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워드 진의 만화 미국사 다른만화 시리즈 1
마이크 코노패키 외 지음, 송민경 옮김 / 다른 / 200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오바마 드라마는 이젠 좀 지겹다."

세계가 한 사람의 영웅을 기다리고 영웅에 의해서 새로운 시대가 열린다는 말을 순진하게 믿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오바마의 미국 대통령 당선은 좁게 말하면 제시 잭슨 목사의 말처럼 “마틴 루터 킹 목사를 비롯한 흑인 민권운동의 지도자들이 40여년 전에 벌인 투쟁의 결실”이며, 넓게 말하면 당파성과 대립을 종식하는 통합의 리더십을 피부색과 관계없이 선택을 해왔던 미국 유권자들의 승리다. 그리고 민주-공화라는 양대 정당이 수백 년 동안 영락을 거듭하며 이어져온 형국이다. 최근에는 전 정부에 대한 반대표를 통해 정권을 교체하는 이른바 '반발의 원리'가 주요한 선거에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을 볼 때 오바마의 당선에 엄청난 의미부여를 하는 것은 감상적이다.

오바마의 정신적 계보 - 흑인 민권운동의 두 거목

미국을 알기 위해서는 두 가지 연설문에 주목해야 한다.

#연설1
“저는 케냐 출신 흑인 남성과 캔자스 출신 백인 여성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저를 키워준 백인 외할아버지는 2차 세계대전 때 패튼 군단에서 복무했고, 할아버지가 바다 건너 전쟁터에 가 있는 동안 백인 외할머니는 폭격기 생산공장에서 일했습니다. 저는 미국에서 가장 좋은 학교들을 나왔고, 세계 최빈국 중 한 곳에 산 적도 있습니다. 노예의 피와 노예 소유주의 피를 함께 물려받은 흑인 여성과 결혼해서 이 혈통을 사랑하는 두 딸에게 물려주었습니다. 다양한 인종, 다양한 피부색의 형제자매, 조카, 삼촌과 사촌들이 3개 대륙에 흩어져 살고 있습니다. 이런 사연이 저를 일반적인 후보자들과 다르게 만들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 당선자, 지난 3월18일 필라델피아에서 행한 ‘인종 연설’



#연설2
이 땅에 태어난 우리는 미국인이 아닙니다. 여러분도 저도 아닙니다. 2천 2백만 흑인 중 한 명으로서 미국의 희생자일 뿐입니다
민주주의는 본 적도 없습니다. 조지아주 목화 농장에도 결코 민주주의는 없었으며 뉴욕, 디트로이트, 시카고의 빈민가에도 민주주의는 없죠. 우린 민주주의를 본 적이 없고 오로지 위선만을 봤습니다! 우리에게 미국의 꿈은 없었고 체험한 건 악몽뿐입니다
말콤X의 연설, 영화 <말콜 X> 중에서..


▲ 영화 말콤X의 한 장면


오바마에게는 2명의 선구자가 있는데 흑인 민권의 상징인 마틴루터 킹과 다소 과격한 흑인 민족주의를 표방한 말콤 X다. 말콤 엑스는 비폭력적 흑인 인권을 주장한 마틴 루서 킹 2세와 달리 흑인들의 현실과 분노를 그대로 뱉어낸 연설로 흑인 인권운동에서 명성을 쌓는다. 그는 마틴 루서 킹 2세를 '흑인의 탈을 쓴 백인'이라며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이를 통해 볼 때 오바마의 정신적 계보는 마틴 루터 킹으로 연결된다고 할 수 있다.
연설1에서 보듯 오바마는 다양한 인종이 결합돼 통합의 리더십을 보여주기 적격이지만, 그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정체성의 혼란에 시달려야 했다. 외조부모의 집에 머무르던 당시 오바마는 인종문제로 정체성 갈등을 겪었다. 농구에 미쳤고 술과 담배, 마약에도 손을 댔다. 어두운 경험은 말콤 엑스 등 대부분의 흑인 지도자들이 겪는 통과의례인 듯하다. 맬컴 엑스도 당시 하류층 흑인들과 마찬가지로 힘겨운 생활과 함께 범죄의 길에 접어들게 된다. 21세에 그는 강도죄로 투옥되었으며, 옥중에서 이슬람 신앙에 귀의하게 된다.
오바마가 정치 신인이던 2004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진보적 미국과 보수적 미국이란 없다. 오직 미합중국만이 있을 뿐이다’라는 명연설은 그래서 무게감이 있다.

만화로 보는 미국인 대해부

연나라로 연나라를 친다. (맹자)
以燕伐燕


연나라가 연이은 실정과 백성에 대한 탄압으로 민심이 들끓고 일대 혼란에 빠졌다. 제나라는 이 틈을 타 연나라를 점령해 버린다. 연나라 사람들은 처음에는 제나라를 '해방군'으로 인식해 시골 촌부들까지 소쿠리에 음식을 담아와 제나라 군사를 환영했을 정도다. 하지만 제나라는 애초부터 연나라의 혼란을 해결하기보다는 제나라의 잇속을 챙기기 위해 연나라를 제물로 삼은 것뿐이다. 맹자는 이러한 제나라의 행태를 "연나라가 연나라를 친다"는 촌평으로 비판한다.
미국은 낡은 사고와 새로운 사고가 오랫동안 겨뤄왔던 나라다. 낡은 사고는 대외적으로는 제국주의적인 사고이며, 대내적으로 악덕자본가의 사고방식과 인종차별주의자의 사고방식이다. 


▲ 미국은 나라 안팎을 가리지 않고 탐욕적, 인종차별적, 제국주의적 사고를 고수해 왔다. (위에서부터 시계 반대방향으로) 2004년 이라크 아부그리브 수용소의 포로 학대사건, 베트남전의 무차별적 네이팜탄 공격, 19세기 J.P.모건, 존 록펠러, 제이 굴드 등 초기 악덕 자본가들에 의해 희생당한 미국의 노동자들.


1898년 7월 17일 스페인의 지배를 받던 쿠바 산티아고에 있는 총독의 궁에는 성조기가 게양됐다. 쿠바전쟁이 끝난 것이다. 하지만 미국은 스페인의 항복절차에 쿠바인을 참여시키지 않았다. 그리고 스페인 민간정부가 공공업무를 계속 담당하도록 허락했다. (<만화미국사> 61쪽) 이것은 어디서 많이 본 장면이다. 미국은 일본에 원자폭탄을 투하하고 무조건 항복을 받아내지만 친일파와 일본 관리들을 대거 요직에 등용시킴으로써 우리들의 독립 의지를 완전히 꺾어 놓았고 지금도 친일파가 득세하도록 만든 장본인이다. 6.25 전후처리에서도 남한이 당사국 자격을 얻지 못한 것은 미국의 정책 때문이었다. 미군은 어디서나 점령군이어야 했다.
독재정부에 대한 지원도 미국의 전문 분야다. 과테말라와 엘살바도르 등 아메리카의 독재국가는 미국의 지원으로 탄압을 이어갈 수 있는데 이들은 기본적인 언론의 자유조차도 무자비하게 탄압하고 있다. (이들 국가의 언론탄압 실태와 기자 살인 등에 대한 내용은 촘스키의 <여론조작>(에코리브르)에서 분명히 볼 수 있다)

하지만 드러난 이야기만으로 미국의 힘을 이해하려 한다면 반쪽짜리 지식밖에 얻지 못한다. 미국인들은 제국주의, 악덕자본, 인종차별에 대해 강력한 저항운동을 벌여 왔다. 현존하는 미국 최고의 지성인 촘스키와 하워드 진이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미국의 잠재력을 알 수 있다.

미국의 역사적인 노동운동 사건을 꼽으라면 풀먼 파업을  들 수 있는데 악덕자본이 백인 노동자들을 인디언이나 흑인처럼 천대하던 지역이 바로 풀먼 신도시였다. 유진 빅터 뎁스는 미국철도노동조합의 젊은 지도자로 활약했는데 1893년 경제불황과 공황기에 미국 철도노동조합을 결성했고, 1894년 풀먼사 노동자들과 함께 파업을 주도했다. 풀먼 노동자의 외침이 우리의 실정과 다르지 않다.

"그들은 1893년 5월에서 9월 사이에 우리의 임금을 다섯 차례나 삭감했습니다. 그래도 집세는 그대로입니다. 그는 고용주로서 우리에게 돈을 지급해놓고 집주인으로서 그 돈을 다시 가져가 버립니다."



▲ 1893년 풀먼사 파업 당시 사람의 논물로 목욕을 하는 해골들의 춤이라는 말이 나왔는데, 한 세기 뒤 이 현상은 '바닥을 향한 경주(국가나 기업 간의 과다경쟁이 빈곤층을 만든다는 이론)이라고 달리 부르게 되었고, 월마트의 사업모델이 되기도 했다. (만화 미국사, 32쪽)


노동자운동만 있는 것이 아니다. 미국은 반전운동의 메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오랫동안 반전운동이 벌어진 나라다. 다만 제국주의적 행태 속에 감춰졌을 뿐이다. 일본이 자민당의 나라라는 오해를 사는 것과 같다. 일본 역시 시민운동이 활성화된 나라이며 풀뿌리네트워크가 만만치 않다. 선진국은 이와 같이 양식 있는 시민들에 의해 견딜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서는 1차 세계대전에서 징집반대연맹을 조직한 엠마 골드만의 일화가 담긴 만화 한 컷을 소개하는 것으로 그치고자 한다. 그는 징집법 위반으로 2년 형을 받고 미주리 주 교도소에 수감되었는데 재판에서 그녀의 유일한 변호 수단은 감동적인 연설뿐이었다.

"국민을 군사적으로 예속한 상태에서 잉태된 민주주의는 결코 민주주의가 아닙니다. 그것은 독재정치입니다."


▲ 이 그림은 수감 2년 후 감옥으로부터 나오는 이야기를 하워드 진이 상상해서 삽입시킨 대목이다. 하워드 진은 '엠마'라는 제목으로 그녀에 대한 희곡을 쓰기도 했다.


미국인을 알아야 하는 이유

오바마 대통령이 미국의 여느 대통령과 다른 이유는 '국민과 가장 가까운 대통령'이라는 점이다. 미국은 본질적으로 두 가지 속성, 즉 제국주의적 속성과 이에 대한 저항으로서의 민권운동적 속성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오바마는 미국의 이전 정책기조에서 큰 틀의 변화를 이루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오바마는 미국인의 의향을 지속적으로 살펴서 정책을 실현해야 하기 때문에 미국인의 의지가 사실상 오바마의 의지가 될 확률이 높다.

우리의 경우 한미FTA에서 방점으로 보아야 할 것은 '미국 노동자'이다. 만약 FTA를 통해 미국민들의 손해가 예상된다면 오바마는 이를 없던 일로 하거나, 미국 노동자의 이익이 보장되는 방향으로 급 선회할 확률이 높다.

지금까지 미국의 국익은 한국의 국익과 마찬가지로 '추상적 이익'에 머무른 반면, 오바마가 말하는 미국의 이익은 '미국인의 이익'에 가까울 것으로 예측된다. 물론 오바마가 노무현의 길을 걸을 수도 있지만, 노무현에 비해 민권운동의 뿌리가 매우 깊은 오바마이기 때문에 나름대로 슬기롭게 대통령직을 수행하리라고 본다. 
미국인, 미국 노동자들은 한국인, 한국 노동자들과 매우 비슷한 처지라고 할 수 있다. 미국 시민과 한국 시민, 전 세계 시민들이 네트워크를 이루는 것만큼 강력한 힘은 없다.

이명박을 통한 FTA는 한국 노동자와 서민들의 이익을 절대로 대표할 수 없다. 하지만 미국 노동자와 시민들이 협의할 수 있다면 미국 노동자의 입을 통해 오바마 행정부에 얼마든지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

하워드진의 미국 민중사라는 책이 국내에서도 소개된 것으로 알고 있지만, <만화 미국사>는 미국의 '반대쪽 에너지'를 알기에 손색이 없다. 궁금한 내용은 추가 자료를 통해서 알 수 있지만, 기본적인 뼈대는 이 책이 어느 정도 채워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나에게 한 가지 교훈을 주고 있다.

"미국에 대해서 한 쪽만 알아서는 곤란하다. 두 가지를 모두 알아야 한다."


<참고한 기사>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811050250015&code=970201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811111824005&code=210100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811051825085&code=97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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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8-11-19 0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워드진의 만화 미국사라고요? 이렇게 흥분될때가.... 이거 수업자료로 최고겠어요. 담아갑니다. ^^

승주나무 2008-11-21 16:02   좋아요 0 | URL
수업자료로도 좋을 것 같아요.. 하지만 '좌파적출 바람'은 조심하세요^^

마노아 2008-11-19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주문했는데 아직 안 도착했어요. 미국 민중사 읽기 전의 워밍업이라고 생각하려고요.

승주나무 2008-11-21 16:03   좋아요 0 | URL
네~ 미국 민중사는 토크빌의 <미국의 민주주의>를 읽기 위한 워밍업이고, 이 책은 미국 민중사를 읽기 위한 워밍업인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