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이십오 년 만에 <숨어사는 외톨박이>를 꺼내 읽었다. 1970년대에 초판이 나온 책인데 전통사회에서 소외되고 천시 받던 무당, 화전 꾼, 땅꾼, 백정, 기생, 내시 등이 살아온 길을 찾아서 듣고 르포형태로 쓴 책이다. 1970년대에 이미 고령에 접어든 분들이라 지금은 생존 가능성이 없다. 내가 이 책을 소중이 여기는 이유 중의 하나다. 지금은 절대로 세상에 나올 수가 없는 책이다.



천천히 읽는데 마치 처음 읽는 것처럼 새로운 내용이 많았다. 화전 꾼 이야기를 읽다가 문득 ‘도장 방’이라는 말을 만났다. 사전에도 나오지 않아 인터넷을 찾아보니 ‘곳 간’이라는 뜻이라고. 신대륙을 발견한 느낌이었다. 어린 시절 우리 집에도 ‘도장’이라고 불리는 방이 있었다. 창고도 아니고 방도 아닌데 농기구나 잡곡들을 보관하는 용도로 사용했다. 어른들이 그 방을 도장이라고 불러서 그런 줄 알았지 그 뜻은 몰랐다. 


50년 넘게 살면서 곳간을 의미하는 용도로 도장이라는 말을 글에서나 말에서 보고 들은 적이 없었다. 신기한 일이다. 어린 시절 오직 우리 집에서만 사용하는 말 인줄 알았더니 내가 좋아하는 오래된 책에서 그 말을 글로 구경을 하다니 말이다. 어째서 시골 농가에서 그런 어려운 말이 우리 집 식구들 사이에서만 사용되었는지도 이상한 일이다. 우리 집에서 그 방을 도장이라고 부른 것은 동네에서 훈장 노릇을 했다는 고조할아버지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지 짐작할 뿐이다.


<숨어사는 외톨박이>을 내가 왜 좋아하는지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이 책의 주인공들의 손자뻘이 딱 내 나이 대였다. 1970년대 중반 겨우 초등학교에 들어갈 나이 말이다. 더 이상 자신의 일을 물려받지 않고 도시로 신교육을 받으려고 나가려는 자식들의 자식이 딱 나와 동년배들이었다. 일찍 돌아가신 할아버지와 그 시대의 추억이 나를 이 책에 빠져들게 한 것 같다.


예전엔 이 책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직업을 가진 귀중한 사람들의 기록이라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읽어보니 더 이상 발화되지 않는 소중한 어휘와 특정한 직업에서 사용되는 은어의 보물창고로서의 가치도 뛰어나다. 각설이꾼들이 손님들이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자기들끼리 암호처럼 사용하는 은어, 백정들이 소를 도살하는 장소(천궁)에서 사용하는 용어들 자체가 소중한 문화자산이 아닌가.


뒷바라지라는 말이 무당이 굿을 할 때 남자 무당(박수)가 북을 치면서 추임새를 넣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을 이 책으로 처음 알았다. <오래된 새 책>에서 언급한 많은 절판 본들이 재출간되었지만 정작 내가 가장 사랑하는 이 책<숨어사는 외톨박이>는 재출간에 대한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 더욱 소중하게 여기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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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0-10-20 18: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고 보니 희미하게 기억나는 것도 같네요.
저도 읽은 지 오래되서...
그때 정말 말씀하긴 책 많이 애정하셨던 것 같아요.
요즘 재출간 반갑긴한데 제가 원하는 책은 안 해 주더군요.
욕심이 많아서겠지요?ㅎㅎ
재출간에 비하면 절판된 책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어떤 건 나온지도 얼마 안 되는데도 벌써 절판된 책이 있더군요.
알라딘에서 품절 의뢰하면 찾아주는 서비스도 실효성이 있는지
별로 실감을 못하고 있습니다.

박균호 2020-10-20 22:04   좋아요 0 | URL
웬만한 책은 그냥 사두기만 하면 알아서 절판본이 되는 현실 이죠 ㅎㅎ

2020-10-27 23: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0-28 00: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0-28 10: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0-29 19:39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