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치03 (書癡)
「명」 글 읽기에만 온 정신을 쏟고 다른 일은 돌아보지 아니하는 어리석음. 또는 그런 사람.
나는 서치입니다. TV보는 것보다 책읽기를 더 좋아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각자 읽은 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곳이 알라딘, 예스24 블로그입니다.
2008년 6월 19일 경향신문 2면 - 알라딘 블로거
조용히 책을 읽고 있던 우리들에게 중대한 질문에 부딪혔습니다. 이것은 단지 우리들만의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연예인의 가십거리를 주로 다루는 '마이클럽'이나 야구 이야기 하러 모인 'Mlb Park' 같은 곳까지 촛불과 광우병, 현 정부의 실정에 대한 이야기가 홍수처럼 터져나왔습니다. 지금 와서 드는 생각이지만 야구든 연예든, 요리든, 육아든 모두 인간의 본질적인 부분과 연결돼 있기 때문에 본질 중의 본질인 '생명'의 바다로 흘러가는 강물이나 진배없습니다.
정치나 사회 문제와는 잘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커뮤니티가 앞장서 나가는데, 책에서 항상 묵직한 문제들을 읽게 되는 독자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게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알라딘 커뮤니티에 처음으로 의견광고 제안을 했고, 광범위한 공감대가 형성돼 '의견광고 레이스'가 시작됐습니다.
2008년 7월 2일 경향신문 2면 - 예스24 블로거
2008년 7월 7일 경향신문 4면 - 예스24 블로거
2008년 7월 14일 경향신문 2면 - 예스24 블로거
6월 19일 알라딘 블로거 63명이 경향신문에 실은 의견광고에 화답해 예스24 블로그 친구들이 7월 2일, 7월 7일, 7월 14일 총 3회에 걸쳐서 의견광고를 실었습니다. 알라딘도 총력을 기울여 7월 23일 8면에 하단광고를 냈습니다. 광고를 내느라고 7월에 책 살 돈을 다 써버렸지만, 모두 뿌듯한 마음을 느꼈습니다. 함께 한걸음을 간다는 것이 이런 기분일까요? 서로 마음속으로 애태우고만 있다가 무언가 함께 만들었다는 이 마음을 알라딘 아이디 '여울마당' 님은 '공진화'라고 썼습니다.
사실 저희는 사회와 현실을 모르고 자기만의 세계에 빠진다는 '서치'라는 말을 싫어합니다. 수많은 네티즌들이 '키보드 워리더'를 경계하는 것과 같습니다. 독자들이 돈을 모아 의견광고를 냈다는 것은 촛불에 '투표'를 한 것과 같은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대통령선거 투표는 의무이지만 돈이 들지 않습니다. 책 사는 대신 '의견광고'를 사는 것은 의무는 아니지만, 돈이 듭니다. 인터넷에서 자신의 생각과 주장을 하는 것보다 더 적극적인 행동방식을 고민하다가 나온 것이 의견광고 보내기였습니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 민주주의는 심각한 훼손을 당했습니다. 이 상처를 치유할 뿐만 아니라 다시는 민주주의가 몇몇 사람에 의해서 농락되지 않기 위해서는 더 많은 비용을 치러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행동이든 시간이든 돈이든 민주주의를 다시 사오는 비용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하면 좀 거창할까요^^
책을 읽는 사람으로서 참 답답한 마음이 드는 것은 국가를 지도해 나가고 국정과제를 추진하려면 최고의 지혜가 모여야 하는데 지혜롭게 일을 해나가는 사람이 하나도 안 보인다는 점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을 포함해 국무위원과 여당이든 야당이든 정치인들이 책을 안 읽고 있어서 걱정이 큽니다. 그나마 전직 대통령은 김훈의 소설 같은 것을 소개하는 등 책 이야기가 나왔는데, 이명박 대통령에게서는 '시크릿' 하나밖에 없습니다. 시크릿이 나쁜 책은 아니지만, 지혜롭고 싶어하는 욕망에는 하나도 도움이 안 될 뿐만 아니라 출판시장이 1년 가까이 시크릿의 지배를 당할 정도로 다양성의 위축을 받은 것은 이명박 대통령의 시크릿 추천이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2008년 7월 23일 경향신문 2면 - 알라딘 블로거
출판시장이 다양성을 회복하기를 기원하며 처세, 재테크, 자기계발 같은 책만이 아니라 사회적인 의미를 갖고 있는 인문사회 책들도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는 날이 어서 왔으면 좋겠습니다.
알라딘과 예스24의 책읽는 블로거들은 7월에 책보다 더 크고 묵직한 것을 샀다는 마음에 벌써 마음이 푸근해졌을 것 같습니다.
알라딘, 예스24 블로거 여러분 고생 많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