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은 매우 제한적이며 좀처럼 속살을 드러내지 않는다.
이 영화는 모호하다. 속죄를 의미하는 제목 <어톤먼트(atonement)>에서 읽히는 것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어톤먼트가 명사형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고, 당연히 속죄할 사건, 속죄하는 사람을 암시한다. 그러니까 우리는 탈리스 가문의 막내딸 브리오니의 창을 통해 이 영화를 보게 된다.

<<오만과 편견>, <캐리비안의 해적>으로 매혹적이며 신비로운 연기를 보여준 키이라 나이틀리가 세실리아의 역할을 잘 소화했다. 나이틀리는 자신의 역할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는 극을 주도하지 않으며 브리오니에 의해서 주도된다. 무표정한 시선과 엄청난 고통을 견디는 듯한 비현실적인 모습은 이를 보여준다. 그녀가 영화 내내 내뿜었던 담배 연기는 이 영화에서 그녀가 의미하는 바를 잘 보여준다.>

명사형으로 이루어진 '속죄'는 어떤 의미로 읽혀야 하는지 잘 들어오지 않는다. '과도한 상상력으로 언니와 언니의 애인을 파멸로 몰고간 죄로 명문대를 포기하고 전쟁통에 간호사의 일을 자청했다'는 일반적인 사실이 속죄라고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속죄가 무엇을 뜻하는지 나는 아직도 가늠할 수 없다. 이것이 작가의 서투른 터치인지 의도된 장치인지 판단은 독자의 몫이다. 

<제목이 나타내는 바와 같이 이 영화는 감수성과 상상력이 넘치는 소녀의 이야기이다. 하지만 우리는 소녀의 이야기가 어디까지인지 잘 알지 못한다. 세 사람의 엇갈린 운명이라는 뻔한 전개과정을 전제하고 이 영화를 바라본다면 이 영화의 많은 것을 놓치게 된다.>

 

이 영화의 모호한 지점보다 명확한 지점, 돋보이는 지점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더 유쾌한 일이다. 사실 이 영화는 상상력 넘치는 소녀의 감수성으로 가득 차 있다. 처음에 등장하는 일련의 장면과 음악, 이미지들은 감수성과 상상력이 넘치는 소녀의 마음과 행동들을 세심히 뒤따르고 있다. 연출의 힘이다. 그리고 소녀가 때리던 타자기 소리는 이 영화의 곳곳에서 들린다. 이것을 근거로 나는 이 영화의 진실과 소녀의 타자기라는 두 개의 별다른 세계를 발견했다. 소녀가 고백하는 바와 같이 관객이 바라본 언니와 언니 애인의 운명은 다소 각색된 게 맞다. 문제는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각색인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관객은 그것을 명확히 구분하기 어려울 것이다.

사실 극단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세실리아가 간호사였는지도 의심스럽다. 간호사임이 분명한 것은 브리오니이지만, 나는 브리오니가 자신의 이미지를 세실리아에게 입혔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모호함으로 가득 찬 영화이므로 반전 역시 심연처럼 은은하게 천천히 다가온다.

이 영화에 대해서 칭찬할 점은 단연 이미지와 음향, 연출력, 배역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는 연기자들 등이다. 하지만 주제와 완성도, 결론 면에서는 최근 서양 영화의 고질적인 미완성을 보여준다. 속죄라는 제목이 이 영화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관찰해주기를 바란다. 감독이 어떤 의도를 감추었는지는 잘 모르곘으나, 나는 이 영화가 속죄라는 말이 가지는 메시지를 잘 보여주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브리오니의 관점으로 영화를 이끌고 가다 보니 이 영화의 상황들과 사정들을 잘 보여주기에 한계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세실리아나 그의 애인은 별다른 관점조차 가지고 있지 않다. 나는 그들이 이 영화에서 어떠한 역할도 할 수 없다는 점에 대해서 못내 아쉽다. 브리오니를 제외하고 음미할 만한 반짝이는 인물이 없다는 것은 어떤 영화든 아쉬운 일이다. 배역의 역할에 대한 이러한 비판은 동시에 세실리아 역할을 완성시킨 나이틀리에게는 찬사가 될 것이다.

만약 내가 이 영화를 다시 본다면 내가 지나친 이미지나 디테일한 연출, 음향 등의 장치에 좀더 주목하고 싶다.

<나이틀리의 연기 못지 않게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녀의 녹색 드레스이다. 이 영화를 보고 나오던 관객 왈 "어쩜 걔는 그렇게 삐쩍 말라서도 섹시할 수가 있을까?" 이 말이 드레스 못지 않게 흥미로웠다. 살점이 좀 있어야 섹시한 사람이 있고, 빼빼 말라야 섹시한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기 떄문이다. 나이틀리가 섹시하다는 점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 이 영화의 배급을 맡은 UPI가 주선한 시사회를 보고 나서 이 리뷰를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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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8-02-01 1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은 좋다고 하던데...영화는 다들 그러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