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은 노래한다
김연수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류학에 '빠진 고리'(missing link)라는 용어가 있다. 그것은 유인원과 인간의 중간에 있었다고 추정되는 생물이 있다는 가정 하에 생겨난 상상의 응고물이다. 그런데 우리가 상상했던 '고리'가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에 '빠진 고리'라는 별칭을 쓴 것이다. 한국에서 유난히 인기가 있는 베르베르 베르나르는 '빠진 고리'라는 주제로 <아버지들의 아버지>(열린책들)를 쓰기도 했다. (이 책을 읽어보지도 않고 어버이날 아버지에게 선물했다가 한참 뒤에 후회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이미 흘러간 옛이야기가 돼 버렸지만, 우리나라에서는 1960년대에 순수-참여문학 논쟁이 있었다. 말 그대로 문학이 현실에 개입해서 모순점들을 파헤치고 싸우는 전투병 역할을 하려는 게 참여문학의 목표였다. 물론 요즘은 '참여문학'이라는 말을 쓰는 사람이 거의 없지만, 그것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논쟁처럼 순수문학이 승리했다기보다는 참여문학의 수준이 봐줄 만한 정도가 아니어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공산주의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인간의 수준이 과도하게 높고 금욕주의를 완벽하게 실천해야 하는데 인간으로서 이를 감당할 리 만무하다. 

가공의 작품이 현실을 변화시키려면 고도의 완성도와 상업적 성공이 있어야 한다. 내가 아는 바에 한해서, 세계 문학사상 현실을 멋지게 변화시킨 사례가 두 번 있는 것으로 아는데, 미국의 <엉클 톰스 케빈>(엘리자베스 비처 스토우)과 프랑스의 <파리의 노트르담>(빅토르 위고)이었다.

1852년 3월 엘리자베스 비처 스토우라는 여류작가가 쓴 <엉클 톰스 케빈> 이라는 한권의 소설이 전 미국을 발칵 뒤집어 놓는 사건이 발생했다. 노예들의 비참한 상황을 쓴 이 고발소설은 비인도적이고 반인간적인 노예제도의 폐지 여론을 불러 일으켰다.
<파리의 노트르담>(1843년) 은 빅토르 위고의 대표작 중 하나이다. 당시에는 중세의 예술에 대한 관념이 매우 불완전했는데,이 때문에 사람들은 고대의 건축물을 미화, 보존한다는 핑계로 훼손하는 경우가 많았다. 빅토르 위고는 <파리의 노트르담>을 통해서 중세 사회와 그것에 의해 창조된 작품 사이에 존재하는 관계에 관해서 구체적이고 생생한 관념을 독자들에게 심어줌과 동시에 이를 존중해줄 것을 간청했다. 이 작품을 계기로 옛 건축물을 보존하자는 운동이 대대적으로 펼쳐졌고 급기야 노트르담의 성당 역시 1850년 르 뒤크(Violet le Duc)에 의해서 복원되기에 이른다.

우리나라의 경우 영화 <실미도>가 흥행에 성공하자 '71년 실미도 사건'에 대한 진상조사위원회가 구성돼 인권유린과 법률 위반 여부, 국가 책임 여부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이루어진 바 있다.

김연수의 신작 소설 <밤은 노래한다>(문학과지성사)를 이야기하면서 엉뚱한 작품들을 사례로 든 까닭은 이 소설 역시 현실에 한쪽 발을 걸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해제를 맡았으며 이 책의 배경이 된 1930년대 초반의 '민생단 사건'으로 박사논문을 쓴 한홍구는 사건에 감춰진 말 못할 사정과 상황논리, 공포와 욕망 등은 이미 역사서술의 경계를 벗어나 있다고 고백했다. 그러니까 김연수의 <밤은 노래한다>는 현대사의 '빠진 고리'를 채워넣는 기능을 한다. 작가가 의도했든지 그렇지 않았든지 간에. 나는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문학동네) 때부터 김연수를 읽기 시작했는데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역시 1991년 여름 이른바 '5월투쟁'이 끝난 후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던 대학생의 분열된 시선으로 역사적 기록의 틈새에 박힌 개인의 진실을 파고들었다. 김연수의 소설이 여타 다른 소설처럼 기발하지도 않고 웃기지도 않으면서 마니아의 층을 두껍게 하고 있는 이유다. '역사는 강자의 기록이다'라는 상투적인 언어로 역사서술의 한계를 표현하듯이 역사 서술은 주관과 이해관계라는 웅숭깊은 함정이 도사리고 있고 '기득권'이라는 소유자가 엄격하게 있기 마련이지만, 소설은 '형식'이라는 장벽으로 인해 이런 훼방꾼들이 차단된다는 점에서 현실을 노래하기에 적당한 언어다. 단, 노래를 하는 작가는 형식의 높은 장벽 위에 이미 올라설 만큼 내공이 있어야 한다는 조건이 있다. 김연수가 그런 경지에 도달했다고 말하는 것은 몹시 민망하지만, 김연수의 신작은 최소한 그런 수준에 도달했다는 느낌(혹은 착각)을 주기 충분한 몇몇 군데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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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8-10-13 2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연수씨의 작품은 여행할권리와 함께 요 책 딱 두권 봤는데 앞으로 계속 주목해야 할 작가임에는 분명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승주나무 2008-10-16 16:58   좋아요 0 | URL
저도 여행할권리와 네가 누구든..부터 봤는데~ 저랑 맞는 작가인 것 같아요..진지한게 ㅎㅎ

수양버들 2008-10-18 1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도 추천하고 갑니다. ^^
표지부터 심상치 않더니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