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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임 전쟁 - 보수에 맞서는 진보의 성공전략
조지 레이코프.로크리지연구소 지음, 나익주 옮김 / 창비 / 2007년 7월
평점 :
※ 이 책은 알라딘 서평이벤트에서 받은 책이며 알라딘과 예스24, 블로그에 함께 게재하였습니다. 동일한 글을 보시기를 원하지 않는 독자들을 위해 이 점을 밝혀둡니다.
나는 정치적인 글은 되도록 쓰지 않으려 하지만 책이 내포하는 프레임이 워낙 정치적인지라 다루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을 보고 나니 오늘날 정치세계가 '수사(修辭, rhetoric)의 전쟁 시대'에서 '행간의 전쟁 시대'로 전환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예전에 한일합방을 위한 담판 회담이 열릴 때의 일이다. 우리측 사절은 구색을 맞추기 위해 마라톤 협상을 벌였다고 하는데, 시나리오는 이미 정해진 뒤였다.
회담이 끝나고 와서 국민들 앞에 하는 말, "불가불가(不可^不可)라, 나는 두 번이나 불가하다고 하였다."고 하여 둘러대지만, 정작 그 뜻은 "불가불가(不可不^可)라, 허락하지 아니할 수 없다"였다. 이런 초보적인 수사에서도 프레임이랄 게 보이기는 한다지만, 로크리지 연구소가 주지하는 것은 '행간'을 이용해서 국면을 전환하는 지극히 전략적이고 구조적인 방식이다.
프레임에 대해서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형성하는 우리의 구조화된 정신적 체계"라고 거창하게 정의했지만, 나는 간단히 '사고의 다발', '수사의 다발', '인지의 다발' 등으로 묶어서 생각하고 싶다. 프레임은 단계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즉 '1.언어 이전의 관습과 관념 혹은 상식-2.언어적 표현과 상징, 행간 등 언어의 사정거리-3.반복, 후속조치, 몰아세우기 등 언어와 언어에 담긴 의도를 완성하는 일련의 후속조치"라고 해석되는데 개별적으로 분석했을 때 이러한 개념들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새로운 것은 이러한 개념들을 종합하거나 특정한 의도에 맞게 기획하는 관점이다. 두 사람이 있다고 했을 때 똑같이 이야기하지만 그 효과가 전혀 다를 때가 있다. 한 사람은 '얼음덩어리'처럼 금방 녹아버릴 수사를 구사하지만, 다른 사람은 마치 '빙산의 일각'과 같다. 철저히 계산된 행위와 언어이며, 심지어 농담까지도 시나리오에 따른다. 정치판에서는 그리 낯설지 않은 광경이다.
자금이 자공에게 물었다. "공자께서는 어느 나라를 방문하시든지 간에 그 나라의 정사에 대해서 소상히 들으실 수 있는데, 그것은 공자께서 요청하신 것입니까? 아니면 그 국가가 공자께 정보를 제공한 것입니까?
자공이 대답했다. "공자께서는 온화하고 진정성이 있고 공경하고 검소하고 겸손하기 때문에 그런 이야기들을 들으실 수 있으신 겁니다. 설령 공자께서 그런 정보를 요청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다른 사람들이 요청하는 것과는 다른 셈이지요."
子禽問於子貢曰: ?夫子至於是邦也, 必聞其政, 求之與? 抑與之與? ?
子貢曰: ?夫子溫? 良? 恭? 儉? 讓以得之. 夫子之求之也, 其諸異乎人之求之與? ? <논어 학이>
공자가 어느 나라에 가건 그 나라의 핵심 정보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단지 그의 경력 때문만은 아니다. 일종의 프레임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의 말 한마디에는 천금의 무게가 담긴 것처럼 진중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 비해서 좋은 위치에 처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책이 가장 비난하는 지점은 바로 진보주의자들의 매너리즘과 '중도'에 대한 환상이다. 이것은 정동영과 손학규의 지지율이 왜 지지부진한가를 보여준다. 나는 '중도가 환상이다'는 이 책의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중도는 존재하지만, 매우 쉽지 않은 길일 뿐이다.
천하의 국가를 고르게 다스리는 것도 어렵지 않다. 높은 직위를 고사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심지어 날선 칼을 밟아 지나가는 것도 어렵지 않다. 하지만 중용은 이런 모든 것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도달하기 어렵다.
子曰 天下國家 可 均也 爵祿 可辭也 白刃 可蹈也 中庸 不可能也 <중용 2장>
이런 의미로 따졌을 때, 우리나라의 '중도'란 수학적으로 가운데 있는 점일 뿐이다. "중도통합신당"을 '프레임 전쟁'식으로 해석하면 다음과 같다. "수학적으로 가운데점에 위치한 오합지졸의 정치인들이 급조한 정치집단." 이 책에서는 표층프레임과 심층프레임이라는 용어가 나오는데, 빙산의 일각 중 드러난 부분이 표층프레임이며 수면에 담긴 부분이 심층프레임이다. 다만 '빙산'이 존재할 때에만 이 용어는 성립한다. 심층프레임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통합신당은 무의미하다. 방향성이 없기 때문이다. 이들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비정규직법'은 이를 낱낱이 증명한다. 이들은 비정규보호법에 담겨 있는 '수사'를 신경쓰느라, 이것을 인지하는 '반향'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쓰지 못했다. 프레임 실패라고 할 것까지도 없고, 아예 프레임이 없는 경우다. 이들이 말하는 '중도'라는 것은 환상일 뿐만 아니라 '반거충이'이다. 드라마에서 가장 비참하게 깨지는 캐릭터가 누구인가. 악한이나 악녀는 나름대로 사랑을 받는다. 천사표 캐릭터는 진부하기는 하지만 '상식'과 통한다. 이 중간에 있는 '반거충이 캐릭터'는 양쪽에서 상식적 지탄을 받는다.
내친 김에 정치 이야기를 더 해보자. 민노당의 한계는 무엇인가? 그들은 프레임을 생산할 능력이 없다. 규모의 문제가 아니다. 일단 그들 스스로의 굴레가 너무 지리멸렬하다. 그리고 스타정치인 한두명이나 수사에만 의존하는 것이 문제다.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는 항상 수세적 위치에 있기 때문에 프레임을 구사할 공간을 찾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 또한 진정성이 보이지 않아서 사람들은 민노당을 외면하게 된다.
미국의 진보주의자들도 이와 다르지 않은데, 이 책을 살펴보다 보면 그들이 지목하는 화자가 '민주당'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책이 화자로 설정한 사람들은 '진보주의적 유권자'들이다. 민주당의 진보세력들 역시 유권자 안에 들어간다. 이 책에 의하면 미국의 진보주의자들은 보수주의자들과 '말꼬리 싸움'을 하다가, 그들이 쳐놓은 프레임에 빠져서 결국 정국의 주도권을 빼앗기고 말았다고 논평한다. 연애를 하든 경쟁을 하든 상대의 페이스에 말리는 것은 '꾼'들이 피하는 일이다. 어떻게 되었든 분위기를 환기해서 자기쪽에 유리하게 전개하기 마련이다.
이런 의미로 책에 소개된 민주당 오버마의 프레임 생성법을 실습겸 흉내를 내본다.
신자유주의자들과 일반적인 대기업이 추구하는 방식, 그리고 미국 등 강대국이 추구하는 방향은 '우연성'을 가중시킨다. 신자유주의자들이 내세우는 자유주의는 사다리를 치워버린 자유주의이다. 이왕이면 다른 사람의 돈으로 돈을 벌고, 남의 마당에 폐기물을 버리고 이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는 방식으로 돈을 번다.
단규가 말했다. "나는 우임금보다 치수를 더 잘 할 수 있소." 맹자가 대답했다. "그것은 당신의 치적이 아니라 오히려 과오요. 우임금이 치수는 물길을 잘 살폈기 때문에 사해의 구덩이로 물을 고루고루 퍼뜨린 것이지요. 하지만 지금 당신이 한 방법은 물을 이웃나라로 돌려놓았으니 이는 물길을 거스른 처사이지요."
白圭曰: ?丹之治水也愈於禹. ?
孟子曰: ?子過矣. 禹之治水, 水之道也. 是故禹以四海爲壑, 今吾子以?國爲壑. 水逆行? <맹자 고자-하>
자연재해는 우연성이 가중되어 나타나는 현상이다. 우연성이 많아지는 것은 우리로서는 반가운 일이 아니다. 양극화도 마찬가지이다.
그림처럼 자산집중도가 점점 커지는 것은 자유주의자들이 볼 때는 자연스러운 현상일지 모르겠지만, 그 수치 아래 깔려 신음하는 사람들의 행간을 읽지 못하는 것은 재앙에 가깝다. 단순히 도의적으로 그들을 먹여살려야 하는 것은 아니다. 양극화와 사회적 불평등에 심화됨에 따라 '우연성'을 가중되기 때문이다. 이 우연성에서 폭동이나 테러, 여러가지 범죄 등이 태어난다. 어차피 인간은 '소비하는 존재'이다. 소비의 지표가 되는 것이 '엔트로피'인데, 엔트로피 분수령에 이르러서는 활용 가능한 에너지가 고갈되고 예상 불가능한 재해가 찾아올 수 있는데, 그것이 무엇이라고 명확히 말할 수는 없다. 명확한 것은 그것이 결국 '우연성의 총량'이라는 것이다.
긴 길을 돌아서 왔는데, 새로운 것은 없는 책이지만, 여러 가지 상황에 대한 재치 있는 분석을 보는 일은 유익한 경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