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라는 나라? - 친절하면서도 간결한 일본 근현대사
오구마 에이지 지음, 한철호 옮김 / 책과함께 / 2007년 3월
평점 :
절판


현재의 우리나라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시간적으로는 ‘역사’의 과정으로 통해서, 공간적으로는 각국의 ‘관계’ 혹은 ‘이해관계’를 통해서 형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시간과 공간을 한꺼번에 감안해서 파악하지 않으면 ‘현재의 우리나라’가 아니라, ‘다른 때의 다른 나라’가 되어 버린다. 다른 나라의 역사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사실관계를 분명하게 알아야 할 뿐만 아니라, 역사에 과중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금물이다. 하지만 우리가 역사에 대해서 이러한 원칙을 적절하게 지켰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 『국사』는 특정 시기의 역사를 서술할 때마다 ‘민족의 철천지원수’, ‘절멸시켜야 할 적’의 존재를 명확히 설정한 뒤, 이런 원수와 적을 물리치기 위해서는 조국과 민족에 대한 무조건적 충성과 복종, 화합과 단결이 다른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식으로 애국심이나 민족주의를 선동하고 있는데, 이런 대목에서 돋보이는 ‘상상 속의 적’은 역시 일본 제국주의이다. 이와 같은 식의 역사서술은 일본아 자신들의 전쟁을 미화하거나 왜곡하는 것과 별반 다를 게 없다.

이 책은 일본의 현대사가 주된 내용이지만, 그것은 우리나라의 현대사와도 겹칠 뿐만 아니라 세계의 현대사이기도 하다. 그만큼 일본이라는 나라는 역사에서 현대사로 넘어오는 흐름의 중심에서 격변기를 보냈다. 공교롭게도 유교 중심적 전통주의에서 서방문물을 본격적으로 받아들인 것은 일본이 아시아 최초였다. 만약 제국주의 시대로부터 냉전의 시기를 거쳐, 민주화의 시대에 이르기까지의 흐름을 파악하려 한다면 이 책은 간결하면서도 구조를 깊이 있게 서술하고 있다.

애초부터 이 책의 서술 의도는 일본 지식인이 자국의 중고등학생에게 읽히는 것이었기 때문에 문체가 평이하며 매우 쉽게 설명하기 위해 고심한 흔적이 역력하다. 일본화폐 1만엔의 주인공이기도 하며 『학문의 권장』이라는 저자이기도 한 후쿠자와가 자신의 책을 ‘원숭이도 볼 수 있을 정도로 쉽게 썼다’고 한 말은 오히려 이 책을 더 잘 설명해주고 있다. 하지만 중고등학생용으로 집필되었다고 해서 기본적인 교양서나 학습지로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한국의 근현대사와 일본의 근현대사에 대해서 이보다 명쾌하고 간결하게 소개한 책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그것은 이 책이 오히려 일반인에게 매우 유용한 점이라는 것을 강력히 시사한다.

이 책에 의하면 일본은 국제정세에 가장 민감하게 움직였으며, 동시에 국제정세의 흐름에 가장 깊숙이 편승하고 있다. 이 편승은 때로는 어처구니없는 피해를 유발하기도 하지만, 세계사를 만들어낸 주된 흐름이기 때문에 일본이 얻은 이익은 패해 그 이상이다. 현대사는 일방통행이며, 우리가 지금 걸어가고 있는 길은 바로 미국(서방)이 만들어놓은 유일한 길이다. 이 책은 몇 년도에 무슨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고리타분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그 대신 그 사건이 함의하고 있는 ‘뜻’을 명쾌히 설명한다. 우리나라에도 함석헌 선생의 『뜻으로 읽는 한국사』라는 책이 있는데, 이 책 역시 『뜻으로 읽는 일본 현대사와 한국, 그리고 세계의 현대사』라는 제목을 붙일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일본인에 의해서, 일본의 관점에서 서술되었다는 저이 다르다. 즉 밖에서부터가 아니라 안에서부터 일본을 이해하게 된다는 것인데, 그 관점을 우리 역사에 적용한다면 우리가 몰랐거나 잘못 알고 있었던 ‘잃어버린 현대사’를 다시 찾을 수도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하게 된다.

 

덧 : 원제가  '일본이라는 나라?'여서 한국 제목도 그것을 따랐지만, '번안'이 아쉽다. 일본에 관한 시시껄껄한 소개서가 많은데, 이 책의 제목이 마치 그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뜻으로 읽는 일본현대사' 같이 좀 기획력 있게 제목을 만들었으면 좀더 많은 사람들에게 소개되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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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5-20 18: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5-20 18: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도서관 2009-06-10 15: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제목 보고 건너뛰었다가 목차 보고 구입합니다. 제목에 대한 지적 공감해요. 땡스투! (알지의 자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