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 교육은 없다 - 왜 교육이 우리를 미치게 하는가?
이득재 지음 / 철수와영희 / 2008년 3월
평점 :
품절


불편하고 슬프지만 부정할 수 없다

 

이 책을 읽고 저자 ‘이득재’가 누군인지 찾아봤다. 대구 가톨릭대학교 교수이며 문화연대 문화교육센터 공동 소장, 계간지 『문화과확』의 편집위원이다. 책 제목 <대한민국에 교육은 없다>와 같이 그의 글은 ‘도전적’이다. 이렇게 단언적이고 도전적인 말을 하는 저자라면 분명히 그 맥락과 내력이 있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이미 언론지면을 통해서 ‘이득재 식 논평’들을 만들어오고 있었다. 2005년 계간지 <문화과학> 가을호가 대표적이다. 그는 현재 여론의 삼성비판을 대표하는 ‘삼성공화국’이라는 수사가 오히려 삼성의 본질을 흐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 어떤 이름이 어울린단 말인가? 그는 삼성‘참주정’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말했다. “공동체에 대한 의무를 기반으로 하는 공화정과 달리, 특정 개인이나 집단의 자의에 따라 권력이 행사되는 것이 참주정”이다. “그러므로 삼성 공화국을 응당 삼성참주정이라 바꿔 불러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당시에는 X-파일 사건으로 나라가 발칵 뒤집혔던 시국이었으니 삼성에 대한 국민적 실망감과 격앙된 감정이야 이루 다 말할 수 없겠지만, 3년 가까이가 지난 오늘 ‘대한민국 교육’을 화두로 들고 온 그가 궁금했다. 나는 그의 글을 읽는 것이 몹시도 불편하고 그 안에 그려진 현실이 서글펐지만, 불행히도 이를 부정할 수 없었다. 


대한민국의 교육을 없앤 사람은 ‘대한민국 사람들’

선생님, 학부모, 학원(사교육) 관계자, 대학교수, 대학총장, 교육관료, 정치인, 대통령, 기업인…….

이 목록에 들어가지 않는 사람은? 정답은 ‘학생’이다. 이때의 학생은 ‘미래의 주인’이라는 의미와는 전혀 다르게 쓰인다. 장애인, 노약자, 사회적 소수자와 동의어로 사용된다. 초중고등학생은 그들 나름대로, 대학생은 역시 그들 나름대로 ‘관리자’들이 쳐놓은 그물을 따라 무리지어 가고 있는 곳은 교육이 없는 대한민국이다. 학생들이 비교육적인 시스템에서 점점 오염되고 있다고 주장하는 저자의 비판을 재구성해 봤다. 

“우선 학생들은 ‘교육’이 아니라 ‘사육’된다.(7쪽) 그들은 어디서든 자신이 상품화되어서 잘 팔려야 한다는 사실을 주입받는다. 마치 한우 1등급처럼 학생들도 1등급에 목매달게 하는 시스템이 만들어진다.(44쪽) 그들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아무데도 없다.  학습의 결정권은 학교나 국가 등 상급자들에게 있고, 그들은 선택하는 대신 ‘선발’될 수 있을 뿐이다.(29쪽) 이 모든 질서는 ‘대학입시’에서 나왔다.  대학입시에서 낙오돼 폐기당하지 않아야 한다는 유일한 이유 때문에 학생들은 공부에 매달린다.(71쪽) 교사들 역시 이러한 방식으로 양성되기 때문에 이러한 일은 항상 반복된다.(77쪽) 학생들은 학교에 들어가자마자 친구를 사귀는 방법 대신 친구를 짓밟고 누르는 방식을 먼저 익히고 그것을 내면화하게 된다.(94쪽) 대학에 가서도 일한 문제는 달라지지 않는다. 비싼 수업료를 벌기 위해 ‘알바’하는 데 모든 시간을 빼앗겨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을 수 없다.(126) 결국 돈 많은 1등급 자제들이 의사, 변호사 등 사회의 지도층이 되지만, 이들의 소득세 탈루 비율은 55%나 되며 교수가 된 이들은 제자의 논문과 돈을 삥땅치는 일을 부끄럽지 않게 여기는 사회가 만들어진다.(63쪽)

글쓴이는 “오늘날 많은 학생들이 현재의 학교가 자신에게 내일이 아니라 어제를 준비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토플러의 말을 인용하며 무용지식에 불과한 입시제도를 혁명적으로 폐지해야 하며, 현실에서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지식을 축출해 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서는 학자들이 학문의 대중화를 위해 세상으로 나아가야 하며, 교사들도 국가를 대신에 학생들을 통제하고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주의에 저항하여 학생이 당당한 주체로 살아갈 수 있도록 모범을 보여주어야 한다. 단지 앵무새처럼 뻔한 정보를 선생님이나 시험지 앞에서 재현하는 정도로 점수를 주는 정보 전달 방식이 아니라 정보를 스스로 가공해 지식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기술을 가르치는 것이 교육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글쓴이가 제시하는 ‘수영’의 예가 흥미롭게 와 닿는다. 즉, 헤엄치는 인간의 신체와 물결 사이에는 일치가 아니라 불일치가 존재하는데, 교육은 물결과 자신의 몸을 일치시키거나 기존의 수영 방법을 재현시키려는 몹시도 비현실적이고 불합리한 방식을 강요했다는 것이다. 배운다는 것은 물이라는 대상과 대면하면서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것이지 물결을 해쳐나가는 해답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해답은 직접 부딪치면서 본인이 만들어갈 수밖에 없다. 교사와의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자신만의 영법을 개발해야 한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교육은 학생에게 ‘눈 깔아’ 하고 명령하며 학생의 ‘문제제기’를 원천 봉쇄한다. 오직 시험문제를 맞혀야 한다는 생각, 즉 정지된 ‘물결의 모습’이나 전에 누군가 물결을 헤쳐 갔던 방법을 가르치며 이것을 그대로 따라하라고 한다. 학생이 물에 빠지는 것은 자명한 이치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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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8-03-25 0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족주의는 야만이다>를 쓴 그 이득재씨 같군요.^^ 가국체제라고 해서 한국의 근대가족주의와 국가주의의 결합방식을 비판했던 걸로 기억납니다.분석의 틀이 들뢰즈의 철학이었는데-너무 대입한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말이지요. ..'수영'이야기나 '주름'에 대한 예들도 그런 느낌이 드는군요.
리뷰만으로 보면 그의 분석과 대안은 교육을 바꾸는게 아니라 교육을 구성하는 더 거시적인 체계를 바꾸어야 가능하다고 이야기하는 듯 합니다.리뷰 잘 봤습니다.

승주나무 2008-03-25 09:42   좋아요 0 | URL
네~ 드팀전 님.. 이득재 씨의 이 책에서 방점은 대안제시는 아닌 것 같습니다. 곳곳에 대안제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일단 대한민국의 현재 교육을 형성하는 구조의 모습을 낱낱이 까발리고 나서 거기서부터 뭔가를 시작해야 한다는 메시지로 읽힙니다. 5월10일 경에 이득재 씨 등을 모시고 간담회를 계획하고 있는데 혹시 관심 있으시면 나중에 댓글 남겨드리죠^^;;

2008-03-26 11: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3-26 13: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글샘 2008-10-23 1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시원에서 중국 동포는 불타죽고, 이건희는 멀쩡하게 풀려나는 걸 보며 자라는 아이들에게, 옳은 교육에 대한 열망을 바라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 아닐까요? 아이들은 오로지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히지 않을지 무섭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