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 -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만나다 대담 시리즈 1
도정일 외 지음 / 휴머니스트 / 2005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인문학과 생물학, 두 이산가족의 상봉의 시작



도정일 선생과 최재천 선생은 인문학자와 과학자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자기 분야를 넘나드는 사람들이다. ‘큰 장사꾼은 큰 장사를 한다’는 옛 문헌의 금언을 학문적으로 실천한다면 가장 큰 동그라미를 매일같이 그려나가는 학자들이 두 사람이다. 특히 최재천 선생은 유명한 개미 연구가로 수년 동안 논문 한두 편도 나올 수 없는 ‘느리고 큰’ 분야를 맡고 있기 때문에 한국이라는 토양에서 빛을 보기 힘들다. 그가 얼마나 큰 학문의 원을 그려내든 우리들의 척도로 보면 ‘원 하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것에 대한 불만과 ‘간극’이 그의 인문학적 출발점이라고 하면 너무나 거창할까?

도정일 선생은 어떠한가. ‘생물학자와 인문학자의 대화’라는 기획은 그 특성상 생물학자가 주를 이룰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렇지만 그는 단순 명쾌한 비유와, 평소에 왕성하게 섭렵한 과학적 지식을 인문학적으로 요리하여 최재천 선생의 과학적 견해를 구수하게 풀어낸다. 이 대담에서 생물학과 인문학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던 것은 도정일 선생 덕분이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살아있다’는 말과 같이 사유와 생명은 한 몸과 같았다. 불행히 신의 벌을 받고 둘로 가라진 남자와 여자의 존재와 같이 세분화된 지식의 험로에서 두 분야는 단절되고 만다. 둘은 항상 만나야 하는 사명을 타고 났으며, 그것이 두 사람이 만나게 된 이유이다. ‘죽은 사유’와 ‘무미건조한 과학’의 토양 위에 서서 서로를 향해 가녀린 손짓을 보낸다. 그것이 ‘대담’이 있게 된 연유이다.



과학은 답을 추구하고 인문학은 질문을 추구합니다.<도정일>


사실 과학과 인문학의 출발점은 다르다. 생물학이 범하는 가장 큰 실수는 ‘모든 것을 설명하려’ 한다는 점이다. 생물학이 캐낸 진실 역시 ‘진정한 의미의 진실’이 되기는 힘들다. 그 한계가 분명할수록 발견은 더욱 빛난다. ‘객관적 실재 세계를 구성하는 최소 부분들이 객관적으로 존재한다는 생각은 불가능하다’는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실성 이론이나, ‘수학의 불완전성’을 입증한 괴델의 공리가 그것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된다. 엄밀한 관찰을 통해 ‘엄밀한 과학’의 한계성을 발견하고, 그 안에 잠들어 있던 ‘변수’들을 일깨우는 것은 인문학과 과학이 힘을 모아 해결할 과제이다.

황우석 사건과 이 책의 발간이 묘하게 겹치면서 우리는 생물학과 인문학의 접점을 다시 한 번 확인한다. 우리들이 이 사건을 통해 고수했던 ‘절대성’은 ‘엄밀한 과학’에 의한 것도 아니었고, 과학의 부재와 인문학의 부재가 겹친 ‘맹신’의 결과였다. 따라서 황우석 사건에 대해 분명한 답을 구하기 위해 이 책을 펼쳐들었다면 주소를 잘못 찾은 것이다. 이 책은 과학에 관한 아주 분명하고 당연한 이야기를 벗어나지 않는다. 그래야 솔직한 대담이 되기 때문이다.


저도 유구라, 그러니까 유홍준 선생님과 이야기해본 적이 있는데, 그분은 정말 재미있게 이야기를 하시면서 "이게 다 구라야"라고 밝히고 계속 구라의 길을 가더군요.(하하하) 그런데도 옆에 있는 분들이 전혀 반감을 안 가져요. 그분의 이야기는 재미있구 유익한 구라니까요. 그런데 제가 구라를 치면, 그게 조금만 틀려도 저는 낙마하고 맙니다. <최재천>

- 본문 중에서


모든 것은 생명활동이므로 생물학 안에 있다.


이 책을 일독한 독자라면 읽는 내내 지속적인 긴장감과 빛나는 지성의 합연을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읽고 나서 그 내용에 대해서는 뭐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정리가 되지 않을 것이다. 나도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서평을 쓰려 했는데, 당혹스럽기만 했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그 까닭은 내용을 도식화하지 않고 이야기의 실타래를 잡고 물처럼 흘러가기 때문에 머릿속에서는 연기처럼 사라진 것이다. 그러다가 다시 한 부분을 읽거나 나중에 관련 분야에 대한 대화를 하게 된다면 그 이야기가 생각날 것이다. 조급해할 필요는 없으리라. ‘대화’라는 방식은 참으로 놀라운 표현 기법이다. 그 옛날 플라톤 할아버지도 그 효과에 반해 모든 저작을 이 방식으로 쓰지 않았는가. 하지만 그 옛날의 대화는 일방적 혹은 산파술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 대담을 ‘반전 대화’라고 명명하고 싶다. 오랜 시간 동안 자신의 분야에 천착해온 두 꾼이 생동감 있고 박력 있게 주고받는('치고 받는'이라고 해야 더 적절하리라) 이야기에는 불꽃 같이 강렬하게 뇌리를 자극한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쉬운 단어로 심오한 견해를 펼쳐내는 추임새는 감동 그 자체이다. 이 점에 있어서는 최재천 선생을 칭찬하고 싶다.


섬들이 천천히 연결되어야 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전부 하나의 대륙으로 뭉쳐져버린 느낌입니다.

- 본문 중에서


최재천 선생의 말투가 대개 위와 같은데, 위의 말은 거대 경제 권력이 세계의 다양성을 무참히 짓밟는 비생물학적 경제 현상을 빗댄 표현이다. 이보다 더 향 깊은 부분도 있다. 1990년대 초 미국에서 거의 1년 내내 저녁 뉴스 시간을 달군 ‘아버지 논쟁’에 관한 이야기가 그것이다. 젊었을 때는 돈도 없고 장래도 불투명해 낳은 아이를 입양시켰으나 나중에 여유가 되어 아이를 다시 찾겠다고 법정까지 간 그 사건은 결국 ‘생물학적 아버지’인 ‘친부’의 승리로 귀결되었다고 한다. 최재천 선생은 그 아버지에게 ‘생물학적’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 기른 아버지도 충분히 ‘생물학적’이라는 것이다. 낳은 아버지는 ‘유전학적’이라고 해야 옳다는 것이다. 즉 ‘생물학’이라는 것은 ‘유전’ 못지 않게 ‘환경’도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그것을 인간에게 적용한다면 ‘사회’나 ‘문화’가 될 수 있다. 만약 책의 내용이 어려울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렇지 않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으며, 너무 쉽게 다가가려는 사람(이런 사람은 없겠지만)이 있다면 쉬운 말 속에 함유하는 뜻 역시 쉬운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책의 출판사인 ‘휴머니스트’의 교열부 직원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사적인 일이지만, 논술 강의를 위해서 ‘전문가들의 오탈자 사례’를 채집할 목적으로 열심히 책을 읽고 있는데, 공교롭게 ‘휴머니스트’ 출판사의 책들을 최근 자주 접하게 된다. 나의 눈은 ‘띄어쓰기, 오탈자’를 찾는 데 혈안이 되어 있었으나, ‘대담’에서 발견할 수 있었던 오탈자라고는 단지 503쪽 최재천 선생의 이야기에 나오는 ‘운명(殞命)을 달리하다’(‘유명(幽冥)을 달리하다’라고 써야 함)가 전부이다. 지난 번 ‘세계사’에도 감탄했지만, 다시 한 번 감탄하게 된다. 이 책은 ‘완결된 텍스트’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으리라.


‘사랑은 서로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같은 곳을 바라보는 것’이라는 셍떽쥐베리의 말은 분명 옳지만 ‘같은 곳을 바라보는 것’과 ‘서로를 바라보는 것’은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인문학과 생물학을 떼어놓을 수 없는 것처럼 우리들의 학문은 여기저기에 귀를 기울이며 고유한 분야의 향기를 자꾸 퍼뜨리고 색깔을 자꾸 겹쳐야 천의 향기와 아름다운 그림을 이뤄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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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주미힌 2006-01-03 0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저도 정리가 안되더라구요.. 너무나 풍성해서...
꼼꼼히 읽으셨네요..

승주나무 2006-01-04 0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개발한 독서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눈으로 읽는 게 아니라 '손'으로 읽는 거죠. 정확히 말하면 '눈'으로도 읽고 '손'으로도 읽습니다. 아마 그 점이 '꼼꼼하게' 보였던 부분이었던 것 같습니다. ^^

라주미힌 2006-01-04 1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손으로 읽는다? 혹시 받아 적기? 어떻게 하시는데요?

승주나무 2006-01-04 1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워드가 거의 단거리 선수 수준이거든요. 맨 첨 형광펜으로 그은 부분을 워드로 다시 치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읽었던 부분이 새록새록 기억이 나고 생각이 정리가 되는 거죠. 시간은 걸리지만, '책과 좀 더 가까워질' 수 있습니다.
그것으로 '압축독서'라는 콘텐츠도 만들었죠. 히히^^
http://blog.naver.com/dajak97
여기에 제가 만들어 놓은 파일(한글 파일)이 많아요^^

2006-01-07 04: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라주미힌 2006-01-07 0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엇.. 이주의 리뷰 되셨네요... 역시!!!
축하합니당. ㅎㅎ

승주나무 2006-01-07 1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주미힌님// 감사합니다. 요즘 사고 싶은 책에 비해 예산이 형편없이 부족했는데, 조금의 도움은 되겠네요. 이로서 2번째 선정입니다. 자꾸 동기가 되어서 계속 읽고 쓰게 돼요. 행복합니다.^^

승주나무 2006-01-11 1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465쪽의 두 번째 단락 "계몽철학자들이 생각한 '지식과 판단의 주인'로서의"<도정일>도 새롭게 발견된 오탈자네요. "'지식과 판단의 주인'으로서의"라고 해야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