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고기보다 과일을 좋아하셨다. 시골집에 계실 땐 몰랐는데 아프셔서 요양원에 가신 이후로는 맛있고 진귀한 과일을 보면 늘 어머니를 생각했다. 아마도 어머니는 요양원에 계시면서 생전 처음 드셔 보는 과일을 여러 번 만나셨다. 아내는 커피를 좋아한다. 바리스타 자격증을 취득할 정도로 커피에 푹 빠졌는데 맛나다고 소문난 커피를 알게 되면 아내를 위해서 사는 버릇이 생겼다. 


번번이 아내의 취향을 저격하는데 실패하다가 결국 성공한 것은 아내와 냉전 시절 집을 나와 방황하다가 와신상담하며 청포도 주스로 허기를 달랬던 카페에서 파는 커피였다. 알고 보니 대형 로스팅 기계를 완비하고 있고, 커피와 관련된 무슨 대회에 나가서 수상까지 한 이력이 있는 유명한 집이었다. 아내와 드라이브를 하다가 맛난 청포도 주스로 나를 감탄하게 했던 추억이 떠올라서 들렀는데 아내는 그 집 커피에 중독되어 버렸다. 


아내는 일삼아 운전해서 그 집에 가서 커피를 사먹고 만족하지만 그래도 나는 좋은 커피라는 소문을 들으면 일단 산다. 아내가 좋아할지 모르니까. 새로운 시도는 언제나 실패했다. 심지어는 내가 애용하는 인터넷 서점에서 파는 커피까지 대령해봤는데 ‘다시는 사오지마’라는 반응이었다. 여성 유저들이 맛이 괜찮다고 칭찬을 해서 은근히 기대를 했었는데 말이다.


그렇다고 내가 새로운 커피를 대령하는 것을 멈추는 것은 아니다. 어제도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우연히 알게 된 커피 맛 집에서 구운 원두를 주문했다. 직장으로 배송이 와서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박스를 개봉했는데 단 1초도 되지 않는 시간으로 이토록 사람을 갑자기 행복감에 놀라게 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로 향이 달콤하고 고소했다. 본능적으로 얼른 박스를 닫았다. 허투루 날아간 향기마저도 아까웠다. 


퇴근길에 내가 사랑하는 학생들을 위해서 맛나다고 소문난 빵집을 갔다. 중학교 2학년 꼬맹이들인데 그들과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 행복감이 밀려오는 착하고 순수한 마음씨를 지녔다. 추위를 잘 타는 나를 위해서 내 시간이 되면 꺼져 있던 온풍기를 내가 좋아하는 온도로 맞춰놓는 자상함이라니. 50대 직장인이 얼마나 일하기 귀찮아하는가. 그런데도 그 아이들의 수업이 있는 날은 설레고 어쩌다 행사가 있어서 수업이 없어지면 서운하다. 



어쩌다 자습이라도 할라치면 수업을 해달라고 조르고 내 이야기에 쫑긋 귀를 귀울여준다. ‘엄마가 싸준 맛있는 김밥’이라는 말을 할 줄 아는 아이들. 출근길에 교문 앞에서 만나면 반가워서 창문을 열고 인사를 건네고 싶은 아이들이다. 아이들은 내가 들고 간 빵을 맛나게 먹을 것이 분명한데 다만 아내는 오리무중이다. 아내는 내가 조공한 커피를 맛나게 마셔줄까? 


오늘 알라딘 서재 서니데이님이 어머님이 손수 뜨개질한 수세미를 보내주셨다. 서니데이님은 매일 일상의 안부를 묻고 근황을 전하는 글을 쓰는 존경스러운 분이다. 알라딘 서재의 명예의 전당에 단 한명만 올려야 한다면 이 분이 그 자리에 가셔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로서는 도저히 흉내를 낼 수 없는 글쓰기를 하시는 분이다. 


감사히 받았는데 직장에서 개봉을 하자니 민망하였다. 늙수그레한 아재가 책상위에 수세미를 늘어놓고 인증 샷을 찍자니 어쩐지 용기가 나지 않았다. 집에 오자마자 수세미를 펼쳐보았는데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수세미라는 이름으로 부르기엔 너무나 예쁘고 앙증맞은 작품이었다. 세상에! 하트 무늬가 새겨진 수세미라니!! 이걸 아까워서 어떻게 쓰라는 말인가. 


너무나 감사하여서 말문이 막힌다. 그러니까 서니데이님은 내가 아내와 제자에게나 베푸는 인심을 얼굴 한 번 본 적도 없는 나에게 주신 것이다. 이 귀한 작품을 어디에 모셔 둘까 고민을 하다가 얼마 전에 지인에게 선물 받은 보자기 그림과 함께 두기로 했다. 너무 잘 어울린다. 따뜻하고 보는 것만으로 행복해진다. 내 가족과 사랑하는 제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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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0-11-19 20: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따뜻한 온도를 맞추는 학생들이 있어서 좋으시겠어요.
제과명장님의 작품도 근사합니다.
저희집 수세미 예쁘게 봐주셔서 감사해요.
앞면에 하트가 있어서 하트호빵수세미라고 해요.
주방에서 설거지 하실 때 쓰시면
거품도 풍성하고 쓰기에 편합니다.
아끼지 말고 잘 써주세요.
비가 와서 날씨가 많이 차가워졌어요.
감기 조심하시고, 따뜻하고 좋은 저녁시간 보내세요.
감사합니다.^^

박균호 2020-11-19 20:50   좋아요 1 | URL
데이님이 보내 주신 예쁜 수세미 덕분에 정갈한 밤을 보낼 것 같습니다 ^^ 정말 고맙습니다. 편안한 저녁 되세요.

페크(pek0501) 2020-11-20 15: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수세미로 쓰기 전에 너무 예쁘고 반짝여서 12월에 크리스마스 트리에 달아야 할 것 같아요.
기분 좋으셨겠네용~~

박균호 2020-11-20 15:24   좋아요 1 | URL
네 아름다운 수세미입니다