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 - 언론자유에 <이만하면>이라는 중간사는 있을 수 없다

 

  李政權 때의 일이다.  
펜 클럽대회에 참석하고 돌아온 분들을 모시고 조그마한 환영회를 갖게 된 장소에서 각국의 언론자유의 실황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끝에 모 여류시인한테 나는 『한국에 언론자유가 있다고 봅니까>』 하고 물었더니 그 여자 허, 웃으면서 『이만하면 있다고 볼 수 있지요』 하는 태연스러운 대답에 나는 내심 어찌 분개를 하였던지 다른 말을 다 잊어버려도 그 말만은 3,4년이 지난 오늘까지 잊어버리지 않고 있다.
시를 쓰는 사람, 문학을 하는 사람의 처지로서는 <이만하면>이란 말은 있을 수 없다. 적어도 언론자유에 있어서는 <이만하면>이란 中間辭는 도저히 있을 수 없다.
그들에게는 언론자유가 있느냐 없느냐의 둘 중의 하나가 있을 뿐 <이만하면 언론자유가 있다고> 본다는 것은, 쉽게 말하면 그 자신이 시인도 문학자도 아니라는 말밖에는 아니된다. 그런데 이런 사고방식을 가진 소설가, 평론가, 시인이 내가 접한 한도 내에서만도 우리나라에 적지 않이 있다. 이것은 우리나라의 문학의 후진성 운운의 문제를 넘어서 더 큰 근본문제이다.
  

- 김수영 산문전집 <창작자유의 조건> 중에서

 정말 김수영다운 멘트다. 나는 김수영 시집에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는 못했지만 김수영 산문집은 내 영혼을 받치는 기둥으로 삼고 있다. 얼마 전 군대 간 친구에게 연필자국 짙게 묻은 이 책을 선물할 때의 아쉬움이란.. 참고로 김수영이 말한 이정권은 이명박이 아니라 이승만을 말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걸 언론자유에 빗대서 표현하면

"1%의 언론자유가 없다는 것은 100%의 언론자유가 없다는 것과 같다. 100%의 언론자유를 누릴 수 없다는 것은 사실상 그곳에 언론의 자유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과 같다."


장자 - 비싼 월급에 눌려 말하지 못한다면 제사 때 쓸 돼지고기와 다를 게 없다
 

 장자가 강가에서 놀고 있었는데, 나라의 지체 높은 관리가 천금을 들고 와서 관직을 맡아달라고 사정했다.
장자는 잠시 생각에 잠기는가 싶더니 관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비싼 돈을 받고 관직에 들어가는 것은 제사에 바쳐지는 돼지와 같다. 제사에 바쳐지는 돼지는 삼시 세끼 진귀한 음식을 먹고 안락한 생활을 즐긴다. 하지만 그 돼지의 종착역은 머리가 잘리는 제삿상이다.
오로지 제삿상에 좋은 머릿고기를 올리기 위해서 그렇게 좋은 대우를 받은 것이다. 나를 제삿상의 머릿고기로 만들고 싶지 않다면 제발 나를 귀찮게 하지 말아 다오."- <장자> 중에서



장자의 낭만적이고 유유자적한 생활에 신비감을 가지고 있다 보니 장자가 언론자유에 대해서 무척 중요한 말을 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돈을 받으면 그 때부터는 입이 막히는 것이다.


급암 - "한무제 당신은 말로만 착하지만 속은 구렸어"를 면전에다 대고 한



 '급암'(한무제 때 활약했던 신하로 직간하기로 유명했음)은 한무제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며 "폐하께서는 속으로는 욕심이 많으면서 겉으로만 인의를 베풀려고 합니다."라고 대들었던 신하였다. 한무제는 급암 때문에 속이 부글부글 끓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마음속으로 급암을 존경했다.

일찍이 한무제가 장막 안에 있을 때 급암이 들어와서 일을 보고하려고 했다. 이때 천자는 관을 쓰고 있지 않았으므로 멀리서 급암을 바라보고 장막 뒤로 몸을 피하고 다른 사람을 시켜 보고를 재가하도록 했다. - 사기열전, 급정열전

하지만 급암은 중용되지 못하고 한직에 머무르다 조용히 생을 마감했다.  


맹자 - 한 치를 구부려 열 자를 얻는다면 언젠가는 열 자를 구부려 한 치를 얻을 날이 온다


맹자가 전국을 왕래하면서 아끼는 제자들을 데리고 다녔는데, 그 중에서 진대라는 제자가 선생님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안타까워서 한마디 한다.

"선생님은 제후들을 만나서 뜻을 펼치시면 될 것을 왜 그렇게 고지식하게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한 번 자세를 숙여서 제후들을 만나면 작게는 패자가 되어 천하를 호령할 것이고, 크게는 선생님이 뜻하시는 왕업을 달성하실 수 있으실 텐데 말이죠. 옛말에 한 치를 구부려 한 자를 얻는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 한 치(尺)은 한 자(尋)의 1/10이다.

맹자는 제자의 말에 그 사정을 상세히 이야기해주며 마지막으로 의미심장한 말을 해준다.

"네가 한 치 한 자를 이야기하는 것은 사사로운 이로움으로 대의를 설명하니 어불성설이다. 사정이 그와 같다면 한 자를 구부려 한 치를 얻는 것도 당연하지 않은가?"

맹자의 마지막 말은 언론과도 관계 있지만, '민주당'에 어울리는 말이 아닐까 한다.

'언론자유'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가장 중요한 가치였다. 여기에는 '적당히'라는 중간사가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 그랬다가는 호리지차 천리지말(毫釐之差千里之末). 손톱 만큼한 차이가 나라를 무너뜨리는 상황까지 가게 되기 때문이다.
이 모든 이야기들이 '언론의 자유'로 향해 있다. 언론의 자유는 한 치의 땅뙤기도 양보할 수 없는 것이다. 이렇게 가냘픈 유리그릇을 요즘은 스태인레스그릇 쯤으로  생각해 함부로 입을 놀리는 사람들이 많아서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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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icia 2009-03-05 17: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장자는 접때 얘기해주신 책이에요!
맹자집주도 보관함에 넣었고(언제읽을지는 모르겠어욤^-` ㅎㅎ)
음- 사기열전은 어떤 책이 좋은가요?

승주나무 2009-03-05 17: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현존하는 판본은 까치가 괜찮지 않나 싶습니다. 을유문화사판이 좋은데 절판이더라구요. 을유판이 가독성은 좋죠.. 쉬운 언어로 먹기 좋게 썰어 놓았으니^^

Alicia 2009-03-05 17: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승주나무님 고맙습니당^^ 이렇게 빨리 댓글 달아주시구-
실은 누가 좀 물어봐 달랬어요 :)

승주나무 2009-03-05 17:54   좋아요 0 | URL
글쿤요.. 저도 놀랐습니다. 그 분이 조금 더 기다려주실 수 있다면 김영수 씨의 사기 완역을 기다리시라고 하십시오. 김영수 씨는 <난세에 답하다>는 책을 쓰신 분인데, 중국에 수십 번 다녀오시면서 사마천에 가장 미친 한국인이거든요^^

제가 알라딘에 들어와 있어서 이렇게 빨리 댓글답니다.

Alicia 2009-03-05 23:56   좋아요 0 | URL

아, 사기 읽고 계시답니다 지금요. ^^
전 다른고전 안읽고 장자부터 읽어도 괜찮을지 살짝 걱정이에요.
그래도 우화내용은 옛날옛날에 몇개 본 적 있어서 그 익숙함에 기대어 시작해보려해요. 고맙습니다- 승주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