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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랑과 꽃과
나태주 지음 / OTD / 2026년 1월
평점 :
"소박하지만, 취향 저격의 시들만 모아놓은 나태주의 시집!"
나태주 시인의 시집을 꽤 많이 만나봤는데, 개인적으로는 이번 시집이 내 취향에 가장 가까웠다. 이번 시집이 독자들로부터 많은 지지를 받은 작품들만 모아서 낸 시집이라서일까. 공감 가는 포인트의 시들도 많았고, 또 다른 독자들의 시평도 함께 감상할 수 있어 꽤 흥미로웠다.
그래서 이번 서평에는 각 시별로 느꼈던 감상 포인트들에 조금 더 중점을 두고 써보려고 한다.
총 4부로 구성된 이 시집에서는, 스쳐 지나가지만 소중한 순간들을 포착해 시로 옮겨온 시인의 태도를 중심에 둔 시들을 많이 만나볼 수 있다. 더불어 독자들의 시평도 함께 만나볼 수 있다.
그래서일까. 화려하지는 않지만, 누구나 보편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포인트들의 시구들을 많이 만나볼 수 있었고, 그래서 더 마음에 담아두고 싶은 시들이 많았다.
시인은 이 책을 빌어, 유명한 시집이기보다는 유용한 시집이 되기를 바란다는 말을 남겼는데, 실제로 이 시집을 접한 사람들에게는 ‘유용한 시집’으로 더 오래 기억되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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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 깊게 다가온 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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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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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지만 말이야
가는 사람은 가는 사람이고
남는 사람은 남는 사람이란다
까닭이나 핑계가 따로 있을 수 없지
외롭고 아프고 쓸쓸한 것도 말이야
그것도 그 사람 몫일 뿐인 거란다.
(20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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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냉정해 보이지만, 현실적인 감각으로 바라보면 오히려 더 큰 위로와 다독임이 느껴지는 시구다. 처음 이별을 경험하면 당황스러움에 더해 깊은 슬픔에 빠져들기도 하는데, 그런 일들을 여러 방식으로 겪다 보면 어느 순간 이런 냉정함과 이성적인 시선에 닿게 되는 것 같다.
충분한 경험과 연륜이 쌓여야만 건넬 수 있는 위로의 말이기에, 그래서 더 깊이 와닿았던 시구다.
■빈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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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아름답게
비워둔 자리
누군가 깨끗하게
남겨둔 자리
그 자리에 앉을 때
나도 향기가 되고
고운 새소리 되고
꽃이 됩니다
나도 누군가에게
아름답고 깨끗하게
비워둔 자리이고 싶습니다.
(33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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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인생 전반에 내가 가지고 있는 기본 개념이나 생각과 일치하는 부분이 많아 공감이 갔던 시구 중 하나다. 이 시에서는 '자리'로 표현하고 있지만, 나는 그 자리에 다양한 단어와 의미를 얹어볼 수 있다고 느꼈다.
'아버지'나 '어머니'의 자리가 될 수도 있고, 직장에서는 특정 직급이나 포지션으로 읽힐 수도 있다. 혹은 내가 인생 전반에 머무르며 남긴 영향력으로도 해석이 가능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나는 향기나 새소리보다 오히려 무향 무취로 머물다 사라지고, 이후에는 말끔한 본래의 상태로 남기를 바라는 쪽이지만 말이다.
■아끼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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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것 아끼지 마세요
옷장 속에 들어 있는 새로운 옷 예쁜 옷
잔칫날 간다고 결혼식장 간다고
아끼지 마세요
그러다 그러다가 철 지나면 헌 옷 되지요
마음 또한 아끼지 마세요
마음속에 들어 있는 사랑스런 마음 그리운 마음
정말로 좋은 사람 생기면 준다고
아끼지 마세요
그러다 그러다가 마음의 물기 마르면 노인 되지요
좋은 옷 있으면 생각날 때 입고
좋은 음식 있으면 먹고 싶을 때 먹고
좋은 음악 있으면 듣고 싶을 때 들으세요
더구나 좋은 사람 있으면
마음속에 숨겨두지 말고
마음껏 좋아하고 마음껏 그리워하세요.
그리하여 때로는 얼굴 붉힐 일
눈물 글썽일 일 있다 한들
그게 무슨 대수겠어요!
지금도 그대 앞에 꽃이 있고
좋은 사람이 있지 않나요
그 꽃을 마음껏 좋아하고
그 사람을 마음껏 그리워하세요.
(3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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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내가 취했던 실수(너무 아끼기만 하다가 똥된 일)들이 생각남과 동시에, 현실적인 감각을 일깨워 주는 시라 읽으면서 정신이 번쩍 들었던 시다.
잠시 예상치 못한 일들을 겪는다고 한들, 지금 현실 속에서 내가 내 감정에 솔직하게 사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는데 말이다.
그런데 우리는 여러 이유로 지금 내 감정이나 물건들을 그저 아끼기만 한다. 결국 아끼기만 하다가는 썩어 문드러지기만 할 뿐인데, 왜 과거에는 그토록 아끼기만 했었던 건지.
이제는 이 시의 마지막 시구처럼, 현재에 내가 느끼고 좋아하는 것들을 마음껏 누리고 즐기면서 살아가 보려 한다.
■초라한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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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진 것을 주었을 때
사람들은 좋아한다
여러 개 가운데 하나를
주었을 때보다
하나 가운데 하나를 주었을 때
더욱 좋아한다
오늘 내가 너에게 주는 마음은
그 하나 가운데 오직 하나
부디 아무 데나 함부로
버리지는 말아다오.
(6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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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반부로 갈수록 어딘지 모르게 섬뜩한 느낌이 들면서도, 여러 감정이 교차하는 느낌이다. 무언가를 누구에게 주느냐에 따라 그 감정의 결도 사뭇 달라질 듯하다.
만약 상대가 불특정 다수거나 별 의미 없는 사람이라면, 너무 서글프게 다가올 것 같다. 상대방은 나에게는 유일무이한 소중한 단 한 가지를, 그저 유일한 하나라는 이유로 가지고 싶어 하는 느낌이 들어 더 그렇다.
특히 마지막에 '부디 아무 데나 함부로 버리지는 말아다오'라는 시구 때문에 더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반면 사랑하는 이에게 보내는 프러포즈의 느낌이라면, 다소 낭만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유일무이한 내 마음을 받아 달라는 의미를 가슴 절절하게 표현한 것처럼 보여서다.
제목이 <초라한 고백>인데 요즘 사회적으로 워낙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라 이 또한 다양한 의미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고 본다.
■작은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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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 지금 어디서 누구하고
무엇을 하든지 네가
너이기 바란다
너처럼 말하고 너처럼 웃고
너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랑
너처럼 잘 살기 바란다
이것이 나의 뜻
너를 사랑하는 나의
작은 마음이란다.
(72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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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히 나 자신으로 살기를 바라는 예쁜 마음이 잘 담긴 시인 것 같아 계속 곱씹게 된다.
나처럼 말하고 나처럼 웃고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랑
나처럼 잘 살기 바란다
누군가 내가 이렇게 살기를 빌어주는 사람이 있다면, 더없이 행복하지 않을까?
■너를 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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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와서
내가 하는 말 가운데서
가장 고운 말을
너에게 들려주고 싶다
세상에 와서
내가 가진 생각 가운데서
가장 예쁜 생각을
너에게 주고 싶다
세상에 와서
내가 할 수 있는 표정 가운데
가장 좋은 표정을
너에게 보이고 싶다
이것이 내가 너를
사랑하는 진정한 이유
나 스스로 네 앞에서 가장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소망이다.
(84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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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자나 연인이 이런 마음으로 나를 대해준다면 너무나 행복할 것 같다. 더불어 내가 세상에서 가장 귀한 대접을 받는 사람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이지 않을까. 가장 고운 말, 가장 예쁜 생각, 가장 좋은 표정, 여기에 더해 가장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풀꽃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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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을 알고 나면 이웃이 되고
색깔을 알고 나면 친구가 되고
모양을 알고 나면 연인이 된다
아, 이것은 비밀.
(96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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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보면 정말 그렇다. 상대방의 무엇을 알게 되는 순간 우리는 이웃이 되고, 친구가 되고, 연인이 된다.
00호에 사는 누구인지를 알면 우리는 이웃이 된다.
어떤 취향을 가졌고,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를 알면 우리는 친구가 될 수 있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어떤 미래를 꿈꾸고 어떤 형태로 사랑하고 싶은지를 알게 되면 모양이 맞는 이들끼리 연인이 되기도 한다.
■잠들기 전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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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오늘도 하루
잘 살고 죽습니다
내일 아침 잊지 말고
깨워 주십시오.
(155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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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유적 표현으로 '오늘 하루도 잘 살고 죽는다, 내일 아침 깨워달라'고 쓰여 있는데, 그 어떤 하루를 표현한 문장보다도 가장 찰떡같은 표현이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연령대에 따라 받아들이는 느낌의 격차가 클 것으로 예상된다. 젊은 시절에는 그저 웃으며 넘길 수 있는 시구이지만, 나이가 들수록 점점 두려움과 어떤 간절함이 동반될 것만 같은 느낌이다.
요즘 같은 시대에서 '오늘도 하루 잘 살고 죽습니다'라는 말은, 어떻게 보면 무사히 하루를 보내고 편히 잠든다는 표현과도 일맥상통하는 것 같아 '무사함'이라는 단어가 떠오르기도 한다.
'내일 아침 잊지 말고 깨워 주십시오'라는 표현에서는 지각, 두려움, 간절함 같은 다소 다른 결의 감정들이 함께 느껴져, 사람마다 다양한 의미로 다가올 것 같은 시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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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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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시집은 유난히 곱씹게 되는 시구나, 가만히 들여다보게 되는 시구들이 많았다. 아마 그만큼 많은 지지와 사랑을 받아온, 검증된 시들이라서 더 그렇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개인적으로는 생활밀착형 내용을 담은 시들이 많아 더 의미 있게 다가왔는데, 소박하지만 일상 속에서 문득문득 마주치게 되는 상황이나 감정들을 건드리는 시들이라 더 흥미롭게 눈여겨보게 되었던 것 같다.
특히 위에 언급한 시들은 내가 평소 가지고 있던 생각이나 관념, 사람에 대한 시선과 맞닿아 있어 더 특별하게 다가왔는데, 읽는 사람이나 그때의 감정에 따라 전혀 다른 시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와닿았던 시구들을 가까이에 두고, 한 번씩 곱씹으며 일상 속에서 '되고 싶은 사람'이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방법'으로 활용해 봐도 좋지 않을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