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장 지글러 지음, 유영미 옮김, 우석훈 해제, 주경복 부록 / 갈라파고스 / 2007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 속담에 “가난 구제는 나라님도 못한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가난이라는 문제는 해결되기 어려운 과제다. 아프리카와 아시아 등 제3세계의 기근 문제는 역사적으로 골이 깊은 문제이지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식민지 정책의 상처와 세계 금융 자본의 폭력이 이를 매우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우리는 제3세계 기근의 문제를 매우 단순하게 생각해 왔다. 게으른 자들이 당연히 받아들여야 할 고통이라거나, 적자생존의 사회에서 고통은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했다. 또는 남아도는 지역의 작물을 기근에 시달리는 곳에 융통하면 기근의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얕은 희망을 품어 왔다. 하지만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고 저자는 말한다. 예컨대 기근에 고통받는 아이들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는 단순히 음식만을 제공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단식보다 복식이 어려운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숙련된 전문의가 약해져 있는 소화기관에 영양주사를 통해 원기를 회복하고, 기본적인 신체기능이 서서히 다시 작동할 수 있도록 정확한 진단과 신중한 처방이 있어야 한다. (58쪽) 뿐만 아니라 내전에 의해 처참한 식량난을 겪는 주민들에게 공수기를 이용해서 식량을 살포하는 것은 오히려 불쌍한 난민들을 죽이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식량 팩들이 들판 여기저기 무차별적으로 떨어지면 굶주린 여자들과 아이들이 그쪽으로 달려가다가 지뢰를 밟아 몸이 찢기곤 하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지뢰가 가장 많이 묻혀 있는 내전 지역의 주민들에게 식량을 안전하게 제공하기 위해서는 군사적인 보안 등 커다란 비용이 필요하다. 이와 같은 조치 없이 단순히 식량만 살포할 경우, 그 식량은 대체로 독재자와 테러리스트들의 배를 불리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178~179쪽)

이 책은 저자인 아버지와 카림이라는 자식의 대화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카림이 궁금한 문제에 대해서 질문하면 아버지가 상세하게 답변해주고, 복잡한 문제에 대해서 추가 질문을 하는 식으로 대화가 이루어진다. 때문에 ‘기근’이라는 매우 복잡한 문제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저자는 기아의 문제를 ‘경제적 기아’와 ‘구조적 기아’로 구분하여 설명하고 있다. 경제적 기아란 환경재난이나 내전 등 돌발적이고 급격한 정세변화로 인해 순식간에 엄청난 난민이 발생하며 생기는 문제인 반면, 구조적 기아는 그 나라를 지배하고 있는 사회구조로 인해 빚어지는 필연적 결과라고 한다. (48~49쪽) 대체로 가난한 나라는 부패를 먹고 자란다. 관료들은 자신의 배를 불리기에만 급급하고 때때로 세계 각국에서 들어오는 원조 역시 절실한 국민에게는 돌아가지 않는 경우가 많다. 결국 구조적인 문제로 허약해진 제3세계의 체력이 경제적인 기아를 만났을 때 처참한 결과를 빚는 것이 일반적인 패턴이다. 저자는 기아문제가 발생하는 기원에서부터 그것이 광범위하게 확산되는 복잡한 과정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다국적 기업과 강대국들의 탐욕을 고발한다. 칠레의 아옌데 대통령이나 부르키나파소의 상카라 대통령처럼 개혁에 나선 젊은 지도자들의 의지를 처참히 짓밟은 것은 강대국과 대자본이었다. 자급자족의 개혁은 자본의 침투를 방해하기 때문에 방해하는 세력을 없애는 것은 인간임을 포기한 자본노예의 모습일 뿐이다.

기근과 생명파괴의 문제를 이겨내는 방법은 결국 인도적인 구호조처를 더욱 합리적이고 효율적으로 만드는 것과 내부적인 개혁을 이뤄내는 것이다. 세계 각국도 제3세계의 나라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인프라를 지원하는 것이 기아문제를 해결하는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이를 위해서는 세계의 여론이 동원되어 강대국의 지도자들을 각성시켜야 하며, 인간이라는 근본적인 가치를 회복하기 위해 단체나 국가 간의 연대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대안을 천명하고 있다. (167~169쪽)

가난은 그 나라의 숙명이 아니라 자본에 무자비하게 훼손된 인간 가치의 자화상이다. 제3세계에서 이루어지는 폭력과 기근의 참상이 엄존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애써 외면하거나 설익은 정당성으로 이 문제를 사소하게 바라본다면 우리는 암묵적으로 자본의 부당한 폭력행위에 동의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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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기세덱 2007-06-26 2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난 구제는 나라님'도' 못"하는 게 아니라, '나라님'이어서 못하는(어쩌면 안하는) 것이란 사실을 이 책은 알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이 세계를 지배하는 세력들은 그들의 부를 위해 세계의 가난을 조장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들에게 가난은 극복의 대상이 아닌 부의 유지의 수단일 뿐이니까요. 분명 이 세계의 가난은 우리 '가난한' 자들의 연대로부터 해결될 수 있다고 여겨집니다. 좋은 리뷰 잘 읽고 갑니다.ㅎㅎ

승주나무 2007-06-27 14: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멜기세덱 님//가난을 먹고 사는 불쌍한 사람들이 이 세상에는 많이 있으니까요~~그들이 가난을 한번 먹어보지 못한다면 죽을 때까지 그 생활을 계속 해야겠지요. 감사합니다.

Koni 2007-07-03 1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실을 아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불편한가를 깨닫게 만드는 책이에요. 그리하여 알량한 양심이 오히려 진실을 외면하게 만든다는 것을.

비로그인 2007-07-06 16: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승주나무님 리뷰 당선 축하드립니다 :)

아영엄마 2007-07-07 0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승주나무님~ 리뷰 당선 축하드립니다!! 승주나무님이 이렇게 알찬 리뷰를 올려주셨으니 저는 책만 열심히 읽으면 될 것 같아요~. (앗.. 차력도장 필독서인 거 까먹을 뻔 했다..-.-)

마노아 2007-07-09 16: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당선 축하해요~ 요새 승주나무님 서재에서 시사저널 관련된 글을 인상깊게 보고 있어요. (>_<)

승주나무 2007-07-10 1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냐오 님//이 세사에는 불편한 진실이 참 많은 거 같아요..
체셔고양이 님//리뷰 당선 소식을 이제야 봤네요.. 댓글도 보이지 않아서 이제야글을 남기네요. 감사합니다.
아영엄마 님//감사함니다. 리뷰보다 알찬 책이었어요.
마노아 님//시사저널 사태에 관심을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많이 홍보해 주세요^^;

승주나무 2007-09-09 1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알리샤님//좋게 보셨다니 저도 좋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