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는 사람에 따라 스펙트럼이 다양한 손낙구 식 강연

<부동산 계급사회>(후마니타스)의 손낙구씨와는 세 번째 만남이다. 첫 번째는 책으로, 두 번째는 독특한 인터뷰로 만났다. <부동산 계급사회>라는 책으로 인해 우리는 대한민국의 부동산 문제를 낱낱이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다. 20년 가까운 시절 동안 노동 현장에서 뛰어다닌 경험과 심상정 의원이 17대 국회에서 의정활동하던 시절 그의 보좌관을 하면서 획득한 고급 자료가 '쌀집아저씨' 같은 인간미와 적절히 버무려진 '전주비빔밥' 같은 책을 만난 것은 나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책을 읽자마자 '작전'에 들어갔다. 마침 베이징올림픽의 분위기가 누그러지는 시점이었기 때문에 "세상에서 가장 서러운 금메달"이라는 제목으로 블로그 포스트를 작성한 것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직간접적으로 10개 가까운 글을 썼고 운 좋게 높은 조회수를 기록한 것도 많았다.
추상적이고 구호적인 목소리를 내는 분들과 부동산 문제의 실상을 잘 모르는 분들, '계급'이라는 개념에 대해서 모르는 분들이 읽었으면 하는 바람에서였다.

이런 사정 때문에 10월 20일 신촌 아트레온 토즈에서 열린 손낙구 강연(알라딘 제1회 사회과학 연속특강)에 참석할 것을 망설였다. 2시간여 동안 진행된 손낙구의 강연회는 <부동산 계급사회>를 면밀히 읽은 독자에게는 다소 흥미가 떨어질 수 있다. 강연의 큰 틀은 책의 목차와 유사하기 때문이다. 좀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손낙구 강연은 <부동산 계급사회>의 목차에 충실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의 문체와 어감에 천착하고, 책의 강점을 어떻게 드러낼지 이 궁리 저 궁리를 다 해본 나 같은 광팬에게는 손낙구의 문어체에서 풍기는 매력을 넘어서는 매력을 구어체에서 느낄 수 있었다.

"어떤 미친 놈이 엄청나게 큰 봉다리를 사서 하늘에 펼쳐놓고 '이제부터 숨쉬고 싶으면 나한테 돈을 내라'고 한다면 어떻게 하겠나? 그런 놈은 당장 구속시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살 수 없기 때문이다."


▲ 손낙구 씨는 상대방의 특징, 질문의 내용, 이해의 정도, 분위기에 따라서 표현과 예시를 달리하는 카멜레온 같은 강연 기법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기법이라기보다는 수십 년 동안 사람들을 설득하면서 가지게 된 일종의 직관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어떻게 설명하면 가장 잘 포착할 수 있는지 아는 사람이 손낙구다. <부동산 계급사회>는 중학생이 이해될 만한 정도로 맞추어 쓴 책이다. 이 책을 읽고 그에게 '대학원' 이상의 질문을 해보라. '대학원' 이상의 답변을 듣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손낙구 씨는 대중강연의 문법에 맞게 곳곳에 '웃음포인트'를 집어넣기도 하고, 쉬어가는 페이지를 집어넣기도 하면서 2시간 반 동안 방청객들을 꼼짝 못하게 만들었다.

예컨대 "네덜란드는 주택의 36%를 정부가 소유한다. 집없이 서러운 사람들에게 제공하기 위해서다. 여러분이 잘 아는 히딩크의 나라에서는 한 집에 대해서 30년 동안 계약을 할 수 있는데, 다시 말해서 30년 동안 '방 빼!'라는 소리를 듣지 않을 수 있는데, 수명이 낮은 사람은 그 안에 죽을 수도 있다."는 식이다. 손낙구 식 언어의 묘미는 씹는 맛이 달라서 좋다. 왜 일찍이 '저자'로 데뷔하지 않았는지 원망스러울 정도다.


결론은 숫자도 문자도 아닌, 그저 '휴머니스트'

그날의 강연 중에서 가장 크게 다가온 메시지는 바로 '최저주거기준'이라는 개념이다. '집안심률'이라는 개념도 무척 중요하고 재밌지만, '최저생계비'를 부동산에 적용한 '최저주거기준'은 누가 들어도 무릎을 탁 칠 만한 개념이다. 그것은 "인간이 인간성을 유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주거 조건"을 가리킨다. 예컨대 침실을 기준으로 할 때 부부가 시어머니, 시아버지와 한방을 사용한다면 최거주거기준에 미달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아들과 딸이 장성했지만, 역시 부모와 한방에 거주하는 경우 최저주거기준에 미달했다고 말한다.
여기에 미달하는 가정은 우리나라에 1,000만 명 정도 된다. 여기서 지하, 옥탑방, 움막, 비닐하우스, 동굴 등 '비상식적'인 주거생활을 하는 인구도 160만명이 된다. 참고로 이것은 2005년의 통계이다. 그 동안 자살자 비중이 엄청나게 늘었으니 비상식적 주거생활자 역시 기하급수로 늘어났을 것이다.


▲ 부동산 계급사회에서 재인용한 2005년 통계청 자료이다. 1과 같이 수도권에 지하(반지하)가 몰려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서울에는 붙어 있어야겠고, 먼 곳으로 이사갈 처지가 안 되는 사람들은 박정희가 방공호로 만들어놓은 지하로 내려갔다. 2는 판잣집,움막,동굴 등 수백, 수천 년 전의 생활양태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이 10만명이 넘는다는 것을 가리키는 충격적인 통계 자료다. 부산일보 특별취재팀이 두 달 간의 심층취재로 이 자료가 사실에 부합함을 증명해 주었다.


<부동산 계급사회> 책에서와 마찬가지로 강연회에서는 '숫자'가 많이 등장했지만, 마지막에는 가장 단순하고 쉬운 언어로 정리를 해주었다. 최저주거기준이라는 개념을 설명하면서도, "지구상 생명체 중에서 땅을 딛지 않고 살 수 있는 생명체가 하나라도 있나"라는 질문을 결론으로 삼았다.

가장 짠한 장면은 뒤풀이 자리에서 들었다. 남양주 지역에 강연을 갈 기회가 있었는데, 거기서 동향 사람들을 여럿 보았다고 말했다. 옛날의 추억을 하나 둘 이야기하다가 동향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는데, 적어도 대여섯은 되더라는 것이다. 그들은 서울에서 남양주로 밀려간 셈이다. 손낙구 씨는 "그들은 밀려났고, 나는 그나마 남아 있다"고 말하며 남은 담배를 마저 피웠다.


번외편 - 독하게 물어봤다.

강연이 끝나고 뒤풀이가 있었다. 일부러 손낙구 씨 앞에 앉아서 나는 작정한 듯 질문을 했다.

"책에서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지 않고 어떻게 해서든 차선이나 차악을 상정한 것 같다. 선생님이 생각할 때 '최악의 상황'이 벌어질 확률은 얼마나 되나?"

- 손낙구 씨는 차분한 어조로 답변을 했다. 3가지 시나리오가 있다. 지금의 상황이 어쨌든 유지되든가, 공황적인 상황이 오든가, 아니면 일본처럼 장기 침체의 늪에 빠지든가이다. 여기에 또 두 가지 상황이 있을 수 있다. IMF처럼 대기업 괴물들이 중산층을 학살하면서 폭식을 하거나, 아니면 아주 우연적으로 체질이 변화하거나. IMF처럼 근본적인 변화도 없으면서 양극화는 심화시킨 형태로 가는 것이 최악이다. 하지만 미래에 대한 예측은 나의 영역은 아닌 것 같다.

"'부동산 거품 붕괴 시나리오가 현실화된다면 헐값의 집을 정부가 사들여 서민들에게 제공해줄 물량을 확보하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는데, 그쯤 되면 정부도 구제금융에 판돈이 다 떨어질 대로 떨어졌을 시기가 아닌가 한다. '주거권'이라는 것은 프랑스나 유럽 국가들처럼 밑바닥에서부터의 도도한 투쟁의 결과로 획득되었지, 우연적으로 생긴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연적으로 주거권이 확보된 것과 유사한 사례가 있었나?"
- 수십년 동안 노동계에 머물러서 '밑바닥부터의 투쟁'이라는 것에 대해서 알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도 알고 있다. 하지만 몯느 역사가 '밑바닥에서부터의 투쟁'과 같이 정석대로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필연성과 우연성이 공존하는 것이 역사 아닌가. (실제로 한국의 현대사는 온갖 역설로 점철돼 있다. 이승만이 권력 유지를 위해 악용한 공천제와 지방자치제는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중요한 가치가 되었는가 하면, 사람들이 오랫동안 싸워가며 19세 투표권을 쟁취했지만 실제 선거에서 19세의 투표율은 미미한 것이 현대사의 역설을 가장 강하게 증명한다 - 글쓴이)




▲ 뒤풀이까지 참여한 독자를 위해서 손낙구 씨의 딸이자 발바닥 그림작가인 해인이에게 발바닥을 그려달라고 부탁했다. 해인이는 책에 너무나 넣고 싶었지만, 만화적이라는 이유로 캐스팅되지 못한 깜찍한 발바닥을 선물했다.


- 작가와의 만남 1기 승주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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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두부 2008-10-23 17: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잘읽었습니다...우리 지역에서도 꼭 한번 초청했으면 좋겠네요..^^

승주나무 2008-10-23 21:46   좋아요 0 | URL
네~ 넉넉한 인심을 가진 분이라 꼭 응해 주실 겁니다. 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