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풀해주자 잔뜩 경계의 눈으로 보던 이웃




주누피 님이 올려주신 캘리포니아 고속도로의 '카풀 레인'입니다. 2인 이상 탑승한 자동차와 오토바이만 다닐 수 있는 길이 1차선이나 2차선으로 정해져 있습니다. 아래의 그림처럼 카풀을 한 차들은 일반 차들에 비해서 쌩쌩 달리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얼마 전 비가 내리던 아침이었습니다.
지하철역까지 십분 이상을 걸어야 하기 때문에 아내가 자가용을 태워주었습니다.
임산부의 몸이기 때문에 차를 얻어타기가 뭣했지만,
비가 오는데 신발 젖는 모습이 안쓰러워 태워주겠다고 해서 타고 갔습니다.

가는 길에 우산도 없이 혼자 빗길을 걸어가는 여자분이 있었습니다.
아내가 지하철역까지 가는 것 같은데, 태워줄까 하고 물었을 때 나는 선뜻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갑자기 강호순 사건이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어.. 그래~" 하고 말끝을 흐리자 아내가 차를 세우고 가는 방향을 묻고 타라고 했습니다.

그 분은 차 안쪽을 한동안 훑고 나서야 고맙다며 차에 탔습니다.
만약 그 순간 제가 혼자 차를 몰고 갔거나,
아내가 앉은 모습을 보지 않았더라면 그 분이 카풀 제안에 동승을 했을까 하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습니다.
출근하는 내내 그 생각 때문에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선행을 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현실 서글퍼

강호순에게 살해된 무고한 희생자 중 4명은 버스정류장에서 강호순의 호의동승에 속아 변을 당한 것으로 보도되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미덕으로 권장되는 카풀 제도에 찬물을 끼얹어도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선의의 카풀러들이 피해를 입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2006년 경향신문에서 '의사상자 보상 축소'에 관한 기획기사를 실은 적이 있었습니다. 남의 위급한 상황에 목숨을 걸어 도움을 준 사람들이 자기 돈 내고 치료하고 남들로부터 쓸데없는 짓 했다고 질타를 당해 의행을 후회하게 되었다는 내용의 충격적인 기사였습니다. 이 기사로 인해 경찰청은 의사상자에 대한 보상을 강화하기로 결정해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아래는 관련 기사입니다.

[의로운 죽음, 남겨진 슬픔]“못본 척할 걸…” 義行 후회하는 사회

이 기사에 택시운전사 아저씨의 사례가 나오는데 저까지 씁쓸해졌습니다.

택시기사 이규씨 역시 후회하고 있다. 그는 택시강도를 뒤쫓는 경찰을 보고 강도가 탄 차량을 앞에서 막아섰다. 꽤 큰 충돌이 있었고 부상을 입었다. 하지만 그 역시 보상에서 제외됐다. 이유는 영구장애 등급에 속하지 않는다는 것. 게다가 폐차처분한 차량은 온존히 자신의 몫으로 남았다. 자차보험 6백만원과 자신의 돈 1천만원을 들여 새차를 구입할 수밖에 없었다. 병원비는 그나마 병원장이 무료로 해줘 덜었다. 이규씨는 복지부에서 재산상의 손실에 대한 보상규정이 없는데도 일단 의상자로 신청을 한 상태다. 그는 “안 되는 줄은 알지만 국회에서 법개정을 진행중이라는 소식을 들어 일단 신청은 해놓았다”면서 “서운하지만 어떡하느냐. 무슨 보상을 바라고 한 것이 아니니까. 주변에서는 이제 사고(?)치지 말고 조용히 살라고 한다”고 씁쓸해했다.

한 사회의 법률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풍습입니다. 정치 선진국이라고 평가받는 국가에서는 법률보다 미풍양속을 만들어내는 것을 최고 과제로 삼고 있습니다. 동양의 경우도 전통적으로 미풍양속이 법률보다 더 나은 정치라고 평가합니다. 9.11 때 경찰관들이 목숨을 걸고 인명구조에 나설 수 있었던 이유는 그에 대한 보상이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강호순 사건의 경우는 범죄행위가 다른 선행을 막아선 경우이지만, 카풀제도는 그 동안 범죄의 수법으로 악용돼 왔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 카풀이 일반화되지 못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이웃을 믿을 수 없는 사회, 이웃의 선행을 믿지 못하는 사회, 감히 선행을 하지 못하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아서 서글퍼집니다.

당장 저 혼자 차를 몰고 가다가 우산 없이 비를 맞는 여성분을 봤을 때 카풀을 제안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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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9-02-15 0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아무도 믿지 못할 세상이 되어가서 서글퍼요. 더구나 어린아이들부터 친절에 경계하도록 가르쳐야 한다는 현실이 무섭지요.ㅠㅜ

프레이야 2009-02-15 08: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들에게도 친절을 받아들이지도 베풀지도 말라고 당부해야하는 지경이 되었으니 참 서글프지요. 자꾸만 이기적으로 살라고 가르치는 사회가 되고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