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또 읽고
역사속에서 걸어나온 사람들 - 산월기(山月記) / 이능(李陵)
나카지마 아츠시 지음, 명진숙 옮김, 이철수 그림, 신영복 추천.감역 / 다섯수레 / 199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은 '목록'에 들어있지 않았다. 아주 우연한 기회에 알게 되었는데, 그만큼 시사하는 바가 많았다. 나는 일단 계획이 성립되면 떠벌이고 다니는 편인데, 그것은 순전히 '완결성'에 대한 불안 때문이다. 취재는 책에서부터 시작될지 몰라도, 사람에게서 완성되기 때문이다. 내가 생전 처음 술자리에서 만난 서울시립교향악단의 관계자에게 귀중한 정보를 듣게 될 줄이야 꿈에라도 생각했겠는가.

나카지마의 문학의 바탕은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한학의 전통에 있다. 일례로 '제자'라는 작품의 전거는 공자가어, 논어, 사기, 춘추좌씨전 등 내가 주목하는 원전이다. 내가 소개를 받은 작품은 공자의 제자 자로를 중심으로 한 '제자'라는 작품이었는데, 아쉽게도 '제자'라는 작품은 작품집에 게재된 네 편의 작품 중에 가장 마음에 들지 않았다.

'산월기(山月記)'와 '명인전(名人傳)'은 지고한 경지에 도달하기 위한 인간 욕망이 서로 다른, 하지만 서로 마주보고 있는 형세로 그려져 있다. 산월기는 절대적인 문장을 좇다가 인간세를 벗어나 아예 짐승이 되었고, 명인전은 활의 고수가 되려다 활을 잊었다.
지고지순한 경지에 도달하려는 욕망은 동양이나 서양이나 진배없다. 당장 생각나는 것만 헤아린다면 '깊이에의 강요'(파트리크 쥐스킨트)는 산월기류로 분류될 것이고, '타원형 초상화'(에드거 앨런 포)는 아마 중간쯤에 위치할 테고, '달과 6펜스'(서머셋 몸)은 명인전에 위치할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눈에 띄는 것은 나카지마의 서술 방식이다. 앞서 말한 두 작품은 '장자식 우화'라는 모양새를 따르고 있다. 우화라는 것은 말하고자 하는 지점을 명확히 하거나, 과장되게 만들어 호쾌한 담론을 이끌어낸다는 장점은 있지만, 그것이 하나의 '인간형'을 지향한다고는 볼 수 없다. 그나마 '산월기'라는 작품은 우화를 뛰어넘어 인간이라는 문제에 정면으로 다가가고 있기 때문에 더욱 예쁘게 보인다.

문제의 걸작은 '제자'와 '이능'(혹은 이릉)인데, 이들은 모두 명백한 실존인물과 역사적 사실에 의거한 문학적 형상화이다. 그만큼 이 작품들은 실망과 만족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제자'라는 작품은 내가 만들려는 이야기와 가장 근접하다고 할 수 있다. 즉 이야기의 대상이 공자보다 한 세대 뒤의 인물이며, 포스트 공자의 시대를 예견하고 있다는 점이 그것이다.
'제자'라는 작품에도 역시 '자공'이라는 인물이 비중 있게 소개되는데, 자로와 자공을 한마디로 비교해서 '가슴과 머리'의 차이라고나 할까. 자로를 도드라지게 만들려는 설정이기도 하지만, 자공이 주는 아우라를 상당 부분 제거했기 때문에 '제자'라는 작품은 대부분의 '시대'를 잃어버렸다.
눈여겨 봐야 할 부분은 '포스트 공자'를 주목하고 있다는 점이다. 공자의 신격화와 공자라는 하나의 '타성'을 우려하고 있으며, 공자가 함유하고 있는 내적 모순의 양상을 '장자'정도는 아니더라도 '최측근'의 입장에서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는 점은 우리가 왜 '공자'를 직접적인 모델로 삼아서는 안 되는지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 공자가 아직까지 '신화'의 태를 벗지 못하는 이유는 누구도 '공자 이후'에 대해서 의제로 삼으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이 작품은 '공자 이후'를 알리는 중요한 작품이다.
하지만 앞서 지적했듯이 이 작품이 '내적 성취'에 집착한 점은 두고두고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것은 '자로'라는 불립문자의 인물을 '언어적'으로 표현하려는 데서 오는 부조화일 수도 있다. 작품에서는 희미하게나마 '공자 - 공자제자', '자로-자공'의 대립구도가 펼쳐지기는 하지만 이를 적극적으로 펼쳐보였다면 '산월기'나 '이능'보다는 '제자'가 돋보였을지도 모른다. (작품집의 대표작으로 언급되는 작품은 '산월기'와 '이능'이다.) 그리고 '포스트 공자'에 대한 내용을 대폭 생략한 나머지 흔적으로만 남게 만든 점 역시 아쉽다.

그러나 자공은 또 한 번 골탕을 먹은 듯한 기분이었다.
'그건 그렇습니다. 그러나 제가 말하려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분명히 그렇게 말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책 103쪽)


대부분이 이런 식으로 의문을 던지고 넘어간 점은 비겁하기까지 하다. 이런 식으로 문제가 드러나지 않는다. 단지 공자 시대의 불가피한 '이견'으로 치부될 뿐이다. 만약 이것이 중요한 '의견'이 되지 못하고, '이견'으로 정리된다면 공자의 신화는 더욱 번성하게 된다.

무엇보다도 아쉬운 점은 '제자'라는 작품이 '유림 류'의 단점을 그대로 노출하고 있다는 데 있다. 평전과 소설의 영역을 헷갈리게 만드는 작품이라는 뜻인데, 비록 작가적 상상력과 문학적 형상화가 어느 정도 이루어져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부분적인 스케치에 불과하다. 게다가 '전지적 작가'의 개입이 너무 심해서 읽는 내내 짜증이 났다. 혹시 내가 잘못 읽었나 해서 한번 더 읽었지만, 기분은 풀리지 않았다. 아마 당장 이야기의 시점을 선택하라면 나는 '관찰자 시점'을 택할 것이다.

이에 비해 '이능'은 왜 대표작인지를 보여준다. '시대'가 흥미롭게 버무려졌으며 '인물의 대비'가 완숙하게 펼쳐진다. 게다가 '열전'의 문체를 유지함에도 불구하고 독자를 심심하게 하지 않는다. 이 지점을 나는 현대어에 대한 일종의 승리라고 보고 싶다. 사실 실존 인물, 그것도 역사적으로 멀리 떨어진 인물을 현대어로 풀어낸다는 것은 껄끄러운 일이다. 가능하다면 열전체나 우화체의 단순한 필체와 '전지적 시점'으로 펼치는 것이 현장감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이능'은 또 하나의 모델이 될 수 있을 듯하다.

'이능'에게서 배울 점은 등장인물이 역사적 인물의 캐릭터를 가지고 있으며, 인물들의 '값'이 반영돼 있다는 점이다. 이는 전거를 최대한 기울여 인물에 대한 분석을 완성한 후에 집필을 했음을 증명한다. 내가 유의할 대목이다.

이 작품으로 하여금 나의 이야기는 피와 살을 더하게 되었으니, 이 책을 쓴 작가와 이 책을 추천해준 분께 감사를 드려야겠다. 이제까지 그려진 '역사의 인물들'은 대체로 하늘에서 뚝 떨어진 인물들이었다. 이 작품은 '걸어나온' 인물들을 그렸다고 하였는데, 이 점에 동의한다. 역사 속의 인물들은 반드시 '길'을 따라 걸어와야 할 것이다.

 

ps : 작품에는 신영복이 추천과 감역을 했으며, 이철수가 그림 작업을 했다. 이 또한 좋은 양념이 될 것이다.

 

※ 타이틀이 [자공리뷰1]이라고 되어 있는데, 전에 썼던 '자공리뷰1'은 이야기의 직접적 소재가 될 수 없으므로 '자공리뷰 외전1'로 바꾸었다. 그래서 '자공리뷰1'이 된 것이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07-08-01 12:25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