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철학사
한스 요아힘 슈퇴리히 지음, 박민수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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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 듀런트라는 미국 철학자의 <철학 이야기>(문예출판사)를 통해 나는 철학에 첫 발을 들여놓았다. "책을 한 권 집으면 다음 권은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는 말처럼 철학의 매력(사실은 듀런트의 문장)에 이끌린 나는 그 어렵다는 스피노자의 에티카를 잡고 읽었다. 좋은 구절을 정서하면서 여름방학 두 달을 다 보냈다. '마녀의 빗자루 효과'라는 말이 여기서 비롯됐는데, 에티카 5장을 다 읽을 쯤에는 뽕 맞은 것처럼 몸이 붕 뜨는 감정을 느낀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도서관 한가운데에서 뽕 맞은 상태가 된 나는 소리를 지를 뻔했다. 그때부터 나는 틈만 나면 스피노자, 스피노자 노래를 부르고 다녔다.
이 모습이 안타까워 보였는지 철학과의 교수는 나에게 의미심장한 조언을 해준다.

"승주야. 특정 철학자의 저서를 통해 철학 전체를 관망하는 것은 좋지 않다. 철학사 전체를 통해 흐름을 조망하고 특정 철학자로 다가가는 것이 좋겠구나."

나는 당장 이 말을 시행에 옮겼다. 철학사 중에서 읽을 만한 책을 선배에게 물어서 '러셀'의 <서양철학사>(을유문화사)를 찾아낸다. 러셀은 이 책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노벨철학상'이 없었기 때문이다. 철학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사람은 러셀뿐이 아니다. 베르그송도 철학자이면서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서양철학사>는 러셀의 재기발랄한 문장으로 오감을 자극한다. 다만 나는 그때 <스피노자>라는 유럽의 합리론에 귀의해 있었기 때문에, 라이벌인 영국 경험론의 계보를 갖고 있는 러셀의 서술 방식이 유감스러웠다. 특히 스피노자를 설명하는 대목에서는

"그의 철학과는 무관하게 철학자로서의 삶의 자세는 위대한 철학자들의 존경을 받기에 충분하다"

이 말은 사실 철학보다 철학 외적으로 스피노자를 깎아내리는 것에 다름아니었다. 두 권으로 이루어져 있기는 하지만 대중적인 책이다. S.P.램프레히트의 <서양철학사>(을유문화사)는 정리가 무척 잘 돼 있다. 철학에 관심이 많은 비전공 철학도에게 철학사의 핵심 요소를 가장 깔끔하게 설명해줄 것이다. 분량도 한권으로 깔끔하다. 만약 철학의 내부를 면밀히 들여다보고 싶다면 코플스톤의 철학사 시리즈를 추천하고 싶다. 지금은 절판돼 아쉽지만 <그리스 로마 철학사>와 <중세철학사>, <대륙합리론>, <영국경험론>, <현대철학사> 등 시대별로 이루어진 시리즈는 전공 철학도들에게 필수 도서로 추천되곤 했다. 코플스톤처럼 독하게는 아니지만 철학교수들이 사랑하는 철학책은 요한네스 힐쉬베르거의 <서양철학사>(상,하)이다. 나도 상권을 읽고 부분 부분 참조하긴 했지만, 철학의 내면과 상황적 필연성을 개연성 있게 잘 연결시킨 점이 만족스럽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책들은 서양철학사에 머물러 있으며 <세계철학사>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없는 실정이다. 중국의 철학은 풍우란의 <중국철학사>(상,하)(까치), 인도의 철학은 라다 크리슈난의 <인도철학사>(1,2,3,4)(한길그레이트북스)를 보면 된다.

이제야 본서를 소개하게 되었는데, 처음에는 광고 카피 때문에 조금은 주저했던 것도 사실이다.

철학의 본고장 독일에서 출간되어 60만부 이상이 팔렸고,
전 세계 20개국에서 번역된 세계 최고의 철학사!
1950년 초판 출간 후, 끊임없는 개정과 증보를 거듭해 1999년 17번째로 개정된 최종 결정판의 완역 출간!

이 책은 현재적 가치에 충실하며 사실은 영원한 질문의 다른 표정인 현재적 질문을 끝까지 놓지 않고 있다.

우리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우리는 무엇을 믿어도 좋은가?

저자가 서문에서 밝혔던 세 가지 원칙은 책의 어떤 면을 펼치더라도 위배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이 책이 내게 매우 만족감을 주었던 이유는 두 가지다.

1. 처음으로 만난 '세계철학사'다.
2. 강의 방식을 훌륭하게 탈피했다.

철학에 관심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세계철학사'를 한 권에 담아낸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 것이다.
대체로 서양철학사, 중국철학사, 인도철학사 이런 식으로 단행본을 나누게 되는데, <세계 철학사>는 인도철학, 중국철학, 서양철학을 모두 소개하고 있다. 1,200페이지라는 분량이 부담스럽기는 하지만, 평생을 놓고 사유하며 읽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철학사에서 아쉬웠던 점은 똑똑한 선생이 나타나 강의를 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세계 철학사>는 처음으로 책에서 나와 나에게 말을 걸어주었다. 말을 걸어준다는 것은 상황을 교과서처럼 정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 철학자나 그 상황에서 무엇을 읽어야 하는지를 따져 준다는 말이다. 1,200쪽을 단숨에 읽을 수는 없지만, 밤에 잠자기 전에 고요한 기분으로 오래 두고 읽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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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 2008-11-14 0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힐쉬르베르거, 렘프레히트 등등의 책들이 책상 앞에서 노려보고 있네요.. 이 책들 언제나 제대로 읽어볼지 졸업 전에는 해야될텐데ㅠ 소개시켜주신 세계철학사도 나중에 한번 펴볼게요 감사합니다.

승주나무 2008-11-14 22:14   좋아요 0 | URL
오~ 바라 님~ 이미지가 엄청 길어서 아래가 많이 남네요. 철학도이신가 봐요, 반갑습니다. 힐쉬르베르거와 램프레히트 중에 하나를 고르라면 후자를 추천합니다. 후자를 먼저 읽고 전자를 읽으면 더 좋을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