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나를 대접합니다 - 맛있는 위로의 시간 나와 잘 지내는 시간 2
강효진 지음 / 구름의시간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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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이야기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요상한 신세 한탄 이야기"



첫 챕터를 읽자마자 읽기를 중단하고 이 책을 바로 반납할까 한참을 고민했다. 제목이나 소개 글에 언급된 내용과는 너무나 다른 내용 때문이었다.


분명 음식과 관련된, 힐링과 위로가 키워드가 되는 책인 줄 알고 읽기 시작한 건데, 어째서 첫 챕터부터 강력한 스트레스 유발 내용으로 불쾌한 감정을 느껴야 하는 건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첫 챕터만 읽고 그대로 책을 덮어두고 한동안 방치해두었다. 그리고 반납 기일이 다가올 때쯤 이왕 빌린 거 그냥 끝까지 무슨 소리를 하나 읽어보자는 심산으로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완독 후 내린 결론은, 유아기적 생각을 가지고 있는 이기적인 마인드의 어른아이(어른이 아이처럼 생각하고 생각하는 것)가 어른 흉내를 내며 쓴 책이라는 결론에 다다랐다.



총 3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일상 속에서 만나는 음식과 그에 대한 에피소드를 엮은 책으로, 기본적인 형태는 '에피소드에 얽힌 이야기+음식을 만드는 방법'의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막상 들여다보면 음식을 통해 힘을 얻거나 힐링을 할 수 있는 책은 아니다. 오히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함께 담겨있는 다른 이야기가 더 임팩트 있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엄마와의 관계, 음식에 대한 집착, 성인 분리불안 증세, 신세한탄과 같은 이야기들이 음식 이야기에 밀려 오히려 신세한탄을 위해 오히려 음식 이야기를 끼워 넣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래서 읽는 내내 좀처럼 불쾌한 기분이 가시질 않았다. 초반에는 엄마와의 이야기 때문에, 중반 이후에는 음식에 대한 집착과 애정결핍과 같은 내용들이 이어지며 '왜 저럴까?'하는 의문만을 남겼다.


그리고 고심 끝에 내가 내린 결론은 저자의 마음속에는 아직 덜 자란 아이가 있고, 그 아이가 이토록 이기적인 행동을 취하는구나 생각하게 되었다.


아래는 내 마음에 툭 불거진 의문감과 이야기하고 싶은 소재들을 담은 문장들을 몇 가지 발췌해서 정리해 보았다.


사실 다른 독자들은 어떤 기분으로 이 책을 읽었을까 궁금한 마음에 기록으로 남기기 전에 검색을 통해 랜덤으로 확인해 봤는데, 대부분 출판사에서 의도한 내용만을 전하는 무난한 수준만 확인되었다.


그래서 다른 시각으로 본 내 글을 읽은 또 다른 독자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내 글만 읽은 독자들, 먼저 책을 읽고 내 글도 함께 읽은 독자들 모두 말이다.




먼저 배경을 설명해두는 게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 정리해 보자면 이렇다. 저자는 엄마의 그늘을 떠나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했고 이로써 엄마와는 멀어질 것이라는 기대를 하게 된다.


하지만, 저자 말예 따르면 결혼 전이나 별반 다르지 않은 관계가 결혼 후에도 이어졌으며(엄마는 술을 먹고 1시간 이상 통화를 하며 외롭다는 식으로 이야기했다고 함) 이로 인해 꽤나 힘든 나날을 보냈던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가족은 4명이며, 아버지는 엄마와 살고 있고, 여동생이 있는데 독립했음)


이로 인해 엄마와의 거리를 두어야겠다고 저자 스스로 생각하지만, 저자 자신도 그러지 못 했던 것 같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이 모든 것이 엄마 탓처럼 이야기하는데,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엄마보다 더 심각해 보이는 것은 저자다.


여하튼 그러다가 엄마가 살던 곳을 정리하고 아빠와 함께 먼 지방으로 이사를 가게 된다. 이후 엄마는 강아지를 들이고 이제는 사뭇 잘 지내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저자의 행동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엄마가 연락이 안 되거나 없을 때는 저자가 먼저 몇 번이고 걸어서 통화를 이어가기 때문이다.


저자는 어릴 때 많이 아팠던 엄마로 인해 사랑 표현을 받지 못하고 자란듯하다. 엄마는 늘상 불면에 시달렸고 때문에 뒤늦게 잠든 엄마로 인해 도시락을 싸주는 것은 늘상 아빠였다. (엄마가 싸준 도시락과는 다르게 아빠가 싸준 도시락은 반찬들이 뒤섞여 창피했다고 서술하는 장면도 확인됨)


그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저자는 식탐이 강하고 대식가이며, 유일하게 자신을 사랑하고 아껴주는 남편에게조차 맛있는 것을 나눠먹을 생각을 잘 하지 않는다.


남편을 저자는 주나 씨라고 부르며 본명인지 아니면 애칭인지는 잘 모르겠다.



=====

나는 결혼을 해서 엄마로부터 독립하고 싶었는데 엄마는 그렇지 않았다. 엄마는 하루가 멀다 하고 늦은 밤에 전화를 했다. 자정이 가까운 시간에 전화벨이 울리면 그건 엄마가 그날 술을 마시고 몹시 슬퍼하고 있다는 신호였다. 내가 보고 싶다는, 내가 없어서 온 집안이 휑하다는 이야기. 엄마는 이렇게 슬픈데 너는 괜찮냐는 이야기. 술을 마시고 집에 왔는데 내가 없다며 엄마는 울먹였다. 그런 전화는 1시간 이상 계속되기 일쑤였다.

1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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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장을 읽는 것만으로도 솔직히 굉장히 힘들었다. 내가 지금 뭘 읽고 있는 건지 의문이 들었다. 힐링 에세이가 아니라 신세 한탄 이야기를 잘못 읽는 건가 그런 생각이 들 정도였다.


더불어 처음에는 좀 많이 아픈 엄마를 둔 저자의 이야기인가 싶기도 했다. 자신의 입장에서 서술한 엄마는 외로움을 많이 타고, 또 자정이 가까워서 매번 전화하는 약간은 민폐를 주는 엄마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또 옆에서 챙겨줄 아빠는 없는 건가 하는 의문도 들었다. 술+우울감+외로움 등의 복합적인 내용들이 포착되면서 혼자 두어도 되는 건가 하는 염려스러운 마음도 들었다.


어디까지나 초반까지는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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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도 그랬다. 결혼을 하고 독립했으니 엄마에게 의지하기보다는 내 삶을 살아가고 싶었다. 적절한 거리를 두고 내게 더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게 옳았다. 하지만 노력은 번번이 실패했다.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잡고서 내 생활을 해나가다 보면 엄마는 외롭고 힘들어졌다. 혼자 잘 지내지 못하는 엄마에게 지쳤지만, 그런 엄마를 모른 체할 수는 없었다.

5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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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중반을 넘어서면서 더 많은 이야기가 쏟아져 나오면서 느껴지는 부분은 전혀 달랐다. 화자가 같음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엄마보다 더 문제가 되는 건 저자라는 생각에 닿았다.


저자는 엄마로부터 독립을 꿈꿨다. 하지만 엄마로 인해 그 노력이 무산됐다는 식으로 이야기한다. 하지만 엄마가 살던 곳을 정리하고 아빠와 함께 더 먼 곳으로 이사하며 한동안 전화도 끊기고 강아지를 입양해 즐겁게 산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취미생활도 갖고 사람들도 만나면서 이제는 외로움이나 헛헛함에서 조금 벗어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여기에서 멈췄으면 좋았겠지만 이제는 저자가 가만히 있지를 못한다.


엄마와 통화가 될 때까지 연락을 하고, 오히려 연락이 닿지 않는 것을 저자 자신이 더 힘들어하는 것처럼 보인다. 엄마의 곁에는 엄마와 한평생을 함께 한 아빠가 있는데, 모녀는 왜 이러는 걸까? (아빠가 돌아가시거나 엄마 혼자 살고 있는 게 아니었음)


이쯤 되니, 엄마에 대한 생각이 바뀐다. 아이들이 어릴 때 몸이 아파 제대로 챙겨주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과 더불어 의지하던 딸이 결혼하면서 느끼는 헛헛함 정도로 생각된다. 다소 과한 반응을 보여주기는 했으나 한동안 그러다 말일이라고 생각될 정도다. 실제로도 그러했고 말이다.


그런데 저자는 왜 엄마와 거리감을 두고 싶다고 하면서도 놓지를 못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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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작 두려운 건 아이를 낳지 않고 살아가는 우리 같은 부부를 바라보는 세상의 시선인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데에서 한 발짝만 벗어나 있어도 잘못되었다며 선을 그어버리는 세상이 나는 더 두려운 건지도 모른다.


그 두려움을 사랑하는 사람의 온기를 빌려 떨쳐낸다. 가장 소중한 사람에게 내가 가장 소중한 사람이 되어 살아가는 것. 나는 그렇게 세상을 향해 나아간다.

3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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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와 배우자는 결혼하면서 자녀를 두지 않기로 합의했다. 그런데 이에 대한 주변 시선이 따가워 때론 두려움을 느낀다.


부부간에 합의된 사항이나 자녀를 낳고 낳지 않고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저자가 자녀를 낳지 않기로 결심한 데에는 엄마의 영향이 크다. 자신과 같은 아이를 만들고 싶지 않은 거다.


잘 키울 자신도 없고, 그런 아이를 낳고 싶지도 않은 것이다. 대체 모녀 사이에는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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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흐르고 홍차를 절제하면서 나와 카페인 사이의 적당한 거리를 찾을 수 있었다. 그렇게 균형을 잡고 나니 오히려 카페인이 허락된 날이면 홍차의 맛과 향에 내 맛봉오리를 더욱 예민하고 섬세하게 반응했다. 절제한 만큼 기쁨이 커지고, 적절한 거리 안에서 더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기. 나를 잘 알고 나서 내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거리를 두고 사랑하기. 이제야 어른이 된 것 같았다.

5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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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의 거리를 넓히는 데에는 실패한 저자는 음식을 통해 힐링을 하는 듯하다. 카페인 섭취 시 수면 등의 문제가 생기는 저자는 절제하는 시간을 통해 오히려 더 맛과 향을 깊이 만나볼 수 있었다고 전한다.


그러면서 절제와 거리 둠을 통해 이제야 비로소 어른이 된 것 같다고 말하는 저자. 그런데 나는 이 문장을 읽으며 회피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진짜 문제가 되는 부분은 저 멀리 치워두고, 다른 대안을 통해 대리만족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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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백 년 전 영국 귀족들이 온실 재배된 비싼 오이를 구해 자신의 부를 과시하며 먹었을 오이 달걀 샌드위치를 나는 이렇게 편안하고 우아하게 즐긴다. 귀족도 안 부러운 맛. 이 맛이 얼마나 좋았으면 오이 달걀 샌드위치를 아직까지 주나 씨에게는 만들어 준 적이 없다.

11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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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남편 주나 씨에 대해 세상에서 유일하게 자신을 보듬어준 사람이라고 설명한다. 그런데 그런 유일무이한 사람에게 오이 달걀 샌드위치를 만들어 준 적이 없다고 당당하게 말한다.


자신은 그토록 맛있게 몇 번을 해먹으며 힐링과 위로를 맛본 음식인데, 너무 맛있어서라는 이유로 만들어 준 적이 없단다.


여기에서 나는 또 한 번 경악을 금치 못했다. 보통은 맛있는 음식, 좋은 장소, 멋진 풍경을 보면 사랑하는 사람이 가장 먼저 떠오르기 마련인데, 저자는 맛있으니깐 나만 먹어야지 하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어린아이의 이기적인 심보가 엿보이는 대목이었다. 음식에 대해 언급할 때 이런 식의 생각이나 심정이 담긴 글이 후반부에 꽤 많이 등장하는데, 그래서 나는 저자의 마음속에 덜 자란 아이가 산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가 만약 그런 배우자를 만난다면, 오히려 많이 만들어 함께 먹으면서 내 감정과 사랑을 오롯이 나눌 것 같은데, 저자의 생각은 다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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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맛있는 걸 먹을 때 나는 함께 식사하는 사람들에게 음식을 양보하거나 같이 먹자고 권하지 않는다. 나 먹기에도 너무나 바쁜 사람, 먹을 때만큼은 내 코가 석 자인 사람, 그게 바로 나니까. 그곳에서 나는 그만 한 마리 염소가 된 것 같았다.

16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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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당당히 말한다. 저자는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마다 함께하는 이들에게 음식을 양보하거나 권하지 않는다고. 자기 먹기에도 바쁘며 내 코가 석자라고 말이다. 그러면서 그게 자신이란다.


보통 이런 행동은 미취학 아동들이 자기중심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하는 행동으로, 이럴 때 부모가 나서서 교육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저자는 '맛있는 건 나만 먹어야지'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듯하다.


음식으로 뭔가를 푸는 느낌이 강하게 드는 대목이다. 애정결핍, 성인 분리불안 등의 여러 불안 증세들을 정작 엄마와는 풀지 못하고, 음식을 통해 대체해서 풀고 있는 느낌이랄까?


그럼에도 신기하게 저자가 이토록 잘 살아가고 있는 이유는 남편을 비롯해 주변에 꽤 괜찮은 지인들이 많다는 점 때문이다.


그녀 주변에는 손수 맛있는 음식을 가득 차려 매번 실컷 먹을 수 있도록 해주는 지인들이 있고, 무엇을 하든 이해하고 받아들여주는 남편이 있다. 또 맛있는 반찬을 해주시는 시어머니까지.


개인적으로 음식과 관련된 이야기 중에 충격적으로 다가왔던 일화가 하나 있는데, 묵을 집에서 직접 쑤어서 먹었다는 일화에서 엄마와 통화하며 묵 이야기를 했다는 장면이 있다.


그때 나는 평소보다 더 많이 묵을 만들었다는 문장을 읽으며 엄마에게도 만들어서 보내려나 보다라고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엄마가 잘 먹지 못한다거나 병원에 입원했다가 퇴원했다는 에피소드가 앞에 있었음)


저자는 자신이 만든 맛있는 묵을 혼자 먹었다. 엄마에게는 똑같은 묵가루를 보냈다. 엄마는 알아서 혼자 만들어 드셨던 듯하다.


맛있는 음식은 혼자 먹는다는 맥락과는 일치하지만, 아픈 엄마에게 묵사발 정도는 만들어서 보내줄 수도 있지 않았을까? 평소보다 많이 만들었는데, 그걸 조금 떼어서 보내줄 수는 없었을까? 묵 만드는 게 많은 시간과 정성이 들어가는데, 그 시간을 단축시켜줄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


이 책에 실린 몇몇 글들은 어떤 곳에 기고했던 글도 있는듯하다. 그 매체는 무엇을 보고 글을 실었던 걸까?


힐링과 위로라는 껍데기를 뒤집어쓴, 사실은 신세한탄의 글로 가득 채워진 저자 자신만 대접받았던 음식에 대한 이야기. 이것이 내가 이 책을 읽고 느낀 최종 소감이다.


제목은, '오늘도 나만 대접합니다'로 고쳐 써야 맞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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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의 시선
이재성 지음 / 성안당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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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는 스무 살의 저자가 자신만의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과 사람들에 대해 쓴 시로 가득 채워져 있다. 소재를 보면 비슷비슷한 것들이 많은데, 의외로 느끼는 바는 다양하다.


학교를 오가며, 운동을 하며, 매일 거닐었을 길과 풍경들, 그리고 함께 하던 사람들에게서 영감을 받아 당시의 생각과 느낌들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이제 막 성인의 문턱으로 들어섰을 때의 고뇌와 꿈, 그리고 기분에 따라 달리 보이던 풍경들을 담아낸 시를 읽으며, 모처럼 나 역시 스무 살의 날들을 떠올려 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총 2부 100편으로 구성된 이 시집에는 저자의 SNS를 통해 독자들이 선정한 60편의 시와 저자가 직접 고른 40편의 시가 담겨 있다.


운동을 그만둘 때쯤인 열아홉 살부터 쓰기 시작해 스무 살까지 쓴 시를 엮어 만들었다는 이 시집에는 그래서인지 청년의 고뇌와 꿈, 불안, 사랑 등 다양한 감정들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그 흔적들을 따라가다 보면, 그때 어떤 시선으로 사물과 사람들을 보고 있었는지도 확인할 수 있다.


인생의 큰 변화를 맞게 되는 스무 살, 그리고 그때의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은 어떠한지를 이 시를 통해 살펴보며, 우리의 초심과 스무 살의 날들을 다시 떠올려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한다.



=====



부츠 안 양말이 다 젖도록

눈을 밟아대며 놀았던 내가


이젠 신발이 젖을까 봐

눈을 피해 걷는다


머리 위로 흰 눈이 날릴 때면

입을 벌려 눈을 먹어대던 내가


이젠 머리가 젖을까 봐

우산을 챙겨 나간다


나는 눈이 싫어지지 않았는데

우리 사이는 언제부터 멀어진 걸까...

21페이지 中

=====


이 시를 읽으며 문득 생각해 보니, 나 역시 같은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눈이 싫어지지는 않았는데 왜 이토록 사이가 멀어진 걸까? 이게 바로 아이와 어른의 차이인 걸까?


그러면서 또 한편으로는 이제는 아예 이런 생각조차 하지 않고 산다는 것에 살짝 충격을 먹었다. 어쩌면 저자는 아이와 어른의 경계선에 있었기에 할 수 있었던 생각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

미술관



하늘은

세상에서 제일 큰 미술관


매일매일 새로운 작품이 전시되는

잘나가는 미술관


언제 어디서나 24시간 열려있는

연중무휴 미술관


남녀노소 누구나 공짜로 볼 수 있는

세상 착한 미술관

40페이지 中

=====


생각해 보니 정말 그러하다. 언젠가부터 하늘을 한 번씩 올려다보고는 하는데(특히 여행가서는 더 하늘을 자주 올려다 봄), 미술관을 좋아하는 나조차 한 번도 하늘을 보며 미술관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던 것 같다.


발상의 전환을 해보니, 그냥 하늘을 볼 때보다 어쩐지 더 신나는 기분으로 하늘을 쳐다보게 된다. 오늘은 어떤 그림을 만나볼 수 있을까 은근히 기대하는 마음을 품게 된다.



=====

사포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거칠고 까칠한 면으로


나를 긁어대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런 사람들은 내게 상처를 입히려

끊임없이 나를 무시하고 깎아내릴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나를

긁어대고 깎아내릴수록


'나'라는 작품이

점차 완성되어 가고 있음을 느낀다

76페이지 中

=====


이 역시 발상의 전환이 아닐까 싶다. 끊임없이 나를 깎아대는 사람들을 만날 때면 '징글징글'하다 생각하기만 했었는데, 뭔가 도 닦는 마음으로 '나'라는 작품이 완성되어 가는 시간이다 생각하면, 조금은 화가 덜 나는 기분이다.



=====

시곗바늘



움직여야 한다는 말,

바로 시계가 그 말을 증거한다


쉬지 않고 움직이느라

날씬해진 초침과,


그나마 조금씩은 움직여서

통통한 분침,


그리고 거의 움직이지 않아서

비만이 되었지만


시치미를 떼고 있는

저 시침이 바로 그 증거이다

82페이지 中

=====


재미있는 발상이다. 시를 읽으며 시계를 쳐다보니 초침과 시침, 그리고 분침이 달리 보인다. 사람도 움직임이 줄어들면 비만으로 갈 확률이 높아지는데, 어쩌면 시계에 비유해서 사람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 아닐까 한다.


지금 당장 일어나서 움직여야겠다. 날씬한 초침처럼 되기 위해.



*****


스무 살의 감성에서 조금 더 성숙한 면모를 가진 시인의 이야기를 '시'를 통해 만나보았다. 비슷한 주제(이를테면 '눈', '별')가 많았음에도, 다른 이야기로 풀어낸 것을 보며 변화무쌍한 시기를 보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이것은 스무 살이기에 느낄 수 있는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경험이라는 생각도 해본다. 스무 살은 불확실함이 넘쳐나는 시기이고, 그렇기에 불행과 희망이 공존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세상 모든 것이 영감이 되기도 했다가 또 와르르 무너진 것 같은 불행처럼 다가오기도 하는 청춘. 이 시를 읽으며 잠시 나 역시 스무 살이 되어 청춘의 맛에 퐁당 빠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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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 질문 - 프로젝트 라이프
아키씨 지음 / 언더라인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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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는 존재를 새롭게 인식하고, 발견하기 위한 욕망 질문들!"

여태껏 수많은 책들을 만나봤지만, 필사 책을 제외하고 이토록 흰 여백이 많은 책은 처음 만났다. 그럼에도 까만 글씨로 빽빽하게 채워진 그 어느 책보다도 더 많은 생각과 고민을 하게 만든 책이었다.

특히 질문 글을 읽으면서 문득 다른 책에서 읽은 글귀 하나가 떠올랐는데, 그 책에는 이런 글이 쓰여있었다. '어떤' 질문을 하느냐보다 '어떻게' 질문하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말이다.

이 책에는 204개의 욕망 질문들이 담겨있는데, 읽다 보면 질문의 퀄리티를 실감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때때로 스스로에게 질문을 할 때가 있는데, 이 질문들을 읽고 보니 어쩌면 잘못된 질문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번 기회에 제대로 질문을 나 자신에게 해봄으로써 내가 나로서 살기 위한, 내가 바라는 삶을 살기 위한 욕망을 확실히 확인해 보면 좋겠다.

더불어 이를 종합하여 시각화시키는 작업까지 완료하게 되면 제대로 미래를 설계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이처럼 체계적인 질문과 방법들을 통해 나 자신을 보다 명확히 정의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총 3부로 구성된 이 책은 주체적으로 살기 위한 욕망 질문들을 통해 잘못된 욕망은 걸러주고, 내가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돕는다.

여기에 더해 6트랙을 통해 확인한 욕망들을 취합 정리하여 시각화시키고 디자인하는 작업까지 도와줌으로써 내가 찾고자 하는 진짜 욕망은 무엇이고 또 이것을 미래 계획에 적용할 수 있도록 해준다.

1부에서는 저자가 말하는 기본 개념을 익히고, 2부에서는 204개의 욕망 질문들을 통해 나의 진짜 욕망을 파헤치는 작업을 하며, 3부에서는 다양한 도표를 활용해 실제 삶에 적용할 수 있는 시각화 작업을 하는 형태로 진행된다.

개인적으로는 2부 욕망 질문들에 한참 머물러 있었는데, 의미 있는 질문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속 깊이 파고드는 질문부터, 애써 피하고 싶은 질문들, 마음 저편에 밀어두었지만 내가 진짜 욕망하는 것들을 발견할 수 있는 질문들까지.

도표나 시각화 작업이 어렵게 느껴진다면, 2부에 실려있는 질문들만 따로 필사하여 수시로 들여다보며 나에게 질문을 건네며 삶의 방향을 잡아가는 것도 또 하나의 방법이 되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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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 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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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이란?사전적으로는 부족을 느껴 무엇을 가지거나 누리고자 탐하는 마음이라고 정의한다.
이 책은 '나는 무엇을 욕망하는가?' 그리고 '내가 원하는 것을 어떻게 실현할 수 있는가?'라는 단순한 질문에서 출발한다.


■나의 욕망을 찾아야 하는 이유어쩌면 내 욕망을 이해하는 일이야말로, 인공지능 시대에서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살아가기 위한 중요한 일이 될 것이다.
때문에 주체적으로, 나로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나의 욕망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작업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고정되어 있지 않은 욕망이라는 대상 자체를 분석하는 일은 매우 어렵다.


■6트랙으로 알아보는 욕망 관계망저자는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 다양한 질문을 하다가 문득 '인생이라는 인류 공통의 프로젝트는 무엇일까?라는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이 질문에서 시작된 삶에 대한 하나의 메타포를 '프로젝트 라이프'라고 명명했다.

다시 말해, 스스로 선택하고, 시도하고, 좌절하고, 성취하는 다양한 행위들과 상태들을 '나'로서 인식하는 과정이 프로젝트 라이프라고 생각한 것이다.

(미트릭스 6트랙)



▶내 삶을 맥락적으로 한눈에 조망하기저자는 경험을 통한 정보나 기억을 정리하여 맥락(관계) 적으로 한눈에 조망하기 위해 미트릭스라는 툴킷을 만들었다. 시간이라는 흐름 안에서 나를 형성한 나를 규정하는 것들, 공간환경, 인간관계, 라이프스타일, 개념 환경, 일(이하 6트랙)을 살펴볼 수 있는 툴이다.

미트릭스 툴킷은 한 사람의 삶이 6트랙의 맥락으로 분류된 대상들과 끊임없이 관계를 맺으며, 다양한 '나'의 모습이 드러나는 것을 전제로 한다.

6트랙으로 인생을 바라본다는 것은, 내가 세상의 다양한 존재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고, 어떤 태도를 취하는지 의미한다. 그리고 이런 맥락 안에서 다양한 스펙트럼인 '나'의 모습이 어떤 유형과 방식으로 드러나는지를 발견하게 된다.

1. 나를 규정하는 것들(me-info)6트랙의 첫 번째는 신체적, 사회적으로 나를 규정하는 것들에 대한 내 정보(me-info)다. 물리적으로 나를 규정하는 몸, 생물학적 성별부터 사회적으로 규정된 역할이나 캐릭터, 나를 나타내는 다양한 보통명사들이 이 트랙에 해당된다.

'남자로서', 여자로서', '아들-딸로서', '부모로서', '인간으로서' 혹은 '나로서' 마땅히 해야 할 도리나 역할과 관련이 있다.


2. 공간환경(space)두 번째 트랙은 나를 둘러싼 공간환경이다. 내가 사는 공간, 학교 또는 회사, 소비를 향유하는 쇼핑센터나 문화공간, 자연환경이나 인공 환경 그리고 인터넷이라는 가상공간이 이에 해당한다. 이런 공간에서 나는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고, 어떻게 상호작용을 하며 스스로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 살펴본다.

욕망의 탈주라는 용어처럼 공간의 경계를 넘어 다른 맥락의 공간으로 이동하게 되면, 공간과 엮여 있는 다른 트랙들도 분명 쉽게 변화한다. 또한 장소나 공간에 대한 취향 혹은 소유욕과도 관련이 있다.


3. 인간관계(people)세 번째는 나를 둘러싼 인간관계 트랙이다. 이 트랙을 통해 '나와 너, 나와 우리'라는 관계망 속에서 나는 어떻게 살고 있는지 살펴볼 수 있다.

이 트랙에 해당하는 욕망은 내가 관계 맺은 집단 혹은 사회 시스템의 인정을 받는 것과 관련된 경우가 많다. 누구의 인정을 받고 싶은지, 왜 받고 싶은지, 그 인정을 위해 내가 어떤 태도를 가지고 어떤 행동을 하는지를 살펴볼 수 있다.


4. 라이프스타일(lifestyle)네 번째 트랙인 라이프스타일은 주로 나를 둘러싼 사물과 콘텐츠가 대상이다. 내가 향유하고, 소유하고 싶은 것들을 통해 소유욕과 소비 욕구를 살펴보고, 그 근원을 고민해 보자. 또한 나의 취향도 살펴볼 수 있다.


5. 개념 환경(issue&keyword)다섯 번째 트랙은 보이지 않지만 나를 늘 둘러싸고 있는 개념 환경이다. 과거에서 현재까지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이슈들과 개념들은 과연 어떠한 환경과 과정을 통해 내 안에 자리 잡았을까?
이렇게 과정을 돌아봄으로써 내 안에 어떤 생각의 씨앗과 전제, 개념, 믿음이 있는지를 알아보고, 그것들이 내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발견해 볼 수 있다.

보통 개념 대부분은 내가 만든 것이 아니다. 심지어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경우도 많기에 나와 나의 삶을 주도적으로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상당히 많은 고찰이 필요한 트랙이라고 생각한다.


6. 일(worklife)여섯 번째 트랙은 일이다. 공식적으로 하는 작업부터 개인 작업까지, 내가 세상을 향해 생산하고 창작하는 활동들을 살펴보자.

인간은 끊임없이 신체를 통해 자신의 욕망을 표현한다. 그중에서도 이 트랙은 생산적, 창조적 방식으로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의지적 행위와 관련되어 있다.

※주의: 스스로에게 욕망을 질문하길 두려워하지 말 것!이 6트랙의 욕망은 개별적이면서도, '나'라는 개념을 유지하고 존재 가치를 인정받으며 자아를 실현하는 욕망으로 통합되어 있다. 인간을 자의식을 가진 삶-경험 기계로 정의한다면, 그 원동력은 욕망일 것이다.

나로서, 나답게 주도적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나를 규정하는 관계망 안에서 욕망이 나를 통해 어떻게 발현되는지, 그러한 방식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이해하면서, 내 선택의 가능성을 모색해 나가야 한다.


■'나'라는 존재를 세 가지 차원으로 분석하기욕망이 발현되는 '나'에 대하여 이 책에서는 1) 생물학적인 몸 '육체적 나' 2) 맥락에 따라 변화하며 발현되는 복수의 '개념적 나' 3) 관계망 안에서 맥락적으로 규정하기 이전의 '존재감으로서의 나'라는 세 가지 차원의 구조로 정의하려고 한다.

욕망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욕망이 발현되는 매개체 혹은 주체가 이 셋 중 어느 위계에 속한 것인지를 인지해 보면 도움이 될 것이다.

즉, '주체적 삶을 위해서 욕망의 제어자(컨트롤러)가 될 것인가, 욕망이 나를 지배하게 할 것인가'하는 문제는, 어떤 나에 집중할 것인가, 어떤 관점과 원리로 욕망을 해석하고 반응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욕망은 나를 통해 영향력을 형성한다.관계가 형성된 범위 내에서만 서로 영향을 줄 수 있으며, 영향이 미치는 한계는 곧 실질적 관계가 된다. 욕망은 무의식적 과정을 통해 개인이 지각하는 범위를 따라 관계를 형성한다.

인간은 생물학적 몸을 가지고, 내면에서 감정을 느끼고, 생각을 통해 추상화하는 작업을 한다. 또한 감정과 이성을 통해 외부 대상들을 추상화하고 개념화하면서 요구와 욕망을 느낀다. 그리고 다시 몸을 통해 그것을 실현하고 충족시키려 다양한 활동을 수행한다.

욕망은 추상적이지 않고 구체적이다. 구체적이지 않은 욕망은 소비하는 욕망이며, 내가 주체로서 무엇을 바라는지를 점점 잃어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욕망계를 탐사하는 3단계<욕망 질문>은 나를 통해 표현되는 욕망계를 탐사하는 자신만의 탐험 기록지다. 욕망의 대상과 활동을 스스로 명확하게 인지하고, 욕망이 벌어지는 나의 구조를 신체, 의식적 주체로서의 에고, 맥락으로부터 자유로운 존재자로서의 나라는 세 가지 측면에서 나누어 정리해 보며 나와 내 삶의 관계망을 이해한다.

2부에 있는 204개의 질문은 내 삶의 관계망 안에서 내가 어떤 대상들을 욕망하는지, 어떤 활동들을 하면서 욕망을 발현시켜 왔는지를 살펴본다.

추상적이고 개념적인 욕망이 아니라 나를 거쳐 가는 6트랙의 관계망에서 구체적인 욕망 메커니즘의 역사를 하나씩 꺼내어 서술해 보는 발굴 작업을 한다. 하나씩 써 내려가다 보면, 우리의 내적 세계에서 가장 은밀하고도 근원적인 욕망을 서서히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동안 이해하기 어려웠던 내 모습들을 긍정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3부에서는 욕망을 구체적 대상과 활동으로 나누어 정리하고, 다양한 기준과 프로세스를 통해 시각적으로 분석하는 작업을 거쳐, 내 욕망을 정의 내린다.

이 과정을 통해 그동안 막연하게 느껴왔던 욕망이 내 삶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조금은 더 선명하게 인지할 수 있을 것이다.


■마음껏 솔직해지자!<욕망 질문>에는 '정답'이 없다. 그러니 스스로에게 궁금증을 가지고 마음껏 솔직해지는 시간을 가지길 바란다.

질문에 대한 답을 한 번에 써 내려가기 힘든 경우 처음에는 추상적이더라도 키워드로 적어 보기 바란다. 하나의 단어에서 점차 관련된 상황과 대상, 활동으로 연결되어 점점 구체적으로 될 때까지 여러 번에 거쳐 써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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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을 통해 나의 '욕망'을 파헤쳐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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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실린 질문들은 단순히 답을 찾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답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 자체가 의미 있는 여정임을 기억하자!




질문들나를 규정하는 것들을 통해 사회적 정체성과 나의 욕망의 관계를 찾아볼 수 있다.


앞선 질문들을 취합하여 나를 규정하는 것들과 관련된 욕망의 주요 대상 혹은 활동을 도표에 적으면서 정리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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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을 이해하고, 분석하고, 설계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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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을 실현하는 4단계3부는 '욕망 분석 → 욕망 시각화 → 욕망 정의 → 욕망 디자인'이라는 단계로 구성되어 있다.

1. 욕망 분석: 첫 번째 단계는 자신이 가진 욕망이 어디에서 시작되었고,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탐구하는 질문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를 통해 나의 욕망이 어떻게 성장하고 변화해 왔는지를 메타인지할 수 있게 도와준다.

2. 욕망 시각화: 두 번째 단계에서는 자신의 욕망을 구체적으로 시각화한다. 우선순위 포지셔닝 도구 등을 사용해 시각적으로 전환하며 새로운 관점으로 명확하게 인식할 수 있다.

3. 욕망 정의: 세 번째 단계에서는 자신의 욕망을 스스로 정의하고, 그 욕망이 자신의 삶에 어떤 가치를 가지는지 다시 한번 성찰한다. 이는 실질적인 계획을 세우는 근거가 된다.

4. 욕망 디자인: 마지막 단계에서는 정의된 욕망을 바탕으로 자신의 미래를 디자인한다.

이 4가지 과정을 통해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되고, 욕망을 기반으로 원하는 미래의 모습을 형상화할 수 있게 된다.
중요한 것은 욕망을 단순히 추상적으로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목표와 연결하는 것이다. 시각적으로 명확히 보면, 그 욕망을 실현할 방법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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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에 남았던 질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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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나만의 집을 짓는다면, 어디에 짓고 싶나요? 어느 정도의 크기와 어떤 구조이길 바라나요? 또 집 주변에 어떤 시설(상점, 도서관 등)이 있으면 좋을까요?

Q. 이 세상은 점점 살기 좋은 세상이 되어가고 있나요? 아니면 반대인가요? 이유를 구체적으로 적어보세요.

Q. 무언가를 소유한다는 것은 나에게 어떤 가치를 주나요?

Q. 삶을 마감하기 전에 반드시 이루고 싶은 최후의 욕망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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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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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함에 따라 우리는 공간적, 사회적 환경, 사람들, 물건(콘텐츠) 등을 통해 다양한 개념과 역할들을 학습하며 '나'를 구축해 나간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내가 바라는 것과 환경, 타인의 욕망들이 마구 뒤섞여 진짜 내가 욕망하는 것을 잃어버리거나 알지 못한 채 살아가는 경우가 발생한다.

그럴 때 이 책에서 제안하는 6트랙의 맥락 안에 있는 질문을 통해 내가 어떤 대상을 욕망하는지, 그것들은 어떤 욕망에서 비롯된 것인지를 살펴보면 어떨까 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진짜 욕망하는 것을 알지 못하면 때때로 헛헛한 감정이 들거나 허무한 감정에 휩싸여 방향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앞만 보고 나아가기 보다 한 번씩 스스로에게 내가 원하는 삶이 무엇이고 어떤 미래를 설계하고 싶은지를 물어보면서 살아가자.

때때로 그 욕망들은 나만 알고 싶거나, 깊숙이 숨겨져 있어 미처 알아채지 못하거나, 외부의 욕망과 혼동하는 경우도 생길 것이다. 하지만 차분히 나의 삶을 살펴보고 나만의 기준점에 따라 하나씩 찾아가다 보면 다른 가능성과 방법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때 반드시 전제해야 할 것은 솔직한 감정으로 다가가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야 내가 무엇을 놓치고 있고,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발견할 수 있다.

초반에는 스스로 질문하고 실천하는 것이 쉽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개념을 이해하고 지속적으로 훈련하다 보면 나만의 욕망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다 보면 점차 내가 주체가 되어 나답게 사는 삶을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무언가를 욕망한다는 것은 곧 자유로운 내 의사와 방향에 따라 살아간다는 것이므로, 이것이야말로 진짜 우리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나다운 삶'에 부합하는 방법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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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코하마 코인 세탁소 서사원 일본 소설 3
이즈미 유타카 지음, 이은미 옮김 / 서사원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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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 입은 이들의 마음을 말끔히 세탁해 주는 요코하마 코인 세탁소!"


겨울 같지 않은 포근한 날씨에 살짝 실망감이 밀려들 때쯤 다시 찾아온 매서운 추위. 덕분에 적응하지 못한 몸과 마음이 금세 차갑게 얼어붙었다. 이때 만나게 된 소설 한편이 있는데, 바로 <요코하마 코인 세탁소>다.

예전에는 긴긴 겨울을 나는 방법으로 방구석에 콕 틀어박혀 이불을 온몸에 둘둘 만 뒤에 만화책이나 소설책을 읽다 보면 하루가 금방 지나가고는 했는데, 요즘은 그럴 여유가 사라진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 든다.

모처럼 그때의 기분을 살려, 크리스마스를 소설책과 함께 보냈는데, 차가운 눈 속에 뒹굴다 먹게 된 따뜻한 코코아처럼 따뜻하고 다정하게 다가오는 소설이었다.


총 5장으로 구성된 이 책에는 저마다의 이유로 상처 입은 이들이 등장한다. 요코하마 코인 세탁소를 운영하는 점장 마나를 비롯해 3년간 악덕 부동산 회사에서 일하다 탈탈 털리고 번아웃이 온 주인공 아카네, 그리고 세탁소에 방문하는 손님들 모두 그렇다.

어쩜 이리도 상처 입은 사람들만 모아 놓았을까 싶지만, 우리가 사는 현실을 고려해 보면 지극히 당연하고 또 매우 현실적인 모습이라는 생각도 든다.

저자는 코인 세탁소를 배경으로 '세탁하는 행위'와 '세탁 후 말끔해진 옷을 입었을 때의 기분'을 소재 삼아 이웃 간의 관계를 형성하고, 상처를 치유해 주는 스토리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소설을 읽는 독자들 역시 보송한 촉각과 향기로운 후각, 깨끗해진 시각을 함께 느낄 수 있도록 돕는다.

세탁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소설에 등장하는 이들의 '생존' 즉 건강하게 살아가고 있음을 상징하며, 저자는 다양한 에피소드를 통해 세탁이 살아감의 행위 중 하나라는 것을 은연중에 어필한다.

이에 걸맞은 특히 도드라지는 에피소드로 '슌조'의 이야기를 꼽을 수 있는데, 슌조는 정년퇴직한 노년의 남자로 아무런 준비 없이 갑자기 아내가 사망하는 일을 겪게 된다.

집안일은 모두 아내가 도맡아 처리하고 있던 터라 집안일에 있어서만큼은 문외한이었던 그는 간간이 몸을 수건으로 닦는 것으로 최소한의 생활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오랜만에 들른 딸아이가 심각한 아버지와 집 상태를 보고 잔소리를 퍼붓게 되고, 이를 견디다 못한 그는 세탁을 핑계로 요코하마 코인 세탁소로 도망치게 된다. 그리고 거기에서 만난 마나와 아카네를 통해 자신의 상태가 매우 좋지 않으며, 일상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제대로 다시 집안일을 배워야 한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이를 통해 세탁이 왜 중요한지, 세탁을 통해 무엇을 이뤄낼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뽀송한 옷을 입고 기분 좋은 향기를 맡으며 '오늘'을 다시 살아갈 힘에 대해 전하고 있는 이 소설을 그럼 지금부터 조금 더 자세히 만나보자.


=====
등장인물 소개
=====

□요코하마 코인 세탁소
-2월 1일 리뉴얼 후 재오픈함
-영업시간: 아침 6시부터 밤 10시까지 운영
-오전 11시~12시 / 오후 3시~4시에는 세탁 대행 접수를 하지 않음(점장의 휴식시간)

***

■나카지마 아카네
-가족관계: 부모님과 자신 그리고 열두 살 된 골든리트리버 네네
-대학 졸업 후 요코하마의 악덕 부동산 회사에서 3년간 일하다가 홧김에 그만두고 현재는 백수 상태
-평소 외모로 웃음거리가 되는 경우가 많았음
-부동산 회사에서 일할 당시 실적 압박과 무리한 일정으로 인해 피폐하게 살았음. 덕분에 집을 소개한 세입자에 대한 후회와 자책이 마음 깊이 자리 잡고 있음
-보름 만에 마음먹고 세탁기를 돌려보려 하지만 고장 난 세탁기로 인해 집 근처 코인 세탁소를 찾아가면서 세탁소와의 인연이 시작됨


■아라이 마나
-서른여덞 살
-코인 세탁소의 점장
-셀프 세탁소를 운영하며 세탁 대행도 함께 하고 있음
-세탁소 운영전에는 오랫동안 요양원에서 근무함
-싱글맘이었던 엄마로부터 어렸을 때 방임학대를 당함
-초등학교 3학년 때 보육원에서 지내게 되면서 처음 빨래를 해봄
-처음으로 뽀송뽀송하고 은은한 세제 향이 베어든 옷을 입었을 때 어디든 갈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되면서 언젠가 많은 사람들에게 이 기쁨을 느끼게 해주고 싶다는 다짐을 하게 됨
-보육원을 나온 뒤로는 야간 전문학교에서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땄고 비샤미치에 있는 요양원에서 일함. 그러다가 방문 요양보호사로 이직하면서 에비하라 씨라는 분을 만났고 덕분에 요코하마 코인 세탁소를 시작할 수 있었음 (에비하라씨는 노부인 자산가임)

***

■오쓰카
-서른다섯 살로 이혼남
-요코하마 코인 세탁소의 단골 중 한 명
-직장인(월요일과 금요일은 재택근무)
-아카네가 처음 요코하마 코인 세탁소에 방문했을 때 마주한 사람
-세련된 옷차림으로 재택근무하는 날에는 세탁소에 매번 등장하여 애플 로고가 박혀있는 맥북을 펼쳐놓고 일을 함


■스즈키 켄고
-간나이역에서 게이힌도호쿠 네기시선 쪽에 위치한 사립대학교에 다니는 1학년 학생
-현재 학교 근처 연립주택에서 자취 중
-늘 돈키호테의 비닐봉지를 세탁기 유리문에 걸어놓고 방치하여 아카네가 눈여겨보고 있는 인물임


■다카오카 오사무
-리스토란테 다카오카 레스토랑의 사장이자 셰프
-미쓰루의 일란성 쌍둥이 동생


■다카오카 미쓰루
-클리닝 다카오카(세탁소)를 운영 중
-마나가 세탁기능사 자격증을 딸 때 도움을 준 사람


■가미야 시오리
-남편과 이혼 후 18개월 된 딸 리리카와 함께 얼마 전 이사 옴
-세 살 연상의 남편이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회사 후배와 바람이 난 것을 뒤늦게 알게 됨
-싱글맘에 무일푼 신세지만 딸아이에게 부끄럽지 않은 엄마가 되기 위해 노력 중


■슌조
-가족관계: 죽은 아내와 외동딸 사치코(사치코는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 중)
-한 달 전 아내 히사에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 혼자 살고 있음
-정년퇴직 후에도 집안일은 아내가 모두 도맡아 했기에 혼자 남겨지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됨
-오랜만에 방문한 딸아이의 잔소리를 피해 간 곳이 마침 요코하마 코인 세탁소였음


■다니구치 쇼
-10대 학생
-엄마와 말다툼을 벌이다 홧김에 주먹을 휘둘러 엄마를 다치게 한 뒤 도망침
-무료 와이파이를 이용하기 위해 세탁소 앞에서 진을 치고 있다가 목격자들에 의해 발각되었고, 추후 인생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게 됨


■오카모토 나카지마
-아카네가 부동산 회사에서 일할 당시 고객
-직업은 파견직 시스템 엔지니어
-오로지 해가 잘 드는 집을 찾아달라는 오카모토씨의 요청에 매번 집주인에게 시달려왔던 애물단지를 떠넘김으로써 아카네가 죄책감을 가지고 있는 인물 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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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 살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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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졸업 후 3년간 악덕 부동산 회사를 다니며 영혼까지 털털 털린 아카네는 홧김에 회사를 그만두고 보름 째 집 안에 틀어박혀 무기력하게 지낸다.

이 사실을 부모님이나 소꿉친구에게도 말할 수 없던 그녀는 혼자 끙끙 앓으며 보름을 지내다 이대로 있다가는 그대로 폐인이 될 것 같다는 두려운 마음에 밀려있는 빨래를 하기로 마음먹는다.

그러나 3년 전 중고로 마련한 드럼식 세탁건조기는 작동 버튼이 고장 나 먹통이 되었고 이대로 주저앉아 있을 수 없었던 그녀는 지도 앱을 통해 집 근처 코인세탁소를 찾기 시작한다.

그리고 마침내 집 근처에 있는 코인세탁소를 발견한 그녀는 그쪽으로 발길을 옮긴다. 그리고 들어서려는 순간 세련된 모습으로 앉아 있는 한 남자를 발견하게 되면서 순간 멈칫하게 되고, 초라한 자신의 모습과 너무나도 비교되는 모습에 돌아서려던 순간 누군가 자신을 향해 낭랑한 목소리로 인사하는 소리를 듣게 된다.

그녀는 데님 재질의 앞치마를 두르고 있는 가냘픈 인상의 여자로, 코인 세탁소의 점장을 맡고 있는 마나였다. 그녀는 자신의 소개를 하며 세탁소 이용방법에 대해 설명해 주겠다고 말하게 다정하게 말을 건넨다.

간신히 세탁을 마칠쯤 우연히 창밖으로 지나가던 오카모토씨를 보게 된 아카네는 부동산 회사에서 일할 당시 실적을 위해 좋지 않은 매물을 떠넘긴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게 되고, 죄책감을 느낀 그녀는 도망치듯 세탁물을 가지고 그 자리를 벗어나게 된다.

건조도 하지 못한 빨랫감을 말리기 위해 집안 이곳저곳에 걸어두지만 빨래는 잘 마르지 않는다. 젖은 채로 그냥 입을까 잠시 생각도 해봤지만, 어쩐지 덜 마른 빨래처럼 비참한 생활은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아 그대로 다시 빨래를 걷어 코인 세탁소로 향한다.

그리고 건조대에 넣어 돌린지 얼마 안 돼 뽀송하고 부드러운 빨래를 만나게 된다. 이와 동시에 어쩐지 마음이 누그러지고 부드러워지는 기분을 느끼게 된다.

이후 한층 너그러워진 아카네의 마음에 더해 다정하게 대해준 마나를 산책로에서 다시 만나게 되면서 둘은 친분을 쌓게 되고, 체력적 한계로 인해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할 생각이 있다는 마나의 말에 덜컥 아르바이트를 하고 싶다고 이야기하게 된다.

그렇게 마나가 점장으로 있는 요코하마 코인 세탁소에 아카네는 아르바이트생으로 일하게 된다. 주 5일, 아침 9시부터 저녁 5시까지 일하고 점심시간은 1시간, 휴일은 수요일과 일요일로 일을 하면서 어느새 육 개월에 접어든 아카네는 이제 코인 세탁소에 있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렇게 요코하마 코인 세탁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아카네는 점차 마나 주변의 사람들은 물론 세탁소에 방문하는 이웃들과도 친분을 나누게 되고, 관계를 맺는 법, 세탁이 주는 힘, 일상을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것들을 하나씩 깨우치게 된다. 그러면서 점점 더 단단한 관계를 맺게 된다.

아카네는 이제 세탁기능사 자격증을 따겠다는 새로운 꿈을 꾸게 된다. 그리고 위태롭던 자신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준 마나 씨를 도우며 살고 싶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추측건대 이후에는 새로운 연인도 생기지 않을까 싶다.

아카네는 3년간의 회사일로 몸과 마음이 완전히 무너진 상태였다. 하지만 요코하마 코인 세탁소 덕분에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게 되었다.

여기에는 무엇보다 좋은 이웃이 있었다. 저마다 마음에 상처를 입고 처음에는 서로 부딪히는 사건들도 있었지만, 이내 서로 보듬으며 이겨낼 수 있었다.

먼저 마나의 세탁 스승인 미쓰루 씨는 자연스러운 핑계로, 상대방을 배려하며 편안하게 대해주었다. 그의 일란성 쌍둥이 동생 오사무 씨는 리스토란테 다가코카에서 맛있는 음식으로 기꺼이 즐거움을 선사해 주었다.

첫 만남부터 무례함으로 다가왔던 오쓰카 씨는 사실 관계를 맺는 것에 서툴렀다. 하지만 마나 씨의 직구에 자신의 잘못을 제대로 깨우치게 된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세탁건조기에 늘 돈키호테의 비닐봉지를 유리문에 걸어놓고 방치함으로써 아카네의 눈총을 샀던 스즈키 켄고는 사실 첫 자취생활이 녹록지 않아 빨래를 제때 찾아갈 수 없었음을 알게 된다.

명품 옷을 걸친 아기 엄마 가미야 시오리는 처음에 날카롭게 다가왔지만, 실은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회사 후배와 바람난 남편과 이혼하고 싱글맘이 된 무일푼의 아기 엄마임을 알 수 있었다. 추후 이런저런 도움을 주고받게 되면서 알게 된 사실은 다소 덜렁이라는 점이었다.

한 달 전 아내 히사에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 혼자 살고 있는 슌조는 홀로 집에 남겨진 상태다. 씻는 것은 물론 세탁 등 집안일에 문외한인 그는 그저 방치한 채로 살아가고 있다. 그러던 중 오랜만에 집에 들른 외동딸은 잔소리를 퍼붓게 되고 이로 인해 코인 세탁소로 도망친 그는 자신의 상태를 제대로 파악하기에 이른다.

다소 까탈스럽고 무례한 노인이라고 생각했던 그가 사실은 모르는 것에 대한 불안함으로 인해 방어자세를 취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마나와 아카네는 솔직하게 현 상태를 알려주는 것은 물론 세탁 방법과 주변에 도움을 청할 것을 권한다.

어느 날 세탁소 주변을 어슬렁거리기 시작한 다니구치 쇼는 비행청소년으로, 어머니에게 폭행을 가하고 도망쳐 다니는 10대 소년이다. 방임학대로 방황하는 것을 알게 된 이웃들은 그에게 옷과 먹을 것, 지낼 곳을 알아봐 주며 소년이 안전하고 편안하게 지낼 수 있도록 돕는다.

한때 아카네의 죄책감 리스트에 올라가 있던 오카모토 나카지마는 비행청소년인 다니구치 쇼를 돕는 과정에서 재회하게 되면서 아카네의 죄책감을 덜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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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 깊게 다가왔던 문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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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자기가 맡은 일을 감당하는 것만으로도 버거워했기에 아카네는 업무에 관해 상담하거나 의지할 만한 사람을 주위에서 찾기 어려웠다. 그야말로 고독했다.
2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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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직장에서 아카네는 무리한 영업 방식과 성과에 시달리게 된다. 그럼에도 누구에게도 도움을 청할 수 없었다. 심지어 이직률이 높아 입사한 지 반년 만에 부점장이라는 타이틀까지 얻게 되면서 그 부담감은 더했다.

여기에 더해 점장이 큰 키를 두고 희롱하는 말을 할 때면, 웃음거리가 되고는 했는데, 하지만 아카네는 그저 홀로 견뎌야만 했다. 그렇게 일상은 망가졌고 심하게 번아웃이 왔다.

아카네의 일상을 살펴보며 낯설지 않게 느껴지는 건 비단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현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겪고 있는 일이자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카네의 삶을 보며 공감을 많이 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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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해치는 것과 그다지 다를 바 없는 일을 하던 때의 기억. 마음이 완전히 오염되어서 새까맣게 변해버렸던 날들에 관한 기억이었다.
3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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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완전히 오염되어서 새까맣게 변했다'는 느낌을 나는 알고 있다. 여기에 더해 아카네는 일을 하는 데에 있어 자부심은커녕 '사람을 해치는 것과 그다지 다를 바 없는 일'이라는 말로 얼마나 괴로운 일상을 보냈는지를 말해준다.

3년,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요즘은 첫 직장에서 보내는 근속 기간이 1년도 안된다고 들었는데 현시대를 말해주는 지표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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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를 손에 들고 잠시 망설였다. 그냥 이대로 입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
'아니야 그런 건 싫어.'
몸서리치듯 고개를 크게 내저었다. 눈에 눈물이 고였다. 이런 생활은 이제 지긋지긋했다. 덜 마른 빨래처럼 비참한 생활은 더는 사양이었다.
3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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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송하게 말린 기분으로 하루를 시작해도 모자랄 판에, 늘 축축하고 비참한 생활을 이어갔으니 얼마나 괴로웠을까. 매일 아침에 눈뜨는 것조차 몸서리치게 싫었으리라.

그렇게 하루하루 지나갈수록 점점 주변을 둘러볼 겨를도, 여유도 사라져 갔을 것이다. 어쩌면 조금씩 매일 늪에 빠져드는 기분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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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나가 말한 대로 바짝 말라 있어서 햇볕에 말린 듯한 냄새와 온기가 느껴졌다. 마치 털이 복슬복슬한 동물을 끌어안은 것처럼 마음이 누그러지고 부드러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오늘, 없던 힘을 짜내서 세탁하러 오기를 정말 잘했다.
4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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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런 게 소확행이 아닐까? 포근하고 따뜻한 온기와 냄새를 머금은 깨끗한 세탁물을 한껏 끌어안는 것.

그럴 때면 한껏 날카로워진 신경들도 짐짓 누그러지고 부드러워진다. 덕분에 기분 좋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으며, 편안한 게 잠자리에 들 수 있다.

한 발짝 내디딜 힘이 없어 겨우 코인 세탁소에 들렸지만, 덕분에 아카네는 좋은 기운과 힘을 얻고 갈 수 있었다. 모처럼 깨끗한 옷을 입고 산책도 가고 밥도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얼룩진 내 마음을 깨끗이 만들고 싶은 마음도 생겼다. 그렇게 한 발 한 발 앞을 향해 내디딜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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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계속 변해요. 옛날 가치관으로 요즘 사람들을 비판해서는 안 되듯, 우리도 지금의 가치관으로 이전 세대의 삶을 부정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해요. 요양원에서 일할 때 항상 그렇게 스스로 되뇌곤 했어요."
20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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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변한다. 그래서 옛날 가치관으로 요즘 사람들을 비판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미처 반대로는 생각해 보지 못했다. (늘 이전 세대가 요즘 사람들을 두고 훈계하거나 무례하게 구는 것만 봐서 더 '왜 저래'라는 소리가 절로 나왔던 것 같다)

아카네는 보통의 사람들처럼 종종 세탁소에서 무례한 행동을 하거나 타인에게 불편을 주는 사람들을 향해 비판하거나 경고성 글로 주의를 주자고 이야기한다.

이에 대해 마나는 다독이며 때론 다정하게, 또 어떨 때는 단호하게 이야기하며 아카네에게 깨달음을 전한다. 이는 비단 아카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손님들에게도 강약을 조절하며 핵심을 잘 전달하는 덕분에 관계가 잘 풀리는 것은 물론 좋은 이웃으로 거듭나는 모습을 종종 목격하게 된다.

새로운 깨달음을 얻는 문장인 동시에, 현실 속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라는 생각도 든다. 관계는 일방적이 아니라, 상호작용으로 만들어지는 일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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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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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인 세탁소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일들을 다룬 소설을 읽으며 문득 '현실+판타지'가 결합된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카네나 이웃들이 겪는 상황들은 지극히 현실적인데, 세탁소를 거치며 변화하는 삶은 어쩐지 판타지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다. 요즘 세상에는 남모르는 이에게 함부로 거대한 유산을 상속하지 않는다. 더불어 함께 일하는 동료에게 아프다는 이유로 집 주소를 마구 알려주지도 않는다. 아무 이유 없이 선의로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베푸는 일도 드물다.

그렇듯 현실에는 잘 일어나지 않는 기적 같은 일들이기에 어쩌면 판타지적 요소로 다가왔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덕분에 구깃 했던 마음이 깨끗하게 펴진 기분이다. 책을 읽는 내내 뽀송뽀송한 햇빛 냄새와 부드러운 촉감을 한껏 느낀 기분이다.

때때로 우리는 무기력에 빠져 집 안에 틀어박혀 아무렇게나 쌓인 빨랫감처럼 지낼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고,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다.

그럴 때 대청소를 해보면 어떨까? 묵을 때를 박박 씻어내다 보면, 어느새 개운함과 시원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몸에 붙은 무기력과 아픔을 털어내다 보면 어느새 더러운 얼룩이 조금씩 옅어지지 않을까 한다.

이 책에 언급된 에피소드들처럼, 저편에는 여전히 악덕 기업가나 바람피우는 배우자, 방임하는 부모 등 우리를 상처 입히는 것들이 많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묵혀둔 냄새 나는 빨래처럼 살지는 말자. 씩씩하게 일어나 주변을 깨끗이 정돈하고 밖으로 나가 한껏 깨끗한 공기를 들이마시자. 먼지나 얼룩은 툭툭 털어버리고 힘차게 내 삶을 이어나가자.

p.s
일본 소설인데,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음식들은 대부분 중국음식들이다. 저자가 즐겨먹는 음식이 중국음식이거나 유난히 중국음식을 좋아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해본다.

오죽하면 읽다가 중국 작가가 쓴 중국 소설인가 몇 번을 다시 살펴봤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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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나는 집으로 간다
나태주 지음 / 열림원 / 2024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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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의 시간을 가지고 싶어 선택한 나태주의 시! 이번 시집의 키워드는 '오늘'과 '나'와 '집'이었다. 겨울에 잘 어울리는 느낌의 시여서인지, 아니면 공감 가는 느낌의 시가 많아서인지 푹 빠져서 그 자리에서 다 읽어버렸다.


과거에는 '시'라고 하면 숨겨진 의미 파악을 하거나 시인만의 표현력을 따라잡느라 어렵게 느껴졌는데, 최근에 출간되는 시들은 쉽게 쉽게 다가와서 더 자주 읽게 되는 것 같다.


만약 아직 시와 친하지 않다면, 이 책을 시작으로 시와 친해져보는 시간을 가져봐도 좋겠다.



총 4부로 구성된 이 시집에는 저자만의 감성과 삶을 되돌아보는 시선들이 가득하다. 그래서인지 마치 앨범을 들여다보며 추억을 떠올리듯 선연하게 다가온다.


덕분에 나의 삶, 우리 사회, 올 한 해에 대해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볼 수 있었다. 특히 연말과도 잘 어울리는 시들이 많아 지금 딱 읽어보기를 추천하고 싶다.


때때로 사랑이나 이상에 대한 내용만 다루는 시들을 만날 때면 뭔가 좀 공허하거나 겉도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는데, 나태주 시인의 시에서는 삶과 세월이 묻어나 오히려 더 정겹게 다가오는 듯하다.


따뜻한 이불 속에서 귤 까먹으며 오늘 시집 한편 읽어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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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집을 읽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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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2023년이 개인적으로 힘든 한 해였다는 나태주 시인. 스스로 짚어봐도 우울증 증상이 분명했다고 전한다. 하는 수없이 가볍게 우울증 약을 먹으며 두문불출 지내기로 한다. 젊은이들 말로라면 번아웃이 된 것이다.


그토록 허방지방 어지럽던 시기에 쓰인 글들이 모여 이 시집 <오늘도 나는 집으로 간다>가 되었다. 키워드는 '오늘'과 '나'와 '집'. 사람이 살아가는 데 그 세 가지가 가장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다. 누구나 힘든 하루, 집으로 돌아가는 것 자체가 위로와 기쁨이 아니겠나라고 전한다.


이 시집은 나태주 시인의 52번째 시집으로 새롭게 써 내려간 178편의 작품이 실려있다. 저자는 이 시집에 대해 감사란 말을 넘어서는 감사가 담긴 시집이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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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 깊게 다가왔던 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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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안녕, 오늘아



나 지금 집으로 돌아간다

고달픈 하루, 일과를 접고

무거운 팔과 다리 데리고 집으로 간다

집에 가면 낯익은 얼굴 주름진 얼굴

나를 반겨주겠지

(...)

오래된 얼굴이 기다리는 집

어둑한 불빛이 반겨주는 집


편안한 불빛 속으로 나 돌아간다

안녕 안녕, 오늘아.

18~1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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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떠올리면 드는 생각들이 압축적으로 잘 담겨있는 시라는 느낌이 든다. 지친 몸을 이끌고 돌아가는 길이 서글프지 않은 이유는 돌아갈 집이 있어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고달픈 하루를 보내고 무거워진 몸을 이끌고 가는 길이 다소 피로하게 느껴지기는 해도 집에 간다는 생각만으로도 안도감, 쉼, 편안함 등이 느껴져 다시금 집의 소중함에 대해 생각하게 된 시간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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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분 식물



잘 자라지 않는다

쉽게 시든다


거름 부족이거나

햇빛 부족이 아니라

물 과잉이 원인이다


오늘날 우리들 삶이 그렇다

3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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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심장하게 다가왔던 시다. 여러 부분에 이 시의 내용을 접목해 볼 수 있는데, 실제 식물을 비롯해 사람에게도 적용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식물을 키워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어떤 것이 부족해서 죽기보다 오히려 과잉 관심으로 인해 자주 주는 물이 식물이 죽는 원인이라는 것을.


사람도 마찬가지 아닐까? 사랑이라 앞세워 말하는 언행이 사실은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이제는 깨달아야 할 시점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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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회고



잘 사는 인생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자기가 살고 싶은 대로 사는 인생

하지만 세상에 공짜란 없는 법

제멋대로 아무렇게나 되는 것은 없는 것

무언가 소중한 것을 포기하고 내려놓을 때만 가능하다

(...)

남 앞에서 떵떵거리며 잘난 체하기 같은 것들도 포기해야 했다.

그런 다음에야 내가 갖고 싶은 것들을 가질 수 있었다.

(...)

어렵게 얻은 자발적 고독

그렇게 사는 것만이 정말로 내가 잘 사는 인생이었다.

130~13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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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원하는 인생을 살고자 한다면 무언가는 내려놓고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한다. 저자 역시 남 앞에서 떵떵거리거나 잘난 체하기 같은 것들을 포기한 뒤에야 비로소 자신이 갖고 싶은 것들을 가질 수 있었다고 말한다.


그런 과정을 겪고 난 뒤 비로소 어렵게 얻은 자발적 고독이기에 아마도 저자 스스로 누구보다 소중하고 귀하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삶의 모든 것을 다 가질 수는 없다. 진짜 내가 원하는 인생을 살고 싶다면 무엇을 포기하고 무엇을 취해야 하는지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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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감는 시간



아들아

소리 내어 울지 마라

울 힘이 있거든

그 힘으로 용서하라

그리고 너 자신 편안해져라

그것이 비로소 평화이고

사랑이고

인생의 완성이란다

17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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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의 제목 '눈 감는 시간'을 나는 '죽음'으로 보았다. 죽음을 목전에 둔 아버지가 아들에게 전하는 일종의 당부처럼 느껴졌는데, 짠함과 동시에 애잔함, 깊은 사랑의 감정이 동시에 느껴졌다.


실제로 죽음을 목전에 둔 사람에게 하는 인사 중에 용서하고 편안하게 가라는 인사말을 건네는 경우가 있는데, 이 시에서는 오히려 아버지가 남겨진 아들을 다독이며 마음 편하게 살라는 안부를 건네고 있어 더 가슴 아프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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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우지 못한다



어머니

어머니 전화번호

어머니 세상 뜨신 지 4년째

내 핸드폰에서 지우지 못한 번호

010-9450-1086


문득 전화 한번 걸어보고 싶어

전화기 누르려다가 멈칫


정말로 어머니가 받으시면 어쩌나?

아니, 다른 사람 목소리가 대신

전화받으면 뭐라고 말하나?


전화기 내려놓고

전화번호 지울까 말까

이번에도 차마 지우지 못한다.

18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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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를 읽으며 나 역시 지우지 못한 번호 하나를 새삼 다시 꺼내보았다. 문득 생각나 문자라도 보내볼까 하다가 멈칫 거리며 보내지 못하고 접어두던 세월. 시간이 많이 흘러 이제 그만 전화번호를 지우자 마음먹다가도, 차마 지우지 못하고 저장되어 있는 번호.


그런 숨겨둔 내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있던 시를 읽으며, 그때의 나를 다시 떠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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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



점점 봄과 가을이 빨리

지나간다

머리를 잠깐 보였는가 하면

이내 꼬리를 보인다

아 그래서 옛 어른들도

당신들 나이를 봄과 가을

춘추라 불렀던 것일까

봄과 가을은 빨리 지나간다

그처럼 너희의 날들도

빨리 지나가리라.

237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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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다가 문득 깨달음을 얻었던 시다. 점점 더 짧아지고 있는 봄과 가을. 붙잡으려 해봐도 붙잡을 수 없는 춘추.


나이를 먹어갈수록 더 빨라지는 세월. 맞다, 그래서 어른들 나이를 춘추라고 이야기했나 보다.


이 시집 곳곳에는 시인이 자신 또한 살 날이 많이 남지 않았음을 이야기하는 부분들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어쩌면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문득 '나이'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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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운 일



사람이 아는 길만

길이 아니고

눈에 보이는 길만

길이 아니라

더 좋은 길은

숨어 있는 길

사람이 모르는 길

그 길을 짐작으로라도

조금씩 알게 될 때

그 사람은 이미 늙은 사람이 되지만

그때라도 그 길을

알게 됨은 고마운 일이다.

26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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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는 길로만 다니고 아는 길이 정답이라 생각하고 앞만 보고 걸어간다. 하지만 한참 시간이 흐르고 늙은 사람이 되었을 때 문득 모르던 숨은 길을 발견하게 되는 때가 있다.


보이는 길만 길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관심을 두지 않아서, 숨어 있어서 몰랐던 것이다. 이제라도 알게 된 것이 얼마나 다행이고 고마운지.


더 나이 들기 전에, 때로는 멈춰 서서 모르던 길, 안 가본 길을 살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


벌써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다는 나태주 시인.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보며 주며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되어 주고 있다.


이 시집은 유난히 힘든 나날을 겪고 난 후 새로 쓰인 시가 많아선지, 인간 나태주에 대한 내용들이 유독 많이 담겨있는 듯하다.


그의 삶, 생각들을 살펴보며, 내 삶 속에 깊숙이 감춰둔 감정도 꺼내보고, 또 미래의 내 모습도 떠올려본다.


그러면서 문득 이런 생각을 해본다. 모난 곳 없이 달콤한 과실을 얻기 위해서는 오늘의 나를 더 잘 보살펴야겠다고. 매번 알던 길만 가기보다 새로운 길도 가보고, 과한 것은 덜어내어 부족한 부분에 채워줌으로써 균형을 맞춰주고, 몸이 편한 것보다 마음이 편한 것에 더 중점을 두어보자고 말이다.


그러면 언젠가 다시 멈춰서 삶을 돌아 보았을 때 후회로 남는 일들보다 고마움과 행복감으로 남는 일들이 더 많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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