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교육, 언론만 살아있다면 괜찮은 사회
저의 티스토리 블로그 도메인(http://jagong.sisain.co.kr/)에는 중간에 <시사인>이 들어가 있습니다.
여기에는 사연이 있습니다.
언론에 대해서 관심을 가진 것은 10년 정도 됩니다.
언론에 대해서 문제의식을 가지고 언론운동이라는 것을 한 지는 4년째 됩니다.
언론운동 때문에 직장을 두 번 그만두고 두 번 옮겼습니다.
논술선생으로 고액(?)연봉을 받다가 직장을 그만두게 된 것은 <시사인> 때문입니다.
벌써 2년도 넘은 이야기이지만 삼성의 기사 삭제 문제로 기자들이 파업한 <시사저널 사태> 때문에 의분에 차서 직장을 그만두고 6개월 정도 일없이 언론운동을 했습니다. 물론 중간에 알바도 하고, 밤낮 없이 시사저널 일에만 매달린 것은 아니지만 적지 않은 시간 동안 시간을 투여한 것만은 사실입니다. <시사인> 창간과 함께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지만, 그 때 아내를 고생시킨 것만 생각하면 지금도 미안합니다.

▲ 2007년 12월 21일 민주시민언론연합이 수여하는 제9회 <민주시민언론상> 본상을 받았습니다. 수상자 선정 근거 일부입니다. "편집권 독립을 위해 1년여의 파업투쟁으로 자본과 치열한 싸움을 펼치고 있던 ‘시사저널’ 기자들을 지원하기 위해, 구독자들이 2006년 10월에 자발적으로 결성한 시사모는 거리 캠페인과 문화제 등,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내는 활동으로 독자운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습니다. 또한 기자들이 ‘시사저널’과 결별한 후 ‘시사IN’을 창간하는 과정에서 시사모는 자본금 모금과 정기구독 캠페인 등을 통해 ‘자본으로부터 독립된 언론’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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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을 좇아 인생행로를 바꿔온 1년
시사저널 살리기 운동을 하면서 언론운동에 관해 여러 가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언론이란 사회감시의 역할을 하고 사회변화를 이끌기도 하지만 그것은 단지 계기를 제공해줄 뿐, 사회변화의 근거를 제공해주지는 않습니다. 사회변화의 근거를 제공해주는 것은 '출판'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언론은 너무 빠르고 출판은 너무 느리다는 특징이 있지만, 언론과 출판이 적절히 협력할 수 있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출판계에 몸을 담게 되었습니다. 오마이뉴스나 블로거뉴스 글을 쓰면서 책을 읽고 책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작가를 만나서 이야기를 하고 독서토론을 다녔습니다. 이 시기에 가장 많은 책을 읽었던 것 같습니다. 특히 이제까지 제가 고수해 왔던 보수적인 독서목록표(인문사회나 자연과학, 문학 등에 치중한)를 버리고 어린이, 청소년 등 다양한 책을 읽으면서 고착화된 나를 깨나갔습니다.
그러다가 2008년 5월 촛불집회가 터지자 모든 것이 바뀌었습니다. 소설가 지망생으로서 취재와 구상을 끝내고 소설작품을 집필하려고 했지만 끝내 펜을 꺾었습니다. 촛불 이전에는 모르겠지만, 촛불 이후부터는 소설을 쓰기보다는 블로그 글이나 기사 같은 전투적인 글을 써야 한다는 데에 생각이 미쳤습니다. 일주일에 3~4일 촛불로 출근하면서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블로그글이며 오마이뉴스 기사글이며 정신없이 올렸습니다. 그리고 촛불의 가장 큰 언론이슈인 <조중동 광고지면 불매운동>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때는 운영진들이 구속되고 언론소비자주권 국민캠페인이라는 카페 자체가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 순간이었습니다. 마침 카페 회원들이 결의해서 NGO 단체로 창립하는 일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카페 회원으로 글을 남기다가 창립 과정에서 중요한 일을 맡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조선일보와 정면대결을 펼치는 일에 참여했습니다.
조선일보와 정면대결하고 검찰을 코너로 몰아넣기도 해
조선일보는 참으로 집요했습니다. 2008년 8월부터 올해 1월 20일 검찰의 구형이 내려질 때까지 수십 차례의 공판 동안 매번 기자(들)을 파견해 공판 내용과 관람객들의 동향을 분석해서 건수가 있을 때마다 '악의적'으로 보도를 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치졸한 것은 50대 할아버지(의족을 차서 행동에 제약을 받는)를 폭력범으로 몰아붙인 기사였습니다. 당시 조선일보 측 증인이 폭력을 유발하는 폭언 등으로 시비가 붙었는데, 기사거리도 되지 않을 것에 대해서 소설을 써서 50대 할아버지는 긴급 체포되고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구속영장이 기각되고 나서 조선일보는 풀이 죽었는지 별로 다루지 않더군요.
조선일보가 이렇게 무리수를 두게 된 데는 앞서 망신을 겪었기 때문입니다.
<조선> 증인, 법정 '말바꾸기' 덜미 "기소 검사와 '예상 질문지'까지 교환"(오마이뉴스)
난생 처음 참석한 재판정, "버젓한 법정모독" 씁쓸..(블로거뉴스)
검찰과 조선일보 증인이 법정에서 신문을 하는 신문사항을 짜맞추고 재판을 한 데 대해서 당시 재판을 참관하고 있던 저는 사실 그대로 블로거뉴스와 오마이뉴스에 실었고 이것은 며칠 후 MBC 뉴스데스크에까지 보도되었습니다.
고전하는 검찰(MBC 뉴스데스크)
1인미디어, 인터넷신문, 방송뉴스 할 것 없이 이 일을 보도하니 조선일보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죠. 검찰도 이 건에 대해서 별도의 논평을 해야 했습니다. 물론 "증언에 대해 협의한 것도 문제 될 게 없다"는 한마디였지만, 이 사안에 대해서 부담을 갖고 있다는 것이었죠. 검찰과 증인의 짜맞추기 재판이 법적으로 문제가 되는지 조사를 했으나 우리나라는 미국과 달리 형법 및 기타 형사특별법에 법정모독죄는 없기 때문에 도의적 책임을 추궁하는 데서 만족해야 했습니다.
언론운동 4년 고민의 결론은 "소소한 이웃의 이야기"
언론운동에 열정을 쏟느라 많은 가정, 직장 등 부분이 소홀했습니다. 공익을 위해 활동을 한다고 해서 그것이 타당성을 찾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은 항상 하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그런 비판을 받아야 하고, 그런 입장에 놓여야 하겠지만 가족들과 직장 동료들은 죄가 없기에 미안할 수밖에 없지요.
그것보다 더 크게 느낀 것은 '지역언론'에 관한 생각이었습니다. 시사저널 운동할 때 기획한 마지막 프로젝트는 "자발적 구독운동"이었습니다.

▲ 당시 전국운동으로 펼쳐졌던 시사IN의 자발적 구독운동의 흔적입니다. 전국 16개 지역에서 많은 분들이 참여를 해주셨습니다. 광화문 오프라인 배포까지 합해 총 6,000부 정도의 인쇄물을 배포했습니다. 당시 전국운동을 하면서 언론독자의 전국조직화를 꿈꾸기도 했으나 시사IN 창간이라는 작은 이슈로 전국 조직화는 불가능했습니다.
시사저널 사태은 언론독자의 시대를 예고하는 의미 있는 사건이었습니다. 그 이후에 <언론소비자주권 국민캠페인>과 <진실을 알리는 시민>이라는 전국 조직이 생겼습니다. 참으로 바람직하고 흥분되는 일입니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 제도 언론은 정부와 재계로부터 엄청난 압박을 받아 바른 말을 전하기 쉽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 희망은 독자들에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거대담론을 다투는 일보다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언론운동의 지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지금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신도시 판교로 들어왔습니다. 거기서 지역언론을 일으키고 소비자운동이 지속할 수 있도록 자생구조를 만드는 일을 고민하고 싶습니다. 앞으로 뉴스의 중심에서 다투지는 않으려고 합니다.
이웃 어린이들과 놀고 웃으며 많은 이야기를 듣고 지역의 이야기를 다루고 싶습니다. 지역의 이야기가 세계의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일단 지역소식지 초안을 만들고 인터넷 카페(http://cafe.daum.net/khpankyo)도 만들었습니다. 아직은 존재감이 없고 미미하지만 집요하게 키워가볼 작정입니다.

▲ 채원이라는 어린이는 솜사탕이 오기만을 목 빠지게 기다리다가 오빠 성원이와 달려 옵니다. 신도시 판교의 어린이들은 학교가 끝나고 마땅히 놀거리가 별로 없어서 심심해합니다. 이곳에 어린이들을 위한 도서관 같은 거 하나라도 생기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 앞으로 <판교뉴스>라는 타이틀로 쓰는 기사에는 <진알시> 캠페인 배너를 달기로 했습니다. 광고이미지가 보기 부담스러우시더라도 양해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의 정성으로 세상을 변화 시킬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십시일반 동참해 주신다면 태산처럼 큰힘이 되어 세상을 변화 시킬것 입니다
바로당신이 우리의 희망입니다
http://www.jinalsi.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