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민기 1집 앨범의 타이틀 표지. <친구><길><아침이슬> 등의 노래가 특히 인상적이다.
 

시대가 간절히 원하던 노래, 노찾사와 장기하가 통하다


시대가 간절히 어떤 한 노래를 찾게 만드는 때가 있다. 말을 하지 못하게 하고 노래를 부르지 못하게 하면 할수록 간절함은 더하다. 노래를찾는사람들(노찾사)는 이미 한 시대다. 어떤 노래가 이들의 서정을 따라갈 수 있을까? 스튜디오에서 정교하게 다듬어진 서정이 아닌, 이웃들의 애환과 불만을 잘 담은 노래들은 이미 사람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가치가 됐다. 노찾사는 그렇게 사람들에게서 사람들에게로 구전됐다.

노찾사가 왕성하게 노래를 짓고 활동하던 시기에서 약간 비켜갔던 시기에 태어나고 살았던 나는 그것이 '노찾사' 노래인지도 모르고 무수히 따라 불렀다. 특히 운동권 선배들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잠들지 않는 남도>나 <임을 위한 행진곡>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같은 노래를 많이 불렀는데 '투쟁가' 중에서도 유난히 입에 착착 달라붙는 노래는 죄다 '노찾사' 노래였다.

'운동권 선배가 후배와 친해지기 위해서는 노찾사 노래를 많이 불러야 한다'는 속설도 있었다. 대체로 노동가와 투쟁가는 과격하기 때문에 새내기의 감성을 자극하지 못하는데, 감수성이 넘치는 노찾사 노래를 들려주면 곧잘 따라부르고 거부감을 갖지 않는다. 그래서 선배들은 노찾사 노래책을 따로 들고 다녔다. 노찾사는 이렇게 대학가에서 곧잘 '악용'(?)되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도 TV나 연극에서 그때 그 시절을 환기할 때면 나오는 <일요일이 다가는 소리> 역시 노찾사표 노래다. 통기타를 치고 목로주점에 앉아 장발으르 늘어뜨리고 데이트를 즐기는 장면에서 어김없이 노찾사의 노래가 흘러 나온다. 우린 노래 하나로 그 장면의 시대적 배경이 1970년~1980년대임을 알 수 있다. 

최근 현실은 노찾사가 탄생하기 직전의 상황과 많이 닮아 있다. 그것은 지금 불고 있는 '장기하 현상'을 봐도 알 수 있다. 물론 음악을 듣는 형식은 레코드나 CD, 테이프 등에서 컴퓨터 음원다운으로 바뀌었지만, 리메이크와 복고가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것은 비슷하다. 이 현상을 주목한 시사IN>은 1968년과 2009년의 유사성을 분석했다. 1968년 즈음은 그야말로 1960년대 대중문화가 온통 복고와 퇴행으로 치닫던 때였다.


▲ 노찾사 공연 장면


영화계에서는 <미워도 다시 한번>으로 버림받은 미혼모, 아이 버린 죄 많은 어미의 눈물이 극장을 뒤덮었다. 신파의 부활이었다. 대중가요계에서는, 미8군 출신의 세련된 팝이 주도하던 전반기와 달리, 1965년부터 청승스러운 이미자의 트로트가 인기를 모으더니, 1967년부터는 배호가 남자 트로트를 주도하면서 끈적한 바이브레이션으로 흐느끼기 시작했다. 트로트의 부활이었다.
- 시사IN 81호, 이영미 "'막장' 한복판에서 새 샘물이 솟는다" 일부

대중예술 평론가 이영미는 앞선 글(시사IN 81호))에서 대중예술계가 복고와 퇴행으로 치닫는 때는, 대개 경제와 정치에 희망이 없는 시기였다고 분석했다. 박정희의 무리한 독재와 계획경제 기간이 끝나 이농민과 도시민들은 빈곤층으로 전락했고 권력은 부패에 젖어들었다. 대내외적 위기상황은 문화계에 복고와 퇴행이라는 흔적을 남긴다.

하지만 이영미는 '그러나'라고 말한다. '그러나' 대중예술계가 복고와 퇴행에 빠져 있을 때, 전혀 다른 곳에서 새로운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통기타와 청바지가 대변하는 청년 문화가 1968~1970년 즈음까지 뚜아에무아·트윈폴리오·한대수 등으로 이어졌고, 1970년을 넘어서면서 텔레비전의 인기 판도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노찾사도 이런 분위기에서 탄생했고, 현재의 '장기하'도 이런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대한민국 20대는 장기하라는 가수를 통해 드디어 '입'을 얻었고, 노찾사와 같은 오래된 '입'과 만날 수 있는 공간이 생긴 것이다. 지금 386과 20대는 장기하의 노래도, 노찾사의 노래도 함께 부를 수 있을 것이다.




▲ 김민기의 노래에는 유독 '길'이라는 글자가 들어간 제목이 많다. 이번에 선보일 <노찾사, 김민기를 노래하다>에는 <새벽길><길><천리길>이  포함돼 있다. (그림은 이희택의 연필 드로잉)



가요계의 '백석, 정지용'.. 노찾사의 뿌리 '김민기'를 찾아서

백석과 정지용은 월북 혐의를 받고 있는 작가라는 이유로 주옥 같은 작품들이 '판금'이라는 끈에 묶여 있었다. 이 작품들이 세상에 나오기 시작한 것은 노태우 정권이 끝난 이후의 일이다. 이 때 김민기의 작품들도 함께 쓸려 나왔다.  

시대를 대변했던 얼굴이기에 권력이 가장 두려워했던 존재다. 그래서 김민기를 '노래하지 않는 가수'라고 부른다. 잘 알려진 프로필을 따라가다 보면 국민적인 애창곡 <아침이슬>의 작사작곡자요,공연기획자요,현실변혁 운동가 김민기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내면을 따라가다 보면 6.25 전란에서 아버지 없이 태어난 10남매의 막내, 자신보다 너무 크고 무서운 손 위의 형들과 누나들이 직장이며 학교로 가버리고 나면 혼자 텅 빈 집을 지키며 막대기로 마당에 그림을 그리던 외로움과 공포의 정서를 가지고 있는 꼬마 김민기를 만나게 된다(김민기의 프로필, 유년과 관련해서는 장석주(시인, 문학평론가)가 쓴 글 <노래하지 않는 가수, 김민기>를 참조).

김민기의 음악은 노래를 찾는 사람들(이하 ‘노찾사’)의 뿌리입니다. 1984년, 노찾사 1집 음반을 내놓은 장본인이 바로 그였습니다. 그의 노래들은 줄곧 노찾사의 고향과도 같았습니다. 김민기의 음악은 대중음악의 한 분수령이자 대한민국 민중가요ㆍ저항가요의 출발점이기도 합니다.
- <노찾사, 김민기를 노래하다> 소개글 일부

김민기에게 큰 빚을 진 노래문화집단 '노찾사'가 오는 10일과 11일 서울 홍익대 앞 롤링홀에서 '노찾사, 김민기를 노래하다'라는 제목으로 공연을 한다. 특히 서울대 미대를 다녔던 김민기의 내적 자아를 탐색하기 위해 서양화가 이택희 화백이 이번 프로젝트에 참가했다.

흑백으로 이루어진 이택희의 연필 드로잉은 김민기의 인생 여정을 생경하면서도 기묘한 분위기로 예민하게 그려낸다. 호흡이 짧고 얇은 인상을 지닌 토막들이지만 그 하나 하나 강렬하고 단단한 인상을 뿜어내며 흑백의 색채는 흑, 회색, 흰색의 경계를 넘나든다.

적막한 느낌, 금속성의 질감, 모든 색채를 침묵 속에 삼킨듯한 색상들이 단출한 형상을 깊이 품어 안고 있다. 이는 청춘의 대부분의 시간을 감시와 탄압 속에서 보내며 노랫말 하나하나를 수놓듯 정성을 들였던 김민기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기 충분하다.

이번 공연 내내 영상으로 함께할 이택희의 연필 드로잉을 통해 김민기의 심경으로 다가가려고 시도해도 좋을 듯하다. 


※ 이번 공연의 티켓은 인터파크에서 인터넷 예매로 가능하며, 예매 시 2만2000원, 현장 구매시 2만5000원이다. 보다 자세한 사항은 노찾사 홈페이지와 노찾사 커뮤니티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 노찾사는 이번 공연을 위해 배포한 소개글에서 "
김민기의 음악은 노래를 찾는 사람들(이하 ‘노찾사’)의 뿌리"라는 사실을 밝히며 공연의 취지를 설명했다. 노찾사의 '뿌리찾기'는 비단 한 노래단체를 떠나 사회적으로도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stella.K 2009-04-09 14: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찾사라구? 난 오히려 '산울림'의 21세기 버전이란 생각을 했는데.
암튼 장기하 매력있어.^^

승주나무 2009-04-09 21:21   좋아요 0 | URL
이 글 쓰려고 어제 밤새 김민기, 노찾사 노래 들었어요.. 잠도 안 자고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