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현대사 60년
서중석 지음 / 역사비평사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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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가 사라진 하루

 

2008년 8월 15일 광복절은 현대사가 사라진 하루였다. 아니, '인간'이 사라지고 '국가'만 남았거나, '생명'(국민)이 사라지고 시체(이승만, 박정희)만 남았다고 해야 할 것 같다. 프랑스의 심리학자 디디에 앙지외(1999년 76세로 사망)는 ‘피부 자아(moi-peau)’라는 정신분석학 개념을 고안했다. 곧 “자아는 피부다”는 것이다. 우석훈은 이를 독특하게 풀이하는데, 나 자신을 나의 피부로 삼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거다. 회사나 집단을 피부로 대신 빌려오기도 하지만, 가장 불행한 경우가 '국가'라는 피부를 빌리는 것이다. '국가는 곧 나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다름아닌 자기정체성이라는 피부를 못만든다는 고백인 것이다. 이 증거는 헌법 제1조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한국의 헌법 1조1항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인데, 헌법 첫머리에는 '민주'라는 정치체제와 '공화국'이라는 국가체제를 규정하고 있다. 이에 비해 독일의 헌법 1조1항은 "인간의 존엄성은 신성불가침이다"이며 네델란드는 "네델란드의 모든 국민은 평등한 환경에서 평등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 종교, 신념, 정치적 의견, 인종 또는 성별 등의 어떠한 배경에 바탕을 둔 차별도 금지되어야 한다"라고 한다. 모든 제도와 법률을 뛰어넘는 기본적인 '인권'조차도 대한민국 헌법정신에서는 국가 다음 순서다. 그러나 이것이 주된 비판점이 될 수는 없다. 대부분의 나라들이 국체(國體)와 정체(政體)를 헌법1조에 새기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그리스는 의회권한 강조, 일본, 태국은 왕의 존재가치 부여(일본은 상징적 가치, 태국은 실질적 가치), 쿠바는 인권, 국체, 정체 가치부여)

 

2008년 8월 15일 광복절의 주인공은 이승만과 박정희다. 국민행동본부·뉴라이트전국연합 등 보수단체들은 청계광장에서 ‘이승만 건국 대통령에 대한 국민감사 한마당’ 행사를 벌였고, 거리는 온통 태극기와 함께 박정희의 상징 새마을기가 나부꼈다. 이승만이 누구인가? 끝없는 불법과 농단으로 국민적 분노를 자초한 끝에 1960년 4월 19일에 역사에서 퇴출당한 인물이다. 이승만을 존경하는 사람들은 친일파뿐 없다. 반민특위에서 처단될 위기에 처한 자신들을 '테러'로 구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일제가 지켜주었듯이 지켜주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 광복절을 '친일절'이라고 비판하는 이유다. 문제는 이명박 대통령이 이들의 손을 들어줬다는 데 있다. 자신의 정파적 위치가 어떻게 됐든 간에 광복절은 전국민이 축하할 자리인 만큼 '국민통합'을 위하는 시늉이라도 보여주었어야 할 자리에 편파적인 의견에만 귀를 기울인 것은 두고두고 악수가 될 수 있다. '건국절'과 '새출발'이라는 미명에 '현대사'가 정면으로 부정된 몹시도 슬픈 하루였다.

 

 

대한민국 60년을 세계사적 관점으로 보여주는 책

 

한국 현대사 분야에서 손꼽히는 역사학자 서중석 교수는 작년에 87민주화운동 20주년을 맞아 광복 이후부터 오늘날까지 60년에 걸친 현대사의 큰 흐름을 <한국현대사 60년>(역사비평사)에 담았다. 민주화운동 특집 저작물인 만큼 학생운동, 노동자운동, 사회운동 등 민주주의를 향한 국민적 열망의 순간들을 고스란히 담았다. 뿐만 아니라 당시의 세계 정세와 현대사를 교접하는 데 어느 정도 성공하고 있다. 예컨대 이승만이 반민특위를 좌절시키고 친일파를 중용한 것은 미군정의 대한민국 점령정책과 궤를 같이 하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대한민국의 운명을 결정할 미소공동위원회는 이해관계의 첨예한 대립으로 끝내 좌절돼 10세기 고려왕조 이후 처음으로 남북이 분단돼 전쟁상황으로 치달은 상황은 당시의 한반도가 냉전의 최정점에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김규식과 여운형 등 중도세력은 미소공위보다 내부결속에 의한 좌우합작을 역설했기 때문에 친미정부가 들어서기를 원했던 미국에 배제됐고 이승만의 시대가 열렸다는 사실 또한 한국현대사가 세계현대사의 관점에서 살펴봐야 하는 이유다.

4월 혁명 이후 통일이나 자주국가의 문제가 활발히 논의된 것도 1955년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반둥회의나 인도, 이집트, 유고슬라비아 지도자의 움직임, 쿠바 카스트로 집권, 알제리와 콩고 등의 반제국주의투쟁으로부터 영향받은 바 크다는 점도 주목할 만한 역사적 사실이다.

1961년 박정희의 쿠데타가 있기 직전까지도 주한미군사령관과 주한미대리대사는 장면 정부를 지지했으나, 쿠바 침공 실패 등으로 쿠데타 지지로 돌변했다.

전두환의 신군부 정권에서도 일본과 미국의 어두운 그림자는 걷히지 않는다. 특히 5.17쿠데타는 일본과 미국의 지원을 받은 게 확실한데, 국군의 작전권이 미국에 있는 상황에서 군지휘관들의 공공연한 쿠데타 결의나 20사단 이동 등은 미국의 묵인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일본은 대놓고 신군부를 돕는데, 5.17 쿠데타 이전까지 최소 6차례에 걸쳐 출처가 의심스러운 북의 남침설 정보를 주기도 했고 광주학살 역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타국의 민주주의보다 자국의 이익이 더 소중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행동이었다. 미국 등 이른바 선진국이라 불리는 국가들과 거대자본이 제3세계의 독재정권을 지원하는 경우는 대개 이런 사정이 함의돼 있다.

 

 

한국의 현대사 덮어놓고 '새출발' 불가능

 

이명박 대통령은 소위 '광복 63년 및 대한민국 건국 60년' 경축사에서 '새로운' 등과 같은 단어를 12번이나 사용하며 새출발을 강조했지만, 덮어놓고 새출발을 강조한다고 제대로 된 출발이 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현대사의 상처를 위로하고 용서를 구할 것은 용서를 구하고 반성할 것은 반성을 해야 통합도 되고, 새출발도 된다.

극심한 이데올로기 전쟁이었던 6.25 당시 1,800명에 달하는 대전형무소 재소자 학살(미 대사관 문서, 책 40쪽)이나 최소 5만 혹은 10만에 달한다는 보도연맹 학살, 노근리, 거창 양민학살이나 좌익과 우익 간의 보복학살 문제 등을 밝히고 그 역사적 순간을 생생히 기억하는 국민들을 달래는 순간 새출발은 시작된다.

우익이 정권을 잡았으니 우파(사실은 극우파)적 시각에서 역사를 바라보는 것은 당연하지 않으냐고? 그러면 '건국 60주년' 행사와 사업을 강력하게 비판하고 나선 한국사연구회나 한국역사연구회 등 14개 역사학회가 모두 좌파에 함몰돼 있는 단체란 말인가? 역사에 관한 정파적 논쟁은 학계에서 이루어지면 되는 것이지, 정부가 나서서 한쪽 입장을 들어주고 이를 국민 앞에 버젓이 내놓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그래도 정파를 초월하는 위치에 있는 '정부'가 아닌가. 현대사의 새출발과 더불어 대한민국의 새출발이 점점 요원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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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8-08-18 1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열혈청년 승주나무님....
부산에 잘내려왔습니다. 안그래도 오늘 TV 책을 말하다에 우석훈과 진중권이 나오데요. 승주나무님이 생각이 납디아.

사진이랑 똑같이 생겼어요 ㅋㅋ
다음번에 또 뵐 수 있길....

승주나무 2008-08-18 17:33   좋아요 0 | URL
드팀전 님의 소중한 휴가가 다 끝났나 보네요.
저도 드팀전 님을 봐서 해원했습니다^^

오늘 티비 봐야겠습니다. 다들 올림픽 본다 압박을 하겠지만...
즐거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