 잘못된 것을 모르면 영원히 답을 잃어버리고 말지. 하지만 위의 질문은 이상할 거 없어. 그리고 네 말대로 질문했다면 얘깃거리가 되었을까? 이 세상의 영화나 온통 재미있는 것들은 모두 '재미 드럽게 없는 것'으로 옷을 갈아입었을 거야..ㅋㅋ
- 그건 그래염
우주에 지능 생명체가 존재하느냐, 존재하지 않느냐라는 질문은 어떤 관점을 가지느냐에 따라 가치가 달라진단다. 우주에 지능 생명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면 '영원히 불안한 상태'에 빠지게 된단다. 왜냐하면 억만 년 중에서 누군가 생명체를 발견한다면 그 말이 '거짓말'이 되어버리기 때문이지. 하지만 생명체가 살고 있다고 주장한다면 그 시간만큼을 버는 거지.
- 우와 대단한 차이네여. 하지만 그 사람은 살아생전에는 빛을 못 볼 것 같아요.
그건 그렇지. 하지만 그것은 그 사람의 일상으로 돌아갔을 때의 이야기야. 그 사람은 죽었어도 그 사람의 '말'은 살아남아 역사를 이룬단다. 물론 그 말에 그 사람의 이름이 걸려 있으려면 그 사람이 근거를 대야 하겠지만 말야. '천동설'이 유럽을 천 년간 지배하다가 '지동설'의 축복을 받게 되었지만, 여기에 편승해 이름이 알려진 사람이 바로 '아리스탈코스'라고 한단다. 당시의 천동설은 '프톨레마이오스(프톨레미)'가 완성했는데, 그 때의 사고방식과 과학기술에 비교해 볼 때 '천동설'이 훨씬 과학적이었지. 그것을 결정적으로 역전시킨 사람이 '뉴튼'인데, 그는 여기다가 '힘'이라는 지수를 포함시키는 혁명적인 발상의 전환을 가져왔지. 때문에 그때의 '지동설'(아리스탈코스)과 오늘날의 지동설(코페르니쿠스 등)은 전혀 다른 성격을 가졌다고 할 수 있어. 하지만 천 년이 지나니까 아리스탈코스가 '묻어가게' 되는 것이지..암~
- 음. 글쿤요. 쌤, 우리 역사에 이름을 남겨 봐요
나는 '이름'보다는 오히려 '익명'으로 남고 싶구나. '이름'의 역사는 유한하지만, '익명'의 역사는 영원하단다. 이것 역시 관점의 가격 차이이지. 예컨대, 예전에 노무현 대통령이 한 '10분의 1 발언'이라고 기억하니?
- 한나라당의 불법자금의 10분의 1이 되면 뭐 어쩌겠다고 한 말 말에요.
녀석 참 기억력 하나는 수준급이구나. 거기서 '있다'(10분의 1 이상)와 '없다'(10분의 1 이하))의 관점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어느 것이 더 유리할까?
- 뭐 '있다'가 더 유리하지 않을까요. 돈은 하루하루 새끼를 치고, 10분의 1은 점점 가까워지잖아요.
그렇지 바로 그게 관점의 가격 차이란다. 새만금 판결 등 우리 사회는 매우 많은 쟁점들이 있고, 면접 같은 데 가거나 논술을 작성할 때도 너는 그 중 하나의 관점을 선택해야 한단다. 하지만 어떤 관점을 택해야 할 말이 많고 유리할지를 잘 판단해야 한단다. 그리고 현대의 논술이나 구술은 자신이 하나의 관점뿐만 아니라 대립되는 관점에 대한 이해도 요구하기 때문에 각 관점의 가격 차이뿐만 아니라 각 관점에 따르는 장단점 등을 면밀히 검토하도록 해라.
- 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