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속담에도 좀 관심이 많습니다. 글쓰기를 할 때 속담을 활용하면 참 예쁜 글이 나옵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는 전용된 사례, 잘못 쓰이는 사례 등이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말이 나오게 된 사연을 되짚어보는 것도 재미있는 여행이 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그것을 주제로 잡았습니다.


 

벽창호(?) → 벽창우(碧昌牛)



'벽창호'는 고집이 세고 무뚝뚝한 사람을 비유하는 말인데, 역시나 '소'였군요.

「벽창우(碧昌牛)」은 평안북도 벽동(碧潼)과 창성(昌城)이란 곳에서 나는 대단히 크고 억센 소를 말한다고 하네요.

그냥 우리끼리 하는 말로 '이녀석, 벽에 창호지를 발랐나?' 하는 뜻 같은데,

창호지는 문에 바르는 종이인데, 벽에다 바르듯 무식하고 무뚝뚝하다고 몰래 이해하고 있었어요. 상상력을 동원해 보세요. 창호지를 한 번 바르면 바람도 통하지 않고 잘 떼어지지 않는 것에서 완고하고 고착된 사고방식을 비꼬는 방식으로 이해했으면 ‘벽창호지 군(郡)’이십니다.


우리에게 낯선 글자를 낯익은 글자로 만들어 버리는 우리 민족의 습성(인군(人君 → 임금, 백채(白菜) → 배추 등)에서 나타난 오역인 것 같은데, 누구 말마따나 '즐거운 오역'입니다.



알아야 면장질을 하지?, 배워야 면장이다 → 면면장(免面牆)


'알아야 면장질을 하지'라는 말은 공자의 어록을 모은 '論語'에 그 출전을 두고 있습니다.


공자보다 일찍 요절한 공자의 아들 鯉(리)가 있었습니다.

하루는 공자가 대청에서 쉬고 있는데 백어가 종종걸음을 하며 지나가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공자가 물어보았습니다.

"너는 시를 공부하였느냐(; 女 爲周南召南矣乎) 하니

잉어가 머리를 극적이며 '아니 배웠는뎁쇼'라고 하였습니다.

이에 대해서 공자가 대답하기를

'사람으로서 이것을 배우지 않는다면, 마치 그것은 담에 맞대고 서 있는 거나 같으니라 이눔아!'(人而不爲周南召南이면 其猶正牆面而立也與인저)

*鯉 :잉어 '리', 자는 白魚; 공자가 득남하였을 때 벗 하나가 잉어를 선물해 주었는데 공자가 기뻐서 이름을 잉어라고 지었음

시 : 詩經 주남(周南)과 소남(召南)을 말하며 시경 최초의 두 편.


여기서 장면(牆面)은 담을 바라본다는 뜻이며 시를 배우지 않는다면, 마치 그것은 담벽을 향하여 마주선 것과 같아서 앞으로 나아갈 수도 없고 담 안 정원의 아름다움을 볼 수도 없어 전혀 융통성이 없는 사람이 되어 버리고 말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리하여 '면장질'은 곧 '免面牆(면면장)'의 약자로 '담만 멍청하게 쳐다보는 것을 면한다'라는 뜻입니다. 이것이 우리나라로 와서 이리 구르고 저리 굴러서 우리가 흔히 아는 面長(면장)이라는 뜻으로 쓰이기도 하였는데 우리 속담에 '배워야 면장을 한다'는 뜻이 있으며 그 뜻인즉 '남의 위에 있으려면 배워야 할 것이니라' 하는 뜻입니다.


'免面牆(면면장)'을 아직도 잘 모르시겠다구요? 조카나 자제분이 학교에서 배운 것을 물어볼 때 ‘뜨끔’ 하는 기분이 들면서 제대로 답해주지 못할 때 마치 벽을 대하고 있는 것 같지 않나요? 길거리를 걸어갈 때 처음 보는 외국인이 난처한 표정으로 현란한 영어를 구사하며 뭔가를 물어볼 때 벽을 마주대한 것 같지 않나요? 이런 벽들을 면하는 방법은 열쒸미 공부하는 것밖에 없습니다.



억지 춘향이(?) → 억지 춘양


춘양목(春陽木)은 경북 청송과 춘양 지방에서 나는 겉씨식물 구과식물아강 구과목 소나무과의 상록침엽 교목의 일종으로, 목재의 질이 우수해서 한옥 건축재 및 문 짜는 데 쓰인다고 합니다. 그래서 춘양목을 사용한 집은 그 권세의 상징으로 여겼었습니다. 잘 아시잖아요. 옛날 양반들이 세를 자랑하는 방식을. 그런데 춘양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경남이나 기타 다른 지역의 권문세족 양반들도 자신의 집이 그 귀한 춘양목으로 만들었다고 우기고 다녔었나 봐요. 그래서 억지 춘양, 억지 춘양 하는 말이 나왔는데, 마침 ‘춘향전’의 ‘춘향’과 발음이 비슷해서 전용(轉用)된 모양입니다. 그래서 이 말을 할 때는 ‘ㅎ’자를 유난히 강조하시면, 무식하다는 소리를 들을 지도 모르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영화 ‘은행나무 침대’의 비밀


예전에는 속담사전을 재밌게 보았는데, 신기하고 재미난 속담을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요. 그 중에서도 모르던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는 더욱 즐거웠습니다.


근데 거기 '은행나무 격(格)이다'란 속담을 발견하고 이것은 영화 ‘은행나무 침대’ 모티브가 되기 충분하다는 결론에 도달했죠.


은행나무는 자웅이주(雌雄異株; 같은 종류의 식물에서 암수의 구별이 있는 것. 은행, 잣나무 등)이므로, 서로 사랑하면서도 교섭을 갖지 못하는 남녀의 처지를 이른다


하고 써져 있던데, 영화의 스토리도 그와 비슷하니까 신기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러분은 어떠세요?



떼 놓은 당상(堂上)이다


당상(堂上)은 삼품관(三品官)의 이름이요, 망건(網巾)에다 옥관자(玉貫子)를 달고 있으므로 전(轉)하여 옥관자를 당상이라 합니다. 옥관자는 정삼품 이상의 관리들만 차고 다닐 수 있으므로, 누군가 그것을 주워도 쓸 수가 없고 만약 쓴다면 바로 구속되어 중죄를 면할 수 없다고 보아도 되죠.


그래서 어떤 일이나 이뤄놓은 결과, 사물 등이 변할 리도 없고 다른 데로 갈 리도 없으므로 조금도 염려가 없다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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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6-01-29 08: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쉽고 재미있게 설명해주셨네요. 추천하고 가져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