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3시에 글쓰기를 시작했다.
매일 그러는 것은 아니고,
띄엄띄엄 일기처럼 쓰는데,
생활하다 보면 하루에도 수십 개의 단상과 감상이 지나가기도 하고,
격정이 치올라오기도 한다.
아침잠이 많은 나이지만, 새벽3시의 기운은 빼앗기고 싶지 않다.
새벽3시에 글을 올리기 위해서는 새벽2시 정도에 글을 쓰기 시작한다.
길게 가야 1시간을 넘기지 않아야 다음날 지장이 없다.
새벽3시만으로도 충분히 지장이 있다.
앞으로 새벽2시에 글을 올릴 수도 있지만,
새벽3시가 주는 영감을 그대로 살리면서 제목을 바꾸지 않을 계획이다.

어떤 글이든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든 이유는
독서량에 비해서 배출량이 너무 적기 때문이다.
3년간 미친 듯이 신문스크랩을 했는데,
그때 3만건의 기사를 스크랩하는 동안 나의 글은 몇 개 되지 않았다.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것은 어떤 특정한 주제나 뚜렷한 형상(책 제목 등)이 있기 마련이지만,
그것보다는 '접속'이라는 의미가 강했던 것 같다.
내가 책을 읽는 내용은 대체로 나의 생활과 관련된 내용이 많고
나의 풀리지 않은 어떤 주제에 대해서 생각지도 않은 도움을 주는 경우도 많다.
책을 읽을 때는 접속해 있는 상태여서 나의 마음 속에서 어떤 답이 무작위로 떨어져 나오는 경우도 있다. 한동안 그 답이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 고민하다가 또 다시 우연히 그것이 맞아들어가는 상황을 겪어보면 마치 내가 '신탁'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보일 때가 있다.
글을 쓰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나의 글은 어떤 틀이 있어서 그 틀을 중심으로 내용을 조합하고 완성하려는 자동시스템이 갖춰진 것 같다. 하지만 창조적인 글을 쓰고 싶을 때 이런 시스템은 죄악과 같다. 나의 글쓰기는 이를테면 이 자동시스템을 교란시키기 위함이다. 자동시스템은 진화하면서 스스로를 업데이트하고 나의 교란작전도 업데이트를 거듭한다. 이렇게 아귀다툼처럼 교란이 펼쳐지지만 '접속'이라는 공통분모 덕에 엮이게 된다.

한동안 인문사회 에세이를 읽다가 멜기세덱 님의 고마운 제안에 따라 김유정문학기행을 하면서 김유정을 다시 한바퀴 돌았다. 소설만 전집으로 돌았는데, 새로이 깨달은 바가 많았다. 다시 리뷰를 쓴다면 김유정의 도시적 면모와 치열한 현실저항 의지를 담아보고 싶다. 김유정이 준 선물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나에게 문학적 관심을 환기해 주었기 때문이다. 이오덕 선생의 유고집을 보고 이원수 선생의 동화책과 동요집을 하나 샀다. 몹시 기다려진다. 이오덕 선생에 의하면 내가 어릴 적 썼던 동시는 어른의 흉내를 낸 몹쓸 동시였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래서 나의 꿈이 하나 생겼는데, 동시를 써보는 것이다. 나의 꿈은 미처 써보지 못한 동시를 쓰는 것이다. 또 멜기세덱의 도움으로 백석의 새로운 책을 구하게 되었다. 멜기세덱 칭찬을 오늘 많이 하게 되는데, 멜기세덱이 없었다면 나는 여태 사회과학 서적이나 인문학 서적을 뒤적이며 사회에 대한 갖은 불만만 토해냈을 것이다. 내가 문학을 읽는 이유는 나의 세계를 갖추기 위해서다.

나의 세계를 갖추기 위한 첫 번째 과제는 선순환을 만드는 것이다.
먹고 싸는 순환이 있어야 숨이 유지되듯
읽고 싸는 과정이 나를 숨쉬게 할 것이다. 새벽세시라는 묘한 시간에 내가 잠을 이루지 못하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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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05-06 0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정한 배출량을 갖는게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새벽 3시의 글쓰기 멋지군요.
좋은 친구가 님을 멋진 세계로 연결해주었네요.^^

승주나무 2008-05-08 14:11   좋아요 0 | URL
요즘은 새벽3시도 일찍 자는 편인걸요.
그놈의 술이 문제ㅠㅠ

hnine 2008-05-06 17: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지하님의 <새벽네시>라는 시가 있어요. 제가 좋아하는 시인데...
이 페이퍼 아침에 한번 읽고서 지금 다시 읽어보고 가네요.
저도 새벽 시간을 좋아하는 사람이라서 그런가봐요.

승주나무 2008-05-08 14:11   좋아요 0 | URL
봄바람이 불어서 댓글을 제때 못 달았네요. 미안합니다.
hnine님이 소개해준 시는 꼭 찾아 읽어볼게요.
김지하 시인의 한창때가 그립군요~~ 요즘은 더욱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