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이 영화를 보고 즐거운 이유가 세 가지 있다.
첫째는 독일식으로 '아브락사스'라고 불리는 아프 님이 영화볼 기회를 주었기 때문이다. 아프 님께 개인적으로 이 리뷰를 바치고 싶다. (뭐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둘째는 요즘 나의 심경을 잘 해소시켜주는 영화이다. 요즘 직장 문제로 매우 심각한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나의 요즘 증세는 허파에 바람든 것 마냥 실실 웃음이 나오다가 왈칵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 그런 기분이다. 간만에 느끼는 심리적 공황상태를 해소하기 위해 책도 잡아 보았는데, 풀리지 않았다. 연암의 민옹전인가에 나오는 시름 깊은 젊은이가 느낀 시름이 나와 같고, 해소 방식으로 민옹이 전해준 폭소가 바로 이 영화의 미덕이다.
사마천 사기의 골계열전과 비슷하기도 하거니와 민옹은 퉁소를 부는 악사의 뺨을 내려치며 '온갖 인상을 다 쓰면서 악기를 부니 그게 즐거울 리가 있겠느냐'며 타박을 준다. 젊은이의 시름이 단박에 없어지는 순간이다.
깊이 있고 오래도록 잔잔한 여운이 남는 영화는 드물기도 하거니와 만들어내기도 어렵다. 이 영화는 '만들어진' 영화이다. 뻔한 드라마와 헐거운 구조에 비해 탄탄한 캐릭터-특히 아이들과 임창정-가 만들어내는 웃음의 기제들만으로 상영 후 기분이 좋아지는 영화이다.
셋째는 영화를 보고 나서 지하철을 타고 돌아가는 길에 집어든 신문에서 만난 칼럼이다. 영화평론가 심영섭과 태원엔터테인먼트 정태원 사장의 대담이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702061817151&code=210000
마치 이 영화를 가리켜 이야기를 하는 듯해, 내심 이 우연이 또다른 즐거움을 주었다.
이 영화는 기획영화는 아니지만 충실한 팝콘영화이자, 대중영화의 문법을 철저히 따랐다. 감동을 끌고 대단원까지 가지는 못하지만(실은 이 영화는 너무나 뻔한 틀 때문에 혹 드라마의 속깊은 사연을 접하고 싶은 관객에게는 차마 권하고 싶지 않다) 관객을 끌고 당기고 희롱하는 품세가 진득한 영화임에 틀림 없다.
이 품세의 영광을 차지한 배우가 바로 임창정이다. 이 영화에 임창정이라는 수식어를 붙이지 않으면 매우 섭섭할 것 같다. 혹은 '임창정과 아이들'이라고 할까. 기본적인 틀은 '시실리'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시실리의 건달들을 모두 임창정 한 사람에게 모아온 것처럼 대단한 포스를 자랑했다.
임창정이 문근영계와 달리 보이는 이유가 무엇일까. 문근영은 이미지를 고수하기 때문에 실망을 받지만, 임창정은 이미지를 유지하는 것이 더 즐거운 이유가 무엇일까. 실제로 임창정의 '어수룩한 건달 연기'는 이 영화에서 비로소 결실을 보는 듯싶다. 비트에서 보여주던 리얼한 초짜 건달에서 '1번가'에서 보여주는 해맑고 능글능글한 건달에 이르기까지 '코믹 건달사'를 온몸에 지니고 있는 임창정이 다음에 또 다른 건달로 나온다면 어떤 변화를 보여줄까가 기대가 된다. 사실 포지션에 내공만 있다면 '변신'할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연예인들의 '변신'은 대개는 내공을 숨기기 위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아무튼 이 영화 덕분에 순간이었지만 크게 웃을 수 있었다. 순간 압축적으로 크게 웃을 수 있고, 끝나고 나서도 그나마 덜 허무할 수 있다면 이 영화는 그래도 괜찮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미녀는 괴로워'에는 못 미치겠지만, 300 정도 땡기지 않을까 배팅을 걸어본다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