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을 나서며 필진으로서 책마을이라는 책 커뮤니티 회원들을 위한 마지막 칼럼이었습니다. 군대의 냄새가 물씬 풍길 것입니다. 저는 군인이자 이론가이기도 했거든요. 지금은 사회인이자 실업자이자 이론가입니다.^^



 


이 글은 아래 저의 칼럼 '군대이야기' 중 60점 과락 이론 부분을 자세하게 다룬 글입니다. [이론가]는 널리 통용되는 이론도 아니고, 저명한 이론가의 이론도 아니지만, 세상을 나름대로의 시선으로 관찰하는 한 방편이라고 이해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아인슈타인이 이에 관해 좋은 말을 했군요.


이론이 비로소 사람들이 무엇을 볼 수 있는가를 결정한다


만만치 않은 세상을 살아가는데 그만한 나름대로 준비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억지주장인 이론을 마구 만들어보았습니다.

60점 과락 이론은 '벌'을 주제로 다룬 이론이어서 협소한 면이 없지 않아 있으며, 벌에 관해서 뿐만 아니라 좀더 넓게 활용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며 그에 관한 직접적인 글을 쓰려고 합니다.


60점 이론은 사실 무관심 지수


60점 이론은 사람과 사람의 무관심을 나타내는 지수입니다. 우리가 알 수 없는 어떤 사람으로 인해서 벌을 받은 적이 거의 없기 때문에 이것은 문제될 것이 없었습니다. 예외적인 예로 군인이 휴가를 나와서 길을 걸어가고 있는데, 건물 위에서는 어떤 사람이 자살을 결심하고 뛰어내렸습니다. 결국 자살자는 죽지 못하고, 걸어가던 군인이 봉변을 당해 세상을 떠났다는 안타까운 실화가 이 이론의 예외가 되겠죠. 또한 뜬금없이 맞은편 도로에서 만취한 운전자가 소풍을 마치고 귀가하던 행복한 가족들을 정면으로 받아서 일가족이 몰사한 더더욱 안타까운 경우도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우리들은 서로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나의 점수 30점과 알 수 없는 상대방의 점수 30점 해서 60점의 균형으로 벌을 면하게 되는 것입니다. 벌이란 군대에서 줄 수 있는 벌을 포함하여 여러 가지 안좋은 경험이 될 수 있겠죠.


만남으로 인해서 도전받는 무관심 지수


군대란 사람과 사람이 자의와는 상관없이 관계를 맺어야 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당연히 60점의 무관심한 균형은 상대방에 의해서 도전받게 되어 있습니다. 개중에 끝까지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사람들은 60점 균형을 유지하며 별 탈 없이 잘 지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군대란 조직이고 조직 내에서는 함께 해야할 임무도 있고, 함께 한방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무관심은커녕 마음의 상처를 입지 않으면 다행이겠죠. 때문에 현실적으로 60점 균형이 무너짐에 따라서 이에 대한 대처가 필요합니다.


좀 구체적인 사례들


가혹행위로 벌을 받는 사람들은 그가 한 악행 때문에 처벌받는 것이 아니라, 좀더 정확히 말하면 60점 이론에 의해서 벌을 받는 것입니다. 때로는 악행을 해도 그 분위기가 용인할 때는 온갖 악행이 벌을 받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요즘의 분위기나 앞으로의 시대가 부당함이 해소된 완전무결한 균형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악행의 관습은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갈 겁니다. 때문에 어제는 용인되었던 것들이 오늘에 와서 벌로써 다가올 수도 있는 것이죠. 암.

규정에 의해서 벌을 받는 사람들의 지수를 살펴보면 최고의 점수는 50점에서 더 나아가도 55점을 넘지 않습니다. 그 점수의 대부분은 자기가 자기에게 매길 수 있는 50점입니다. 다른 사람은 그에게 피해를 보았기 때문에 점수를 주지 않습니다. 30점을 기본적인 무관심 지수라 했을 때 상대방이 그에게 벌을 준 것이나 다름 없지요. 때문에 그 사람이 아무리 잘 했다고 생각해도 그는 벌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 경우는 당연한 결말이나 이 결과로 가는 과정은 중요합니다. 즉 상대방이 나에게 '점수'를 부여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게 됩니다. 상대방은 우리에게 후한 점수를 줄 수도 있으나, 점수를 아예 주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제 이 이론에서 '상대방'에 대한 개념이 다가오십니까.


좀 안타까운 사례들


악행을 해서 그에 대한 벌을 받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보다 좀 복잡하고 안타까운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실제로 이 이론은 그런 사람들을 위해 태어났습니다. 좀 잘해보기 위해서 상대방을 다독이고 이끌고 하는 노력이 상대방에서 굴절되어 비쳐졌다면 벌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상대방과의 관계는 언제나 신뢰를 바탕으로 해야 합니다. 여기서 피할 수 없는 것은 나의 '일방적인 노력들'이 나를 벌에 빠뜨릴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 때의 점수는 악행의 결과보다 오히려 낮은 분포도를 갖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불행한 경험을 한 사람들은 악행을 하는 사람보다 자신에게 저조한 점수를 부여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때의 벌은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당신의 후임이 공개적으로 당신의 비난을 하고 다닐 수도 있고, 당신을 아예 무시하거나 반감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며, 악의적으로 당신을 비난하는 글을 올려서 당신을 궁지에 빠뜨릴 수도 있습니다.


동양의 경전에는 이런 사람들을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친구에게 바른 소리를 하는 것은 옳은 행동이다. 그러나 너무 자주 그런 말을 하는 것은 꺼려야 한다. 인간은 감정에 영향을 받는 존재이기 때문에 당신의 본심이 다가가기도 전에 '의'가 먼저 깨질 수가 있다.'<출처, 바가바드기타, 논어 등>


한비자의 대표적인 글에서도 이런 말이 나옵니다. 군주에게 유세하는 어려움을 적은 글(세난說難)인데, 당신이 군주의 행위를 칭찬하며 드날릴 때는 군주는 겉으로는 좋아하면서도 당신을 아첨만 일삼는 무리로 분류할 것이고, 반대로 군주에게 천하의 이치를 모아 곧은 소리로 가르치고자 할 때는 겉으로는 가르침을 달게 받는 척 해도 당신을 경계할 것입니다.


당신은 먼저 당신의 세를 쌓을 필요성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단계별로 말을 하고 할 말만을 하도록 하며 진심을 쉽게 드러내면 안 됩니다. 군주에게 좋은 말만 해서도 안 되고, 군주를 너무 자극하는 말을 해서도 안 됩니다. 군주가 당신에게 호감이 갈 수 있도록 말을 잘해야 합니다. 당신은 신비한 존재가 되어야 하며, 군주가 당신을 보면 항상 궁금하게 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 사람은 바른 말을 하는 것도 같고, 나를 존경하는 자세를 유지하고 있으며, 그렇다고 아첨을 일삼는 무리와는 다른 뭔가가 있다.


이런 확신을 조금씩 심어주었을 때 군주는 점점 당신을 신뢰하게 되고, 군주가 당신을 완전히 믿게 되었다면 당신은 무슨 말을 하든지 그것은 곧 국가의 말이 될 것입니다.


한비자의 말에서 중요한 점은 상대방과의 관계를 단계적으로 정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대개 선임이 이런 딜레마에 빠지는 경우가 많은데, 후임이라고 해서 일방적으로 지시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겉으로는 따르면서도 한켠에서는 불만들이 자꾸만 쌓여져 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만일 당신이 여기 있는 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남아 있는 후임이 당신을 회상하면서 좋지 않은 기억을 가지고 있다면 당신의 가치는 지속적으로 하락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평가가 무서운 것이고, 후임이나 후배들이 정말로 무서울 때는 바로 그때라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도 당신은 상대방이 가지고 있는 50점의 가치를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60점 이론으로 보는 나의 대인관계


어떤 생각이나 행동을 옮길 때 나의 점수를 30에서 40 정도로 하고 상대방의 점수를 20에서 30 정도 끌어올 수 있는 행동을 하는 것이 최상의 '행동'이라 할 수 있다.


예전에 60점 이론의 모델들을 간단히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60점 이론의 무게중심은 '상대방'이기 때문에 상대방의 점수를 어느 정도 끌어들이느냐에 따라서 내 군생활의 대인관계 지수가 드러납니다. 그리고 상대방이 나에게 어느 정도 의미를 주느냐, 어느 정도의 존재인가에 따라서 우리는 상대방의 점수를 꾀할 수 있습니다.

상대방이 소유한 점수는 50점이지만, 무관심 지수 30점이라는 이론을 조금만 응용하면 얼마든지 나의 행동에 의해서 상대방의 점수를 유도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만약 당신이 상대방과 굳건한 신뢰를 형성했다고 한다면 당신은 열정을 다해서 그에게 행동할 수 있습니다. 그는 당신의 행동에 부담을 느낄 수도 있고, 오해를 할 수도 있겠지만, 궁극적으로는 당신을 신뢰하기 때문에 위험한 점수를 주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런 상황이 아니라면 당신은 상대방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리고 상대방과 어떤 관계를 형성할 것인지 계획이 고려되어 있다면 그 계획에 따라 상대방의 점수대를 형성할 수도 있습니다. 이 사람에 대해서는 애정을 줄 수 없겠구나, 서로 상처만 받을 뿐이야 싶은 사람도 분명히 있습니다. 특히 이런 사람을 조심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에 대해서는 애정을 가지고 어떤 사람에 대해서는 애정을 덜 가지는 것은 편애가 아닙니다. 사람은 만나는 사람에 따라 그를 대우하기 마련입니다. 이것은 내가 그의 점수대를 리드할 수 있는 것처럼 그도 나를 리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때 나와 그의 관계가 보다 분명해집니다. 나는 내가 만들어가고, 상대방은 자신이 만들어가지만, 그 이외에도 나는 상대방이 만들어가고, 상대방은 내가 만들어 가는 것도 있습니다. 이것이 관계입니다.


특히 군이라는 곳에서는 잘못 꼬여서 '벌'에 빠질 수도 있기 때문에 자신의 행동을 잘 다스려야 합니다. 쉽게 감정에 동요되지 않고, 좀더 냉정하게 처신해야만 최악의 경우를 면할 수 있습니다. 좀더 안정된 점수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좀 더 적극적으로 하는 모습을 통해 평소에 긍정적인 이미지를 만드는 것도 중요합니다.


중요한 것은 당신이 60점 이론의 함정에 빠졌을 때 거기에는 당신의 책임도 분명히 있다는 것입니다.


군생활 잘하시고, 관계맺기를 통해서 좀더 안전한 내무생활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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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06-04-10 2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글 쓰실 때 미리 아웃라인을 작성하고 쓰시나요? 참고자료는 이용하시나요? 이런 글 보면 정말 대단하단 생각이 듭니다.

마태우스 2006-04-10 2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초반부가 이해가 잘 안가서 여러번 읽었다는...^^

승주나무 2006-04-11 0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 님//제 글에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웃라인이라기보다는 경험에서 우러난 글이라서 그렇게 다가가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제 이야기를 쓴 거거든요.
안타까운 후임에게 '행동'하다가 사무실에서는 '독재자'가 되었고, 부대에서는 '불량병사'가 되어서 징계까지 받았다는 슬픈 기억이...^^;;;

마태우스 2006-04-11 0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군대는 똑똑한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지요. 님의 징계는 그걸 잘 보여 주네요...

승주나무 2006-04-11 16: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 님//제가 똑똑한지는 잘 모르겠으나, 오늘날에도 똑똑한 사람은 쓸모가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적당히 똑똑하거나 적당히 멍청한 게 관리하기 편하다나^^
그래도 군에서 큰 거 배우고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