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가족이 된다는 것

내가 일본인 가족을 맞이하게 된다는 것은 상상해보지 않았다.
가족이 된다는 것은 보통 인연 가지고는 절대 되지 않는다.
가족이 되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부모가 낳아 주는 경우. 이럴 때 피가 '흐른다'고 한다.
가족이 되는 또다른 일반적인 방법은 '결혼'을 통해서 가족이 '재구성'될 때이다. 이럴 때는 피가 '튄다'고 한다. 내가 가족에 끼어들거나, 다른 사람의 '끼어듦'을 받는 경우는 피가 흐를 때 못지 않게 극적이고 역동적인 과정이 지나간다.
네 딸 중에서 막내 두 명을 시집보내고 마지막 남은 마눌님의 언니가 4살 연하의 일본 남성과 결혼했다. 그 결혼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으나, 가족들의 '작전과 훈수'를 통해 드디어 성사되었다. 지금은 가족이 된 일본인 형님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막상 결정을 하고 나서는 완전한 가족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또 재밌는 것은 내가 일본인 '형님'보다 연장자임에도 불구하고 항렬에 따라 셋째 사위가 되었다는 점이다. 특별한 선물이 있어야 했다.

2. 특별한 선물이 이루어지기까지

특별한 선물은 결혼식 전전날 내가 제주에 떨어지자마자 함께한 술자리에서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사실상 마눌님의 가족을 부모처럼 이끌었던 큰 처형이 '축시' 이야기를 꺼냈다. 큰 처형은 시낭송모임의 열혈회원이다. 나는 시를 어떻게 구하느냐고 물었다. 큰처형은 검색을 하고 있는데, 마땅한 것이 없다고 했다. 나는 대학 문학동아리 시절 선배들을 결혼시키면서 '축시 영업'을 오랫동안 했노라고 자랑질을 늘어놓았다. 큰처형은 곧바로 나에게 축시를 제안했고 일을 급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나는 시인 김수영이 말한 '낙타'의 힘을 믿는다. 이른바 낙타과음이다. 과음을 했을 때는 디오니소스가 낙타를 타고 와서 내게 꿀물을 타주는데, 이상한 것은 술이 깨지 않고 감정만 고조된다는 점이다. 그 시기를 잘 이용하면 축시 하나쯤은 30분만에 성사될 수도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축시는 시에 들지 않는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므로 축시를 30분만에 썼다고 해서 시에 대한 모독이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술을 엄청 먹고 나서 뻗어버리고 다음 날을 기약했다. 역시 나의 예상처럼 디오니소스가 낙타를 타고 나에게 꿀물을 타주었고, 나는 곧바로 시를 토해냈다. 토해낸 시는 큰처형에게 바로 제출되었고, 낭송부대가 동원되었다. 낭송부대는 큰처형의 아들과 딸, 내 조카들이다. 놀고 있는 녀석들을 억지로 붙잡아 시를 낭송시켰다. 도망가는 녀석들을 회유와 협박으로 붙잡아 시를 읽히니 녀석들은 다소곳한 목소리로 낭송을 하는가 싶더니 또 도망간다. 그런데 결혼식 당일 얼마나 또박또박하고 낭랑하고 낭만적이게 낭송을 잘 하는지, 나는 피로연에서 시를 보내달라는 인사를 많이 받았다. 그것은 순전히 조카 녀석들의 공이다. 이제 시를 공개할 차례다.
한가지 덧붙인다면 그 시는 곧바로 한 예닐곱장 정도 필사된 후 통역과 처제에게 분산되었다. 처제는 회임한 몸임에도 불구하고 문구점을 돌아다니며 도구를 챙겼고, 천부적인 손맛을 동원해 예쁜 시화를 완성할 것이다. 결국 손아랫동서가 쓴 축시를 조카들이 낭송하고, 처제가 그림을 입혀서 '특별한 선물'이 완성된 것이다.

3. 일본 신화를 쬐끔 공부하다.

시를 쓰기 위해 인터넷에 들어가서 '일본신화'를 검색하고, 또 내가 아는 유일한 일본신인 '이자나기'를 검색했다. 이자나기 신의 축복이었을까.. 그들은 공교롭게도 부부를 상징하는 개국신이었다. 곧 <이자나기와 이자나미의 아이들>이다.


이자나기와 이자나미의 아이들


시작 : 승주나무 (손아랫동서)
낭송 : ***, *** (조카)
시화 : *** (처제)


        처음에는 파란 하늘이 마냥 좋아
        거기 서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차분한 마음이 땅에 닿았고
        또 한 사람은 뜨거운 열정이 하늘에 닿았습니다.
        둘 사이로 지난 여름처럼 뜨거운 계절이 지나갔습니다.
        힘센 태풍이 혼돈의 바다 같은
        두 사람의 마음을 쓸어내는 동안
        그들은 파란 하늘이 왜 그렇게 좋았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물방울로 땅과 섬들을 만들던 그때의 기억으로
        섬처럼 튼튼한 아이들이 나고 자라는 동안
        파란 하늘은 감귤빛으로 익어가고 있었고
        그들은 아직도 거기 서 있습니다.
        이자나기와 이자나미의 아이들이 서 있던 땅에는
        오늘도 잘익은 하늘이 비추고 있습니다.


- 2008년 1월 27일 둘째 처형과 손윗동서 형님의 결혼을 축하하며

※ 이 시는 일본인 가족을 위해 일본 개국신화를 토대로 재구성했으며, 이자나기와 이자나미는 부부를 상징하는 개국신이며 우리나라의 단군왕검에 비유할 수 있다. 부부는 음양을 상징하므로 뜨겁고 차가운 이미지를 대비시켰고, 이들이 물방울로 땅과 섬을 만들었다는 모티브를 활용해 가족의 번성을 기원했다. 감귤빛 하늘은 제주 특허이므로 차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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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8-01-30 1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잠시도 가만히 못 있는구만. 일본신화는 또 언제...? 근데 재밌겠다.
좋은 자료 있으면 알려주라.
글구 축하해. 글로벌한 가족 좋은 거 아닌감?^^

승주나무 2008-01-30 18:28   좋아요 0 | URL
놋북이 제주에 있는데.. 거기 컴에 자료가 있어요.. 이자나기와 이자나미의 활약상에 대해서 나온 자료였죠. 거기 모티브가 여럿 차용되었어요 ㅋ

Mephistopheles 2008-01-30 18: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 페이퍼에서 가장 중요하게 접했던 부분은 사실 시가 아니였습니다. 승주나무님이 그러니까 딸부자집에서 얼굴도 안보고 데리고 간다는 "셋째 딸"의 남편이라는 사실입니다. 쌩뚱맞죠?

승주나무 2008-01-30 18:29   좋아요 0 | URL
제주에서는 '말젯딸'이라고 부릅니다. 아주 특별한 호칭이죠~ ㅋ

마노아 2008-02-01 0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동의 축시예요. 정말 잊지 못할 멋진 선물을 주셨군요. 이런 센스쟁이 같으니라구. 추천!(>_<)

승주나무 2008-02-01 11:27   좋아요 0 | URL
ㅋㅋ 일본 신화 검색해서 급조한 걸요~
예전에는 직업적으로 축시를 썼지만,
그래도 좀 시다운 것이 있어야겠기에.. 상징과 비유, 언어를 썼어요.
아마 일본 신화를 아는 일문과생이 보면 비웃을 거에요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