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남촛불 회원과 서초상인회 상인이 강남 분향소 감사 플래카드를 설치하고 있다.


노대통령 추모제 다음날 바로 "철거명령"... 속터지는 노점상들

강남에 시민분향소가 차려진 지 영새째인 6월 3일 저녁 강남역 6번 출구를 찾았다. 분향소가 있었던 자리는 깨끗하게 정리돼 있었지만 그 때의 분위기가 아직 남아 있는 듯했다. 분향소 설치와 운영을 담당한 강남촛불 시민들이 주변 상인들과 시민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플래카드에 담아서 걸어 놓았다. 플래카드에는 "강남역 주변 노점상 분들, 상인 분들, 그리고 시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라는 문구가 강남분향소 자원봉사자 일동 명의로 적혀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평소와 같이 10여 개의 패널을 전시했다. 패널의 주요 내용은 이명박 대통령의 실정을 표현한 패러디물과 촛불에 관한 것이었다. 2008년 7월 2일 결성된 최초의 '지역촛불'인 강남촛불은 2008년 7월 10일부터 주말을 제외하고 하루도 빠짐 없이 강남역 부근에서 촛불을 밝혀 왔는데, 6월 말이면 1돌이 된다. 강남촛불 회원은 주말을 제외한 평일 동안 하루도 빠짐 없이 매일 조를 짜 이곳으로 나왔다.

그런데 달라진 장면이 하나 있었다. 서초상인회라는 유니폼을 입은 상인들이 패널과 현수막 설치를 돕고 있었다. 어떤 사연이 있는지 궁금해 상인들을 만나 자초지종을 물었다. 강남역 6번 출구 앞 길가에서 장사를 하는 <서초구상인회> 상인 38명의 대변인 격인 김유신 씨(38)는 노무현 전 대통령 분향소가 끝나자마자 서초구에서 계고장이 날아들었다고 한다. 계고장은 A4로 거칠게 인쇄돼 있었으며 길거리에서 나눠주는 전단지보다 못했고 강서구청장의 직인조차 찍혀 있지 않았다고 한다. 계고장에는 "일주일 안에 모든 가게를 철거할 것"이라는 명령이 적혀 있었다. 김유신 씨는 "인간이 무섭다"고 말했다. 2주 전까지만 해도 웃으면서 협의를 하던 담당 공무원이 전혀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아무 말도 하지 않으려 한 것에 충격을 받은 듯 보였다. 도로에 좌판을 깔아 놓고 장사를 하는 것은 '합법'은 아니지만 상인들의 생존권이 달린 문제이기 때문에 관할구청에서도 얼마 전까지만 해도 최대한 대화를 통해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실제로 맞은편 강남역 7번 출구의 경우 대로의 상인들이 구청과의 협의를 통해 이면도로로 이동했다. 하지만 서초구청의 경우 공영주차장이나 중학교 앞에 '알아서' 장사를 하라고 '명령'했다. 누가 보아도 '괘씸죄'라는 정황이 포착된다. 무엇이 서초구를 불편하게 했던 걸까? 


상인 대표인 김유신 씨와 관할 공무원인 서초구 건설관리과 한창원 주임과 인터뷰를 했다.

- 일주일 안에 자진 철거를 하라는 계고장이 내려졌다. 원래 이렇게 짧은 시간에 행정 집행을 하는 것인가?
한창원 주임 : (이하 '서초구') 노점상 철거하는 데 법이라는 규정이 없다. 하지만 노점상들도 '생존권'이 있는 국민이므로 그 동안 계도 기간을 준 것이다. 이 업무를 맡은 게 2008년 2월인데 1년 4개월 동안 계도를 한 셈이다. 특히 3~4개월 전부터 서울 르네상스 거리를 준비하며 노점상들에게 이 지침을 알렸다.
김유신 상인 : (이하 '상인') 불과 보름 전만 하더라도 노점상 이전 문제에 대해서 좋게 협의를 하고 있었다. 통상 이런 협의를 진행하고 구체적인 준비를 하는 데만 6개월~1년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이전할 공간을 마련해야 하고 이전 계획을 세우거나 관련 장비들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관할구청이 일주일 전부터 전혀 대화를 하지 않고 계고장만 던져놓고 갔다.


- 위에서 별다른 지침이 있었나?
서초구 : 그런 것은 없다. 기자 님이 서초구청 사이트에 한번 들어와 보시라. 강남구 관할지역에는 노점상들이 하나도 없는데 서초구는 왜 이렇게 많냐며 엄청나게 비난을 받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항의전화가 오곤 한다. (기자가 서초구 홈페이지 참여광장에 접속해본 결과 노점상 민원이 없지는 않았지만, 일방적인 철거 명령을 비판하는 글도 적지 않았다.)
상인 : 강남역 6번출구 주변에서 자리를 까는 과정에서 폭력배들과 마찰이 있었다. 지금은 상인들이 이렇게 지켰지만 폭력배들이 홈페이지와 전화를 통해서 항의를 많이 한 것으로 안다. 이런 사정을 서초구청도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그것을 근거로 한다는 말은 좀 황당하다.

- 강남구, 동대문구 등은 최소한 상인들을 위해 공간 등 배려를 했는데 서초구는 어떻게 할 계획인가?
서초구 : 뒷길의 이면도로와 공영주차장, 서일중학교 등에서 영업을 계속 하도록 배려했다.
상인 : 서초구가 말하는 이면도로와 공영주차장, 서일중학교는 사실상 장사할 수 있는 공간이 없을 뿐만 아니라 비록 공간이 있더라도 그 곳은 <전국노점상연합회>가 이미 장사를 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과의 마찰이 불가피하다. 서초구가 상인들 간의 불화를 일으키려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 서초구청이 상인들에게 공간을 열어줬다는 이면도로 전경. 공용주차장에 차들이 가득 세워졌고 이미 <전국노점상연합회>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서초상인회가 이곳에 자리를 깔기 위해서는 전국노점상연합회와 필연적으로 충돌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1급 장애인, 노인들 생존권까지 위태로운 상황

서초구청과 상인들이 이야기했던 서일중학교 일대의 이면도로에 직접 가 봤다. 공영주차장에는 차들이 즐비하게 서 있고 마을버스가 주차돼 있었다. 간간히 분식 좌판이 깔려 있었는데, 여기서 서초상인 38명이 영업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있는지 의심스러웠다. 맞은편 강남역 7번출구로 가봤다. 강남역 7번 출구에서 교보문고까지의 거리에는 노점상들을 볼 수 없었다. 그런데 안쪽 골목으로 들어가니 만두가게 등 노점상들이 보였다. 이곳에서는 1년 전까지만 해도 강남구와 상인들 간의 마찰이 심각했다. 하지만 협의를 통해서 이면도로에 공간을 얻었고, 강남구는 좌판용 박스까지 마련해 주었다. 분식을 하시는 아주머니에게 매출변화를 물었는데, 대로변에 비해서 1/3도 못 미친다고 한다. 중간중간에 빈 좌판용 박스가 보였다. 상인들에 따르면 이곳에는 먹거리 노점상만 어느 정도 매출이 있을 뿐, 장신구, 선글래스 등을 파는 노점상들은 매출이 뚝 떨어져서 아예 포기를 했다고 한다. 그래도 강남구 관할 노점상들은 이런 공간이나마 얻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안도하는 눈치다.
강남구 상인들은 7번출구 앞에서 24시간 좌판을 깔았지만, 서초구 상인들은 오후 6시 이전에는 좌판을 깔지 않는다. 서초상인회에서는 자체적으로 거리 미관을 위해서 노력한다는 말이다.


▲ 강남구 7번출구에 있던 상인들은 강남구와의 협의 후 이면도로로 좌판을 옮겼다. 떡볶이 등 먹거리 좌판은 그나마 매출이 1/3 수준이지만, 악세사리 같은 좌판은 매출이 뚝 떨어져 좌판을 포기하는 곳이 속출했다. 현재 강남구 관할지역에 깔린 좌판은 8개이며 15개는 확보되었다. 그리고 협의중인 8개를 합하면 총 31개의 공간이 추진되고 있다.

서초상인회 김유신 씨는 1급장애인 상인이나 노약자 상인들의 생존권은 구청에서 마련해줘야 하지 않겠냐며 한탄했다.
강남촛불 회원들은 서초상인회 상인들이 자신들 때문에 피해를 받은 것 같아 미안해하는 분위기다. 강남촛불의 한 회원은 "거리에 좌판을 까는 것이 불법과 합법을 떠나서 생존권 문제이고, 강남촛불이 패널전을 하는 것 역시 공동체 속에서 녹아들어가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서초상인회에서 장사하는 공간을 열어줬기 때문에 1년 동안 패널전을 할 수 있었는데, 이 때문에 불이익을 본 것은 아닌지 미안하다"고 말했다.
서초상인회는 강남촛불 패널전을 위해 좌판 공간 2~3개를 할애해 주었다. 뿐만 아니라 5월 23일 강남분향소가 차려지고 나서 15개의 좌판 주인들이 영업을 포기했고, 마지막 날에는 30개 상인들이 생업을 포기했다. 좌판 당 하루 매출을 10만원으로만 잡아도 1,000만원 정도 매출손실을 본 셈이다.

서초상인 김유신 씨에게 물었다. 이렇게 매출 손해를 보고 괘씸죄를 쓰면서도 강남촛불을 도운 이유는 뭔지?
"저도 한 명의 시민인데 우리가 해야 할 일을 그분들이 하니까 고맙고 미안할 뿐이죠. 뭐"
그는 털털하게 웃음을 보이며 대답했다. 그런데 갑자기 좌판 한켠에서 고함소리가 들렸다. 서초구청 순찰차량 2대가 천천히 다가왔다. 순간 상인들과 순찰차가 대치 상황이 되었다. 순찰차는 눈치를 살피더니 다시 유유히 차를 몰고 사라졌다. 서초 상인들의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 철거집행을 예고하고 나서 처음으로 서초구 순찰차가 강남역 6번 출구 부근에 나타나자 서초상인회 상인들이 긴장한 표정으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이날 다행히 철거집행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지금도 계속 비상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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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하 2009-06-05 17: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사 잘 봤습니다. 소금 같은 글이네요. 나쁜 넘들...

승주나무 2009-06-07 11:09   좋아요 0 | URL
과찬이세요. 소금 같은 글을 쓰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