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 나를 놓지 않는다~
서재 서포터스 모집관련2

오래 전에 즐겨 읽었던 책 중 '사기열전'에 떠올리는 구절이 있네요. 오자서라는 사람이 오나라 왕에게 집안이 몰살되자, 가장 절친한 친구에게 복수를 다짐하며 오나라를 떠납니다.
"나는 오나라 왕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온 인생을 걸 것이네."
그 친구가 단호히 대답합니다.
"나는 자네의 시도(복수)가 성공하지 못하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네."

저는 알라딘의 직원이 아닙니다. 하지만 마치 기획에 관여한 사람처럼 '나댄' 구석이 있습니다.
마을지기(김성동 님)도 역시 저와 대등한 이웃 알라디너는 아니지만, 마치 이웃 알라디너와 같이 가면을 벗고 마음의 이야기를 한 면이 있습니다.
이는 참으로 재미있는 상황이지요.
이런 상황이 연출될 수 있는 것은 알라딘의 '특이한 내력'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 내력이 좋습니다.
여기에 한마디 덧붙이자면,
이러한 내력이라는 것은 '영업적인 측면'에서 보았을 때는 수익이 떨어질 수 있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운영진이 불특정하 다수가 아니라 다소 명확한 '소수'와 커뮤니티를 이룰 때, 그만큼 기대이익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알라딘의 철학이 이런 상황을 감수한 것이라면 제가 알라딘을 좋아할 또 하나의 이유가 생긴 거겠지요.

지기님이라고 해야 할지, 김성동 님이라고 해야 할지 좀 애매하지만,
김성동 님이 개인의 입장에서 의견을 주셨기 때문에 김성동 님을 향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장문의 댓글을 아마도 그저께 새벽에 쓰셨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 자리에서 실은 이야기를 드리려고 했는데,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고, 다른 분들의 생각을 수렴해야 했고,
무엇보다도 제주도에서 조카들이 올라와서 '봉사'를 해주어야 했기 때문에
이 밤에 남깁니다. 제가 이야기를 남기는 것이 특별한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지난 번에 제가 전해드렸던 의견과 김성동 님의 입장 이외의 다른 내용은 없습니다.
때문에 별다른 내용은 각설하고, 지적하신 부분에 대해서만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1. 좋은 리뷰에 관한..

좋은 리뷰가 가지고 있는 전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지만, 전제를 하나 더 이야기했으면 좀더 명확했을 것을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또 하나의 전제는 '나에게 있어(My)'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리뷰가 좋은 리뷰입니다. 그리고 나는 알라딘이나 책을 읽는 사람 중 1사람 이상의 위상을 가지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육아에 관한 리뷰이거나 중학생이 작성한 리뷰 역시 나와 동일한 값을 갖는 '좋은 리뷰'입니다. 김성동 님은 제가 말하는 좋은 리뷰를 '글솜씨 있는 리뷰'로 한정하지는 않으셨으리라고 믿습니다. 아마도 '추천단의 공신력' 부분에서 그러한 생각이 드셨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중학생이든 노동자든 진솔한 리뷰라면 누구에게나 통하지 않을까요. 그런 리뷰를 좋은 리뷰라고 느끼는 '가슴' 쯤은 제대로 된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2. 발굴 혹은 '리뷰활용'

현실성 운운에 관한 부분이 어떤 점인지 저는 대략 인지하고 있고, 또 수긍하는 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입장 차이도 있기 때문에 이 점에 대해서 구구절절 논의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문제는 '작성된 리뷰에 대한 투자 혹은 재투자'의 지점인데, 알라딘의 리뷰가 다른 인터넷 서점이나 포털에 비해서 양질이라는 평가는 어느 정도 공론이 된 것 같으며, 저도 그 점에 대해서 자랑스러워마지 않습니다. 얼마 전 중복리뷰에 관한 논쟁이 있었지만, 아직까지는 알라딘의 정체성이 형성돼 있다고 판단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결정적인 우위'를 보장해 주지는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저뿐만 아니라 알라딘을 아낀다는 알라디너조차도 '리뷰효과'를 별로 보고 있지 않습니다. 누가 어떤 리뷰를 쓰는지조차 알 수 없습니다. 다만 흥미 있는 책을 검색했을 때 '보물'을 주은 것처럼 주옥같은 리뷰를 만나는 행운을 가끔 만나기는 합니다.

"'마이리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하고 물으셨죠. 저도 비슷한 질문을 던지고 싶습니다. "알라딘의 리뷰를 어떤 방식으로 소개하고 있습니까?"
제가 볼 때는 '이주의 리뷰'가 대표적인 리뷰 소개의 방법이라 생각하는데, 그 외에는 생각나는 방법이 없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알라디너의 서재에 방문해서 챙겨 읽지 않는다면 저는 리뷰에 대한 정보를 얻을 방법이 없습니다. 이런 저에게 '추천수'에 의한 리뷰는 '베스트셀러'와 같습니다. '발굴'이라는 말은 이러한 배경에서 나왔습니다.

알라딘의 책이 아니라 '리뷰'에 대해서 애정을 가져달라, 또는 이에 대한 기술적인 고민을 해달라는 것이 비현실적인 요구인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저는 인터넷 뉴스보다 종이신문을 더 좋아하는데, 왜냐하면 인터넷에서라면 영원히 '클릭'하지 않았을 뉴스를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 알라딘에 적용해 본다면, 알라딘이 소개해주는 '내가 영원히 찾지 않았을 책에 관한 리뷰'를 읽게 된다면 인생의 좋은 책을 만난 것처럼 행복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서비스에 관한 영업적인 판단도 의뢰해 보고 싶은 심정입니다. 만약 이런 게 있다면 저의 도서 목록표, 또는 다른 독자들의 도서목록표가 좀더 다양해지고 건강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서포터스가 만약 이점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졌더라면 좋았을 텐데,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생각에 격분해 장문의 글을 썼습니다. 이러한 감정은 저의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니까 결국은 '아카데믹'한 것이 아니라 '보지 못했던' 리뷰를 읽고 싶은 것이 제 소망이고, 알라딘에는 그러한 리뷰가 적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가끔 만나는 좋은 리뷰를 접할 때마다 이러한 확신은 더 커졌기 때문이죠.

제 글 중 '논조' 관련 부분과, 구구절절하며 현실적으로 어려운 제안 부분에 대해서는 유감을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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