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은희경 지음 / 창비 / 2007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예스24에서 주최한 2007 예스24 문학캠프에서 은희경을 만났다. 혹자는 은희경을 두고 브랜드라고도 하고 장르라고도 하는데, 나는 은희경을 '코드'라고 말하고 싶다. 은희경의 작품 세계는 일정한 영역을 가지고 있는데 코드가 맞지 않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은희경을 읽는다는 게 다소 피곤할 수 있다. 은희경 하면 떠오르는 키워드는 '내면', '관찰', '노력', '상식'이다. 다음날 만난 황석영이 사회적인 작가라면 은희경은 지극히 생활적이고 내면적인 작가이다. 안으로 안으로 파고드는 그의 문체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일상에 존재하는 사물들과 감정의 편린들, 그리고 이를 통해 나타나는 '의미'를 찾아내기가 어렵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은희경에게 천재성은 없다고 생각한다. 극단적으로 이야기해서 소설가의 천성과 천부적 재능은 물론이고 소질 역시 없다고 생각한다. 대신 은희경은 그것을 모두 일궈냈다. 아침에 출근하듯 소설을 쓰고 안절부절 못하는 작가의 직업병을 남보다 더 앓으며 만들어낸 언어는 생경하면서도 왠지 친숙하게 느껴진다. 그가 왜 30대 중반에 등단하게 되었는지 짐작이 가는 대목이다. 소설가로 등단하려 하지만 절대로 열리지 않을 것 같은 문을 보거든, 나는 절대로 소설을 쓰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거든 은희경을 보고 위안을 삼아도 좋다.




<예스24 주최로 열린 문학캠프에서 강연을 하고 있는 은희경 작가. 후배 작가인 백가흠 작가(왼쪽)와 윤성희 작가가 진행을 맡았다.>



가족의 발견

- 가족이 소설에 어떻게 작용하나
☞ 모티브로 아주 많이 나온다. 특히 남편. 온갖 소설에 악역이 있는데 주변인의 항의가 많이 온다. 관찰을 제일 많이 하는 것이 가족이니까. 평상시 1순위는 소설이고 비상시 1순위는 가족인데, 그것은 가족이 평소에 양보를 해주기 때문에 가능하다. 가족은 가장 관심이 있고 소중한 것이다. 내가 책 팔아서 가족을 먹여살리므로 당당할 수 있다.


-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과 관련해 가족들의 민원은?
☞ 남편은 “또 나를 썼군. 다들 이런 사람인지 알겠군”하고 불평한다.
딸은 책을 매우 좋아하는데, 새의 선물에 나오는 주인공이 당시 12살이었는데, 내 딸도 12살이었다. 작품 중에 딸아이 또래가 방황하는 작품이 있는데, 친구들이 딸에게 “너 가출했었니?” 하는 말을 듣는 것 때문에 매우 싫어한다. 딸은 “공부 잘하고 귀엽고 예쁘게 써달라”고 주문했다.

- 소설 안에서 작가는 어떤 얼굴로 나오나?
☞ 내 소설은 주인공이 늘 둘이다. 1인 천진, 1인 조숙 패턴이 자주 나온다. 소설가로서 자질이 있다면 다중인격이 아닐까 한다. 주인공 여러 명에게 자기 성격을 부여했다.
작가인 나도 기초적인 독법은 어쩔 수 없다. 백가흠 소설가(진행)의 소설에는 주인공이 살인자, 흉악범으로 자주 등장하는데 나도 역시 독자로서 작가를 의심하게 된다.

- 소설을 쓰는 재미는?
☞ 해보지 못한 나쁜 짓을 하는 것이 제일 좋다.



<소설에서 가족을 많이 이용한다는 은희경 작가. 생계를 위해서 가족을 판다고 하여 무마하기는 하지만 딸내미의 압박은 이기기 어렵다고 한다.>





'똥'으로 데뷔한 작가가 될 뻔해 가슴 쓸어 내려

- 제목은 어떻게 쓰나?
☞ 어떤 거는 제목부터 생각난다.(짐작가는 다른 이들), 아예 제목부터 시작하는 작품이 있는데 (특별하고도 위대한 연인) 이런 작품은 문구가 발상이 되어서 시작하게 된다. 어떤 거는 다 쓰고도 제목 짓기가 매우 힘들다. “새의 선물”의 경우는 가장 힘든 작품이었는데, 원래 제목은 ‘사랑의 변주곡’이었다. 책을 내려고 할 때 자끄 플레베의 ‘새의 선물’이라는 시를 읽었느데, 거기서 제목을 따왔다. 이번 소설집 ‘아름다움이 나를..’도 릴케의 작품 ‘드위노의 비가’ 중에서 한 구절을 취한 것이다. “우리가 그토록 아름다움을 숭배하는 것은,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하기 때문이다.”
신춘문예 응모작 중 ‘똥’이라는 작품이 있었는데, 친구가 이렇게 충고했다. "만약 당선이 안 된다면 모르겠는데 당선이 된다면 평생 이미지가 남는다. 똥으로 데뷔한 작가!” 그렇게 해서 현진건의 제목인 ‘빈처’를 제안했고, 내가 수락했다.

- 소설을 쓰다가 따로 환기하거나 휴식하는 방법이 있나?
☞ 소설, 산문을 쓸 때 산문은 주로 밤에 쓰고 소설은 아침 9시에서 오후 5까지 마치 직장에 출근해서 일하듯 한다. 소설가이기 때문에. 집에서 써도 긴장해야 하니까 끼는 옷을 입는다. 집중력 2~3시간 되면 커피를 많이 마시는 편이다. 그리고 산책도 한다. 어떤 작가는 시간이 촉박하면 아무런 자극을 받지 않으려고 밥까지도 똑같이 먹는다고 하는데, 나는 “무엇을 먹는지 바로 잊어버리기 때문에 그럴 필요가 없다”고 말해주었다.
어떤 날은 잠을 잘 때도 가동된 마음이 꺼지지 않을 때가 있는데, 이럴 때는 술을 마신다. 이것은 행복한 단계다.
처음 구상하고 작품 스토리를 위해 메모하고 고민하느데 누가 문을 안 열어주듯이 잘 안 나올 때가 있다. 이때가 가장 힘들다. (백가흠 작가 왈 "소설가 이기호는 축구복 입고 경기하듯 하더라")

- 소설 쓸 때의 핸디캡은 있나?
☞ 사소한 것도 신경 건드림. 그때는 시간 자체가 하나도 용납되지 않으므로 부모님과 잠깐 통화해도 얼른 끊으라고 한다. 특히 여성 작가의 경우 일상을 책임져야 하는 일이 많기 때문에 무척 고통스러워한다.
(윤성희 작가 역시 신경질적으로 변한다고 거들었다. "가족들이 눈치보며 TV도 안 보더라. 그때 나는(윤성희) 내가 무슨 대단한 일 한다고 아버지 TV도 못 보게 하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 타이트한 복장에 손을 자주 씻고 야구모자를 써보기도 하는 등 별짓 다한다.")
선배 작가들은 글쓸 때 긴장하는 습관을 저마다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고은 시인은 상 5개 차려놓고 5개의 시를 동시에 쓰기도 한다.
“일상에 갇히면 작가의 권능 사라지는 것 같아서 여행을 간다”
글을 쓰는 작가라면 누구에게나 고통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 영문 이니셜을 즐겨 쓰는 이유는 무엇인가? 성의 없다는 비판도 있는데..
☞ 책으로 보니까 어떤 경향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나는 이름을 매우 신중하게 짓는 편이다. 이름에 대해 의미를 많이 두므로 신중하고 나름대로 의미를 많이 둠. 카프카의 K를 많이 빌려오는 편(성의 주인공) 날씨와 소설의 주인공 B는 ‘벨라비의 환상’에 나오는 이미지.
머리카락 손에 걸레.. 머리 자르는데 벌레 떨어짐. 알 수 없는 불안과 해석할 수 없는 것이 있기 있기 마련인데. 작가의 이미지를 가져와 써서 나에게 B는 독특한 이름이다.
지도 중독의 P는 구해야 할 값(수학)이므로 나에게는 그대로 이름과 같다.
문학은 언어를 이용하므로 모순적 장르이다. 언어를 극복하는 것이 가장 어렵다. 누구나 다 아는 언어를 새롭게 쓸 수 있는지 항상 고민한다.
도시적인 것을 다룰 땐 모던한 이미지, 새의 선물은 1969년대 배경이므로 사설시조의 유장한 문체를 이용함.

- 정말 쓰기 싫을 때는 어떻게 하나?
☞ 쓰기 싫을 때는 안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저 자신이 기분좋고 행복해야 된다. 스스로에게 술을 산다. 술을 마시고 자신이 기분좋게 하고 쉬게 한 다음, 내일 나와 다시 만나기로 약속한다. 그리고 이 순간에도 백가흠과 윤성희 작가가 이런 고통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에 위안받는다.

- 딸이 작가를 꿈꾼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 자기가 무엇이 하고 싶은지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작가가 되려 했으나 되지 못한 긴 시간 동안 상당히 불행했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작가가 되고 나서 더욱 행복했다 작가의 길이 쉽지 않다는 데 대해서 경고를 드리고, 꿈을 일찍 찾은 것을 축하한다. 모범생이 되지 않도록 막으라. 모든 사람이 생각하지 않은 것을 생각해야 하고, 이미 생각한 것 역시 뚫고 그 너머를 생각해야 하므로 괴팍함을 잃지 않도록 도와줘야 하고 엉뚱하거나 괴팍한 데 대해서 칭창해
주어야 한다.



<은희경 작가는 글을 쓰는 작가라면 누구에게나 고통이 찾아오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생활인과 작가

- 작가, 가족을 동시에 만족하는 방법은 없나?
☞ 두 가지 모두 만족할 수는 없다. 글을 쓰려면 희생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작가는 이기적 작품에 대한 생각밖에 없다.
평범한 가정 생활이 피할 수 없는 의무가 된다면 좋은 글은 나올 수 없다고 생각한다. 가족 때문에 좋은 작품을 희생한 동료 선후배 작가를 많이 보았는데, 단언컨대 좋은 작가가 되려면 좋은 가족은 포기할 수밖에 없다. 내 이름을 팔아먹어도 좋다. 이 점은 잊지 않았으면 한다.

-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의 방정식?
☞ 잘하는 일이 있으면 해야 할 일을 적게 할 수 있다. 때문에 잘하는 일을 하나 만들어야 한다. 아마도 하고 싶은 일과 관련해서 작가의 재능, 성실성, 자유 중 ‘자유’와 함께 이야기할 수 있겠다. 느낄 수 있는 자유가 작가의 특권이라고 생각한다. 일치는 아니고 하기 싫은 게 너무 많지만..

- 등단 시점이 30대 중반이어서 깜짝 놀랐다. 오랜 무명 시절을 극복한 방법과, 작가 지망생들이 가장 경계해야 할 점을 충고한다면?
☞ 나는 어려서부터 소설가가 되고 싶었지만 절실하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생활에 떠밀려서 생활인이 되었고, 건전한 생활에 건전한 직장생활, 결혼 좋은 가족, 집도 장만, 한단계씩 숙제를 풀다 보니 30대 중반이 되었다.
이것이 내 인생인가 하는 자각이 들더라.
이렇게 산다면 남아 있는 하루하루를 메울 뿐이지 않은가.
나를 객관화하는 작업이었으므로 글을 썼으며 그것이 소설이다. 처음에는 누가 내 이야기에 관심을 가질까 고민했지만 독자의 공감을 얻어서 위안이 되었다. 등단이 앞섰다면 지금은 전혀 다른 작가가 되어 있었을 것이다. 절박하지 않았고 할 말이 별로 없었다. 보편적인 인생으로 판단.
이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야 작가인데 나를 합리화해서 받아들였기 때문에 작가가 되지 못했다. 이것은 두 번째 질문과 맥이 통하는데, 내 인생을 재편해 보려고 할 때의 의지가 소설을 쓰게 만들었다.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정확히 아는 게 중요하다. 쓸 말이 있을 때에라야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있다. 관점 없으면 소설이 아니다. 그래서 이야기와 소설은 다르다.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관점을 보여주어야 하며, 수많은 관점에 자기 관점을 보태야 한다. (도스또옙스끼, 천재는 수많은 생각에 자신의 생각을 덧붙일 수 있어야 한다.)



<은희경 작가는 소설가가 되려 한다면 자신이 쓸 것을 분명히 정리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독자가 자신의 소설의 한 대목을 낭송하는 것을 경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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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8-16 15: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8-16 20: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07-08-16 1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이 책이 님의 페이퍼로 세번째 보이네요, 제게..
읽으라는 계시인가^^

승주나무 2007-08-16 20:22   좋아요 0 | URL
읽으세요.. 읽으세요.. 읽으세요..
주문을 외웠습니다^^

바리데기 2007-09-08 0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퍼갑니다... 저도 오늘 읽기를 마쳤는데 우연히 이곳까지 왔어요...^^
출처는 밝힐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