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사는 무한영리를 추구하는 기업과 한패다

어린아이들에게 이유식을 안정적으로 제공해 유아사망률을 줄이고자 했던 칠레의 아옌데 정부를 몰락시키고 독재자 피노체트를 지원한 것도, 친일파 청산을 가로막고 재임용해 현대사의 밑둥부터 잘라버린 것도 미국의 수법인데 공정한 언론이라면 미국의 이러한 행위에 대해서 질타하고 여론을 조성해 압박을 가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생길 만도 하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각국의 독재자와 군벌을 지원해 이익을 나눠먹는 미국정부와 언론은 한통속이다.

언론은 본질적으로 대중에게 메시지와기호를 전달하는 시스템이지만, 실질적으로는 가치관, 신념, 행동규범을 지속적으로 심어주어 사회의 제도적 구조 속으로 대중들을 통합시키는 기능을 한다. 말 그대로 언론의 속성 자체가 보수적이라는 거다.

대체로 비판언론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하는 <뉴욕타임즈>의 경우 199년 11월12일 시애틀에서 개최된 WTO 회의에 대한 시민들의 반대시위를 악의적으로 보도하였는데, 시위자들이 오물과 화염병을 하원의원들과 경찰 간부들에게 던졌다고 거짓말을 쳤다가 다음날 이것이 허위사실이었음을 인정하는 정정보도를 내어야만 했다.
명박산성 아래서 어청수 일당들이 시위자의 손가락을 자르고 여성 시위자를 방패로 사정없이 내리찍고 하는 폭력성에 대해서 주류 언론들이 침묵했듯이 미국의 주류언론, NBC, ABC, CNN, <뉴욕타임즈>, <워싱턴포스트>는 경찰을 두둔하고 시위자들을 폄하하는 보도행태를 보였다. 언론사의 구체적인 수법을 보면 더욱 가관이다. 사건의 순서를 바꾸는가 하면, 시위자들의 위협을 과장하며, 평화시위를 희망하는 사람들에게 공포감을 심어주려는 경찰의 대규모 불법대응을 눈감아줌으로써 경찰의 표현과 표현의 자유에 대한 엄중한고 불법적인 규제들을 합법화할 근거를 마련해 주었다. <뉴욕타임즈>가 말이다.


광고 중심의 언론시스템



▲ 조중동의 광고비 점유율과 그 추이. 조중동이 광고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이미 위험수위를 넘었다.


언론시스템이 광고 중심으로 재편된 시점은 19세기 중반 즈음이다. 당시 영국은 반대의견을 통제할 방편으로서 '대중광고를 선호하는'신문들을 제도적으로 도울 것임을 천명했다. 국가가 세금과 통제를 통해서 이루지 못할 일을 시장은 자본비용과 광고를 통해 달성할 수 있다.
광고주들의 지원이 없으면 신문이 경제적으로 살아남을 수 없으므로, 광고주들은 사실상 '실질적인 사업 허가권자'이다.

광고가 호황을 누리기 전에는 신문사들이 판매수입으로 영업비용을 충당했으나 광고시장이 넓어지고 광고의 유혹에 넘어간 신문사들은 광고수익으로 생산비용을 충당할 수 있기 때문에 판매가를 낮추는 전략을 선택했다. 그야말로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넘긴 것이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거나 대기업의 시장폭력을 제어하는 언론들이 폭사하고 말았다.

<데일리헤럴드>의 사례는 이를 극명히 보여준다. 1960년과 1967년 사이에 <데일리헤럴드>, <뉴스크로니클>, <선데이타임스> 등은 매일 평균 930만 명의 독자를 확보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폐간되거나 기존 언론사에 흡수되었다. 특히 <데일리헤럴드>의 경우 마지막 해에 470만 명의 독자를 확보하고 있었는데, 이는 <타임스>, <파이낸션타임스>, <가디언>의 모든 독자를 합친 것보다 2배나 많은 수치였다. 전국적으로 8.1%의 점유율을 자랑했던 <데일리헤럴드>의 광고 순수익은 3.5%로 극히 미미했기 때문에 신문시장에서 사라지고 만 것이다. 이는 신문사의 논조나 경쟁력과 무관하게 광고주에게 절벽 아래로 떠밀린 결과나 다름없었다.

광고주들이 언론시장을 완전히 장악하면서 비우호적인 언론기관을 차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들의 원칙에 맞는 프로그램을 선별하기도 한다. 그들이 선별하는 원칙이란 예외 없이 문화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의 경우 경향신문과 한겨레에 삼성광고 등 대기업 광고가 사라졌다. 이러한 결과로 언론사는 당연히 중요한 공적 문제를 다루는 프로그램을 등한시하거나 폐지할 수밖에 없다. 언론은 정보기관과 기업의 기분을 언짢게 하지 않기 위해 민감한 뉴스를 다루지 않거나 모호하게 표현할 수밖에 없다.

언론사가 조중동이 되어갈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이유다.



▲ 변형생성문법의 창시자로 유명하며, 현존하는 가장 중요한 지식인이자 미국의 양심으로 일컬어지는 노암 촘스키의 <여론조작>(에코리브르)를 참조하였습니다. 촘스키는 '선전모델'이라는 가설을 통해 언론이 국가와 기업에 봉사하며, 대중들을 의도하는 방향으로 이끄는 데 유력한 용의자일 뿐만 아니라, 조직적이고 치밀한 조작을 통해 지금도 세계의 각종 분란을 용인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특히 언론, 집회, 종교의 자유를 보장한 수정헌법 1조를 떠받드는 척하다가도 자신들의 권리와 특권이 위태로울 때는 헌신짝처럼 팽개치는 언론의 행태를 심도 있게 분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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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8-09-02 0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전화를 한통 받았어요. 시사IN에서 정기구독을 부탁하는...
한겨레 21을 이미 정기구독하고 있기에 잠시 망설였으나 어찌나 전화하신분의 목소리가 간절한지.... ㅠ.ㅠ 그리고 잠시 님도 생각나고 그리고 삼성이라는 거대기업과 싸웠던 사람들의 용기를 인정해주지 않는다면 나는 뭔가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1년 15만원이상의 가치를 해주기를, 처음의 그 마음과 용기들을 잃지 않아주기를 바라면서요.

승주나무 2008-09-03 12:00   좋아요 0 | URL
바람돌이 님..1년 유예를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언제나 정기구독을 해줄 수만은 없지만, 요즘 언론환경이 너무 악독해서 그런 언론사가 용감한 기사를 쓸 수 있다는 것이 커다란 위안이 되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