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폭력의 아슬아슬한 우위

지금까지는 시민의식의 승리다. 촛불문화제 참여자들은 높은 스스로 쓰레기를 치우는 등 높은 도덕성을 보여주었다. 뿐만 아니라 5월 한달 동안 서울 지역에서 범죄 발생건수가 전년에 비해 10%나 줄었다고 한다. 서울지방경찰청에 따르면 지난달 5대 범죄 발생건수는 9104건으로 지난해 1만478건에 비해 1374건(13.1%) 감소했다. 폭력사건은 6642건에서 6415건으로, 절도는 3462건에서 2398건으로 각각 줄었다고 한다. (경향신문 6월9일자, "촛불집회 타오를수록 빛나는 시민의식…거리 ‘말끔’")
이명박 정부가 국민들의 목소리를 듣지 않겠다고 대놓고 컨테이너를 설치한 6월 10일 밤~11일 새벽에 이르기까지 7시간의 대토론을 벌였다. 컨테이너라는 폭력의 장치를 거부하고 넘어서자는 주장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폭력의 맞서자는 주장이 충돌한 것이다. 결국 '비폭력 직접행동파'가 다수를 얻어 깃발만 컨테이너 위로 올림으로써 정부가 쳐 놓은 경계를 국민들이 넘어섰고, 또 넘어설 수 있다는 걸 보여주자는 쪽으로 정리가 됐다. 평화적으로 집회가 마무리됐지만 아슬아슬한 순간이었다.



광고판 낙서는 다른 차원의 문제

http://jagong.sisain.co.kr/105


6월 10일 집회를 마무리하고 자정쯤에 지하철 막차를 타고 가면서 재미있는 사진 하나를 발견했다. 광고판의 카피가 기가 막히게 현재 국면과 어울리는 것을 한 시민이 발견해 그 앞에 '이명박'을 써놓았다. 사람들은 이를 보고 무릎을 치면서 웃었고, 나는 그 광고판을 사진에 담아서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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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이 사진을 보고 나서 몇몇 네티즌이 보인 반응이다. 하루를 웃음으로 마무리하자는 별 뜻이 없는 사진 한 장이었지만, 여기서 향후 집회의 국면에 대한 우려할 만한 사실을 발견했다.

아이디 '참시민'은 "지하철 광고에 낙서하는건 너무 심한데..저런 행동은 다른 분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주는 겁니다. 광고판 하나 제작하는데 얼마나 드는줄 아세요? 올바른 시민의식이 아닙니다."라고 비판했다. 촛불집회에 모인 수십만의 시민들 속에서 자기도 모르게 우월의식에 도취돼서 남의 사유재산에 대한 훼손을 쉽게 해버린 상황에 대한 문제제기였다. 아이디 '역시 낙서는 아니지요..'는 심지어 도로에 쓴 글도 '낙서'로 규정해 잘못된 행동이라며 앞서의 주장에 힘을 실어줬다.
곧이어 광고판에 이름을 직접 쓴 이로 보이는 아이디 '바보'가 광고판에 '낙서'를 한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지난 한 달간 퇴근하고 20일을 바깥에서 지내면서... 하루 4시간 도 못 자면서 투쟁을 하다보니 점점 거칠어 지데요. 머리털 나고 처음으로 유치장에 가서 40시간을 감금당하고, 물대포 맞고 다친 사람이 있다면 거짓말이란 경찰 간부의 장담에도 불구하고 조준해서 쏴대는 물대포를 맞고 바닥에 널브러지고, 옆에서 얼굴을 맞은 사람은 기절해서 쓰러지는 걸 보고, 물에 젖은 옷 때문에 덜덜 떨면서 모닥불에 옷을 말리다가, 개떼처럼 몰려드는 전의경과 경찰 특공대에 놀란 토끼마냥 도망치다가.." 

그는 웃으며 싸워보자는 의미로, 울화통을 유머로 극복해 보자는 의미로 낙서를 했다고 말했다.


피로와 실망감은 쌓이고 인내심은 바닥나고

5월31일에 벌어진 경찰과의 충돌 이후 잠시 소강상태를 보였던 촛불집회의 국면이 점차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지 오리무중이다. 광고판의 낙서는 조그마한 행위에 불과하지만, 이번 국면과 상관이 없는 기업에 대한 폭력으로 해석될 수 있다. 조선일보에 광고를 게재한 기업에 대한 불매운동이나 '닭장차'에 대한 분노의 표출과는 다른 차원이다. 중고등학생들이 100만의 촛불을 키워낸 것과 같이 조그마한 사건이 국면 자체를 바꿔놓을 수 있다. 경찰의 과잉진압이 영상에 담기면서 보폭이 훨씬 좁아진 것을 생각할 때 이것이 시위대 측에 악수가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내가 우려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

1. 피로와 실망감이 쌓이고 인내심이 점점 바닥이 나는 상황에서 국면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대중은 무관심으로 돌아서거나 폭력적으로 돌변할 수 있다. 비폭력파가 언제까지나 우위를 점할 지는 알 수 없다.
2. 이명박 정부는 재협상은 없다는 입장을 지금 이 시간까지도 보이고 있다.
3. 야당은 전혀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고 오히려 내부 권력투쟁만 벌이고 있는 양상이다. 곧 떠밀려 등원은 하겠지만, 등원을 할 명분을 얻기가, 특히 국민들에게 지지를 얻어내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4.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박원석 상황실장은 20일을 시한으로 못박고, 재협상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본격적으로 정권퇴진 운동을 벌이겠다고 선언했으나 추상적인 차원에 불과하다. 20일 이후의 행동방침과 전략을 아무도 가지고 있지 않다.
5. 이명박 정부의 방송사 점령 작전이 완성 단계에 다다른 듯하다. 하지만 이에 대항하는 언론사는 영향력이 극히 미미해 언론전선이 제대로 펼쳐지지 않을 것 같다.
6. 최장집 교수는 대통령 독단 견제할 개헌을, 김상봉 교수는 미국의 폭력에 맞서는 장기전을 이야기하지만 이와 같이 학자들의 대안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지금의 촛불국면과는 맞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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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10일 인파로 가득 찬 청계광장 옆 동아일보 사옥 유리창으로 안쪽을 들여다보았다. 분노에 찬 시민이 언제 유리창을 부술지 알 수 없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정부가 재협상 형식으로 국민 여론을 무마하려 한다고 할지라도 미국에 오히려 더 큰 것을 빼앗기고 올 수 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미국과의 협상에서 보여준 대한민국 정부의 모습은 '혹 떼러 갔다가 혹 붙이고 온 격'이었다. 시사IN의 남문희 한반도전문기자는 한미간 이면 접촉에 밝은 전문가의 말을 인용해 "미국이 한국의 요구인 재협상에 응하고 그 대신 미국산 자동차와 무기 수입에서 대폭 양보하는 이면 협상이 진행돼왔다"고 지적했다. 한국정부뿐만 아니라 미국정부 또한 촛불국면을 적절히 이용할 것이라는 뜻이다. '버시바우의 발언'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는 말이 이래서 나온다.
아직까지는 미국이 이면계약을 하리라는 보장도 없고, 이명박 정부도 혹을 붙이고 올지, 또는 어떤 혹을 붙일지에 대해서 알 수 없다. 명확한 사실은 이명박 정부도 미국 정부도 100만 시민이 일어난 촛불의 분노와는 전혀 다른 쪽으로 구상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설령 100만의 힘이 모였다 하더라도 여전히 우리들은 '바람 앞의 촛불'이다.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된 카드가 없고, 사면초가인데 20일은 자꾸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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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울 2008-06-13 14: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길이 어디로 향할는지 의문이 듭니다. 기쁘기도 하지만 안타깝고 불안하기도 합니다. 그러면서도 한편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움직임도 있기는 한 것 같은데, 주민소환제 말입니다. 방향에 대해서는 찬성하는 편이지만 서울시장을 대상으로 한다는 것은 덩치가 너무 큰 듯 합니다. 제 생각은 구나 군단위가 적절치 않나 싶습니다. 모든 구나 군을 다 하는 것이 아니라 대표적인 몇 곳을 대상으로 하면 좋지 않나 싶습니다. 민영화-교육-대운하-쇠고기 공약과 입장을 확인하고, ....사실은 끌어내리는 것보다 쇠고기 전수검사를 약속하게 하거나 정책을 받아들이고 공동협약 발표가 오히려 낫지 않나 생각합니다.... 현실로 돌아오면 병행을 해야하지 않을까 싶네요.

서울시장을 주민소환하는 것보다 작은 단위의 승리를 얻는 것이 절실하지 않나 합니다. 몇 곳만 집중할 수 있어도, 향후 움직임의 근거를 새롭게 확보하거나 최소한의 뿌리내릴 가능성을 볼 수 있지 않나 하는 점에서 그렇기도 합니다. 뿌리를 내리는 지점이 있으면 좋을텐데...이후 국면에 있어서도...

충주시의원들이 외유와 다른 문제로 주민소환제를 시민사회단체가 하고 있는 것 같은데, 편의적인 발상이지만 끼워넣을 수는 없는 것인지 하는 생각도 듭니다. 답답함 때문에 이런 생각을 하는데 님의 의견처럼 연동된 다른 불씨로 살려놓는 과정들이, 분산되어 나타나지 않으면 우려스러울 국면이 전개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생각을 가다듬지 못하고 이렇게 겉핥기로 뱉어놓기만 하네요. 잘 읽었습니다.

L.SHIN 2008-06-13 2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글샘 2008-06-14 2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보기엔... 조중동과 한나라당과 정권이 바람 앞의 촛불처럼 보이는군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